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국가무공원의 활약과 동아시아에서 증대되고 있는 긴장의 상승에 따라 미국과 대한민국의 협력은 강화되었다.
그전부터도 필요한 관계긴 했지만, 공조의 수준은 긴밀해지고 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 요즘의 한미 관계.
그 표면적인 이유로는 미국에 있는 청해마도의 활약, 즉 미국의 의료 체계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대한민국 무림인들의 기여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싼값으로 미국 사회를 오랜 시간 좀먹어 온 해악을 제어할 수 있게 된 측면이 컸다.
물론 국가무공원에 지불하는 치료비와 사후 케어에 대한 비용은 막대하여 대한민국 경제에 대한 세계 금융 평가 기관의 판단을 바꿀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미국에도 이쪽이 명백히 이득.
국가무공원의 진기요상은 돈과 시간을 상당히 줄여 주었다.
중독 치료소에 입소한다고 한들 치료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던 게 사실이지 않나? 뭐, 시간이 지나 어떠한 종류의 약과 수술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건 둘째치고 거기에 투자될 비용과 개발 기간 같은 걸 생각하면 차라리 진기요상의 비용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원하는 게 훨씬 싸게 먹혔다.
사회비용의 측면에서 보자면 더더욱 그랬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약물중독으로 사라졌는지, 인생을 낭비했는지, 고통 받았는지를 생각하는, 무형의 자산적 측면에서 보자면 대한민국 고수들의 내공을 통한 치료 행위는 미국 사회의 건정성이란 걸 심히 증대시켰던 바.
미국의 입장에선 한국의 기분을 전보다 더 맞춰 줄 필요가 있게 되었다는 소리였고, 이는 한국군과 미군의 교류가 심화된 이후엔 훨씬 그렇게 되었다.
미군은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내공심법, 무명공을 원했다.
비단 무공이라는 기술만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대저 기술이전이란 그에 따르는 정비와 관리에 대한 지식을 전수하는 것을 포함하는 바.
미군은 대한민국이 대규모 단위로 무명공을 도입하며 얻은 노하우 일체를 원한다고 했다.
무명공이 보급되며 일어난 사회의 변화들. 가령 내공심법이 보급됨에 따라 일어난 각계각층의 반응, 어떤 집단이 이에 동의하고 어떤 집단이 이에 저항했는지에 대한 사건의 경과 같은 것들 모두를 미국은 받고자 했다.
대한민국은 이에 응했다. 미국이 원하는 것, 미군에서 필요로 하는 걸 얼마든지 모두 넘겨줄 수 있노라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시원스레 협상에 응했다.
그러나 이것이 싸게 넘겼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었다.
새로이 임명된, 실은 내정되어 열심히 후계 수업을 받았고 운하신권이 세상을 뜨자 자리를 물려받다시피 한 전 현천문의 장문제자는 미국과의 거래에서 굽히고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왜 우리가 대한민국의 자산을 헐값에 넘겨야 하는가?’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런 식의 매국노가 비단 일제시대뿐 아니라 21세기에 들어서도 얼마나 많았는지를 생각하면, 그로 인한 피해는 일반 국민들이 전부 보았음을 생각하면 절대로 그딴 일을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최후의 기사가 기사단을 양성하고 있다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렇지 않나? 미국의 가용 가능한 내공 사용자란 알렉산드루, 단 한 명.
절세고수인 연화존자도 모자라 뒤를 받칠 무수한 무림의 인재들이 숨죽이고 있던 대한민국과 미국의 상황은 많이 달랐던 것이니. 이 말인즉슨, 대한민국의 협조가 미군에게도 제법 절실하다는 이야기.
이 사실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던 국가무공원은 길고 긴 협상 끝에 원하는 바의 상당수를 관철해 냈다.
장기 계약을 맺어 대한민국에 협조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국가무공원은 미군에 내공심법을 보급하는 교관 역할을 맡기로 했다. 무명공의 일부를 전수하기 위해 진기도인단의 삼분지 일이 미국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 협상의 골자로,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 군대 전반에 무명공의 보급이 상당 부분 이루어졌기에 내릴 수 있던 결정이다.
덕분에 진기도인단을 경호할 인력을 미군에서도 제공하는 동시에 국가무공원에서도 파견하게 되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울러 무공을 익힌 군인들에 대한 초기 교육 역시 국가무공원 소속 부대에서 맡기로 했다. 여담이지만 국가무공원 시범 부대 출신 인원들이 이를 맡기로 했고, 한창 영어 공부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은 이에 화답하며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넘겼다.
국가무공원이 파견한 인력들에 대한 인건비와 경비 일체를 지급하는 건 당연했고, 한국을 외교적으로 특별 대우하기로 비공식적으로 합의했으며, 미국만이 보유하고 있는 최첨단 기술에 대한 제한 없는 이전을 해 주기로 했다.
내공 사용자 부대의 무기는 한국에서 수입하기로 했다. 총기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는 나라인 미국이었지만, 얼마 전 시험 공개된 국가무공원 협력업체, 연화존자의 천마혈도를 빚어낸 집안에서 세운 총기업체의 성능은 놀라운 수준이었기에 그렇게 됐다.
그 밖의 많은 것을 대한민국에서 수입하고, 돈을 지불하기로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 특유의 고압적이고, 몰이해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열린 자세였다.
만약 중간에 일이 틀어지면 모두 없던 일로 하겠다는 독소 조항마저 없는 협상이었다. 서로 맘이 상해 협상을 엎었을 때 잃을 게 미국에도 분명 있다는 걸 알았기에 내린 결정.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외교 역량이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정작 정부 내부에서는 국가무공원 측이 다 알아서 했다는 판단이 우세였던 상황.
대한민국의 많은 것을 바꾸는 협약이었지만, 사실 와닿는 일은 아니었다. 연이어 언론 보도가 이루어지고, 갑론을박이 있긴 했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활자와 여상 그리고 상상.
실감은 한미 연합 훈련의 달라진 규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미군의 태평양 함대, 한미 연합 훈련 위해 부산항 입항. 역대 최고 규모.]
북한과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훈련이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이게 단순히 상하이 사태로 일어난 중국의 혼란 속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의지와 군사력이 굳건하다는 메시지만을 보내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이 훈련에는 한국군과 교류하며 내공을 익힌, 진기도인으로 몸에 내력을 새긴 미군들 상당수가 참여했고 한국에서 수입한 내공 사용자 전용 화기들이 대거 등장했다.
새로운 형태의 전투 교리와 함께 말이다. 미국의 지휘관들이 비싸게 주고 사 온 내공이라는 힘이 실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심히 궁금했다.
대한민국의 군대와 함께 합을 맞추며 그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산을 타고, 바다를 헤엄치고, 높은 곳에서 완전군장 상태로 뛰어내리고, 타고 넘고, 날아가는 헬기에서 과감한 강하를 시도하고.
모의 훈련이라고 믿기에는 상당히 과격하고 거친 모습들이 언론에 공개되었던 것이니, 광화문은 연일 이로 시끄럽다.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한다!’
‘동아시아의 긴장을 높이는 미군은 물러가라!’
…와 같은 구호가 도심을 뒤덮는다. 이에 반대하는 시위와 함께.
차를 타고 지나가며 윤아영 전직 검사는 뭔지 모를 어떠한 감상을 느꼈다.
그녀에게 있어 해결해야 할 최우선 순위의 일은 아니었음에도 도심의 혼란은 크고, 직접적이었다.
궁금할 지경이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저들은 도로 위에 나와 구호를 외치는가? 미국을 반대하는 자, 미국을 원하는 자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지나가며 느낀 감상이었다. 이제는 만성이 되어 버린 주말 서울 한복판의 모습.
“오랜만입니다, 윤 검사님. 아니, 이제 윤 변호사라고 불러야 할까요?”
다소 정력적인 태도로 반기는 현 대통령의 태도에 윤아영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그녀는 전임 대통령이 물러난 직후, 현재의 대통령을 당선인 신분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때도 그는 그랬다. 당선인 신분으로 국가무공원과 미팅을 가지며 노골적인 영입 제안을 남기던 당시에도, 자신을 정치권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게 전임 대통령과 똑 닮았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전임 대통령과 달리 그리 튼튼하지 못한 당내 기반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깨끗한, 보기 드문 정치인이었다는 사실 정도?
고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당연한 측근 비리로 수사 중인 전 대통령과는 결이 상당히 다른 인물이었다.
“편하신 대로 부르시죠.”
그러니 호칭이야 대수일 것인가?
다만 그때 하지 못한 대화를 마저 하러 왔음이다.
“얼마 전 재판도 잘 마무리했다고 들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공식적으로 말씀드리지 못할 테지만 이 자리에서는 말할 수 있겠군요. 잘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의 말대로 윤아영은 얼마 전 어려운 재판을 하나 마무리한 차였다.
권력자들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인상적인 승리,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한 덕분인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윤아영을 찾아왔고 또 덕분에 많은 재판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얼마 전의 일은 그중에서도 유별났다.
무려 현직 장관의 아들이 성폭행을 하고 피해자를 폭행한 사건이었다.
그 점에서 윤아영은 조금 의아했다.
“변호사로서 일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표출하지 않는다. 그녀도 이제 나이를 먹고, 많은 일을 겪으며 속마음이란 걸 숨길 줄 알게 되었기에, 왜 자신이 임명한 총리의 모가지를 한 방에 날려 버린 사건을 변호한 변호사에게 잘했다고 했냐고 되묻지는 않았다.
궁금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을 다시금 영입하기 위해 이 자리에 부른 자라면 알아서 설명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랬다.
“대통령이라고 마음대로 하는 시대가 또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아니지. 얼마 전까지 총리였던 분은 우리 당 대표님이 무척 좋아하는 분이지, 저랑은 좀 안 맞았거든요. 물론 그분의 쓰레기 같은 자식이 벌을 받아야 하는 당연한 사실도 그렇지만요.”
대통령쯤 되면 계산이 없을 수가 없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계산하고 통제하지 않았다면 별다른 지역적 기반, 정치적 기반 없이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꿰차지는 못했을 터.
그래서 윤아영은 적재적소에 침묵을 활용하며 알고 있는 사실들을 복기한다.
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 입문에 어떤 도움과 어떤 방해가 될 것인가?
“어쨌든 우리 이야기를 합시다. 제 생각은 한결같습니다. 윤 변호사님 같은 분이 정계에 있어야 이 대한민국이 변할 거라는 의견 같은 것 말이에요.”
어쨌든 윤아영에게도 선택의 순간이다. 변호사로서 일하는 건 생각보다 보람이 있었지만 어쨌든 이 나라를 바꾸고, 더 큰 뜻을 펼치자면 그걸로는 부족했다.
시간은 소중한 자원이며 무한하지 않았다. 조급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몸값이 가장 높을 때 움직여야 하는 건 자명한 진리.
“이번에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지난번에야 제가 성급했다지만 오늘 이 자리가 성사된 걸 보면 윤 변호사님도 어느 정도 뜻이 서신 걸 테지요?”
현 대통령의 밑에서 정치 경력을 시작하는 건 위에 쳐 내야 할 자들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괜찮았다. 현재 가장 실세인 사람의 밑이기도 하니 빠르게 치고 올라갈 수도 있을 테지.
다만 문제가 생겼을 때 홀로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게 고려해 봄 직한 요소였지만, 뭐.
그런 거야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저도 정치에 대한 생각을 안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는 건 혼자 하는 거다. 그녀를 지지해 줬던 사람들, 예컨대 국가무공원에 몸을 담으며 연이 닿은 이들을 포함하여 얼마 전 세상을 뜬 운하신권과 그의 장례식 때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찾아와 용기를 북돋아 준 연화존자까지.
못 할 일이 아니며, 못해서도 안 된다는 결심을 윤아영은 지금 하고 왔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인생에 새로운 경력을 쓰겠다고 선언한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