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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40화 (140/175)

140화

상하이 사태가 진정되고, 총서기가 이제는 전 총서기가 된 지도 몇 달.

중국 공산당의 새 지도부가 선출되어 산적한 국정 과제들을 하나하나 풀며 과로사의 조짐을 보이던 그때.

베이징 모처에서 연화존자는 한 명의 청년과 두 명의 어린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집중해라.”

매사에 여유 있게 임하려 노력하는 편인 연화존자였지만, 세 사람에게 말하는 태도란 평소와 달라 사뭇 엄하다.

그것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대한 압박, 남은 기간 동안에 연화신공의 기초를 잡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동시에 절대 쉽사리 화합할 수 없는 처지의 세 명이 다른 생각할 수 없도록 강하게 밀어붙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중 가장 오랜 시간 연화존자의 지도를 받은, 비록 총합을 따져 보면 얼마 되지 않을 지라도 상대적으로 그랬던 남궁현조차도 이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마음 한편의 불편함을 씻어 낼 수는 없었으니.

“잡생각을 버리고 오직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만 생각해라.”

연화존자가 주문하는 저 태도가 무공을 수련함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지금처럼 내공을 다루는 중이라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음에도 요즘만큼은 쉽지 않다.

그나마 오랜 기간 수련해 온 남궁현은 사정이 사뭇 나음에도 말이다.

티베트에서 온 아이와 본토 출신 소년. 그것도 제법 불편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함께 연화존자의 가르침을 받는 건 마음 편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다.

“대저 손짓 한 번에도 진심을 담아야 하며 마음먹은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해야 한다. 너희는 내게서 이 태도와 자세를 배워야 한다.”

티베트에서 온 아이는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자치구로 돌아오기 전부터 당가그룹에 의해 낙점된 아이라고 했다.

연화존자는 당가그룹이 추천한 기재들 중 오직 저 앳된 얼굴의 소년, 한 명만을 받았다.

소년은 당가그룹의 오랜 후원을 받았고 상하이 사태부터 이후의 티베트 민족의 독립에까지 지대한 공헌을 한 구현의 사촌 동생으로 남궁현은 저 아이에 대한 낙점이 당가그룹과 구현의 헌신에 대한 연화존자의 보답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중이었다.

‘연화존자가 밝힌 것처럼 오직 재능만 보고 내린 결정이 맞을 것인가?’

물론 입 밖으로 낼 성격의 말은 아니다. 아무리 자신이라 한들 연화존자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가뜩이나 요즘처럼 정파 연합과 연화존자의 사이가 미묘한, 예민한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건 표정 없는 한족 아이, 어쩌다 보니 자신의 사제가 되어 버린 한족 소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중해라.”

연화존자,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상하이 사태로 몰락한 공산당 간부의 자식을 제자로 들이겠다는 결정에 누구도 반발하지 못했다.

심지어 당사자조차도 말이다.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지, 혹 찾아간 건지 아무도 몰랐지만 연화존자는 총서기의 편에 줄을 댔다가 모든 권력을 잃어버린 전직 공산당 고위 간부의 집에 찾아가 저 아이를 제자로 들이고 싶다고 밝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특히 정파 연합에서는 여기에 다른 의도, 가령 미묘한 국제 관계와 정치 지형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연화존자의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 중이지만, 거기에서만 그쳤던바.

누가 있어 감히 연화존자의 결정에 토를 달 것인가? 아니, 달 수 있단 말인가?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지.’

실로 그랬다.

얼마 전 대만 소재 타이베이시에서 있었던 연화존자와의 충돌, 그를 피하려던 정파 연합의 의도는 얕은 부딪침 정도로 끝이 났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굽히고 들어가 일을 마무리 지은 권성은 성토당했다. 일이 알려진 이후 이어진 정치권으로부터의 비난도 그렇지만 무려 정파 연합 내부에서도 그랬다.

왜 자신들이 연화존자에게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은 연합의 주류가 되었다. 그건 중국과의 협상에서 많은 것을 얻어 냈고 또 동시에 중국과의 무력 분쟁이라는 위험 요소를 덜어 낸 이후의 자신감에서 기인한 일.

연화존자를 직접 만나고 그 힘을 느껴 본 자들의 이야기는 달랐지만, 그런 자들은 소수에 불과해 대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싸잡아 비난 받기 일쑤인 것으로 자신을 비롯한 검제와 남궁가 대다수가 그랬다.

‘어리석은 자들.’

하여 남궁현은 지긋지긋한 입 싸움을 보다 못해 베이징으로 넘어왔다. 마침 핑계도 좋았던 것이 연화존자가 새로 제자를 들이며 자신에게 연락을 보내왔다.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처럼, 정파 연합의 불온한 분위기에 대해서는 들은 바도 없고 본 적도 없다는 것처럼 연화존자의 메시지는 간결하고도 심플했다.

아직 배울 것이 있으니 베이징으로 오라고 한 게 전부였으니까.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도 모르고.’

저 강대하여 미국조차 위협하던 중국을 자신을 적대한다는 이유로 조각내 버린 남자를 겁내지 않는 어리석음에 질려 남궁현은 그 길로 베이징행을 결정했다.

지긋지긋했다. 그의 조부, 검제 남궁명은 이 또한 무림의 일부라고 했지만 그가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강호는 이런 게 아니었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들, 무공을 익히는 즐거움보다는 그로 인해 떨어진 떡고물 같은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까지.

작은 섬에 갇혀 문파니, 가문이니 하는 것에 매몰된 채 문호를 개방하지 않은. 어찌 보면 연화존자보다 더 조건이 좋았음에도 하등 쓸데없이 고루한 것만 따지다가 기회를 놓쳐 여기까지 온 사람들.

그런 이들을 생각하니 차라리 지금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중해라.”

남궁현은 자신의 귀에 꽂히는 연화존자의 울림 있는 말에 따른다. 옳은 말이다. 집중해야 했다.

어찌 두고 온 것에 집착하여 떠올리고 있단 말인가? 이래서야 떠나온 보람, 자신을 연화존자를 따르는 배신자라고까지 칭하는 정파 연합에 등을 돌린 보람이 없다.

그렇게 남궁현은 집중하고자 했지만, 복잡하고도 너덜너덜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연화존자의 가르침에 충실하고자 했지만 다음 순간, 이러한 마음의 실현은 미루어진다.

한족 소년, 공위의 고저 없는 물음 때문이었다.

“…어떻게 집중하란 말입니까?”

일으킨 내기의 불꽃을 삽시간에 꺼트리며 제 의지가 아닌 다른 이의 의지로 연화존자의 제자가 된 소년은 물었다.

그 눈빛에는 원독이란 것이 있었다.

“당신이 나의 모든 것을 앗아 갔는데 원수를 앞에 두고 어떻게 집중할 수 있습니까?”

그 말처럼 소년은 상하이 사태로 많은 것을 잃었다.

전 총서기의 정치적 줄을 잡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상하이 사태가 끝난 뒤 실각했고,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몸져누웠다. 패배자에 대한 모욕과 비난을 공위의 부모는 모조리 뒤집어썼다.

어디 그뿐인가? 아버지의 후광으로 승승장구하던 친인척들의 사업은 한 번에 무너져 어그러졌다. 그 충격이 얼마나 심했던지 자살하는 사람도 속출했던 상황.

그러니 연화존자가 밉지 않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럼에도 소년의 마음은 복잡하여 혼란스럽다.

그러니 결국 참지 못하고 저렇게 터지고야 만 것일 테지.

“무엇보다 이런 제 마음을 알면서도 왜 제자로 들인 겁니까?”

어찌 보면 연화존자가 무공에 대한 재능만 보고 선택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겠다라고 남궁현은 저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다른 건 아니었다. 만약 다른 이들이 의심하는 것처럼 연화존자에게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면, 단순히 무공을 전수하겠다는 뜻 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면 저 소년을 고르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을 뿐이다.

저렇게 솔직한 아이를 고르진 않았겠지. 그 몰락한 부모와 가족들이 소년에게 연화존자의 제자가 되라고,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라며 갖은 압박을 가했으니.

“저는, 저는 당신이 밉습니다!”

소년의 가족들은 연화존자라는 새로운 줄을 잡고자 지난 원한을 잊었다. 그러니 당혹스러웠을 거다. 연화존자로 인해 모든 걸 잃은 부모가 자신에게 그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니. 저 어린 것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 텐가?

이는 연화존자조차 인정하는 사실.

“미워해라.”

대한민국에서 온 절대 고수는 그러라고 했다.

“날 미워해라. 내가 너의 안온한 일상을 깨트린 게 사실이니.”

순순히 인정한다. 자신이 행한 일이 누군가에겐 지옥을 열었음을 반로환동 한 강호의 노고수는 부정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묻고 싶다. 내가 아니었다면 네 가족의 몰락이 천년만년 오지 않았을 거 같나?”

소년 공위는 이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중국 공산당의 모순은 언제고 너의 운명을 찌르는 총칼이 되었을 거다. 장담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전 총서기는 황제가 되었을 거고, 당의 모든 것은 그의 의지대로 돌아갔을 테지. 그러면 네 아버지는 영원히 무사할 수 있었을까?”

분노가 있다 한들 보고 들은 게 있다면, 그 정도 머리도 없었다면 연화존자의 제자가 되지 못했을 터.

“꼭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의 삶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인생이거든.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네가 고통을 받았다는 걸 알지만, 애석하게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널 제자로 삼은 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구나.”

어느새 다가온 연화존자는 분노한 소년과 눈을 마주쳤다. 거기에는 어떠한 적의도, 악의도 없이 오직 강건한 마음의 기둥만이 있어 공위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애써 벌려 묻는 게 전부였다.

“그럼 왜 절 제자로 삼은 겁니까?”

많은 것이 함축된 질문, 소년의 배경과 상황, 아울러 상하이 사태 이후의 혼란과 미묘함이 가득한 동아시아 관계에 대한 의문이 흘러나옴에도 연화존자는 전과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네게서 재능을 보았기 때문이다.”

연화존자는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한 세 명의 제자는 거기에서 무언가를 느낀다. 정파 연합의 번잡스러움을 목격해 온 남궁현과 최근 폭풍과도 같은 상황 속에 휘말렸던 공위뿐 아니라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던 티베트 소년조차도 연화존자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재능이란 것이 단순히 무공에 대한 재능만 말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보았고, 선택했다. 그게 전부다. 다른 건 이야기할 수도 없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단순히 무공을 잘 익히고, 잘 펼치는 재능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연화존자의 기준에는 뭔가 다른 고려가 있다는 건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의 인식과는 조금 다르지만.

“만약 내가 그런 것만 보는 사람이었다면 대한민국에 무공을 개방했을 리 없다. 무릇 무공이란 비인부전의 기예가 아니던가?”

웃으며 말하는 와중에 점점 확실해지는 것이니, 자기도 모르게 빨려 든다.

“나는 필요한 일을 했다. 너희도 그러길 바란다.”

출현만으로 세상을 바꾼 절대고수의 말에.

“머지않아 떠나기 전까지 내가 가르칠 건 오직 그것이며 무공은 두 번째다. 알겠는가?”

이후로도 연화존자는 세 명의 제자를 키워 냈다.

거기에 대해선 여전히 말이 많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뭣도 모르는 것들의 떠들어 댐은 중요하지 않았다.

대저 세상 인심이란 것이 그렇다. 어리석은 자들은 어디에나 있고, 경박하여 주둥이로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껏 몸을 일으켜 모조리 쓸어버릴 수도 있지만, 결국 무용한 일.

어차피 곧 할 일이 있는 그였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잡스러운 것들에 대해.

그리고 얼마 뒤.

외교 행낭을 통해 천마도검을 집어 든 그가 히말라야로 향했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된 티베트 자치구에서 수색 중이던 제갈패밀리가 기다리던 자취를 찾았다는 연락이 온 뒤였다.

마교의 흔적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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