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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50화 (150/175)

150화

인도, 전직 총리의 아픈 손가락이던 아들은 살아남았다.

그것이 비록 산송장에 가까운 꼴이라 할지라도 살아남은 건 살아남은 거였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결국 의식을 찾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으니, 생존자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테지.

그가 깨어날 때까지 연화존자는 전직 총리의 거처에 머물렀다.

그를 둘러쌌던 이전의 적대감은 사라졌다. 물론 사람 마음이 어찌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지겠냐마는 적어도 그가 머무는 동안 전직 총리의 고용인 혹은 관계자들이 연화존자에게 불손한 눈빛 따위를 내보이는 일이 다시 발생하는 일은 없었다.

절대로 말이다. 전직 총리는 죽었다고, 죽을 거라고 여겼던 아들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 그로 인해 비롯된 수많은 사건에도 불구하고 연화존자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겠노라 장담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누가 감히 그런 집안 주인의 말을 거스를 것인가? 연화존자는 귀빈이 되어 대체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건 연화존자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 또한 이 길고 긴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있었으니까.

연화존자는 내면을 관조하며 깨닫는다. 연화신공에 변화가 있음을.

“…기이하군.”

아침에 일어나 맑은 물 한 잔으로 육신을 깨운 뒤 행한 소주천과 이후의 행공에서 연화존자는 변화를 자각한다.

오행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하고 또 이루었던 연화신공의 내력에 어딘지 모를 폭급한 기운이 깃든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전에는 없던 현상. 도도하면서도 웅혼하던 그의 내력이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처럼 거대한 힘으로 화하고자 용틀임을 했던 것이니 명백한 일이다.

가련한 희생자를 바탕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던 검은 안개, 패배한 뒤 흩어져 연화존자의 주변을 떠돌았던 그 기운이 어떤 영향을 끼쳤으리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연화존자는 또한 알고 있다. 모습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마교의 신물, 흡성대법과 관련되었을 그 무언가가 자신에게 이 이상의 영향력을 끼칠 수 없으리란 것을.

그러기엔 연화존자는 너무나도 고수였다.

천마격살의 주인공이자, 세상 누가 와도 능히 감당하고도 남을 천하제일의 고수가 연화존자 김철민이었다. 어디 감히 망해 버린 마교의 물건 따위가 주화입마와 심마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그저 용을 쓰며 꿈틀대다 다시금 흩어져 연화신공의 새로운 양분이 되는 게 전부지.

다만 그러한 과정에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도를 떠나지 않고 잠시간의 여유를 부리는 것이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흡수된 흡성대법의 흔적은 연화존자에게 분명 무위의 상승을 불러일으킬 요소였지만, 무릇 세상일이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그 대가로 내력이 다소 불안정해짐을 연화존자는 알았던 것이고 이를 안정화시키며 흡수할 시간이란 것이 그에겐 필요했다.

아들을 되찾은 전직 총리의 거처, 이제 더는 공인이 아닌 그의 집으로 국가무공원 소속 요원들이 대거 급파된 건 그래서였다.

이 정도로 연화존자가 흔들리지는 않을 테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연화존자의 가장 취약한 순간이 어쩌면 지금일지도 모른다는 조급함.

“…자네의 수하들은 자네를 사랑하는군.”

덕분에 연화존자가 머무는 저택 인근은 일종의 요새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된다.

따로 쓰는 통신망, 틈을 주지 않은 촘촘한 경계, 그에 더해 혹시 모를 불상의 적들이 가할지도 모르는 대범한 공격을 대비하는 방공망과 새로 설치된 초소 등등.

편집증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국가무공원의 철저한 준비에 전보다 여유를 찾은 전직 총리는 위와 같이 말했고, 내심 동의하는 바였던 연화존자는 쓴웃음으로 대답을 갈음하며 다른 용건을 입에 올린다.

“날 공격했던 자들에 대한 처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현지 조력자들이 미처 파악 못한 공격이 있었다는 건 훌륭한 핑계이자 실질적 이유였다. 혹시 아는가? 연화존자에게 원한을 품은 자들이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를 불러올지?

그것도 이 거대한 국가에서 손꼽힐 만한 권력자를 제법 곤란하게 만들 정도의 힘과 권세를 지닌 자들이 상대라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국가무공원 고위층의 생각이었다.

“우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가고 있네. 전부 처리할 수는 없었음을 먼저 밝히네. 그건 미안하군.”

“아아, 적당한 대가만 있다면 상관없어. 없애 버리고 싶다면 당신네한테 맡겨 두지도 않았을 거야. 나나, 내 수하들이 직접 나섰겠지.”

“이해해 주니 고맙군.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네.”

“문제라면?”

“합의에 끝까지 반발하는 자들이 있거든. 자네 손에 의해 무공을 잃은 자들이 속했던 집단 말이야.”

하물며 기이한 무공을 쓰는 자들마저 상대가 보유하고 있었고, 그들이 원만하고도 합리적인 처리를 거부하고 있음에야.

“그런 걸 보고 보통 이쪽 업계에선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고 싶어 한다, 뭐 이런 식으로 표현하긴 하지.”

연화존자와 국가무공원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기도 했다.

“애초에 무림인이란 족속들이 그래. 말로는 잘 안 들어 먹기 마련이거든. 또 다른 전문용어로 관짝을 봐야 눈물을 보이는, 그런 성격이 대부분이거든.”

“그 말은?”

“그자들은 우리 쪽에서 처리하지. 정보를 넘겨줘.”

그렇기에 전직 총리가 말하는 곤란함을 이해했다.

다른 적대자들은 모두 정계와 재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었기에 실질적인 주도자들을 실각시키고, 그들의 재산 일부를 뜯어 오는 것으로 합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림인은 무릇 오른쪽으로 가라면 왼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라면 오른쪽으로는 가는 성질머리의 소유자들 아닌가? 이 정도는 손을 보태야 할지도 모른다고 미리 예상했고, 사실 이런 걸 기대하기도 했다.

“대신 그들에게서 나온 건 우리가 갖지.”

“그러도록 하게.”

그리하여 얼마 뒤, 해야 할 일에 대해 들은 국가무공원에서 증원 병력을 파견했고 연화존자를 습격하는 데 한 손 보탠 것도 모자라 사후 처리에 무조건적인 항쟁을 부르짖던 인도의 무림 문파들이 쓸려 나갔다.

본래대로라면 있을 수 없었지만 권력의 비호, 공격받은 자는 물론이고 이 일을 덮고자 하는 자들이 한마음으로 힘을 쓰니, 사건은 알려지는 법 없이 깨끗하게 지워진다.

연화존자는 그러고도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들의 무공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인도 육파 철학 중 바이세시카의 사도로부터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문파는 자신들의 비급을 오직 완벽한 암송을 통해 전수했기에, 그들로부터 비급을 뽑아내는 데 시간이 걸린 탓이었다.

그들은 저항했지만, 끝까지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연화존자는 바로 이 부분에서 전과 달라진 점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국가무공원 요원들이 각각의 인도 무림인들의 진술로부터 뽑아내 비교 분석해 합친 비급의 완성본. 이들의 비급에서 틀린 점, 잘못된 점, 더 나아질 수 있는 점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

처음엔 이것이 그 자신 본연의 능력이라고, 아니면 단순히 얼마 전 마교의 것과 조우한 여파로 인한 무공의 상승이라고 여겼지만, 이내 그런 식의 안이함을 버리고 알아챈다.

흡성대법, 마교의 검은 안개. 이름이야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것을 흡수한 공능이라는걸.

“하.”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오는 연화존자였다. 물론 천하제일의 고수이자 21세기 그 어떤 국가도 해내지 못한 무공의 대량 보급을 해낸 절대고수인 그였기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면밀히 살피면 이와 비슷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것이 이처럼 즉시 즉답이 가능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무공이란 그리 얕은 공부가 아니며, 하물며 지금 보고 있는 건 연화존자, 그가 익혀 온 것과는 사뭇 다른 체계의 다른 무공일진대.

“흡성대법은 흡성대법이란 건가? 마교는 과연 마교고?”

정답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연화존자는 다시금 비급을 살폈다. 틀린 건 없었다. 그가 알던 지식과 감각은 흡성대법의 알 수 없는 공능, 마교의 신물이 남긴 기이한 능력이 올바른 답을 도출했다고 말한다.

연화신공과 잘 맞지 않는 것처럼 삐걱거리는 감각이 잦아든 이후의 일이기도 하다. 하여 연화존자는 인도에서 얻은 무공을 정리하는 동시에 고민한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와 첫 번째로 만났던 마교의 신물은 서울의 한밤을 어두운 안개로 물들이며 나타나 어둠 속에서 생사투를 벌였고, 두 번째로 모습조차 없이 나타난 신물은 그조차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하고도 이해 불능의 능력을 선사했다.

어떤 길이 있다고 느껴진다. 죽은 천마가, 마교가 자신에게 원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미국에서 온 연락이 연화존자에게 닿은 건 그때쯤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숙부님.”

증산방의 소방주, 송철우가 직접 인도로 왔다.

그건 그가 입안한 어떤 계획에 연화존자의 도움과 조언이 절실했기 때문.

“무공으로 뭉칠 흑인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

“그렇습니다.”

미국에 머무르며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다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상상해 낸 송철우에게는 일종의 사명감과 책임감 같은 것이 있다.

“그들에겐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공이 그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요.”

“위험한 발언이구나.”

연화존자는 송철우가 입안한 계획의 위험성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다.

“자칫하면 큰 역풍이 불 일이란 건 알고 있지? 미국 내에서도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는, 주권 침해니 뭐니 하면서 번거롭고 까다로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이 연화존자가 이를 두렵다거나, 귀찮다거나, 이득이 없어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난 너의 말에서 한 줄기 비분강개를 느낀다. 내가 느낀 게 맞나?”

“…맞습니다.”

송철우는 말한다, 자신이 보았던 것들을.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이 많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게 없다고 하고, 누군가는 또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지만 제가 느낀 것은 한 가지입니다. 이건 어딘가 잘못되었고, 고치기는 고쳐야 한다고.”

무언가 잘못되어 있음에 대하여.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진보의 역사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목격자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여 무엇이 증산방의 소방주를 가시밭길로 몰았는지 연화존자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가 궁금한 것은 청해마도의 아들이 그 어려운 길을 꼿꼿이 걸어갈 힘과 의지가 있냐는 것.

“저는 이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질문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내게 원하는 건, 역시 그들에게 줄 무공이 있느냐는 거겠지. 맞나?”

“그렇습니다.”

그 또한 옳은 일을 위해 어렵고, 귀찮고, 더러우며, 무의미해 보이는 일들을 숱하게 해 오지 않았나?

그런 것들이 모여 변화를 일으킨다는 걸 아는, 옳은 일이라면 어려움은 나중에 생각하는 게 옳다는 정파 무림인인 연화존자는 그러니 송철우가 어리석다며 비웃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나 좋은 게 있지.”

그는 세상 누구보다 어리석은 무림인이었기 때문에.

“함께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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