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연화존자는 권성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만 정파 연합은 중국의 사태에 대해 일단 침묵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 정도에서 마무리지었다. 연화존자는 이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몇 가지 인상이 있었지만, 우선 침묵했다.
뭇 사람들의 질시 따위를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정파 연합은 우물쭈물했을 뿐, 아직 그에 대해 표현하지 않았으니 우선은 넘어가 주기로 했다.
권성을 위시한 정파 연합 역시 흉중의 진심을 온전히 말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이들의 숙원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에 연화존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인정하기로 했을 뿐이다. 그의 부탁, 중국의 안정과 우선적인 후속 조치에 협조하기로 한 건 그런 의미.
공짜는 아니었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기존 총서기를 비롯한 고위 간부들이 물러난 뒤, 갖은 진통 끝에 새로운 권력자로 선출된 새 지도부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이어 나갔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중국은 노력할 것이다.’
이어 실질적인 조치가 여럿 발표되었기에 정파 연합은, 대만은 무력을 동원하자는 주장이 쏙 들어갈 수 있었다.
먼저 중국은 어떤 경우에도 대만을 무력 통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여기에는 실질적인 조치, 예컨대 외교에 있어 대만과 수교한 나라와는 수교하지 않겠다는 방침의 철회 등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니, 이 또한 연화존자의 요구 중 하나.
거기에 더해 대만의 UN 가입마저 중국의 주도로 이루어지게 되어 싸우자고 들기엔 대만 정계의 입장이 다소 우스워질 지경이 되기까지 했다.
참전의 대가로는 충분하다고 할 조치였다.
이러한 ‘선물’은 비단 대만에만 주어진 게 아니었다.
권성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다시 베이징으로 향한 연화존자의 비공식적인, 하지만 강력한 요구에 의해 위구르와 티베트 자치구의 독립은 인정되기로 했다.
지금 당장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지난 수십 년간 이루어진 탄압, 쌓아 올린 기반 시설의 존재는 중국의 도움 없이 평화적이고도 건설적인 독립이 불가능했기에, 이에 대한 지원을 중국 정부는 하기로 했다.
평소 같았으면 어림도 없던 일이니 연화존자의 ‘강력한’ 요구가 어떤 수단으로 이루어졌을지는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제갈패밀리와 당가그룹의 중원 복귀 역시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 또한 연화존자의 의도적인 푸시였다. 그간 자신에게 받은 것들에 대한 대가로 신의로써 성실했던 것에 대한 대가이자, 급격한 혼란 속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국 내부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제갈패밀리와 당가그룹에 대한 지원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급하게 파견된 당청영과의 만남은 급작스럽지만 당연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한국에서의 대성공으로 당가그룹 내에서도 손꼽히는 후계자 후보가 된 당청영을 수행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독봉 당청영은 연화존자에게 공손함과 걱정을 가득 담아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맨몸으로 헤엄쳐 바다를 건넌 이래 연화존자가 얼마나 많은 나라,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왔단 말인가?
그 결과가 당가가 그토록 바랐던 중원으로의 귀환이었으니, 감개가 무량하지 않았다면 거짓일 터.
실제로 독군이 직접 오겠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최근 운하신권이 세상을 뜬 뒤, 급격하게 나빠진 몸 상태로 당청영이 대신해서 온 일이었다.
“고생은 무슨. 나야 돌아다니며 얘기나 좀 하고 그런 건데.”
그에 반해 연화존자는 혼자였고, 전과 다름없이 그대로인 모습.
상하이 사태가 마무리되자 다시 간이 부었는지 영 고집을 피우는 이들에게 혈마제와 천지극뢰를 보냈다.
이들은 방문하고 있었다, 상황을 만들고 종결시킨 이가 누구인지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맡아 연화존자의 뜻을 전하며 바쁘게.
베이징의 상황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통제되었고, 상하이 측 인사들은 이러한 연화존자의 뜻에 동조했다.
몰락했던 상하이방은 부활했고, 사태의 중심에 있었기에 오히려 전화를 피해 갈 수 있었던 상하이의 경제는 연일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야말로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한데?”
“그런 말씀 마십시오.”
티베트 쪽은 소요가 진정되어 가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라는 기존 구심점과 함께 죽은 줄 알았던, 행방을 모르던 판첸 라마의 출현에 티베트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빠르게 결집 중이었다.
인민해방군 역시 철수하고 있었고, 이에 반대할 만한 자들은 이미 목숨을 잃었으니, 이쪽의 경우에는 별 문제 없이 독립의 기치를 올릴 수 있으리라.
문제는 그러니 다른 곳들.
“연화존자께서 저희를 필요로 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연화존자는 중국 내부의 민심을 진정시키길 원했다.
이미 그전부터 중국 인민들의 민심은 좋지 못했다. 마치 빅 브라더의 재현과도 같았던 국민 감시 시스템으로 인해 인터넷에서조차 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았던 중국 아니던가?
외부의 물음에 ‘너희 민주주의 국가는 자유롭다고 생각하기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우리는 감시받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다’라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늘어놓긴 했지만, 과연 그것으로 그들이 행복하고 괜찮을지를 생각하면 역시 그럴 리 없었다.
다른 나라에 비공식적 비밀 경찰을 보내던 나라가 아니던가? 자국민에게는 어찌나 더 잔혹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권위주의적이고 엄혹한 지배를 펼치던 공산당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통제할 만한 요소가 연화존자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당가그룹에 도움을 요청했다.
“공장을 짓고, 코로나 백신 등을 공급하겠습니다. 자선단체의 설립도요.”
이것은 당가그룹에도 필요한 일이었다.
코로나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지구 단위로, 도시 단위로 봉쇄를 이어 나가던 중국 공산당의 악명을 당가그룹은 이용하고자 한다. 전혀 반대의 행동을 함으로써 인민의 호의를 사고, 그것으로 중원으로의 귀환을 성공적으로 안착하길 이들은 원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성공은 이를 위한 좋은 예행연습이나 다름없었다. 사천에서 쫓겨나 유럽을 떠돌았던, 거대 재벌가가 된 독공의 고수들은 이제 인간의 마음을 얻는 방법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아 한다.
자신이 있다는 얘기였고, 마침 긴밀히 협력할 만한 이들도 근처에 있다.
“제갈패밀리와 협력하여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티베트 자치구를 새로운 근거지로 삼고자 하는 제갈패밀리의 행보에, 사천 출신의 당가그룹은 초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옛 격언처럼, 지난날에 연연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애초에 독군조차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지 않았나? 그룹명에 지역명을 뗀 것은 새로이 태어났고, 태어날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일이기도 했고 애초에 제갈패밀리와는 연화존자가 각자의 무공을 복원시켜 준 이래로 사이가 각별했다.
유럽에서부터 사업과 혼인으로 여럿 엮인 것이었고, 중원으로 돌아왔으니 그 협력은 더욱 각별해질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다시는 이 나라가 연화존자를 적대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인민을 살찌우겠다고, 위정자가 해야 할 일을 자신들이 하겠노라고 당청영은 당차게 말한다. 그로써 연화존자의 뜻에 따르겠노라고 말하는 그 모습에, 연화존자는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믿고 맡길 만하였다.
그렇게 잠시 베이징에 머물며 밀린 이야기들을 나눴다.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미처 놓쳤던 것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최근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독군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그중에서도 연화존자의 마음을 조금 아리게 한다.
그건 아마도 운하신권이 세상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것이었다.
“그룹 내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주화입마를 입었고 덕분에 독기가 퍼진 신체 일부를 절단해야 했던 후유증을 연화존자의 치료와 무공의 복원 이후로도 완전히 고칠 수는 없었다.
결국 육신과 내공이란 그런 것이었다. 강력한 의지, 무너진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초인적인 의지가 연화존자라는 우연적 요소와 만나 꽃피운 독군의 삶이었지만, 언제나 피어난 것은 지기 마련인 법.
그렇다 할지라도 애달픈 일이었다.
“하여 가문 내에서도 생각이 많은 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 밖의 것은 생각하지 않는 연화존자와 달리, 당가그룹의 유력한 후계자 중 하나인 당청영은 느낌이 달랐다.
“우선은 조부님에 대한 생각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당청영 또한 그 이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다. 만약 불온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 가서 제압하면 될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는데, 더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당가의 고수였고, 독붕이라 불리는 무서운 여인이다.
알아서 잘하겠지.
“국가무공원은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
“네. 미국에서의 일도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는 편이라고 합니다. 요즘 상황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외화벌이만은 확실하게 하고 있다더군요.”
미국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청해마도와 휘하 무인들의 진기요상은 고급 의료 행위로 평가받고 있었다.
이제는 미국을 넘어 근처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올 만큼 말이다. 처음의 열기, 그러니까 마약 공급의 숨통을 조인 선제적 조치가 있던 덕분에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상에 약물에 중독된 사람은 아직 너무도 많다.
그에 대한 대가로 미국 정부는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는 중이다. 이는 이런저런 논란이 있긴 해도 미국 정치인들에게 굉장히 좋은 홍보 정책이 되었는데, 전미총기협회 등의 은밀한 공세가 저지된 이후로 더욱 가속화된 측면이 있었다.
미 연방 정부는 이에 더해 미군 내 내공 보급에 대한 수의계약 또한 체결했다. 처음 국가무공원이 시작했을 무렵부터 논의되었던 일이 다소 늦게 이루어진 것인데, 이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군대는 미군의 최신 장비 일부를 할양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미군과의 협조가 긴밀해지고 있습니다.”
“내공 보급 때문이겠지?”
“예, 다른 나라에서는 대한민국만 한 규모의 내공 보급이 이루어진 경험이 없지 않습니까?”
육해공군을 넘어 경찰공무원에까지 뻗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규모 내공 보급을 다른 나라로서는 따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미국은 그나마 최후의 기사, 알렉산드루의 반로환동으로 처지가 약간 나은 경우였지만, 그래도 이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는 일.
덕분에 국가무공원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방부마저 미군의 자산에 접근하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대한민국의 군 개혁 또한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그 덕분인지 한 가지 소동이 요즘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연히 모든 게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소동?”
“군대가 이렇게 강해져서 무슨 필요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더군요.”
연화존자는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인권과 평화를 사랑하는 분들이신가?”
“대체로 그렇기는 합니다만, 아예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요즘 대한민국의 주변 상황이란 게 좀 그렇지 않습니까?”
요컨대 적이 없이 평화롭다는 이야기.
중국은 외부로 시선을 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심기를 거스르게 했던 일본은 정권이 바뀌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했다.
미국과의 협조는 그 어느 때보다 긴밀했다. 중간에 여러 수작질이 있긴 했지만 그 또한 연화존자가 해결한 일.
굳이 군대를 키울 필요가 있냐는 사람들이 튀어나오기 좋은 상황이었지만, 당청영의 말은 아직 끝이 아니다.
“덕분에 스타가 여럿 나오기도 하고요.”
독붕의 눈이 호선을 그린다.
“우리가 잘 아는 검사님 같은 분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