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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46화 (146/175)

146화

연화존자의 손에 맨 처음 당한 건 습격자 중 가장 뒤에 있던 남자였다.

까만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채 누군가와 통신 중이던 남자였다. 습격을 지시한 윗선들에게 중간 보고를 하는 걸까?

화기의 소음을 배경 삼았음에도 위기감이라곤 하나 없는 여유로운 그 얼굴을 연화존자는 번개처럼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

이에 그제야 연화존자의 존재를 인지한, 주변에서 경계 중이던 자들이 뒤늦게 총구를 돌려보지만 그건 말 그대로 뒤늦은 일. 잔상을 남기며 접근한 연화존자의 손이 적들에게서 총을 뺏고 목과 가슴을 주먹으로 두들긴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이들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이동한다. 단련된 그의 기감은 말해 준다. 대략 스무 명에 달하는 습격자의 숫자와 점점 생기를 잃어 가는 그의 동행인들의 기척을.

의리는 없지만 그래도 복수 정도는 할 정이 한국에서 온 그에게는 분명 있다. 잠깐이지만 한솥밥 먹던 사람들인데, 아무리 불손했어도 복수는 해 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기감을 확장하여 전장을 조망했다. 그리고 그때 특이한 사항들이 와닿는다.

습격자 중에는 미약하지만 무공을 익힌 자들도 더러 있었는데, 그건 연화존자에게조차 그리 익숙하지 않은 어딘지 모르게 낯선 기운이었다.

지금은 거의 소멸된 인도 특유의 심법이 아닐까 의심한다.

서구 열강들의 지배를 받았던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어났던 일이라 함은 문화의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고 일제의 무도한 수탈에 한국의 전통이란 것이 얼마나 변질되고 사라졌는지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

무림의 정기는 두말할 것도 없다. 소수의 노력과 천운에 가까운 우연이 아니었더라면 연화존자가 이어 온 무맥 또한 분명 끊어지고 말았을 일.

연화존자가 괜히 은거하던 시절, 수하들과 함께 전 세계에 산산이 조각난 무림의 흔적을 쫓았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옛것을 계승하고, 잃어버린 일을 복원하는 것에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조차 인도라는 나라의 내공을 다루는 법은 극히 낯선 무언가.

그리하여 생각한다. 두 명 정도가 이 보기 드문 기예를 익힌 것 같은데 그 둘을 살려 놔야겠다고. 대저 무공이란 지문이나 홍채만큼 지독한 신분 확인의 수단이니, 저 둘은 기필코 살려 두어 누가 감히 자신을 습격했는지 알아내야겠다고 그는 다짐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음 공격자를 습격했다.

“스, 습격! 습격이다!”

“여기 한 놈 있어!”

완벽한 보안을 유지한 채 기습했던 습격자들은 연화존자의 출현에 당황하여 허둥지둥한다. 방금 전까지 상대의 안이함,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높으신 분들의 다툼에 끼어 한몫 제대로 벌겠다고 좋아하며 낄낄댔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습격자들은 연화존자의 공격에 혼이 빠진다.

잔상조차 눈에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화존자의 속도를 그들은 따라갈 수 없었다. 수류탄 등을 던지기에는 너무나도 지근거리, 총구를 이리저리 돌리며 방아쇠를 당겨 보지만 맞는 것은 하나 없이 헛되이 허공만 가르며 오직 잔상, 또 잔상.

그리고 그러한 잔상에 얻어맞으며 어떻게 쓰러지는지도 모르게 하나둘 쓰러지는 동료들.

결국 남은 자들은 순간적인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정신착란에 빠져 총을 난사하고, 후폭풍 따위 생각 않는 폭발을 일으키지만 전부 무용하여 연화존자의 몸엔 상처 하나 없이 상황은 종결.

노호성은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터져 나온다.

“이노옴!”

결국 남은 건 인도식 무공을 익힌 것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고수와 그들을 지휘 감독 하던 한 사람만이 남았으니까.

“건방진! 가만두지 않겠다!”

인도식 무공을 익혔다고 추정되는 자들은 무모하게도 휴대 중이던 화기가 아닌 적수공권으로 덤벼들었지만, 연화존자는 차라리 그것이 현명하다고 느꼈다.

총기 따위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앞선 전멸에서 체득한 것이 아니겠나? 화력으로는 잡을 수 없다는 걸 알아채곤 가장 자신 있는 수단을 동원한 것일 테지.

그게 아니라면 무모한 자신감, 스스로의 무공에 어떤 확신이 있는 것일 테지만 그거야 확인해 보면 될 일.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재밌군.”

동시에 달려든 두 명이 자로 잰 것처럼 같은 모습으로 연화존자의 양손을 각각 담당했다.

때린다기보다는 잡는 동작이었고 그건 길게 끌 것도 없이 던진 승부수. 내력 싸움을 걸어 움직임을 봉쇄하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담은 것이었다.

연화존자는 이를 피하지 않았다.

그들의 자신감이 무엇인지는 다음 순간 알았다. 양쪽 손을 타고 오는 내력의 기묘한 흐름. 세맥의 가장 끝부분에서부터 묘한 흐름을 들어오며 서로에게 공명하는 이름 모를 내력심법의 기운을 믿고 그리 행동했을 거라는 걸 연화존자는 알 수 있었다.

그 동작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왔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기묘한 내공만을 믿고 덤빌 리가 없으니까.

“흥미로워.”

그럴 만하다는 인정 또한 함께였다. 실제로 그조차 원리를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두 사람의 내공이 공명하고 있었으니까.

많은 생각이 스친다. 쌍둥이인 걸까? 이목구비가 꼭 닮은 것이 이 확률은 높아 보인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 수련했겠지.

‘내공심법의 이름이야 지금 중요한 건 아니고… 나중에 붙잡아 놓고 물어봐야겠어’

연화존자를 상대하는 두 사람의 내력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연화신공의 막강한 힘에 아득바득 저항하며 끝끝내 반대편 팔로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성과 마치 회전하며 피해 내는 한 마리의 뱀처럼 연화신공의 압박에 굴하지 않는 모습에서 나온 추론.

있어야 할 곳에 없고, 없어야 할 곳에 있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며 연화존자의 몸으로, 단전으로 파고들려는 그 모양새가 평생 접해 왔던 어떤 내공 공부와도 달라 흥미를 끌었다.

귀찮은 방해자만 아니었어도 좀 더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흡!”

세 사람이 뒤엉켜 내력 대결을 하는 사이, 조용히 접근해 연화존자를 습격하려고 했던 또 다른 한 명이 연화존자가 차올린 돌과 흙 따위를 맞고 쓰러진다.

이에 내력 대결을 벌이던 상대방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알고 있다. 지금 세 사람은 서로 다른 내력이 엉키고 설켜 치열한 주도권 싸움, 지는 쪽은 재기 불가능할 위험천만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데 어찌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지 의문과 경악에 휩싸였고 그 순간, 거대한 폭발이 두 사람의 몸을 중심으로 터져 나간다.

“아아악!”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다. 지금껏 공격의 주도권을 쥐었던 두 인도인 무인들을 연화신공의 내력으로 제압, 순식간에 거슬러 올라가 단전을 파괴한 연화존자는 폭음 사이로 오연하게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목숨 줄이 끊어지진 않았다는 걸 확인한다. 희귀한 무공을 익힌 자들이니만큼 살려 두고 물어볼 게 많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치밀어 오르는 무공 욕심을 잠시 내려놓는다.

더 중요한 쪽이 있었으니까. 예컨대 마교라든지, 또는 자신을 공격한 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들.

“우리가 할 말이 많아. 그렇지?”

수십 명을 죽이고, 눈앞에서 사람 둘을 날려 버리다시피 한 연화존자의 서슬에 그를 제외하고 정신을 차린 유일한 한 사람, 이 습격을 실행한 책임자일 그는 딸꾹질을 하며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입을 연 건, 방황과 당황 속에서 후속 팀이 도착한 이후였다.

“…죄송합니다.”

수도를 비우지 못하고 대신 사람을 보낸 전직 총리의 전언은 이와 같았다.

“이런 식의 습격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상상을 하고, 못 하고는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건 너희 때문에 내 일정이 어그러졌다는 거야.”

차마 위험했을 거라고는 얘기하지 않는 연화존자였지만 그럼에도 위협은 충분했다. 소식을 듣고 온 연화존자의 수하들, 제갈패밀리와 당가그룹은 물론이고 국가무공원에서 공식적으로 파견 나온 인력들까지 합세해 무언으로 압박하고 있었으니.

그 사나운 눈빛들을 보니 고용주를 대신해 이 자리에 온 전직 총리의 총괄비서는 이 일이 자신의 손을 떠났음을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필요하다고 한 건 당신의 고용주였지. 난 거기에 순순히 응했지만 어이없는 핑계로 날 기다리게 한 것도 당신 고용주고 말이야.”

“…절대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만남이 늦어진 것 역시 이런 일을 우려해서였습니다. 절대 제 고용주는 당신을 해하거나 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는 없었기에 애써 변명하지만, 이미 그러한 시기는 많이 지났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의도가 무슨 상관이야? 이미 일은 벌어졌는데?”

연화존자 역시 눈빛을 빛내며 선언한다.

“두 번의 양보는 없어.”

그렇게 연화존자가 데려온 인력 중 상당수가 전직 총리에게 보내진다.

감히 연화존자를 건드린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고, 그 대가를 받아 낼 것이다. 공식적인 수단 또는 비공식적인 수단을 통해 습격을 사주한 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게 될 터였다.

아, 물론 안내와 보안을 소홀히 한 전직 총리조차 대가를 지불해야 하리라. 한 번의 무례는 눈감아 줬지만 두 번째 실수마저 그럴 수는 없지.

연화존자는 그의 부하에게 해야 할 일을 하라고 했다. 그들이 잘하고, 잘해 왔고, 잘할 일들을.

그 자신은 본래의 목표에 집중했다.

“여기인가?”

처음부터 연화존자와 동행했던 젊은 여비서는 전직 총리의 아들이 갇힌 우물이 있는 안가에 와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번 경호는 연화존자의 사람들이 했기에 이동은 침묵과 날 선 경계 사이에서 이루어졌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정신의 안정에는 도움이 되었다. 만약 누군가 말을 걸며 닥달했더라면 이 순간은 더욱 늦춰졌을 터.

아무튼 그녀는 마지막까지 제 임무에 충실했다.

“…여기에요.”

미리 연락을 받았음에도 연화존자에게 불손한 눈빛을 보이던 안가의 인력들이 제갈패밀리의 손에 제압당하는 걸 보면서도 비서는 떨지 않았다.

그 안가라는 것이 실은 입구에 불과하다는 것, 전직 총리의 귀한 아들이 갇혀 있다는 우물가로부터 또 한참이나 멀리 있다는 사실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진으로만 보던, 묘한 그림자와 어둠이 어려 있는 작은 우물가에 도착하면서부터 불안한 정신은 흔들리고 흔들려 떨림을 감추지 못한다.

연화존자는 다르다.

“맞게 찾아왔군,”

그는 여기서 익숙한 내음, 오래전에 느껴 본 바 있는 무겁고 진한 한 조각 기억을 떠올린다.

눈 내리는 설원, 시대를 풍미한 마교의 거인과 마주했던 그때의 기억이 지금 이 순간 다시금 재생된다.

어둠 속에 배어 있는 피 냄새, 방향 모를 증오를 연화존자는 맡을 수 있다.

“마공이다.”

그러한 연화존자의 혼잣말에 반응하듯 대기가 떨려오니 그의 부하들은 주변을 돌아보며 경계하지만, 오히려 그는 나아간다.

이 얼마 만에 느끼는 떨림이던가?

“와라!”

순간, 대지가 흔들리며 지하 깊숙이 포효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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