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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48화 (148/175)

148화

연화존자가 사라진 마교의 흔적을 찾아 인도까지 가서 기이한 일을 겪는 사이.

남은 자들은 처리해 마땅한 복잡하고도 예민한 일들을 쳐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먼저 당가그룹은 본격적인 승계와 내부 단속에 들어갔다. 독군의 부재를 틈타 차기 회장직을 노리던 다른 경쟁자들을 한꺼번에 숙청한 독붕 당청영이 다음 대 회장직을 이어받기 위한 준비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어수선한 그룹 분위기를 쇄신하는 일이기도 했다. 정리할 것이 많았다. 흩어진 그룹의 자산과 인력들을 정비하며 앞으로의 일들을 대비하는, 요컨대 숙원사업으로 여겼던 중원 복귀가 확정된 지금, 이에 대한 어떤 청사진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계획 같은 것들의 사전 준비 등이 필요했다.

당청영은 그룹의 기초를 다졌던 조부에 이어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중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 능력 있는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고 동시에 개방적인 태도로 조직원들의 충성을 받아 내는 일에 정신이 없어 다른 일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할 지경.

무공 수련마저 최소한으로 접어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거대한 재벌그룹이 잠시 접어 둔 날개를 다시 펴는 날,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확장 일보의 행보를 밟을 것이라는걸.

당가그룹과 비슷한 느낌으로 내실을 다지는 자들은 또 있었다. 바로 인력의 많은 수를 차출했음에도 맹렬하게 움직이는 제갈패밀리가 그들.

마찬가지로 중원 복귀에 성공한 이들 제갈패밀리는 조직원 전체가 불가능해 보였던 성공에 도취되어 있었고 이들의 수장, 제갈연은 이를 원동력 삼아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했다.

범죄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종류의 집단으로 태어나고자 한 것이다. 시대 상황에 따라 세가라는 거대한 가문에서 이탈리아 마피아들을 쥐고 흔드는 강력한 범죄 조직으로 탈바꿈했던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합법적인 집단으로 그들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자 그녀는 노력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과 싸워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한 신장 지구가 주무대가 될 예정이었다. 제갈패밀리, 이제는 제갈그룹으로 불리길 원하는 이들 옛 마피마 집단은 예전 동료들이 보았다면 믿지 못할 정도의 사업적 태도, 관대하고도 너그러운 태도로 지역 주민들의 사랑과 애정을 얻어 내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그룹의 기반을 다지고자 한다.

여기에는 당가그룹이나 제갈패밀리와 같은 규모의 거대 조직이 아닌, 하지만 비슷한 상황으로 유럽 등으로 도주해야 했던 옛 무림 세력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당가그룹과 제갈그룹은 동조자들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거기에는 동변상련의 처지,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명맥이 완전히 끊길 뻔한 중원 무림의 몇 안 되는 생존자에 대한 의리라는 것이 아주 조금 섞여 있긴 했지만, 본질은 그렇다.

도망치듯 떠났던 옛 무림 세력들은 돌아온 중원에서 군림하고자 한다. 예전의 의미, 무공과 세력으로 강호재패를 한다는 식의 야심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추구하는 바가 그렇다.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보상 심리가 이들에게는 있다.

그리하여 기존 중국의 기득권 세력은 고심에 빠진다.

내전이나 다름없던 상하이 사태가 중국 공산당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니, 종국에 와서는 분명하다.

사실 그건 누구의 승리도 아닌, 모두의 패배라는 것이.

많은 것을 양보해야 했던 중앙의 공산당 귀족들도, 생존과 더불어 많은 것을 얻으리라 기대했던 상하이의 부유층도 돌아보면 상처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가 그렇다. 그들이 극도로 지키고자 했던 ‘하나의 중국’이라는 가치가 어떻게 됐단 말인가?

티베트 자치구와 신장 위구르 지구가 제 갈 길을 가겠노라 선포했다.

돌아온 달라이 라마가 훼손된 티베트 자치구를 아우르고, 그룹으로의 전환을 선포한 제갈그룹이 그런 달라이 라마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었다. 티베트 지구,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민족성을 되찾은 지역 주민들은 희망으로 빛나고 있다.

신장 위구르 지역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들에겐 아직 숙제가 많다.

먼저 중국 공산당과의 사이에 풀리지 않은 앙금과 채무가 남아 있다. 중국 공산당이 조직적으로 실시해 온 민족 말살 정책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아야 된다는 강한 의지를 신생 위구르 국가의 집행부는 하고 있고, 이 새로운 국가의 후원자 또한 그러한 의견에 은근히 동조 중이다.

이슬람 세계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들 후원자들은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결국 이것은 위신에 대한 문제, 그에 더불어 그간 중국과 은근한 밀월 관계를 구축하며 나름의 이익을 추구했던 것에 대한 청산에 대한 문제로 실로 오랜만에 나타난 이슬람 세계의 대통합과 그에 따른 이득을 원하는 자들은 많다.

이에 중국 내부의 분위기는 실로 좋지 않았던 것.

부숴진 황금방패와 찢어진 하늘의 그물은 이러한 불만을 가감 없이 표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중국의 인민들은 그간 있었던 압제에 대한 저항, 천안문 사태 이후 잃어버렸던 언론의 자유라는 것을 마음껏 누리는 중이어서 정국은 혼란, 그 자체.

중국의 또 다른 소수민족들 사이에서도 불안은 번져 가고 있었다. 티베트 자치구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도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했는데, 우리는 왜?

여기에 하나의 중국이라는 개념이 사라짐에 불만이 많은 대만의 정치, 무림 세력까지 개입을 하니, 중국을 중심으로 혼란은 마치 들불처럼 번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그때.

‘극동아시아의 평화가 곧 세계 평화다.’

대한민국이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것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능동적으로 나서는 데 소극적이거나, 아니면 늘 실패했던 대한민국의 기존 입장에 비추어 보면 뜻밖의 일이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리 이해 못 할 일도 아니었던 바.

먼저 중국의 내전에 이은 불안이 대한민국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결이 시급했던 것이다. 덩달아 대한민국의 불안 또한 높아져 가고 있었기에 중국 바로 옆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라로서 최소한 일련의 상황들이 안정될 거라는, 안정될 수 있을 거라는 시그널이 대한민국에는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화존자가 있었다.

‘연화존자께서 하신 일에 마무리를 확실히 지어야 한다.’

국가무공원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움직였다. 연화존자와 함께 움직이며 상하이 사태를 주도했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일종의 책임감이 이들에게는 있다.

향후 극동아시아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과도 관련이 있었지만, 가장 큰 감정이 그랬다.

이토록 훌륭하게 외부의 적대 세력을 분열시킨 연화존자 아닌가? 그렇다면 그 일을 정리하는 일 정도는 국가무공원에서 맡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대한민국이 주체가 되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극동아시아 평화 회담은 사회불안을 가라앉힘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바라는 대한민국 정계와 국가무공원의 열의가 일으킨 시너지.

이 일을 위한 특사로 파견된 윤아영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거기에 정계에서의 경력이 일천하여 국제사회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는 정치 신입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특사로 파견되었다고 했을 때.

이 이야기를 들은 이해관계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신들을 뭘로 보고 저런 경력의 사람을 특사로 보낸단 말인가? 요즘 연화존자 덕분에 잘나간다, 잘나간다 하더니 보이는 게 없는 건가? 자기들이 뭐라고?

그렇지만 이내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겸손하게 자리에 착석해야 했던 것은 이어진 전언 및 방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협조적이지 않으면 우리의 방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한 전언과 방문을 받았는데,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화존자가 누구인지,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정확하게 모를지라도 그가 어떤 남자인지 모르는 자는 이제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 사실이 불만이 사그라들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상당히 많소. 성급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화를 내며 어깃장을 내거나, 몽니를 부리거나 할 수는 없었다. 보고 있는 시선이 몇이며, 실로 오랜만에 열린 국제회의에 이해 당사자가 몇이던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괜히 나섰다가 불이익을 볼 수 있었다. 애당초 이런 자리에서 화를 내며 강경하게 나서는 건 하수나 다름없는 일.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막대한 자원이 필요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서로 간의 입장 차를 조율하며 차근차근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성급함이 낳은 수많은 문제를 목도해 왔소.”

정치인의 화법, 외교관의 화법을 사용한다. 정론을 펼치고, 좋은 말을 하며, 상대의 말을 면전에서 거부하지 않고 유예함으로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절대로 확정 짓지 않는다. 무로 자르는 듯한 단호함, 이루고자 하면 이루어야 하는 일에 대한 명백한 목표의식은 이 거대한 회의에서 실종되는 듯했다.

한 사람이 없었더라면.

“그러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합니까?”

대한민국의 특사, 윤아영은 되묻는다.

“역사가 증명한 조급함이 부른 참사를 피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합니까?”

“그게 무슨…….”

“얼마만큼의 논의와 얼마만큼의 합의와 얼마만큼의 자원이 필요한지 여쭸습니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 이번에도 화합하는 법 없이 불화한다.

“그건 면밀히 계산하고, 실행을 해 봐야 알 수 있는…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누구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는 일인…….”

“그럼 하면 되겠군요.”

단호하게 몰아붙인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국가 간의 정세가 불안합니다. 여유를 가질 때가 아닐 텐데요?”

“…쉬운 일이 아니오.”

“쉬운 일을 하고 싶으면 높은 자리에 앉아 많은 월급과 혜택을 누릴 게 아니라 돈 버는 편한 일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뭇 공격적이기까지 한 태도, 차분해 보이는 외모와 다른 강성의 태도에 좌중이 술렁거린다.

이런 탄식도 흘러나온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연화존자의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보낸 사람답다.

“다들 여유가 있나 봅니다. 나라의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고, 나라 간의 일을 합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 아닙니까?”

그리하여 윤아영은 감독관이 된 것처럼 상황 전체를 통제하고, 조율한다.

초기에는 반발이 많았다. 당신이, 대한민국이 무슨 권리로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냐고 따지는 자들의 숫자가 정말이지 말도 못 하게 많았다.

하지만 국가무공원과 당가그룹, 제갈그룹 등이 그녀의 명령에 협력하니, 이내 다들 깨닫는다. 대한민국에서 온 저 젊은 특사의 뒤로 드리어진 연화존자의 그림자를.

그리하여 중국 공산당 내‧외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치열한 정쟁 사이로 윤아영은 뛰어들었던 것이고 그 사이에서 그녀는 대한민국의 이익을 궁구하며 명성을, 무명의 정치 신인이자 검사가 아닌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에 의심을 가진 이들의 시선을 서서히 바꿔 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비단 극동아시아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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