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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55화 (155/175)

155화

최근 중국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파견된 대한민국의 특사, 윤아영은 그녀가 해 오던 일과 완전히 다른 일을 하며 힘들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다.

애초에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다. 애초에 그녀에게 또는 그녀의 조국이자 윤아영을 보낸 대한민국이 이 일에 어떤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은 나올 수밖에 없는 일.

알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대부분의 여론 역시도 상하이 사태로 촉발된 모든 상황 상황마다 연화존자가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최소한 짐작은 하고 있지만 그걸 실제로 공표하는 것과 쉬쉬하며 묻고 가는 건 분위기 자체가 상당히 다르다.

누가 있어 말을 꺼낼 수 있을 것이란 말인가? 연화존자는 물론이요, 국가무공원과 대한민국 정부는 단 한 번도 인정한 적 없는데.

관련된 그 어떤 누구도 이 모든 것의 뒤에 연화존자가 있음을 명시적으로,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다만 그의 지울 수 없는 그림자만 어른거린다.

어느새 사라져 버린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에서 도망왔다는 여러 사람과 그들의 길잡이를 자처했던 소년이 티베트 자치구의 고위 공무원이 되어 나타난 사실이 있었다.

그에 더해 연화존자와의 연관성이 여러 언론 매체 등을 통해 제시되었던 제갈패밀리가 이탈리아에서의 기반을 모두 정리했다는 사실이 있었다.

여기에는 여러 마피아 대부의 실종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패밀리가 그룹이 되었고, 중동의 여러 왕가가 그간의 침묵을 깨고 위구르 사태에 적극적은 목소리와 사태 해결의 지분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사실.

그리고 누구도, 역시 누구 하나 연화존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있다.

윤아영과 그녀의 보좌격으로 붙은 대한민국의 특사 팀은 이를 이용했으니,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이런 식으로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우리도 어떤 수단적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원한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이 혼란이 주변국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

여기에서 누구도 대한민국이 군대를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무역 보복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걸 하기에는 체급의 차이라는 게 있었다. 북한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건 어떤가? 군사력을 투사할 수도, 무역에 있어서의 불이익을 줄 수도 없는 대한민국이었지만, 그럼에도 대다수의 협상 대상자는 윤아영의 이와 같은 말을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각자의 이익을 생각했고, 그럼에도 잘 따르려 하지 않았다.

‘욕심 많은 돼지 새끼들’

속으로나마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윤아영은 자신이 열강들이 각축을 벌이던 시대로 돌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건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부유하고 강력했던 어떤 것의 잔해를 뒤적이며 쓸 만한 걸 건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라는 것.

심지어 같은 중국 공산당에 속해 있던 자들마저도 말이다. 완전히 몰락했다가 중국 정계의 새로운 미래로 다시금 부상한 상하이방은 중앙 정치인들의 유산이 전부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했다.

지겨운 소리였다.

“…그렇게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앞에 있는 상대보다는 훨씬 상대할 만하다는 게 윤아영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건 결국 중국 본토와 전쟁을 하겠다는 소리밖에 더 됩니까?”

막무가내, 소통의 부재. 가장 과격하고도 원론적인 대답의 반복.

무엇보다 연화존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태도에 더해진 도발 성격이 짙은 협상의 자세까지.

“못 할 것도 없지.”

대만의 정파 무림맹은 연일 잡음을 내고 있다.

다른 모든 자들이 비슷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이 가장 과격하고 저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오만한 중동의 왕가들조차 일정 부분 연화존자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음에도 정파 무림맹은 그러지 않는다.

“우리가 연화존자를 두려워할 것 같나?”

최근 국가무공원은 이러한 정파 무림맹의 태도가 많은 것을 암시한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내부적으로는 대만이, 최소한 정파 무림맹이 자신들을 적대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건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이뤄졌던 바 있던 윤아영에 대한 테러.

국제적으로 활동하던 히트맨이던 용의자는 윤아영의 연화신공에 막혀 암살에 실패하자 곧바로 자살했고, 프로답게 그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았지만 무릇 인간은 흔적을 남기는 법.

칠익회와 당가그룹, 제갈패밀리 등의 조력자에게까지 걸쳐져 있는 국가무공원의 정보망이 집요한 추적을 거듭한 결과 대만 정파 연합과의 아주 작은 연결 고리를 찾아냈다.

한국으로 입국한 히트맨과 그의 팀이 일을 벌이기 대략 육개월 전쯤, 싱가포르에서 무림맹 인원과 만났다는 것이 그것.

영상이나 사진이 남은 게 아닌 일부 목격자의 스치는 듯한 기억과 진술뿐인 정황 증거였다.

정식으로 제시해 봤자 부정할 것이 뻔했지만, 그럼에도 국가무공원에 큰 확신을 주는 사실이었다.

다른 건 아니다. 다 떠나서 이들의 태도가 그러함을 시사한다.

“우리는 본토로 돌아가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소.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그 사명에 어느 때보다 가까워져 있지. 무슨 말인지는 잘 알고 있으리라 믿소.”

대만 정부 혹은 정파 연합은 대한민국을 적대하고 있다. 그건 윤아영으로 대표되는, ‘동북아 평화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이 협의체에서 대만의 요구 사항을 연일 반려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남중국해 연안의 도시들을 대만으로 넘기라는 요구에 현 상황의 공신 중 하나인 상하이마저 포함이 되어 있다는 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걸 떠나 일종의 분란거리를 일부러 던져 준 느낌이었으니까.

“그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안 될 건 또 뭐요?”

그에 더해 그간 움직이지 않던 대만 정파 연합의 최고수가 움직이기도 했고 말이다.

“중원의 하늘과 땅은 본래 모두 우리의 것이었소.”

광오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도제를 보며 윤아영은 그 와중에도 어울리기는 한다고 생각한다.

연화신공의 성취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팔자에도 없는 거국적인 일들을 처리하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일까?

모를 일이지만 중요한 건 도제를 상대하고 있는 건 자신이며, 그의 막무가내적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

“그 발언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과거의 일이라는 말을 하고 싶군요.”

순간 도제의 살기가 따끔하게 윤아영을 압박한다.

그건 마치 수천 개의 바늘로 전신을 찌르는 듯하다. 전설적인 경지, 의기상인의 경지에 도제가 도달했다는 걸 알게 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

그래도 윤아영은 버텨 낸다. 흔들리지도, 당황하지도, 겁먹지도 않고 최소한 스스로를 보호하며 태연함을 가장한다.

이전, 연화존자 김철민에 의해 진기도인으로 연화신공을 전수받은 이래 지금껏 해 온 수련이 이렇게 빛을 발한 셈.

이에 도제의 눈에 이채가 감돌지만, 그런 건 상관하지 않으며 윤아영 전직 검사는 깨닫는다.

그녀 앞에 있는 자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얼마나 전율적인 존재인지.

하지만 윤아영은 이보다 더 사기적인 존재를 알고 있기도 하다.

‘그래 봐야 김철민 씨 아래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리 따지고, 저리 따져도 김철민이 눈앞의 초고수, 도제보다 윗줄의 고수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국민당이 패배한 채 대만으로 넘어간 게 벌써 몇 년 전 일입니까?”

강맹하게 생긴 저 노인, 굵은 팔뚝과 윤아영을 만나면서까지도 놓지 않은 한 자루의 거대한 도만큼이나 날카로운 기세와 거대한 덩치의 저 노인이 단순무식해 보이는 외양과 다르게 철저하다는 걸 주변국의 관계자들은 파악한 지 오래.

그만큼 도제가 현 상황에서 대만 정파 연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건 주지할 사실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정파 연합 내에 존재하던 남궁가의 영향력이 완전히 지워진 사실.

본래 연화존자와 만난 바 있고, 차기 가주로 키우고 있던 손자를 그의 제자로 들인 바 있는 검황의 소식은 완전히 끊겼다.

연화존자의 제자조차도 말이다. 그간 주도적으로 나서 대한민국과 국가무공원과 협력하던 남궁세가는 영향력을 모조리 상실했다.

기존에 남궁세가와 국가무공원의 연락책 역할을 하던 이들은 자취를 감추고 방계의 소수만이 겨우 활동하는 게 전부.

그나마도 국가무공원과의 접촉은 일체 피하며 묵묵히 잡일 정도나 맡은 게 전부였으니, 눈치채지 못하기도 어렵다.

‘그만큼 우리의 부상이 거슬렸던 걸까?’

국가무공원 내부에서는 이것이 지난 활약의 반작용, 연화존자의 주도 아래 중국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키고, 굴복시킨 것이 이들 대만 정파 연합의 자존심을 건드린 게 아닌가 분석하는 중이다.

이른바 무림인의 자존심 같은 것들이 작용한 결과, 굴욕감과 열패감에 휩싸인 이들 강경파들이 득세하여 남궁세가의 손발을 잘라 버린 것이 아닌지.

“예전에 패배했다고 영원히 패배자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윤아영은 자못 자세를 바꾸려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는 도제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마찬가지로 증거는 없지만 정파 연합과의 일전은 피할 수 없는 게 아니겠냐고. 저들이 내부에서도 모자라 외부로도 그 의지와 감정을 표출하는데, 어떻게 되든 간에 결판을 내야 되는 건 기정사실이 아니겠냐고.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하다.

그녀에 대한 암살을 사주한 건 눈앞의 무림 고수일까?

“이제 기회는 왔고, 운명은 바뀌었네. 삿된 것이 바로잡아지고, 올바른 당사자들이 올바른 운명을 맞이하게 될 천우신조의 기회가 바로 지금이란 말이야!”

윤아영은 그것을 따지지 않았다.

저자가 입에 담는 것이 하늘과 신령이 돕는다는 본뜻이라면, 그렇다면 더더욱 이 기회를 만든 대한민국과 국가무공원에 협조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따지지도 않았다.

힘이 없이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건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죠.”

검황과 남궁세가는 대한민국과 국가무공원의 충실한 협조자였다. 그런 그들이 정파 연합에서 배제당했다. 이대로 넘어갈 것인가?

윤아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는 없었다. 조력자의 곤란함을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못 본 척 넘어가는 건 옳지 못하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되지 않던가? 그녀에 대한 암살을 제외하고라도 그런 불의한 짓거리를 윤아영은 알지 못한다.

그러니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답은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비무로 승부를 보시죠.”

연화존자가 제 한 몸 지키고 피로를 풀라며 연화신공을 전수했던 것이 단순히 무공뿐 아니라 사고방식 또한 바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윤아영은 스스로 한다.

그래, 많이 바뀌긴 했지. 그녀도, 그녀의 세상도 나라도, 온 지구가, 전부.

“무림의 힘으로 승리를 거뒀으니, 무림의 방식으로 승부를 보는 게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과 이런 말을 하며 윤아영은 웃으며 제안했다.

도제는 거부하지 않았고 이 결정이 본국에 알려질 즈음.

북한에서도 놀라운 한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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