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최근 경찰에서 퇴직하고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남경은 공기부터 다른 낯선 나라의 풍경에 잠시지만 넋을 잃는다.
몇 년 전부터 그는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경찰로서의 경력이 상사의 비리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로 끝날 뻔했던 일의 여파라고도 하겠다.
물론 그는 복직할 수 있었다. 국가무공원의 출현 덕분이었다. 공익을 위한 제보자로서 겪어야 했던 그의 고통은 국가무공원의 눈에 들면서 어느 정도 종결되었다.
그를 내쳤던 경찰 조직은 국가무공원의 강한 압박에 버티지 못했다. 그와 비슷한 처지와 비슷한 내부 고발자들이 일제히 복직, 경찰 조직 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건 과장도, 과언도 아니니까.
다만 그럼에도 이남경은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그토록 바라던 정의로운 경찰이 되겠다는 다짐을 이루었음에도, 같은 처지로 우울했던 다른 동료들이 승승장구하며 제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있음에도 허망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건 온전히 개인적인 이유.
그가 경찰에서 쫓겨난 사이, 아내와는 이혼했고 딸아이는 병으로 죽었다.
그 어린 것이 뭐가 그리 급해서 세상을 떠났는지 이제는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이 내부 폭로자가 되어 손가락질당하며 경찰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기억에 남는 거라곤 웃고 있던 아이의 모습과 창백한, 너무도 창백한 얼굴로 남은 마지막.
“이남경 씨, 맞으시죠?”
정신을 차라니 눈앞에 활달한 얼굴의 여자가 서 있다. 한국 사람이 분명한 겉모습에도 들리는 유창한 한국말이 낯설다.
“류미나 씨?”
“맞습니다. 반가워요.”
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그 손바닥이 건강하지만, 이제 막 추억에서 벗어난 그에겐 그리 큰 인상이 남지 않는다.
딸아이가 세상을 뜬 후 줄곧 겪는 현상이다. 여기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느낌, 이게 다 진짜가 아니고 어딘지 모르게 붕 뜬 느낌.
결국 견디지 못하고 찾아간 정신과와 국가무공원에 발탁되어 경찰로 복직한 후에 지속적으로 내원했던 상담 센터에서는 일종의 해리성 장애 같다는 소견을 보였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다만 복직에 필요한 절차였기에 다녔을 뿐.
그렇게 생각하면 국가무공원에 고마울 따름이다.
“우간다는 처음이시라고요?”
“맞습니다.”
국가무공원은 자신을 믿어 주고, 지지해 줬다.
본래대로라면 경찰에 복직할 수 없었을지도 모를, 상부와 관련된 경찰 내부 비리를 언론에 터트린 일로 트집 잡을 구석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던 경찰 조직에, 해리성 장애를 가지고 있어 복직시키는 게 쉽지 않았을 자신을 억지를 쓰다시피 하여 돌려보낸 국가무공원이었다.
부족함은 자신들이 채울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그 말에 고마워서 복직 제의를 받아들인 것도 있었다. 이런 자신임에도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해 준 그들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홀로 갇혀 죽어 버렸을 테지.
“제 이름은 니카챠예요.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그리하여 열심히 달려왔지만, 그렇지만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더는 버티기 힘들다.
“촉망받는 경찰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 먼나라로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촉망은 무슨… 그냥 월급 받자고 한 일입니다. 별거 없어요.”
더는 자신을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뛰었다. 가족이 없으니 집에 들어갈 일도 없다며 야근과 잠복을 밥 먹듯이 하며 나쁜 놈들을 잡으려 했고, 성과도 있었다.
나쁜 놈들을 많이도 잡아 넣었지만 가슴속의 허무함, 세상과 여전히 괴리된 듯한 감각을 버티기는 어려웠다.
조직에서 다시 인정받았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그는 모두가 꺼리는 일에 자원했다. 바로 외국에 태권도와 내공심법을 보급하고, 대한민국의 선한 영향력을 증대한다는 일에.
“그냥 가족도 없이 사는 홀애비라 돈 많이 준다길래 자원한 겁니다.”
그는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그것뿐이었다.
“여기가 우간다 태권도 협회에요. 현재 우간다에서는 2만여 명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고…….”
안내역이자 앞으로의 우간다 생활에서 가이드가 되어 줄 니카챠는 수다스러웠지만,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건강한 조잘거림이 아니었다면 한국에서와 같은 괴리감을 또 한 번 느꼈을 거라고, 이남경은 생각한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를 우간다로 보내기 전, 6주에 걸쳐 진행했던 집체 교육은 이남경이 그런 식으로 은둔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미스터 리, 환영합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이남경은 단순한 태권도 사범이 아니었다. 그 자신은 본질적으로 사범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고 있지만, 적어도 그를 보는 주변의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당장 우간다에 입국하고 며칠 뒤, 오래도록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를 만나게 된 것만 해도 그렇다.
“이 나라가 태권공의 1차 보급 국가로 선정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는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 정치인의 진심, 독재자의 솔직함이란 게 얼마만큼의 미덕인지 이남경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말이 영 빈말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사전 교육의 힘이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주시오.”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저 그럴 수도 있는 겸양의 말에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왜 아니겠나? 그러려고 여기 온 것인데.
국가무공원은 능력이 되는 이들, 내력의 수발과 무공의 전수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인력들을 대상으로 해외 파견 의사를 타진했지만, 제안을 받은 이 대부분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연화존자가 고작 칠 주야 만에 완성했다는 태권공. 이 신생 내공심법을 익히고 전수하는 일은 기약 없는 출장이었다.
그야말로 파견지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태권공이라는 무공을 익히는 건 둘째치고 이를 현지인들과 부대끼고 살며 전수해야 할 예정이었으니, 누가 쉽게 결정 내릴 수 있었겠는가?
설령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도 주된 파견 예정지가 상대적으로 낙후한 국가이다 보니 가족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무공을 익혔고 또 국가무공원에서 신경을 쓴다고 하지만 세상일이란 모르는 일.
하지만 이남경처럼 가족도, 신념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에게는 정말로 딱 맞는 일이었다.
그 기계적이기까지 한 일과란.
“싸부! 싸부!”
“다음부터는 그냥 티처라고 해라.”
된소리 강한 한국어로 자신을 불러 대는 꼬마 아이에게 태권공을 가르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너무도 쉬워서 그로서는 보기 드문 감정의 동요가 일 정도였다. 아이들의 순수함 같은 것에 대한 게 아닌, 연화존자의 천재성에 대해서.
이것이 정말 일주일 만에 만든 내공심법의 완성도란 말인가?
“태권공의 요체는 결국 음과 양의 조화다.”
“음과 양이 뭐예요?”
“따뜻함과 차가움.”
여기까지 설명한 이남경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아이들 앞에서 막간을 이용한 시범을 보인다.
두 개의 컵에 물을 따라 놓고 내공을 운용, 오른손의 컵은 얼어붙고 왼손의 컵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광경을 보여 준 것이 그것.
“우와!”
“선생님! 그건 어떻게 해요?”
“내 말 듣고 열심히 수련하면 된다. 자, 그럼 이제 일어나서 발차기 연습부터 하자.”
물론 이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기예를 선보이려면 최소 십수 년이 걸리리라.
이남경, 본인의 판단이 아니라 연화존자의 말이었으니, 분명한 사실일 테지.
‘꾸준한 수련으로 느리지만 정직하게 늘어날 것… 이라.’
그는 태권공을 진기도인으로 알려 주고, 길고 긴 무공 공부를 아낌없이 풀었던 연화존자를 떠올린다.
해리성 장애를 겪고 있는 이남경에게도 그 기억들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고통스러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싶어 하는 정신조차 확실하게 인지할 수밖에 없게, 연화존자는 특출난 존재감으로 주변을 장악했다.
이 놀라운 무공을 만들어 내고 전수해 낸 것만 봐도 그렇다. 그전에도 물론 그러했지만, 국가무공원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바꾸겠다 선포한 뒤 만났을 때도 진기도인을 받으며 보았었지만 최근 모습은 더더욱 그러했다.
그건 국가무공원으로부터 인정받은 이남경 본인의 재능으로 화후가 깊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연화존자의 무공이 전보다 더 무르익은 것일까?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타당! 타다다당!
하릴 없는 생각들을 하던 어느 날, 수업과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이남경은 습격받았다.
“미스터 리, 숙여요!”
우간다로 입국하고도 몇 달이 지난 후의 일이다.
누구일까? 목적이 이남경의 안위와 거기에 따라오는 내공심법이란 사실은 확실해 보이는데.
“남자는 죽이지 마! 동양인 놈은 죽이지 말라고!”
“다른 놈들은 다 죽여! 차는 불태우고 동양인 놈만 끌고 간다!”
국가무공원은 이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었다.
완전한 내공심법은 굉장한 가치가 있는 기술이었고 특히나 연화존자의 손길이 닿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무려 천하의 미군이 인정한 기술 아닌가? 그런 연화존자의 최신 내공심법, 그것도 음과 양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심법의 존재는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 만한 일, 욕심을 낼 만한 일이 분명했다.
이남경은 그래서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했다.
“니카챠, 괜찮아?”
유리 파편이 튄 걸까? 아니면 총알이 스친 걸까? 설마 피격당한 걸까?
최초의 충격으로 기절한 운전수와 앞자리의 인원, 대한민국 외교부 소속 직원들을 숙이게 한 뒤 돌아보니 나카챠가 팔뚝을 붙잡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순간, 이남경은 기이한 경험을 한다.
멀어졌던 정신이 어느 한 지점으로 고정되는 듯한 움직임,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아래로 떨어지고 현실에 발을 딛는, 전에는 느껴 본 적 없는 감각.
생각하고 알아챈다, 자신이 이 여자와 제법 정이 많이 들었다는 것을.
어쩌면 그보다 더 나아갈 수 있고, 그보다 어쩌면 세상에 또 소중한 무언가가 생겨나고 있다는 걸 이남경은 놀라운 경험으로 자각한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지만 운명은 자신을 이곳으로 인도한 게 아닐지?
“잘 숨기고 있어.”
그 말에 놀란 니카챠의 눈이 커지지만 만류의 말을 들을 틈도 없이 이남경은 차의 문짝을 그대로 떼고, 풍차처럼 돌리며 돌진한다.
연화존자에게 사사받은 무공, 이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지만 국가무공원이 무리를 해서라도 감싸려고 했던 무공에 대한 재능은 정확하게 알려 준다.
습격자들의 위치, 그들의 호흡과 땀, 뛰는 심장과 그럼에도 숨기지 못하는 욕망을.
그런 그들의 총격을 비호처럼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피해 낸다.
“마, 막아!”
“뭐야, 저 괴물 같은! 으아아악!”
경찰로서의 경험뿐 아니라 국가무공원에서의 집체 교육에서 배운 것이었다.
국가무공원은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파견자들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전술훈련을 진행했고, 그 경험은 오늘 효용성을 증명했다.
다만 그러한 국가무공원도 몰랐던 사실은 여기, 잃어버렸던 인생의 많은 것을 되찾은 남자가 있다는 사실.
이남경은 자신이 실로 오랜만에 웃고 있다는 사실을 총격이 멎은 뒤 뛰쳐나와 안긴 니카챠를 안을 때까지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