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청와대로 입성하며 정치 경력을 시작하게 된 윤아영의 최근 행보는 소소한 주변의 관심을 샀다.
언론에 기사가 나기도 했다. 국가무공원의 시작과 함께한 정의의 검사가 인권 변호사를 거쳐 결국 오게 될 길을 걷게 되었다는 식의 헤드라인이 잡히기도 했지.
이러한 행보에 따른 왈가왈부 역시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따라왔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너절한 인간들이 말을 보탠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도 했던 바.
남의 일에 제멋대로 떠들어 대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범죄자들을 때려잡고, 인권 변호사를 자처한 게 다 정치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겠냐고, 이러려고 정의로운 사람인 척했던 게 아니었냐며 냉소적으로 혹은 열정적으로 역정을 내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것이 정치에 대한 비관적인 감정인 건지, 아니면 너저분한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데 없다는 스트레스를 익명성에 기대어 풀고 싶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본인들도 모르리라. 자신들이 정의롭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그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 따위 없이 해야 할 말이고,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할 터이니.
하지만 대부분의 여론은 윤아영 전 검사의 정치 입문에 기대를 거는 편이었다.
윤아영의 주변 사람 대부분이 그런 의견이었고, 그건 제법 긴 시간 동안 그녀를 봐 온 한 무림의 고수 역시도 그랬다.
“…도와드릴 일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게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촉망받는 정치 신인이 되어 여의도 일대에서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게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은 윤아영의 태도는 전과 다름없어 대한잔결회의 확고부동한 수장이자 전 잔결방주인 삼지일절을 미소 짓게 했다.
정계에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다음 선거에서 공천은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다는 소문이 돌고 있음에도 윤아영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담담한 태도, 가라앉은 눈빛까지.
운하신권이 세상을 뜬 이후로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웃을 일이 잘 없는 삼지일절을 웃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큰일을 하고 계신데, 제가 어떻게 사사로운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특별한 일이 있어서 온 건 아니었고 삼지일절 측에서 연락을 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차나 한잔하자면서.
두 사람이 그만한 사이 정도는 된다.
예전, 그러니까 그녀가 사이비 종교의 테러를 당했을 때. 그때 그녀를 구한 게 당시만 해도 베일에 쌓인 고수였던 삼지일절이었고 이후로 국가무공원에 비공식적으로 협조하는 세력의 수장이 된 그와 윤아영은 교류를 이어 왔으니.
그것도 제법 오래된 일이었다. 잔결방이 당가그룹과 협력, 대한잔결회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시민 단체가 된 것도 벌써 몇 년인 것인지.
그렇게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변한 것이 너무나도 많기에.
“어려워 말고 말만 하게. 윤 검사가 큰일 하겠다는데 내가 가만히만 있을 수야 없지.”
대한잔결회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잔결방의 예전 맹도들은 물론이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장애인이 가입한 대한잔결회의 위상은 확고하여 따라올 곳이 없다.
그 짧은 역사에도 말이다. 당가그룹과의 협력은 대한잔결회의 가장 든든한 힘이었으며, 연화존자에게서 이어져 온 무공의 일부를 전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를 강화했다.
여기에는 삼지일절의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의 공이 크다.
“축, 하드립니다, 검사님.”
“축하드립니다.”
전과 다름없는 모습이지만 묘하게 유해진 준호와 진호 형제에게 윤아영은 살짝 미소 지었다.
“고맙습니다.”
이들 역시 윤아영의 오래된 전우였다.
칠익회 내에서도 가장 파괴적인 무공을 지녔다고 알려진, 연화신공과는 결이 다른 옛 무공을 익힌 두 사람은 삼지일절을 도와 대한잔결회의 안정에 기여했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양지의 일만을 일컫는 게 아니었던 바.
대저 기득권을 빼앗긴 자들의 발악이란 그런 것이었다. 신생 세력이 출현하는 것도 모자라 강력한 후원자를 등에 업고 무서울 정도로 기세를 올리니, 이를 견제하기 위해 온갖 음험하고 폭력적인 방해가 대한잔결회에 가해졌던 것이 사실.
삼지일절도 그렇지만 준호, 진호 형제의 패월삼락공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어떻게 생겼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리라.
실제로 결과가 그랬으니까.
“애들은 잘 크고 있죠?”
개중 칠익회 아프리카 지부에 소속되어 결혼 따위 생각도 하지 않던 두 사람에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개인 신상에 대한 것이었다.
두 사람 다 연애하여 결혼했다. 대한잔결회의 일을 도우며 알게 된 인연이었다.
평소라면 연화존자의 뜻을 받들어 살겠다고, 이 험한 세상에서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무림인 처지에 무슨 결혼이냐며 아예 시도조차 안 하고 체념하며 살던 두 사람이었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모르는 일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될 것이었는지 어쩌다 보니 결혼하여 애까지 낳고 살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물론입니다.”
“지난번 선, 물. 고맙습니다.”
결혼 같은 건 생각조차 안 하던 두 사람이지만, 가끔은 악인들이었다고 하나 사람을 속에서부터 태워 죽이고 했던 자신들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준호와 진호 형제였지만 그렇게 됐다.
무림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대한잔결회의 위상이 나날이 더해진 효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른 건 몰라도 대한잔결회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운영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호감 충만한 요소로 다가왔으니.
그게 아니었다면 두 사람이 결혼을 할 수 있었을까? 본인들도 그건 힘들다고 인정한다. 애초에 연애부터 난관이었을 테니까.
이는 국가무공원과 연관되어 대한민국에 정착한 칠익회 멤버 상당수에게도 해당된 인생의 변화라고 하겠다.
연화존자의 뜻을 받들어 세계 곳곳을 떠돌던, 그야말로 낭인의 삶을 살던 이들은 대한민국에 정착하며 삶의 안정이란 것을 찾게 되었다.
전부는 아니어도 많이들 그렇게 됐다. 무공을 익히고, 연화존자를 섬기는 칠익회의 일원으로 포기해야 했던 평범한 삶이 일부가 그들에게로 들어왔으니, 연화존자는 그런 이들의 앞날을 축복하며 기뻐했다.
애초에 그가 바라던 것이라고 말하면서.
“와이프가 언제 한번 놀러 오시랍니다.”
“애들도, 보고 싶다고 합니다, 검사님을.”
아프리카에서 사이비 주술사와 소년병을 쓰던 범죄자들을 태워 죽이던 그들이 이런 행복을 누릴 거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던가?
이 또한 연화존자가 그 이름처럼 빚어낸 인연이라면 인연.
“그나저나 윤 검사.”
이제는 무림인보다는 대한민국 최대 사회복지 단체를 이끄는 이로서 불리는 일이 많은 삼지일절 역시 그렇다.
“연화존자는 어찌 된 건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그의 영향력은 예전과 비교조차 하기 힘들다.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신비 고수, 오직 별호만이 남아 전설처럼 떠돌던 이전에 비하면 훨씬 더 언론에 자주 노출되곤 하는 삼지일절을 많은 사람이 알아본다.
아픈 이를 가족으로 둔 평범한 사람들부터 수많은 재계 인사와 정치 인사가 삼지일절과 만나고 싶어 한다.
그건 지역에 따라 대한잔결회의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기 때문.
고로 삼지일절의 생활은 무림인의 그것과 사뭇 멀어졌다.
“자네에게는 무슨 전언을 남겼을 것 같은데.”
그리하여 연화존자는 삼지일절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남기지 않는다.
“이 친구들도 연화존자의 다음 행보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더군.”
준호와 진호 형제에게도 그랬다. 가족이 생긴 이들, 한때는 증오와 원망의 조국이었으나 이제는 생활의 터전이자 가족의 거주지가 된 이 나라를 떠나기 힘들 이들에게 연화존자는 자신의 앞으로의 행보와 관련된 다른 말을 굳이 남기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을 무시한다거나, 배제한다는 건 아니다.
“제가 최근에 들은 건 인도 쪽에서 해결할 일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입장이 달라졌을 뿐이다.
준호와 진호 형제처럼 가족이 있는 이들과 함께 갈 수는 없었다. 그건 이들의 실력에 대한 못 미더움이나 멀어진 사이 같은 걸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연화존자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이들이 알면 번뇌가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따라오고 싶어 할 것이고, 현재의 안정과 지금의 순간들을 내려놓고 예전처럼 함께하고 싶어 할 거란 걸 연화존자는 알았지만, 얼마 전 중국을 조각내는 데 성공한 이 절대 고수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연화존자의 일은 있는 사람들끼리 해야 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가족이 생긴 자들을 사지로 끌고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건 별로 권장하는 일이 아니라고 연화존자는 생각하여 예전 칠익회 멤버일지라도 정착한 이들에게는 일 얘기를 잘 하지 않았다.
삼지일절도 비슷했다.
“잘하고 있을 겁니다. 너무 걱정 마시지요.”
왜 연화존자가 중국에서 제자를 거뒀는지, 또 제갈패밀리 등과 함께 티베트 자치구와 위구르 자치구라는 거대한 지역을 훑다시피 하며 수색을 진행 중인지에 대해 설명한 윤아영은 이렇게 덧붙이며 보았다.
삼지일절의 가슴에 남아 있는 무림인의 혼을, 동시에 야속하게 찾아온 세월의 머무름을.
“…그래. 그라면 잘 해낼 테지.”
그도 많이 늙었다.
대한잔결회의 토대를 잡고 온갖 일들, 다른 단체에서 하던 행태를 반복하려던 자들을 정리하고 정재계 사람들과의 밀고 당기기, 큰 집단에서 당연하게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불협화음을 정리하며 삼지일절은 기력을 소모했다.
동시에 안정되었다. 무림인의 그것과 다른 궤도의 삶을 그는 다 늙어서 살게 되었고 이는 삼지일절을 변하게 했다.
윤아영은 그것이 조금 서글펐다.
“네. 그러니 걱정 마시고 편히 마음먹고 계시지요.”
그리고 운하신권의 죽음은 결정적이었다.
이 일로 충격을 받은 탓인지 삼지일절은 대부분의 외부 일정을 멈춘 채 칩거 중이었고 이게 비단 그만의 일도 아니었다.
당가그룹의 회장이자 마찬가지로 이름 높은 무공의 고수인 독군 당군명조차 그랬다. 두 사람 모두 운하신권이 세상을 뜬 걸 보며 생각이 많은지 바깥 출입을 잘 하지 않고 옛 생각에 잠긴 때가 많았다.
준호와 진호 형제가 대한잔결회를 이끌게 될 것 같았다. 이는 대한잔결회 내외부에서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만한 일이어서 두 사람은 회의 크고 작은 일을 맡는 동시에 익숙해지느라 노력 중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윤아영은 당가그룹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떠올린다. 당군명이 세상일에 흥미를 잃자 엄청난 재산과 힘을 지닌 그룹의 회장 자리를 노리는 은밀함 움직임을.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얼마 전, 독군의 뜻을 들은 바 있기도 하고 당가그룹 내부의 일을 외부인인 자신이 긴하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삼지일절은 조금 다르지만.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연화존자와 함께 대한민국이 좁다 하고 돌아다니던 시절의 인연이었고, 무엇보다 생명의 은인인 삼지일절이었다. 그런 그가 예전보다 좀 야위고, 힘이 없어 윤아영은 가슴이 아팠다.
시간 앞에 스러지는 게 사람의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그래도라는 게 있는 법이 아닌지.
자주 연락드리고, 자주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윤아영은 대한잔결회를 나섰다. 씁쓸한 마음이었지만, 애석하게 그런 마음의 여운을 오랫동안 즐길 형편은 되지 못한다.
“윤아영 씨?”
평범한 인상의,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윤아영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지만, 순간 그녀는 감지해 냈다.
그 미세하게 흐르는 옅은 농도의 살기를. 노려보는 뱀 같은 눈동자.
몸은 정직하게 반응한다.
가죽 장갑을 낀 손이 남자의 품 안에서 권총을 꺼내는 걸 보는 동시에 그녀의 몸이 움직였다. 이제는 익힌 지도 꽤 된 연화신공이 순식간에 불길처럼 치솟았다.
두 번째 암살 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