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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39화 (139/175)

139화

청해마도는 아들이 ‘데리고’ 온 안건에 대해 조금은 곤혹스러운 느낌을, 동시에 언제고 맞닥뜨려야 할 일이었음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함께 느꼈다.

“최근 본문에 입방 의사를 밝힌 이들이 무척 많습니다만… 이 친구가 가장 적극적이어서 데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님.”

이러한 조짐은 얼마 전부터 있었다.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위용은 마약 치료에 돌입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최초의 어려움도 있었고, 재미 교포들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이들 모두가 청해마도의 지지 기반이 되었다.

위의 진술은 정확하다. 재미 한인들을 비롯해 도움을 얻은 많은 이들은 국가무공원이 아니라 청해마도에 대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건 아마도 과묵하지만 언제나 솔선수범하는 태도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며, 아니면 영웅을 좋아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성정과도 관련이 있는 것일 테지만 결론적으로 청해마도는 그 모든 것들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기분 좋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영광은 그의 경애하는 의형, 연화존자에게 가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외부 활동을 최대한 자제했다. 어쩔 수 없는 일들, 근처 마약상들이나 갱단들을 비공식적으로 처리하는 일과 같은 것이 아니라면 최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인데. 문제는 그런 청해마도의 자제력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불길처럼 일어났다는 사실.

그러니 오늘 같은 일도 일어난 것일 테지.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 주세요, 사부님!”

대한민국에서 온 히어로가 한밤을 누비며 악당들을 물리친다는 소문이 청해마도를 지칭한다고 온 도시가, 온 미국이 알고 있었으며, 이를 주제로 한 티비 단막극마저 나올 정도였다.

레딧 같은 곳에서는 아예 따로 카테고리가 생겨나서 진지한 토론이 끝도 없이 이루어질 정도였던 바.

다 그 할 짓 없이 미친 것들의 수다가 만들어 낸 일이 분명하다고 청해마도는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겨우 참아 낸다.

“…양친. 아니, 너의 부모님께서는?”

하나 그러함을 잘 알고 있음에도 눈앞의 소년을 내치지 못하는 건 청해마도의 눈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어오는 그 무공에 대한 재능.

이제 갓 열 살이 넘었을까 싶은 금발 벽안의 잘생긴 꼬마는 증산방의 문도라면 모두 탐을 낼 만큼 좋은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벌써부터 튼튼한 어깨, 굵은 손목과 발목, 넓은 흉통까지.

물론 이러한 신체적 특징이란 다른 운동이나 무공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었지만 청해마도는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라면 증산방의 무공을 훌륭히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며 운이 좋다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의 눈에는 확연하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는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근래 국가무공원 미국 지부와 이주한 증산방의 일 상당수를 맡긴 아들마저 어쩌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을 구한 것일 테지.

차기 문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송철우조차 이 편모슬하 미국인 아이의 재능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봤던 것이니, 청해마도라고 다를 리 없다.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어, 무공, 무공 익히는 거. 좋은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청해마도는 마음이 기운다.

소년은 불안해 보였다. 아마도 짧게 익힌 자신의 한국어, 필시 오늘의 자리를 떠올리며 기를 쓰고 익혔을 한국말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에 어떤 불안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청해마도는 언어의 장벽 따위 괜찮다고, 원한다며 영어든 스페인어든 원하는 말로 마음껏 떠들어 보라며 소년을 안심시키지 않는다.

아들 이후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가 제자를 받아야 했을 땐 이런 일이 잘 없었다. 있다면 훌륭한 무인으로 성장했고, 성장 중인 아들을 가르쳤을 때 정도?

오늘을 제외하곤 인생에 단 한 번, 제자 키우는 재미를 청해마도는 알았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실의에 빠져 은거한 채 세상을 등지고 있던 게 야속하고 통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때는 그 시간이 소중한 줄 미처 몰랐을까?

무공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속, 제자를 받는다는 건 그런 의미였기에 옛 생각으로 정신이 없던 청해마도는 소년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는 걸 그때쯤 되어서야 겨우 생각해 낸다.

“이름이 뭐지?”

“윌리엄, 윌리엄 스펜서입니다!”

그제야 표정이 밝아지는 윌리엄을 보며 청해마도는 생각이 많다.

최근 들어 늘어난 사례였다. 입방, 입문. 지칭하는 단어야 뭐가 되었든지 간에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무공을 배우길 희망하는 수많은 희망자가 이 땅에는 있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현실이었다.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증산방의 방주였기에 선택권이란 것이 없던 자신과 달리, 이 기회의 땅에선 많은 이들이 무공을 익히고 싶어 했다.

매우 자발적으로.

“너는 왜 무공을 익히고 싶지?”

기이한 느낌이었다. 아메리칸드림의 나라에서 대한민국의 무공으로 꿈을 꾸는 자들을 만난다는 건.

언제고 무림인이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있던가?

“그, 그… 저희 어머니가 원래 몸이 안 좋았는데 여기 계신 분들이 치료해 주셨어요.”

무림인은 언제나 경원시되는 대상이었다.

적어도 그가 살던 시대에, 인생에서는 그랬다. 늘 거대한 그늘로 자신을 보호해 주던 아버지를 독재자의 손에 잃고 마주쳤던 현실이 이를 자각하게 했다.

무림인은 위험하며 가까이 할 수 없다는 일반인들의 생각. 통제할 수 없이 고생만 하고, 몸이 힘든 기술이라는 옅은 경멸까지.

그러나 이곳 미국에서는 달랐다.

“엄마는 많이 아프고 슬펐지만 대한민국의 내공 사용자들 덕분에 이제 웃으세요. 그걸 보며 저도 무공을 익혀 다른 아픈 사람들을 지켜 주고, 고쳐 주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무공을 익히고 싶습니다.”

요즘의 대한민국에서조차 말이다.

많은 이들이 무공을 익히고 싶어 한다. 예전이라면 설령 자식이 그런 마음을 먹어도 전심전력으로 말렸을 부모들조차 얼마든지 그러라고, 싹이 보이면 지원을 해 주겠노라고 하는 게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손이 닿은 곳들 공통의 현상.

그렇게 생각하면 아쉽다, 연화존자가 좀 더 일찍 돌아오지 않았음에.

반면 경이롭기도 하다, 단 한 사람의 개심이 바꾼 놀라운 세상이.

청해마도는 그의 의형이 보고 싶다.

“무공은 누군가를 도울 수도 있지만 해칠 수도 있다.”

오면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중국을 조각내는 와중에도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냐고, 마음의 고뇌는 없었냐고 허심탄회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최근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기 위해 경쟁 중임에도 미국에 조심스레 지사를 낸 당가그룹의 연락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연화존자가 대만 정파 연합의 차기 남궁가주 말고도 두 명의 제자를 더 거두었다는 사실을.

연화존자의 제자라는 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아는 청해마도는 그래서 놀랐다. 대한민국 국적의 누구도 제자로 들이지 않고 중국인을 제자로 들이는 게 얼마나 위험하면서도 민감한 일인지,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을 윌리엄이라 밝힌 저 아이도 마찬가지다.

“무공은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죽이게 하기도 한다. 사람을 고치고자 한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는 게 맞는 일이고 그럼에도 굳이 무공을 익히겠다면 무림의 다른 문파를 찾아감이 옳다.”

여태 미국인을 제자로 받지 않은 건 현재 청해마도가 이끄는 국가무공원과 증산방 그리고 처가가 여전히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최후의 기사는 생의 마지막을 불태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열정을 보이고 있다.

반로환동으로 늘어난 수명, 얻게 된 젊음을 기사단의 재건에 전부 태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미 연방 정부 내부에서 나올 만큼 그는 정력적이었던 것으로 무공에 재능이 있다고 하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가며 영입해 오고, 예산 통과나 관련 법률 통과를 뭉개는 상‧하원 의원들이 있으면 찾아가 억지를 부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온 힘을 다 쏟고 있는 바.

이어지는 윌리엄의 말은 이를 증거한다.

“알렉산드루 아저씨께서도 저를 찾아오신 적이 있어요. 하지만… 하지만 전 꼭 이곳에서 무공을 배우고 싶습니다.”

고작 열 살이 넘은 꼬마 아이의 눈에는 의지라는 것이 가득하다.

“비록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게 하더라도 저는 대한민국의 무공을 배우고 싶어요. 주변 누구도 우리 엄마와 나를 보듬어 주지 않을 때 손을 내밀어 준 곳이 여기에요. 제가 무공을 배우고 싶은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에요.”

윌리엄의 당찬 선언에 청해마도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가다듬었다.

미뤄 왔던 이 문제를 어찌해야 할지 가늠해 본다.

현 시점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이보다 끈끈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자신의 지금 결정은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것과 직접 문도로 받아들여 무공을 가르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

그래. 미국에선 증산방이나 다른 무공을 빼 올 수 있는 기회, 돈을 주고 무공을 빌리는 게 아니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고 자신들도 이에 대한 대책을 어느 정도 갖춰야겠지만, 결국 그건 나중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지금 중요한 건 증산방의 문호를 개방하고 외국인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게 자칫 최후의 기사를 내세워 미래의 내공 사용자들을 확보하고자 하는 미 정부의 심기를 심히 거스를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을 청해마도는 했다.

하고 있었다, 윌리엄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기 전까지는.

“너는 맹세할 수 있겠느냐?”

“아버님.”

설마 여기서 이렇게 매듭지을 줄은 미처 몰랐던 송철우의 만류하는 듯한 부름에도 청해마도는 돌아보지 않는다.

결국 이 모든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저버릴 수 없는 단 한 가지 가치가 있지 않은가?

“맹세요?”

“그래. 증산방의 제자가 된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들을 말이다.”

언제부터 무림인이 세상의 시선을 신경 썼단 말인가?

“증산방의 제자가 되어 협의와 도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

고작 열 살짜리에게는 너무도 무거울 수 있는 말들을 청해마도는 읊었다. 그건 앞으로의 변화,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던 규칙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선포나 다름없었지만, 그에 따른 우려가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청해마도는 개의치 않았다.

그제야 의문이 가던 의형, 연화존자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저 대붕의 날개짓이 뭇사람들의 이해를 구할 일이란 말인가? 마음 가는 대로 가도 어긋남이 없으메 그곳이 바로 마땅한 길이거늘.

이후 미국 정부의 비공식적인 항의가 있었고, 저 최후의 기사조차 섭섭함을 표시했지만 청해마도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말로 이를 물리쳤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가무공원에서도 어찌 된 일인지 묻길래 그래야 할 일이기에 그래야 했다고 밝히며 말았다.

그는 제자를 받았다. 무공을 전수하고, 미국에 좀 더 강하고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를 희망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 국적의 제자들과 미국 국적인 제자들, 혹은 증산방 소속이 아닌 자들 간의 알력 다툼이 있었지만, 서서히 해결되었다.

한국으로 귀화를 하는 사람도, 미국 국적을 유지한 채로 증산방의 무공을 익히고 공직 또는 정재계에 진출한 제자들도 서서히 나왔다.

그렇게 동화가 되어 갔다. 미국 사회에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이 아니라 이 인종의 용광로 안에 단단히 녹지 않는 무언가로써 섞여 들어가는 느낌으로.

그 또한 연화존자의 뜻이라고 청해마도는 확신했다. 결국 돌아온 절대고수의 높은 뜻이라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다짐,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는 다짐과 진배없었으니.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중국에서 제자들을 거두고 행방이 묘연한, 알 수 없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 자취일 뿐.

연화존자는 근황을 묻는 의제에게 마지막 어둠을 밝히겠다는 짧은 전언만을 남기고 연락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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