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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59화 (159/175)

159화

연화존자의 동선이 숨겨지는 일은 없었다.

그가 누구와 함께 갔는지조차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은 숨기지 않았다.

일종의 신뢰이자, 협박이자, 공신성을 위함이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연화존자가 있었으며 또 있을 것이기에, 동북아 평화회담의 파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연화존자의 존재는 과시적으로 세인들의 뇌리에 새겨져야만 했다.

날이 갈수록 불만이 사그라들기는커녕 커져만 가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비무를 미루겠다는 건가?”

다시금 윤아영을 찾아온 대만 정파 연합의 지배자는 사나운 살기를 감추지 않는다.

“그쪽에서 제안한 일이 아니었던가, 이 비무는?”

지난번과는 아예 다른 수준의 농밀한 기세로 그녀를 압박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은 미심쩍고, 연화존자와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이 자신을 농락하고 있다는 의심을 그는 하고 있었으니.

“어째서 그가 마교의 종자들과 바이칼로 떠나 있는 거지? 이 엄중한 시점에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씹어 먹듯 말하는 도제의 기세는 가공하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실제로 방 안의 기물들이 견뎌 내지 못하고 우그러지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구겨지고, 부서지고, 갈라지고 있었으니, 과언은 아닐 테지.

전직 검사이자 현직 대한민국 특사를 상대로는 조금 무례하다.

“적당히 하시길 바랍니다.”

만약 이 자리에 윤아영, 그녀가 홀로 있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터였다. 아무리 연화신공을 습득했다고 하지만 지난 적공의 세월도, 무공을 궁구한 시간도 감히 비교가 불가능할 터이니.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란 건 아실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엔 그녀 혼자 있는 게 아니다.

“죽고 싶나?”

도제는 감히 자신에게 건방진 말을 뇌까리는 세 사람을 노려보지만 그렇다고 기세를 올리거나, 내력을 더하지는 않았다.

국가무공원의 가장 위험한 암살자들에게 보이기에는 그에게도 부담이란 게 있다.

“해 보든가.”

“누가, 그런 걸 무서,워 할 줄 아나?”

당장 도제의 이름값에 겁먹지 않는 진호와 준호 형제가 있었고.

“여기서 한판 뜨면 볼만하긴 하겠군요.”

도발적인 뒤의 두 사람과 달리 차갑기 그지없는 흑응이라는 불리는 사내가 있었다.

도제는 이 사실이 참기 어렵다.

대만 정파 연합을 한 손에 쥔 자신이 대체 왜 국가무공원, 대한민국 따위에 이런 식으로 말려야 하는지 짜증이 솟구치는 것.

‘이 건방진 것들을 내 당장…….’

저것들과 붙어먹던 검황과 남궁세가를 처리하는 건 쉬웠다. 죽여 없애지는 못해도 손발을 자르는 일 정도는 자신의 권위와 남궁세가의 불만, 연화존자와 국가무공원에 저자세로 나가는 가주에 대한 불만을 자극하니 아주 쉬웠다.

권성의 경우는 약간 작업이 필요했지만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이는 정파 연합 내부의 불만을 이끌어 내면 될 일이었으니.

그때, 연화존자가 직접 찾아왔을 때. 연화존자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했던 권성을 도제는 성토했다. 그것이야말로 이적 행위이고, 그것이야말로 정파 연합의 명예를 더럽힌 거라고.

크게 싸울지언정 맞서야 했다며 그는 목소리를 높였고, 이에 호응하는 이들은 많았다.

정파 연합이 국가무공원에 비해 대체 뭐가 부족한가? 중원 무림의 정기를 이었으며, 무림의 고수들이 즐비한. 비인부전의 신공절학이 여전히 존재해 내려오는 그들이 왜 저 듣도 보도 못한 연화존자라는 자에게 양보를 해야 했던가? 왜 사죄해야 했단 말인가?

이러한 내부 의견은 거센 불꽃처럼 타올라 결국 권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정파 연합의 일에서 완전히 손을 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주도권이란 면에선 그렇다. 이제 대만 정파 연합을 이끄는 건 온전히 도제, 한 사람이었고 그러한 절대 권력을 손에 쥔 그는 눈앞의 건방진 것들을 말 그대로 쓸어버리고 싶었다.

“오, 늙은이가, 눈빛 보니, 화가 많,이 났네?”

“꼬우면 덤비든가?”

그리하여 결국 폭발하고야 만다.

“네 이놈!”

그의 허리춤에서 빛살처럼 한 줄기 도강이 쏘아진다.

그것은 공간을 가르는 절대적인 선이 되려 했다. 너무도 빨라 범인의 눈으로도, 현재 인류가 만들어 낸 어떤 기계 장비로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는 파괴적인 광선은 자신 앞의 모든 것을 공평하게 잘라 버리려는 의지로 충만하다.

인간의 육신과 의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선은 하지만 다음 순간, 끝까지 관철될 수 없었다.

“하하하하!”

“멍청한 영감쟁이!”

준호와 진호 형제는 자신들의 도발에 넘어온 도제에게 기껍다는 듯이 웃었고, 비웃었다. 그러곤 양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남들이 보기엔 자살 행위라고 느꼈을 테지만 준호와 진호를 아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만용이 아닌 용기임을 안다.

피처럼 붉은 수강이 도제의 강기에 맞서 짐승처럼 포효한다.

거기엔 도제의 상대들이 느껴야 했던 두려움이란 감정이 없다. 오직 비웃음, 압박하는 도제의 내력에 반발하며 누를수록 튀어오르는 흉포함만이 존재하여 방 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 전부.

그리하여 하나의 선과 두 개의 점이 만나는 그 순간, 준호와 진호 형제의 내력이 도제의 강기를 잡아먹으려 든다.

“감히……!”

패월삼락공의 효능은 확실했다. 과연 연화존자가 자신의 직계제자나 다름없던 두 사람에게 연화신공 외의 다른 것을 허락했던 위용.

아프리카의 사람 잡아먹는 주술사들과 반군 군벌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던 칠익회의 막강함이 이 자리에서 재현되는 것이었으니, 다른 누가 있어 천외천에 이른 도제의 무공에 저리 저항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다고 하여 압도했다거나, 도제를 패퇴시켰다는 건 아니지만.

“오냐, 끝장을 보자!”

분노한 도제가 칼자루를 비튼다. 자신의 강기를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파고드는 패월삼락공의 내력을 그로써 떨쳐 냈고, 동시에 무수한 그림자를 그리며 준호, 진호 형제의 전신 요혈을 파고들던 그때.

묵묵히 윤아영을 등 뒤에 세운 채 보호하던 한 남자가 나선다.

-쾅!

결국 버티지 못한 창문과 문이 터져 나간다. 흑응의 구부린 두 손이 도제의 손에서 펼쳐진 도의 그림자와 충돌하며 나온 충격파는 그토록 가공할 위력.

“생사결을 원하면 어디 한번 끝까지 가 보든가.”

분분히 흩날리는 방의 파편들, 소란을 듣고 뛰어 들어오는 국가무공원 요원들과 정파 연합의 사람들, 바깥의 난리를 뒤로한 채 흑응은 싸늘한 눈으로 제안한다.

“연화존자께 갈 것도 없이 여기서 끝장을 봐줄 테니까, 골라. 난 사실 이쪽이 좋으니까.”

도제와 나머지의 대치를 목격한 국가무공원 측과 정파 연합 측 역시 내력을 끌어 올리고 상대를 견제하지만, 흑응과 도제, 준호와 진호 형제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오직 서로만을 노려본다.

“왜 말이 없나? 부하들 앞이라서 입이 안 떨어지나?”

그 상황 속에서 흑응의 도발은 신랄하다.

“그 입을 조심하라.”

“이봐, 도제. 솔직해지자고. 애초에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겨서 정파 연합 내부를 휘어잡은 너 아닌가?”

“네놈……!”

“화 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그런다고 네가 해 온 일이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그의 눈이 차가운 검은빛으로 번뜩인다. 칠익회의 맏형이나 다름없는 흑응의 뒤를 받치는 준호와 진호 형제의 눈은 그와 반대로 뜨거운 살의로 가득했으며 뒤에서 묵묵히 보호받는,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윤아영은 침착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공통된 감정이 하나 있다면 어떤 분노의 감정.

“우리는 정파 연합에 성실했다. 설마 이것까지 부정하진 않겠지?”

“…….”

흑응의 지적처럼 연화존자와 국가무공원은 대만 정파 연합과의 협력에 있어서 거짓과 협잡이 없었다.

그들의 내부적인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믿고 맡겼다.

도제 또한 그 사실을 감히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이들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상하이 사태에서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만은, 적어도 정파 연합은 한발 걸쳐 어떤 이득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파 연합의 지분이 없다는 건 아니었지만, 만약 연화존자의 관용과 제안이 아니었다면 그 또한 이룰 수 없었을 터.

“그런 우리를 이렇게 배신하나?”

이런 식의 대우는 국가무공원 입장에선 충분히 배은망덕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배신?”

하지만 도제에게도, 정파 연합에도 할 말은 있다.

“나 또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흑응. 제갈세가와 사천당가를 우리가 어떻게 여겨야 하나? 돌아오라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던 그들을!”

도제의 눈에서 불이 튄다.

“그들은 정파 연합의 영입을 거부했다. 그게 누구 때문인가? 무엇을 위함이었던가? 바로 너희들의 주인인 연화존자 때문이 아니었나?”

그들에게 있어 당가그룹과 제갈세가는 아픈 추억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흑응의 입장에선 어이없는 억지나 다름없다.

“그들의 무공과 힘과 생명을 보존한 게 연화존자시다. 그런데 그 은혜를 저버리라고 종용한 게 그리도 자랑스럽나?”

“우리는 중원 정파였다!”

도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수천 년 중원 무림의 역사에서 함께해 온 사이야! 너희의 주인에 대한 은혜야 와야 할 곳으로 돌아온 뒤에 갚아도 될 일! 그들은 우리를 배신한 것이야! 게다가!”

그는 연화존자에게 쌓인 악감정이 많다.

“정파의 후예를 자처하는 것도 용납할 수 있었다! 그래, 솔직히 인정할 수도 있다. 그의 실력과 힘이 우리보다 낫다는걸! 하지만 묻겠다. 마교와의 밀월은 무엇인가?”

순간 너무나도 많은 말과 생각이 스치며 흑응의 입이 막혔고, 그 찰나를 도제는 놓치지 않는다.

“지금 바이칼 호수로 떠난 자 중에 제갈세가와 사천당가뿐 아니라 마교도가 있다는 걸 내 진정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도제는 바로 이 점을 자극했다. 오래된 감정, 강호의 은원.

연화존자는 진정 마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가?

“본인이 직접 와서 떳떳이 밝혀 마땅함이 아닌가? 그 놀라운 무공이 실은 마교의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연화존자의 저 개세무적에 가까운 무공이 실은 마교의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지 않나? 천마를 죽였다는 그 은밀한 소문은 실은 내부 분쟁이 아니었던가?

사실 이 모든 것이 새 시대를 맞이하야 금선탈각의 계를 실행하는 마교의 것이 아닌지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도제는 이를 부추겼다. 일부는 스스로도 믿고 있기도 하고.

“연화자는 이 모든 의혹에 대해 설명해라. 만약 이것들이 사실이라면…….”

그들을 겨누던 도를 납도한 채 돌아서며 도제는 다시 한번 씹어먹듯 내뱉었다.

“내 정파 무림의 수장으로서 절대로 좌시하지 않으리라.”

수많은 눈과 귀를 데리고 도제는 그렇게 돌아갔다.

남은 자들, 흑응과 윤아영을 비롯한 국가무공원의 여러 사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의 일이 어떤 파장으로 돌아올지.

그래서 흑응은 자책했다. 아니라고 잡아뗄 걸 그랬나?

하나 최근 마교도들이 이상한 정신 상태를 보면 그 또한 미봉책에 불과했을 터.

결국 그는 수화기를 들어 연화존자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고, 천마의 시체를 찾아 떠나온 절대고수는 이에 대해 고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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