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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45화 (145/175)

145화

전직 총리이자, 늙은 정치인은 미쳐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자신의 아들이 이 집안, 이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시골 지방에 갇혀 있다고 했다.

이러한 조치가 자신의 지시라는 걸 숨기지는 않았다.

“…큰 사고가 몇 번 있었소.”

집으로 복귀한 집안의 주인이 흥분한 부하들과 가족들을 진정시키는 사이, 주변의 적의와 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평안한 숙면을 취한 뒤 일어난 연화존자는 호화스럽기 그지없는, 식당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그의 집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변명처럼 느껴지는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역시나 긴장하지 않은 채였다. 함께 온 수하들은 저택에서 거리를 둔 채 떨어져 대기 중으로 완벽히 혼자였지만, 이 사실에 대한 걱정 따위 연화존자에게선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무심히 궁금할 뿐이다.

“발작이라도 일으켰나?”

깨끗이 씻은 사과를 하얀 이로 아삭거리는 연화존자가 못내 거슬려 보이는 주변 사람들, 대체로 이 집안 주인의 식사를 시중들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 고용된 고용인들로 구성된 자들의 시선을 완벽하게 무시한 채 연화존자는 되묻는다.

나름 중요한 질문이긴 하다. 지금으로선 유일한, 하지만 확실치 않고 의심만 가는 수준인 마교 신물 관계자의 상태를 아는 건 그가 수집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 중 하나였으니까.

“…사람을 먹으려 들었지.”

“아프고 나서 특이한 식성이라도 생긴 모양이군.”

그러한 연화존자의 질문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전직 총리는 솔직한 태도로 선선히 설명했다.

그건 마치 포기한 듯 순순했다.

“거의 성공할 뻔하기도 했고.”

“이 집안에 사람이 몇인데… 식성만 바뀐 게 아닌가 봐?”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더군. 다른 건, 말도 못 할 지경이지.”

다 먹은 사과의 잔해를 내려놓은 연화존자는 눈빛으로 설명을 요구했고, 상대는 이에 부응한다.

늙은 정치인은 여전히 할 말이 많다.

“내 눈으로 봤지. 그리고 녀석을 멀리 보냈네.”

마찬가지로 식사를 마친, 나이와 그리 크지 않은 몸집을 생각해도 놀라울 만치 소량인 식사를 마친 전직 총리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백한다.

“평소에도 낮에는 괜찮지만 간혹 새벽마다 비명을 지르는 아들의 소란에 잠에서 깨곤 했네. 급하게 달려가 보면 검은 연기로 얼굴이 흐릿한 아들놈이 주변의 사람을 닥치는 대로 붙잡고 쥐어뜯으려 하더군. 마치 먹이를 탐하는 짐승처럼, 이를 드러내고 울면서 말이야.”

더는 비밀 따위 없다는 듯 보이는 거짓 없으면서도 의연한 태도가 익숙해진 자식의 상태에 대한 아픔을 삭히는 존경스러운 태도인지, 아니면 협력하기로 한 마당에 관계 개선을 꾀하는 정치적 기술인지 모르겠다고 연화존자는 생각한다.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겠지?”

“물론.”

뭐가 되었든 알아야 할 것들에 집중한다.

“처음에는 방에 가뒀고, 가드들을 고용해 묶어 놓고 감시했지. 하지만 아들은 방을 부수고 나왔으며, 가드들을 폭행했네. 그다음에는 정신병원에서 쓰는 구속 기구들을 가져와 묶었지만, 그것 역시 찢고 나왔지.”

순간 어두워진 얼굴로 전직 총리는 자신이 아들의 통제에, 아들의 안에 있는 무언가를 막는 데 실패했음을 고백한다.

“결국 인적이 드문 곳으로 보냈네. 내 저택에 머물다 더 이상 아들을 막는 데 실패한다면, 그러면 나 하나 죽는 걸로 끝나지 않을 테니.”

“그곳에선 사고를 치지 않았고?”

“메마른 우물과 연결된 동굴에 가둬 놓고 돌을 올려놨지. 아들이… 아들을 차지한 그것이 해칠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뿐이네.”

저자가 바보가 아니라면, 아니 최소한 부모라면 그래도 알 수 없는 현상을 보이는 자식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았으리란 걸 안다.

한 국가의 정상급 정치인이었던 사람이 말이다. 당연히 뭔가 조치를 취해 보려고 애쓰고, 알아보고자 조사를 하고 했겠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다.

“그후로 추적을 계속했지. 하지만 알아낸 건 아무것도 없다네. 오직 희미한 자취만을 쫓았어.”

불만스러운 말이었다.

“그럼 왜 굳이 날 부른 거지? 어떻게?”

믿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그쪽에서 알짱댄다는 이유로 막 불러 대기엔 분명 부담이 있었을 텐데 말이야.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고. 안 그래?”

국가의 입장에선 성가시다 못해 끔찍한 일을 저질렀고 또 저지를 수 있다는 그 은은한 협박에, 전직 총리의 입은 굳은 채 또 한참이나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확신이 있던 것도 아니지 않나? 말하는 걸 보니 확신이 없던 거 같은데?”

영원하진 않았지만.

“…자네가 나타나고 아들이 얌전해졌다는 보고를 받았네.”

희박한 근거는 그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자네에 대한 살령지문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지? 그날 이후 나날이 버거울 정도로 커져 가던 아들의 광증이 잦아들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네. 그리고 자네가 중국을 그렇게… 만들고 정리를 하고 무림의 무뢰배들을 동원해 수색을 시작한 이후에 내 아들은 잠이 들었다네.”

“잠?”

“그래. 잠들어서 지금껏 깨지 않았어.”

여기까지 들은 연화존자는 알겠다고 했다. 들을 이야기가 조금 남았지만 그건 가면서 들어도 충분했고, 굳이 전직 총리의 입을 빌릴 것도 아니었으니까.

정계에서 명목상 은퇴했지만, 그 밖의 많은 일로 공사가 다망한 전직 총리는 연화존자가 그의 아들을 방문하는 사이 할 일이 있다고 했다.

“…다른 분들의 이목을 돌려야 합니다.”

“다른 분들?”

연화존자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은 전직 총리의 비서 중 한 명은 그의 고용주가 했어야 할 설명을 대신한다.

“도련님의 친구들, 그들의 부모들의 개입을 막아야 합니다.”

살갑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이 위험하고 무례하며 거침없는 극동아시아인이 그리 마음에 들지만은 않다.

다가올 위험과 파탄 역시도.

“도련님의 친구들 역시 도련님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각자의 집에, 혹은 도련님처럼 다른 곳에 유폐되어 있죠.”

“비슷한 처지에 서로 견제라도 하며 으르렁대나? 서로 남의 자식 때문에 내 자식 이렇게 됐다고 탓하면서?”

비서의 침묵을 연화존자는 긍정으로 이해한다.

위협, 귀찮음과 함께 생각한다. 전직 총리랑 어울릴 정도의 배경을 지닌 집안이라면 지금 그를 모시고 가는 자들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며, 그렇다면 그가 인도에서 얻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농후할 것이다.

“그들은 협조적이지 않나?”

포섭의 가능성을 먼저 생각한다.

“당신 고용주의 아들을 만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다른 자들의 자식들도 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싸워도 되지만 굳이 무익한 일에 힘을 쓸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던진 질문이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

“불가능합니다.”

“어째서?”

“광증에 휩싸인 채 돌아온 자 중 살아 있는 사람은 도련님뿐이니까요.”

늙은 정치인의 젊은 비서가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고 설명했다.

쉬쉬하며 숨길 만한 일, 괜히 세간에 밝혀져서 좋을 게 없는 일이었기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화존자를 안내할 만큼 내밀한 사정을 알고 있는 관계자는 돌아가는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사정 모르는 바깥에야 사고사로 알려졌지만, 그들의 부모가 제 고용주께 찾아와 따지는 바람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증상을 보이던 그들은 감시자들이 한눈을 판 사이 일제히 스스로 목을 졸라 죽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사람을 먹으려 들던 자식들을 인력을 동원해 막고, 가둬 놓았던 부모들은 믿기 힘든 현실에 절망했고 분노했다.

세상 어떤 사람이 제 손으로 스스로 목을 졸라 죽을 수 있단 말인가? 믿기 힘든 죽음이었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기에 갈 곳 없는 억울함과 비난은 이제 그들 중 유일한 생존자, 유일하게 살아 있는 아들을 가지게 된 한 사람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오랫동안 그들과 제 고용주께서는 반목하셨습니다. 심지어 암살 시도마저 있었지요.”

도련님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옮긴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누군가를 죽일까 봐 걱정되는 것도 있지만 명확한 후보자 한 명 혹은 그 전부에 의해 자신의 아들이 살해당할까 봐, 전직 총리는 두려워했다.

그래서 전직 총리씩이나 되는 이가 연화존자와 무리하게 접촉한 것도 있었다.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다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희망은 연화존자 김철민, 그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의 아들이 뿜어내는 검은 안개와 비슷한 것이 서울 한복판에서 흘러나온 뒤 광증은 잦아들었다. 그때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확실치 않아 침묵했고 중국이 조각난 뒤.

아들이 미치기 전에, 방문했다고 추정되는 지역을 헤집고 다니는 연화존자에 반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침묵하다 긴 잠에 빠진 것을 보며, 더는 참을 수 없어 연화존자를 찾은 것이었다.

“…일단 만나 보지.”

그리고 김철민은 그에 대한 모든 판단을 유보한다.

예감은 이 길이 맞다고 하지만 아직 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다. 성급한 판단을 내려야 하겠는가? 그럴 이유는 없다.

조급함도 없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되고, 생기지 않는다면 더 좋고.

그렇기에 비행기와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돌연 가해진 총격에도 연화존자의 신색은 평온했다.

“습격! 습격이다!”

“으아아악!”

습격자들은 작정하고 찾아왔다.

일행의 동선을 낱낱이 파악한 채였다. 기습은 완벽할 정도로 급작스러웠고, 위장은 철저했으며, 무장은 경악스러워 개인화기는 물론이요, 다수의 폭탄류를 터트리는 습격자들에 연화존자를 데리고 이동 중이던 전직 총리의 인력들은 절반 이상이 첫 격돌에서 소멸했다.

아, 물론. 연화존자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다.

“같잖은 짓을.”

연화존자는 폭발의 순간, 아무것도 모르고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안내자를 안고 몸을 날렸다.

폭발은 그의 공간을 침범하지 못했다. 팽창하는 공기와 끓어오르는 열기는 습격의 그 순간, 곧바로 알아챈 이 절대 고수의 영역에 털끝만큼도 들어오지 못했다.

오직 분노만을 샀다.

“이, 이게……! 오, 세상에!”

그에 반해 연화존자의 구원을 받은 젊은 여비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패닉 상태에 빠졌다. 탓할 일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순간에 적당한 행위는 아니었다.

“정신 차려!”

연화존자는 그녀의 이지를 순간 제압했다. 의기상인의 재주를 발휘, 아득한 그녀의 정신을 억지로 깨워 맨정신을 유지시켰다.

“비상 연락망쯤은 구축해 놓고 왔겠지? 어차피 너희도 날 완전히 믿는 건 아니었잖아?

“나, 나는… 나느…….”

“연락해. 이쪽 상황을 알리고 습격자들의 정체를 알아내 달라고 요청하고 숨어.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눈물을 흘린 채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비서를 거칠지만 안전하게 한쪽으로 숨긴 연화존자는 이탈했던 현장으로 돌아왔다.

학살의 현장이었다. 이런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전직 총리의 사람들은 무력하게 당하며 은‧엄폐 하는 게 전부.

신나게 쏟아지는 총탄을 보며 연화존자는 생각했다. 저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누구인지는 증명해야 할 것 같다고.

그리하여 그는 우회하여 나타난 재난이 되었다. 역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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