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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43화 (143/175)

143화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자면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이 보이곤 한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오늘 이 자리만 봐도 그렇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상당수의 긴장, 불만 그리고 방향 모를 적의.

하지만 달라이라마는 이 자리가 성사된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티베트 민족의 운명을 여기에 와서 함께, 그러니까 중국 공산당을 비롯한 여러 권력자가 모여 안전하게 논의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는 감상이 이 늙은 독립운동가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대부분이다.

그는 자신이 이토록 안전하게 베이징에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그건 얼마 전 감춰졌던 신분을 회복한 젊은 판첸라마 역시 마찬가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자신과는 결이 다르지만 판첸 라마 또한 이런 자리에 올 거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던 인생이니 긴장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거고, 사실 이 자리에서 긴장한 면모를 보이는 게 그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니 남사스러울 것도 없다.

축출된 총서기 이후 누더기가 된 공산당의 중앙을 겨우 수습한 패배한 이들부터 상하이 사태의 주도자들이라 알려진, 부활한 상하이방 출신 정치인들까지 하나같이 굳은 얼굴.

편한 구석이라곤 하나 없는 이들이 한데 모여 앞으로의 미래를 논의할 예정이다.

“오실 분들은 다 오셨으니,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의 당사자들이 여기 모인 중국 공산당의 여러 고위 간부와 티베트 자치구,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대표자인 것은 맞지만, 상황의 주도자라 하기에는 곤란하다는 사실.

넓은 회의장 곳곳에 자리 잡은 당가그룹과 제갈패밀리 그리고 낯선 얼굴들이 보인다.

누군가는 이를 굴욕적으로 느낀다. 달라이라마는 그 정도 감정까지는 아니지만 불편한 것만은 사실로 어떤 사람은 저들의 존재에서 20세기 열강들의 침입 때의 중국을 떠올리며 분함을, 어떤 사람은 중국의 무자비한 통제를 생각하며 언짢음을 품는다.

엄청나게 굳어 있는 분위기라 하겠다. 처음부터 웃으며 인사할 사이가 아니라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한참이나 굳어 있는 회의장의 분위기.

하지만 피할 수 없다. 결정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하면 오늘부터 시작해 언제 끝날지 모를 회의. 그 안에서 있을 합의가 중국과 주변 민족들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향방을 결정할 테니.

“모쪼록 과거의 앙금보다는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건설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도 그러실 테지만,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비교적 당가그룹, 제갈패밀리와 가까운 달라이라마조차 저 말이 협박처럼 느껴질 만큼, 분위기는 좋지 못하다.

여기만 그렇지도 않다. 그건 중국 전체가 그랬고, 특히나 긴장의 수위가 높을 수밖에 없는 베이징 역시 그렇다.

현재 베이징의 공기는 얼어 버린 것처럼 차갑다. 중국의 수도에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도 모자라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던 이슬람 지도자들마저 입성했다는 사실을 베이징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건 아마도 그들에게는 너무도 오랫동안 각인된 감시의 존재, 그전부터 이미 손상이 있었고 이제는 제갈패밀리와 당가그룹이 나서 해체해 버린 천망과 금순이 조여 놓은 정신의 사슬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당가그룹의 대표 당청영은 생각한다.

그녀가 보기에 중국 인민들의 태도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존재로 군림하던 공산당이 사라진 여파로 보였다.

평생을 이고 있던 짐이 갑자기 사라져서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저 태도의 본질이 아닐지.

‘가련한지고.’

안쓰러운 일일 수도 있다고 이 강호에 이름 높은 고수는 생각한다. 그녀가 보기에 그런 건 인생에 별 쓸모도, 필요도 없는 굴레였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삶에 그런 게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 것인지.

얼어붙은 채 어찌어찌 흘러가는 회의장 내부를 둘러보지만, 당청영은 생각에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본래대로라면 집중해야 했지만, 그럼으로써 저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을 취하는지 면밀히 살펴야 했지만 최근 있었던 내홍의 기미는 그녀로 하여금 산만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주었다.

당가그룹의 수장이자 정점, 독군 당군명이 아프다.

애초에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왔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아끼는 손녀라고 하나 사천당가의 숙원인 중원 귀환에 그가 빠졌을 리 없다.

당장 제갈패밀리만 하더라도 그들의 수장이 오지 않았던가? 평소 깜찍할 정도로 세상을 속이며 중국에 별 관심이 없던 척했던 제갈패밀리였지만, 이탈리아의 마피아들을 쓸어버린 뒤 처음 베이징에 들어오며 감격한 얼굴을 감추지는 못했다.

당가그룹에도 더 없는 영광이었고, 더 없는 감격의 순간이 되었을 수도 있다.

만약 독군이 쓰러진 뒤를 노리는 야심가들이 그룹 내에서 발홍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모셔 올 생각을 했을 정도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 일.

‘여러모로 아쉽군.’

당군명이 쓰러지다시피 하며 아프자 나온 건 그의 절대적인 카리스마와 힘에 눌려 있던 그룹 내 야심가들의 발호.

현재 최전성기를 누리는 당가그룹의 여러 지부장이 독군의 부재를 틈타 제 욕심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룹 회장실의 지시를 의도적으로 뭉개거나, 어렵다고 말하며 항명하는 등 이상 징후가 이곳저곳에서 포착되는바.

정말로 그룹의 이익에 손해가 된다는 생각으로 나설 리는 없었다. 독군이 건재했다면 일어날 리 없던 일이지 않았겠나?

그룹 내 조금이라도 지분이 있는 혈족들을 서로 끌어모으려고 혈안이 되어 난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주식을 모아 지분 싸움을 걸고 싸워 보겠다는 의도가 너무도 명확해, 당청영은 그만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본래대로라면 나도 여기서 이러고 있을 여유는 없었겠지.’

차기 회장직을 노리는 움직임은 노골적이었고, 또 그만큼 교묘하고 집요했다.

당가의 유명한 성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당가그룹은 여러 개로 쪼개져 자기가 미는 라인을 회장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그 상황 속에서 이익을 보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예컨대 그룹 내 이권을 서로 교환한다든지, 아니면 사업상 당가그룹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나 집단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 어떻게든 회수를 한다든지.

개중에는 심지어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매수하는 자도 있었다. 규칙 자체를 바꿔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그나마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시도가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프다고는 하나 아직 당군명이 엄연히 눈 뜨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이런 움직임에서 벗어나 있었다.

한국 지부를 맡고 있던, 그룹 내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던 당청영 또한 마찬가지.

그녀는 연화존자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 있음이니, 그가 남기고 간 것들에 대한 정리가 최우선이었다.

일단은.

“…그만.”

당가그룹에는 그런 책임이 있었다.

세상을 떠돌던 연화존자가 당가의 존재를 알고 찾아왔을 때, 연화존자 김철민이 당시 혈족들의 모든 기대를 모아 양성한 고수였던 당군명의 주화입마를 고쳐 주는 것도 모자라 소실한 당가의 무공을 복원시켜 주고 당가에 희망을 선사했던.

그리고 이들을 세계 최고의 혈족들로 이루어진 재벌그룹으로 재건시켜 준 것도 모자라 중원 복귀라는 숙원마저 이루어 줬다면, 그렇다면 당가그룹도 받은 만큼 돌려줘야 했다.

그게 맞았다. 지금은 제 욕심을, 제 자리를 챙길 게 아니라 연화존자가 남기고 간 것들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게 당가의 일원이 해야 할 일이었다

“분위기가 과열된 것 같군요. 잠시 쉬었다 합시다.”

방금 전, 신장위구르 지역에 들어온 중동 국가의 세력들이 모두 물러가야 신장위구르 지역에 대한 처우를 결정지을 수 있다는 말에 벌 떼처럼 일어나 말싸움을 하는 것을 보며, 당청영은 잠시 자리를 파했다.

애초에 이성적인 대화가 통할 상대들도 아니었으니, 우선 주의라도 환기시키고 보는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위구르 지역에 생긴 수용소의 숫자와 그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생각하면 말로 해결 보는 게 불가능한 일일 정도.

싸우지 않게 살살 달래는 게 최선이었다. 연화존자가 여기에 버티고 있었다면 모를까, 그의 대리인에 불과한 당가그룹과 제갈패밀리로서는 이국의 왕과 왕자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으니까.

“피곤하지?”

어느새 다가온 제갈패밀리의 대모, 제갈연은 그녀가 당가그룹의 후계자가 될 거라 믿는 당청영에게 다가와 미소로 위로를 전한다.

“연화존자의 일입니다. 피곤할 틈이 없지요.”

이 피곤이 비단 오늘 이 자리에서만의 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님을 두 사람 다 알지만, 명시적으로 입에 올리진 않는다.

제갈승수를 비롯한 제갈패밀리 여럿이 주변을 감싸고 있고 또 기막마저 쳤다지만 중인환시리에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당가그룹 내에도 어떻게, 어떤 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당장 중국 공산당원들을 비롯한 여러 외인이 있는 자리.

무엇보다 국가무공원에서 비공식적으로 파견된 인원이 몇 있어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지한다, 청영아.”

나이는 그리 많이 차이 나지 않지만 제갈패밀리와 당가그룹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의 차이, 아울러 배분 등에서 한참 위에 있는 제갈연은 당청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당연한 일이지. 오직 너만이 의무와 신의를 지키기 위해 여기 왔지 않니?”

제갈패밀리 또한 연화존자의 은혜를 크게 입은 사람들이니 만큼, 그룹의 다른 일원들이 후계자가 될 경우 그들 사이가 예전 같지는 않으리라 은근히 암시한다.

“감히 제 욕심으로 연화존자의 일을 망치려 든 것들을 우리는 배제할 수밖에. 뭐, 솔직히 말하자면 연화존자께서 그걸 두고 볼 것 같지도 않고.”

옳은 생각이라고 당청영 또한 묵묵히 동의한다.

그룹의 다른 어리석은 이들, 특히 연화존자를 모르는 자들은 당가그룹의 힘이면 연화존자나 대한민국 혹은 다른 조력자들과 협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당청영이 보기엔 그것보다 더한 무지의 소산은 요 근래 없었다.

연화존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놈들. 욕심에 눈이 멀어 연화존자가 해 온 일들이 뭔지 보이지도 않는 어리석은 자들.

“크게 신경 쓰실 일도 아닙니다. 금방 정리될 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연화존자까지 갈 것도 아닌, 돈이 좋아 당가가 어떤 그룹인지 잊은 바보 같은 자들.

“그래?”

“네.”

며칠 뒤면 당가그룹의 회장직을 원하던 모든 후보자는 조용히 죽어 발견될 것이다. 누구는 침대에서, 누구는 골프장에서, 누구는 사무실에서 죽을 것이고 또 누구는 바람을 피우던 상대방의 차 안에서 발견될지도 모른다.

하나같이 심장마비로 죽을 것이다. 무공을 얼마나 익혔든지 상관없이 이러한 결말은 정해져 있다.

당가그룹의 일원이면서도 독군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는 죽음으로 체득할 수밖에.

“크게 신경 쓰실 일이 아닙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제갈연은 뭐가 뭔지 짐작이라도 간다는 것처럼 웃었고, 곧 회의는 속행되었다.

중국의 운명을, 동아시아의 정치적 지형도를 완전히 바꿀 회의는 다시 시작된다. 벌써부터 지친 사람들이 보이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연화존자가 남기고 간 것들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이 안에는 더 많다.

얼마 뒤, 독군 당군명은 심장마비로 죽은 혈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눈을 감았다. 그가 비통해했는지, 그러지 않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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