소설리스트

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35화 (135/175)

135화

연화존자는 천천히 청혈백사에 대해서 아는 사실들을 복기한다.

연화존자가 청혈백사와 중국 국가안전부 무림정찰국에 대해 아는 건 간접적인 정보. 그러니까 그간 알려지지 않은 중국 공산당의 방해자로서 수집한 정보가 대다수다.

국가안전부와 여러 차례 충돌했고 또 전 세계를 누비며 수집한 중공의 사파 무공에 대한 지식들이 그에게는 있다. 끔찍한 무공, 비인간적인 실험 같은 것들을 연화존자는 분노와 함께 서서히 끌어 올린다.

해야 할 일이 있지만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일들은 빠르게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확실하게 마무리해야 함이 더 중요함을 그는 알고 있다.

중공의 가장 사특한 고수 중의 고수, 그 누구보다 뱀 같은 비열한 이가 눈앞에 있는데, 어찌 후환을 남길 것인가?

‘그럴 수야 없지.’

절대 놓치지 않고 이 자리에서 처리하겠다고 다짐한다. 오늘의 사태, 동아시아에 가져온 엄청난 긴장의 원흉 중 하나. 중국 공산당 내에서도 자신을 가장 적대시하던 자를 없애 버리겠노라고.

그런 연화존자를 보며 청혈백사 역시 떠올린다. 그가 아는 연화존자에 대한 사실들을, 아울러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무공을 격동하는 심장을 다스리며 조곤조곤 머리에 담는다.

그 또한 연화존자와 마주하는 건 처음이지만 알아왔던 사실들이 있다. 정체를 밝히기 전, 중국 국가안전부의 공작을 방해했던 때부터 대한민국에 국가무공원을 설치하고 이어져 온 일들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청혈백사는 잘 알고 있다.

비슷한 결심이 서는 것이다, 여기서 연화존자를 보내 줄 수 없다는.

“이렇게 만났군.”

다만 달랐던 것은 가슴속 격동을 도무지 감출 수 없었다는 사실, 하나.

“세상이 전부 네놈 뜻대로 돌아가는 거 같겠지?”

청혈백사는 요사스러운 혓바닥을 놀렸다. 대비되는 붉은빛의 입술을 열어 연화존자에게 갖은 비난을 퍼붓는다.

그것이 옳고 그르냐는 상관없다.

“어디 감히 소국의 무인이 대국에 대항하는가? 네놈의 운명은 그걸로도 정해져 있다.”

연화존자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치고 들어가진 않았다. 그것은 청혈백사도 그렇지만 주변에서 대기하는, 아마도 국가안전부 소속의 세뇌된 사파 고수들이 분명한 이들이 보란 듯이 온몸에 칭칭 폭탄을 두르고 있기 때문.

심지어 청혈백사조차도 그러한 몰골이었다. 마치 폭탄 테러범이 될 몰골로 그들은 호심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연화존자를 막고 싶다는, 죽이고 싶다는 얼굴로.

“지금이야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곧 보아라. 네놈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놈들이 나올 테니까. 지금쯤이면 너도 느끼고 있을 텐데? 상하이의 잡놈들이 네놈을 견제하고 있다는걸?”

그들은 언제라도 누를 수 있게 기폭 장치를 단단히 쥔 채로 슬금슬금 포위망을 조성하려고 했다.

궁금할 지경이었다. 저 적의와 증오는 자발적인가, 비자발적인가?

조심스레 보법을 밟아 그들이 만들려는 원을 빗겨 가며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청혈백사의 몸에도 달려 있는 저 폭탄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무림정찰국 국장의 몸에선 화약 냄새보다 악취가 더 심하다.

“티베트나 위구르 놈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네 덕에 소리라도 지르는 입장이니 조용하겠지만, 시간이 지나고도 과연 그럴까? 북한은 어떻고, 네놈의 나라는 어떨까? 미국은? 세상이 널 가만히 둘 것 같은가? 이 모든 것이 끝나고도?”

총이라도 한 자루 들고 왔으면 일이 편했을까 싶다. 앞뒤 볼 것도 없이 움직이며 쏴 버렸으면 일이 더 쉬웠을 텐데.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미 내외공의 수발이 입신의 경지에 든 지 오래인 절대 고수에게 도구는 탓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

“모난 돌이 정을 맞기 마련이며, 결국 이 세상은 네 쓸모가 다하면 널 버릴 것이다. 배제하고, 사라지게 하고, 너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할 테지.”

“그런가?”

“그래.”

말없이 움직이던 연화존자의 입이 열린 것이 기뻐 청혈백사는 입술을 핥는다. 그건 강호 사람들이 청혈백사의 별호를 잘 지었다는 반증처럼, 냄새를 느낀 뱀의 것과 무척이나 닮은 모양새.

“장담한다. 네놈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동시에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세뇌시킨 청혈백사의 수하들이 비어진 광장 근처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들은 연화존자가 이곳으로 올 거란 걸 알았다. 그가 막아야 하는 건 결국 총서기를 확보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러자면 이리로 올 수밖에 없었다.

준비는 완벽했다. 도발도, 화력도, 숫자도.

청혈백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가?”

담담히 말하는 저놈의 오만이 곧 일그러질 거라고 예상한다. 무림의 절대고수, 21세기 제일의 기인이사인 연화존자라 한들 피륙으로 이루어진 사람 아닌가?

제깟 놈이 날고 기어 봤자 이만한 숫자의 자살 폭탄 특공대라면 해볼 만하다고 청혈백사는 여긴다.

“그래. 네놈은 평생을 후회하며 살 것이다. 차라리 빨리 죽기를 기도하며. 물론 길지는 않겠지. 오늘 여기서 널 죽이고, 감히 주제도 모르고 건방졌던 모든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줄 테니까.”

오랜 시간의 세뇌는 빛을 발하리라. 국가안전부의 요원들, 그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자들은 항상 정신적인 제압과 함께해 왔으니, 죽으라면 시늉이 아니라 정말 죽고도 남을 자들이다.

이를 위해 그 자신도 몸에 폭탄을 두르는 한바탕의 연극을 청혈백사는 했던 것이다. 당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다는 기만책은 작금의 위기에 싸게 먹히는 지불이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랬던 청혈백사의 기대는 다음 순간, 연환존자의 발구르기에 산산조각 난다.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깨어진 판석처럼.

고르고 평평하게 깔려 있던 바닥의 돌들이 연화존자의 발길에 부숴지고 그걸로도 모자라 공중으로 떠오르기까지 하는바.

상승이 각각의 최고조에 이른 찰나의 순간, 연화존자는 그것들을 국가안전부 요원들을 향해 쏘아 보냈다.

잔상만 남은 손과 발로 말이다. 앗, 하는 순간 일어난 일이었고 길다. 긴 직선, 궤적조차 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각각의 파편들은 정확하게,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이마에 빨려 들어가듯 꽂혔다.

적어도 연화존자의 시야에, 기감에 잡히는 자들에게 예외란 없었다. 압도적인 죽음,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기예의 현현이었지만 이에 놀라는 건 오직 하나, 청혈백사.

하지만 강호의 늙은 생강답게 본능적으로 양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그래야 함을 가슴이 아는 것처럼.

그 예감이 그를 잠시 더 살렸다.

“크흑.”

“강호를 헛살지 않았네?”

중국 국가안전부 최후의 무림정찰국 요원들을 몰살시킨 연화존자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어 청혈백사의 목을 잡아 갔던 것이다. 만약 본능이 시키는 데로 대비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목이 뚫렸을 형태로.

그 치명적인 일수를 막아 낸 대가로 청혈백사의 오른쪽 손목이 부러져 덜렁거리지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그는 허겁지겁 뒤로 물러난다.

연화존자는 그런 청혈백사를 쫓기에 앞서 가만히 물었다.

“왜 나를 공격했지?”

단정하게 빗어 내렸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어 흩어지고, 평소의 가증스러운 기만을 벗어던진 채 낭패를 봐서 흉악한 인상이 된 청혈백사에게 연화존자는 가만히 물었다.

“난 딱히 너희를 적대할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야.”

다른 건 아니었다.

“그냥 가만히 있는 데로 뒀으면, 굳이 먼저 음모를 꾸미고 공격하려 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지키는 선에서 끝냈을 거야. 한데 왜 그렇게까지 내게 적의를 품었던 거지?”

딱히 궁금하진 않지만 그래도 죽은 자는 대답을 할 수 없으니 아직 살아 있을 때 물어보자는 단순한 생각.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네놈… 네놈이……?”

“대답하기 싫은가? 그럼 어쩔 수 없고.”

연화존자의 맨손이 찬란하게 물들며 불타오르고 곧이어 청혈백사의 목을 노렸다. 집요할 정도였다. 아까도 모자라 이번에도 역시 의도는 명백했으니, 청혈백사는 이자가 자신의 목을 잘라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순순히 당할 것 같으냐!”

청혈백사가 혈망지공의 내력을 끌어 올리며 외쳤다.

그와 함께 요사스러운 내기가 그의 몸에서 솟구쳤으니, 그것은 붉디붉은 뱀의 형상.

사력을 다해 연화신공의 수강에 맞서는 것이니, 혈망지공의 내력은 연화존자의 손을 그대로 으스러트리려 든다.

뱀이 혀를 낼름거리듯, 소리 없이 배를 미끄러뜨리며 기어가듯 그렇게 연화신공을 감싸는 것이다. 청혈백사의 손과 팔 또한 마치 그처럼 유연하고도 기이하게 움직여, 순간 연화신공의 찬란함이 가려지던 그 순간.

삿된 것이 불타오르며 재가 되어 흩어진다.

“아아아악!”

“같잖은 짓이야.”

연화신공의 정순함이 혈망지공은 녹아내리며 발광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보인다. 타오르며 사그라드는 내력에, 혈맥을 타고 단전에 침투한 연화신공의 공능에 이루 형언키도 어려운 고통을 느끼며 몸부림치는 청혈백사의 모습은 정말로 거대한 뱀이 아픔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일 정도.

“그런 걸로는 날 어쩔 수 없어.”

만약 청혈백사가 몸에 두른 것이 정말로 폭탄이었다면, 뭐 하나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전부 죽은 그의 부하들과 같은 종류의 폭탄이었다면, 연화존자 또한 이런 식의 제압을 시도하지 않았을 테니, 이 또한 청혈백사와 평생을 함께 해 온 기만과 속임수의 대가일지도 모를 일.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제서야 나온다.

“이 정파의 위선자 놈 같으니!”

단전이 깨지는 고통 속에서 청혈백사는 울부짖는다.

“네놈들, 너희 정파라 자처하는 놈들은 늘 그랬다. 항상 제놈들이 옳고, 도도한 척. 밥도 안 먹고, 똥도 안 싸는 것처럼 온갖 고상한 척을 다 했지.”

혈맥이 터져 나가 눈과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그는 정파의 위선이란 것에 대해 말하지만, 연화존자가 보기엔 저것은 그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는 뿌리 깊어 오래된 옛 추억이 아닐지.

“흐으읍… 후우… 너희 놈들을 모두 몰아내고 중원을 차지했는데 저 작은 나라에서 다시, 다시 득세하게 둘 수는… 그럴 수는 없었다…….”

하여 연화존자의 감상은 심플한 편.

“하찮은 이유였군.”

동시에 청혈백사의 목이 떨어진다. 피눈물을 흘리며 죽은 그의 과거가 어땠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중요한 건 그게 아닐진대.

연화존자는 침묵만이 내려앉은 광장을 지났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핵미사일을 쏠 권한을 지닌, 아직 놓지 않은 자를 향해서.

그리고 얼마 뒤. 고요함이 내려앉은 도시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나고, 모이고, 수근대며 결국 소란으로 귀결되었지만 연화존자는 돌아보지 않았다.

절대로.

* * *

총서기는 연임을 포기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고 연화존자의 설득이 그렇게 만들었다. 마지막 보루였던 국가안전부 무림정찰국의 전멸은 그로 하여금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핵에 의한 공포는 사라졌다. 중국 내 모든 핵탄두의 위치는 공유되었고, 안전하게 분리되었다.

아울러 중국 공산당은 작금의 사태에 대한 사과와 함께 다음 지도자를 뽑기로 했다. 집단지도체제는 이 와중에도 존속했다.

그렇지만 혼란이 끝났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미묘한 스탠스의 변화는 곳곳에 감지된다.

가령 미국의 중국에 대한 은은한 탐욕이 그랬다. 한때 위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연화존자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국가무공원과 우호적 관계를 성립해 가는 듯했던 그들은 현 상황에서 이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대만은 그런 미국의 전략적인 파트너가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목표하는 바가 뚜렷했다 할 일.

물론 핑계는 좋았다. 어쨌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공식적으로 이 사태에 개입한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그냥 두고 볼 연화존자가 아니었으니.

연화존자가 마무리를 위해 다시 바다를 건넜다. 이번엔 대만 정파 연합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