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근래 미국에서 마약 문제는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동방에서 온 신비한 무림 고수들은 그런 희망을 주었다. 약에 중독되어 인생을 파괴당한 사람들, 자의 혹은 타의에 상관없이 그렇게 되어 버린 사람들이 신비로운 내공으로 몸 안의 약과 절망을 씻어 내는 건 그런 것을 선사했다.
그간 있었던 극렬한 반발 또한 많이 사그라들었다. 물론 여전히 외치는 자들이 있긴 했지만, 대다수의 미국 시민은 대한민국 국가무공원과 그들 나라의 재벌가가 합작해 만든, 얼마 전 의료단체로서의 인가가 모두 끝난 이들을 환영하고 반기고 있다.
정재계는 물론이고 연예계에서도 말이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미스터 송.”
그리고 이제 미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증산방의 소방주이자 확고한 차기 후계자, 송철우는 화려한 이목구비의 미녀가 자신의 손을 잡고 흔드는 상황에 어찌할 줄을 모르고 진땀을 빼고 있다.
“케이시, 그렇게까지 고마워할 일은…….”
“무슨 소리예요, 미스터 송?”
곤란함에 겸양의 말을 하며 손을 빼고자 하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레 제 품으로 끌어당기는 갈색 머리 여자의 행동에, 송철우는 뻣뻣하게 몸이 굳어 입마저 조개처럼 꾹 닫히고야 만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제 동생이 어떻게 그 더러운 것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었겠어요?”
미국의 유명한 가수로서 최근 연기 쪽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행보를 넓혀 가고 있는 아티스트 엘리아는 송철우의 겸손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격하게 저었고, 송철우는 그것만으로도 아찔함을 느끼며 내력을 일으켜 심신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어디서 나는지 모를 달콤한 향기에 마음의 평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동생 본인도 그렇고, 저희 부모님과 가족 모두가 철우 씨에게 가슴 깊이 감사하고 있어요.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사연은 이렇다.
훌륭한 재능과 인성을 갖춘 율리아와 다르게 그녀의 하나뿐인 남동생은 성공한 누나를 둠으로써 망가졌다.
나이와 성숙함에 비례하지 않게 얻게 된 부유함은 그를 망가뜨렸다. 나쁜 친구들, 신의 없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며 약물을 접하게 된 건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일.
이로 인해 율리아와 그의 가족들이 겪은 불행과 불화는 말로 형언키 어려울 정도였다. 자신의 성공이 사랑하는 동생을 망가뜨렸다는 자책감이 컸던 율리아는 급기야 활동 중단을 선언할 정도였으니, 그 와중에 들려온 증산방의 활약은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그리고 그 중독의 증세가 심해 소방주이자, 실력 있는 치료사로 거듭난 송철우가 직접 나서서 율리아의 동생을 치료해 준 것이 오늘 자리의 사유였다.
“미스터 송이 저희 가족과 저의 삶을 구하셨어요. 꼭 이 감사함을 표시할 기회를 제게 주세요.”
아울러 미루어 짐작컨대, 율리아는 그 이상을 바라는 것 같다.
애초에 따로 감사를 받을 일이 아니라고, 그저 필요와 수준에 따라 내려진 조치였으며 율리아의 아티스트로서의 명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에 가깝게 증산방의 사무실로 쳐들어온 것부터가 그랬다.
개인적인 호감이 분명 있어 보이는 것이다. 인스타 등을 통해 지속적인 관심을 표시한 그녀가 좋지만 부담스러운,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송철우는 이 상황이 당혹스러워 말을 잊는다.
그렇게 한참이나 머물며 꼭 다음에 개인적인 약속을 잡자는 그녀가 겨우 돌아간 뒤, 주변을 환기한 건 청해마도의 한마디였다.
“외국인 며느리도 나는 상관없다.”
“아버지!”
“네 어미라면 더 그럴 거고.”
작은 웃음이 퍼진다.
“다 큰 자식한테 할 말은 아니긴 하다만, 남자가 여자 만나는 데 뭘 그리 재고 따지느냐? 보아하니 너도 마음이 없는 게 아닌 거 같던데.”
중대하게 결정지어야 할 사안이 있어 모인 자리에 있던 작은 여흥.
“…생각해 보겠습니다.”
“편히 마음먹거라.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게 무에 대수라고.”
본안은 그 즈음에 논의된다.
“다니엘이 연락을 취해 왔다. 우리를 적대하는 자들이 아직 남았고, 어떤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하더군.”
칼날 같은 분위기를 띠는 회의장 안에서, 오랜만에 청해마도가 주최하는 회의는 날카로운 기세로 무르익어 간다.
“이에 다니엘은 요청했다,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다니엘 삼촌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사안이 심각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송철우의 물음에 청해마도는 고개를 끄덕인다.
“옳게 보았다. 그들은 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우리를 규제하는 법안을 다시 통과시키고자 하더군.”
이에 나오는 또 다른 질문.
“목적이 대체 무엇이길래 우리를 공격한다고 합니까?”
그것은 의아함과 의문이 가득하다.
어찌 보면 순진할 정도로.
“우리의 행동이 불이익이 되는 건 마약을 팔아 수익을 얻는 범죄자들 아니었습니까? 이미 미국의 의료계 등과는 우리와 잘 연결되어 마약중독을 치료한 후의 사후 조치에 대한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당가그룹의 미국 진출 또한 어느 정도 협의를 이룬 상황인데, 대체 누가 우리를 공격하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한 청해마도의 대답은 간결하다.
“인종차별주의자들.”
탄식이 흘러나온다.
“백인들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흑인 커뮤니티라고 했다. 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더군.”
이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된 것이기도 했다.
주류 백인 사회는 증산방을 비롯한 대한민국 측 사람들에 대해 어느 정도 체념과 인정을 한 상태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협력, 이익을 나누는 사이가 된 것이 컸고 수많은 소동 끝에 얻는 것이 있으니 어느 정도 인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많은 부분에서 이루어진 상태.
라틴계 쪽도 비슷했다. 이쪽은 이제 미국에 와 있는 지역 커뮤니티 등이 아니라 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무공원의 활약에 영향을 받은 게 컸지만.
물론 죽은 갱단 친척의 복수를 해야 된다며 이를 가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대세가 그랬다. 대다수가 국가무공원에 호의적.
하나 흑인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자못 다르다.
“다니엘은 그것이 질투라고 했다.”
흑인 커뮤니티의 상당수는 아시안계의 득세를 원하지 않았다. 그건 본국이 부재하는 이들의 서러움, 언제라도 돌아갈 국가가 있는 대다수 아시안계에 대한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었던 것으로, 이번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진출과 성공은 이에 대한 기폭제가 되어 가고 있다.
흑인 갱단의 상당수가 증산방 등에 의해 몰락했다는 사실은 여기에 불을 질렀다.
“대규모 반대 운동이 일어날 기세라고 하더군. 상당한 곤란을 겪을 거라고 다니엘은 경고했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밀월 관계가 깊어 가며 다니엘의 정치적 위상은 올라갔다. 칠익회 시절, 연화존자의 자금을 관리하던 성공한 투자업계의 거물에서 워싱턴 깊숙한 속사정에 발을 걸치기 시작한 연화존자의 대리인은 FBI의 경고를 얼마 전 듣고 온 참이었다.
“흑인들의 저항에 부딪치면 미국의 주류는 우리에게서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고도 했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미국의 PC주의 세력이 흑인들의 편에 서서 증산방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예상과 함께.
“우리는 이 문제를 먼저 나서서 해결해야 하지만, 솔직히 말하지. 내 머리에서는 잘 떠오르지가 않아서 이렇게 다들 불러 모았다.”
청해마도의 침잠한 눈이 좌중을 돌아본다. 긴장한 얼굴들, 생각에 잠긴 얼굴들을 돌아보며 되묻는다.
“좋은 생각을 가진 게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 보도록.”
과묵한 그였지만 이런 문제에서도 침묵을 취할 수 없어 예외적으로 말이 길었다. 하지만 그런 수고가 무색하게 침묵은 다른 이들에게서 드러나는 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생각이 길어진다.
죽이거나, 분쇄하거나 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상대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일부 사안에서의 결집력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축적된 분노라는 것이 있었다. 근대사 속에서 쌓여 온 분노는 정당하면서도 강력한 것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방향을 틀면 심히 곤란했다. 이미 LA에서의 사례라는 것이 있지 않나?
지금이야 국가무공원, 증산방의 활약에 침묵하고 있다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 잠재적 적들 또한 존재했다. 분노를 일으켜 상황의 반전을 꾀하고자 하는 음습한 자들이.
하지만 21세기가 되도록 해결하지 못한 이 어려운 문제를 국가무공원이, 증산방이 무슨 수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두의 머릿속에 흑인 커뮤니티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 혹은 다른 곳으로의 관심을 돌리는 등의 생각이 떠오르던 그때.
소방주 송철우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말해 보거라.”
“제가 이 나라에 와서 보니, 이 나라 흑인들에게는 일종의 부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부재?”
“예, 앞서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의 연장선인 본국의 부재 같은 것들 말입니다.”
미국의 아시안계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이유. 일본계와 한국계 그리고 중국계의 숫자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절대로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건 이들에게 확고한 고향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미국 내 아시안 집단들은 각 커뮤니티 혹은 미국에서의 역사가 아닌 본국의 역사를 따라가게 된다. 간혹 일본이 진주만 습격 때와 같은 엄중한 시절에 있었던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곤 중국계와 일본계, 한국계 모두 실존하는 뿌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좋다는 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이들은 이방인이었으니까. 여기에도 섞이지 못하고, 저기에도 섞이지 못한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니까.
송철우는 그렇지만 차라리 그게 나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들에게는 없는 거 아닙니까? 아프리카 대륙은 상처받았고, 고통받았으며, 미국에 있는 흑인들과 단절되었습니다. 제가 가만 보니 그들의 국가란 식민지 시절, 열강들이 제멋대로 필요에 의해 갈라 놓은 것이어서 부족 전통은 소멸에 가까워졌더군요.”
“그래서?”
“그들의 단절감을 채워 주는 방식으로 접근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아들의 말이 청해마도는 가늠이 잘 가지 않으면서도 흥미롭다고 느꼈다.
“어떤 식으로 접근하겠다는 거지?”
“그들에게 뿌리가 될 만한 것을 주는 게 어떻습니까? 예를 들면 무공 같은 거 말입니다.”
그래서 청해마도는 그렇게 했다.
증산방의 제자 중 아직 진기상인에 투입될 만한 실력이 아닌 자들을 선발하는 동시에 다니엘에게 연락해 일부 온건한 흑인 지도자들과의 접선을 부탁했다.
그렇게 만나서 제안했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대한민국의 오래된 금과옥조와 같은 말에 의거, 흑인들에게 조건 없는 무공 전수를 하고 싶다고.
이를 바탕으로 당신들만의 문파, 흑인들만의 문파를 만들어 어떤 둥지와 같은 것을 꾸며 보지 않겠냐고 청해마도는 제안했다.
그들은 이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