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죽일까?”
제대로 된 길도 없는 산을 달리는 지프차량 안, 한참을 달리다 말고 돌연 죽일 듯한 기세로 말을 내뱉은 최익현을 이제는 칠익회 남미팀장이 아닌 사내가 흘긋 돌아본다.
“도제 말이야. 죽일까?”
진심이냐고 묻거나, 할 수 있냐고 묻지는 않았다.
최익현이 진실로 도제를 죽이고 싶고, 또 죽일 수 있다는 걸 국가무공원 북미담당이 된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왜냐면, 그도 할 수 있거든.
또 그도 진심이거든.
“빌어먹을 늙은이가, 무공 좀 세다고 어딜 함부로 떠들어 대? 뒈지고 싶나, 진짜.”
아무리 도제가 천하제일을 논할 만한 고수라고 하지만, 두 사람 다 자신 있었다.
21세기 현대사회 아닌가? 문명의 이기는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며, 칠익회에서 축적한 사냥의 경험은 상대가 누구라도 자신감을 논할 수준이 된다.
그렇다고 이것이 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일단은 기다리라고 하셨다.”
칠익회 내부에서 도제의 암살에 대한 의견은 폭넓게 개진되고 있다. 제법 진지했다. 죽이고 싶다는 의지도, 죽이는 방법도,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모두 심각한 수준으로 논의 중이다.
감히 연화존자를 비난한 이 아닌가?
“우선은 두고 보자고 하셨다. 당장 없애기에는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라고.”
“젠장! 그러다가 연화존자께 정말 해라도 끼치면?”
단순히 비난한 게 문제가 아니라 연화존자의 구상, 대한민국의 국력을 상승시키는 동시에 동북아에서의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원대한 이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칠익회 출신 인사들은 불만이 컸다.
도제 한 명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대만 정파 연합과 대만 정부, 나아가 대한민국의 부상을 싫어할 게 뻔한 잠재적 반대 세력에 대한 영향력을 우려하는 중이라 함이 옳을 터.
도제의 손아귀에 놓인 대만 정파 연합이 연화존자와 국가무공원에 대한 적대감을 키움에 따라 대만의 여론 또한 거기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적어도 연화존자를 위시한 국가무공원 고위직의 생각은 아직은 두고 보자는 것.
“사람 하나 죽여서 끝낼 문제는 아니지 않겠나?”
도제 하나 죽여서 일을 끝낼 거였다면 애초에 실행했을 거라는 게 국가무공원의 생각이었다. 애초에 싹을 잘라 문제가 발생할 소지조차 없앴을 테지.
다만 그것은 과하고, 의롭지 못했기에. 부작용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두고 보며 관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음에도 아직은 흔들리지 않았을 정도.
“결국 비무로 해결을 보시겠다는 건가?”
“그래. 연화존자께서는 마교와의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오셔서 도제와의 비무에 임하겠다고 하셨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연화존자가 결정지은 일에 왈가왈부할 것이 없었기에.
말없이 차를 타고 간다. 아직도 미국에서 해결할 일이 많아 이국을 떠나지 못한 두 사람은 오늘도 어떤 문제에 봉착하여 이를 해결하러 간다.
역시나 좋은 일은 아니었다.
“왔나?”
“그래.”
“고생 많다.”
두 사람보다 먼저 깊은 산맥에 마련된 안가에 도착해 있던 다니엘 김은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했다.
평소와 다르게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그래서, 이 양반이 우리가 직접 봐야 하는 프로토 타입인가?”
최익현의 말에는 쓴웃음마저 나온다.
“프로토 타입…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네. 이런 인간은 처음이니.”
세 사람을 은밀히 만나게 한 건 인사불성으로 보이는 젊고 잘생긴 남자였다.
부드러운 참나무 색의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흐트러트린 채 남자는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침을 줄줄 흘리며 의미 없는 중얼거림을 연신 내뱉는, 언어화되지 못한 소음만 겨우 내며. 팔과 다리를 발작적으로 떠는 남자는 의자에 단단히 묶여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그런 젊은이의 뒤에 서서 걱정스레 보고 있는 중년의 여인과 남자가 있었다.
“만나서 반갑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의장님.”
그리고 최익현과 국가무공원 북미 담당 팀장은 예의 바른 영어로 인사에 화답했다.
그럴 만한 사내였다. 솔직히 여기에 어떻게 몰래 왔는지 알 수 없는, 미 하원 의장이 바로 눈앞의 중년인이었으니까.
취한 것처럼 정신을 잃은 젊은이의 아버지였으니까.
“나야말로… 잘 부탁하오.”
미 하원의장은 길게 말하지 않고 다만 짧은 격려만을 남겼다. 초인적인 인내였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건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애끓는 부성애였고 기어코 이 자리에 함께 온 하원의장의 부인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낸다.
그 간곡한 요청이 다니엘 김을 움직이게 했고, 증산방을 제외하면 현재 국가무공원에서 가용할 수 있는 최고의 고수들에게 산길을 달리게 했다.
복잡한 문제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식상할 정도로 예의 바른 말을 던진 세 사람이 서로를 돌아보곤 곧바로 움직인다.
미 하원의장의 둘째 아들이 마약중독에 심각하게 빠져 있다는 건 그리 숨겨진 일도 아니었다. 각종 문제를 일으킨 이 젊은 사내는 정치인치고도 모범적인 미국인 가족이었던 하원 의장의 가정의 가장 큰 불행이었으니.
그러니 하원 의장으로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을 발휘하여 국가무공원과 접촉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 지긋지긋한 약물 문제만 아니라면 그의 인생에 걸림돌이라곤 없는 거나 다름없었으니.
그러니 오늘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었다 하겠다.
이미 이 젊은 사내는 진기요상의 치료를 한 번 받은 바 있으니.
“시작하지.”
세 사람이 하원 의장의 아들을 붙잡는다. 다니엘 김의 손바닥이 젊은이의 등에 단단히 붙고, 나머지 두 사람이 각각 한 손을 다니엘 김의 등에 가져다 댄다.
오늘의 일에는 이 정도가 필요할 거라고 미리 예상한 바 있다. 청해마도와도 긴히 논한 일이 아니었나?
미 하원 의장 쪽에서는 청해마도가 직접 오기를 원했지만, 한 가지 확인해야 하는 면이 있다는 말에 수긍하며 물러섰다.
적어도 한 손보다는 세 손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과 함께.
-흡.
이윽고 다니엘 김과 북미팀장, 최익현의 숨이 하나로 일치된다.
다 같이 연화존자의 사사를 받은 사형제이자, 같은 배경 아래 함께 자란 실제로 형제 같은 이들이었기에 몰아의 순간은 금방 찾아왔다.
연화신공의 오묘함이기도 했다. 넘치거나 부족함 없이 오직 정도만을 걷는 이 고금제일일지도 모르는 내공심법은 같은 심법을 익힌 세 사람을 하나로 연결해 주었다.
그럼에도 쉽지 않았다.
다니엘 김은 등 뒤의 두 사람과 하나 된 느낌을 받으며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헤집었다.
지난번 치료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하원 의장의 아들은 아버지의 배경을 통해 증산방의 집중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신체에 약물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이후로도 마약이라면, 약물이라면 전혀 가까이 하지 아니했고 말이다. 부모의 사랑을 깨달은 이 젊은 남자는 자신이 일으킨 문제로 멈추었던 삶의 궤적을 서서히 되돌리고 있었고 그 작업은 순조로워 아무런 해로움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었다.
‘저것이군.’
그랬었다. 그 자신도 어떻게 중독됐는지 모르는 약의 부작용으로 덜덜 떨며 정신을 잃기 전까지는.
미국의 의료진들은 하원 의장이 아들이 보이는 증상이 전형적인 약물 중독 부작용이라고 판단했지만, 그 근원 물질이 무엇인지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니 어쩌겠나? 미국이라는 강대국 안의 권력, 그 중추에 있을지언정 가련한 자식을 둔 연약한 부모인 그들이 국가무공원을 찾은 건, 다니엘 김을 찾은 건 당연한 일.
그 결과 급하게 오늘의 자리를 마련한 다니엘 김은 삿되고 검은 기운이 젊은 사내의 몸속에 똬리 틀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아니길 바랐건만…….’
하지만 세상일이란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며 다니엘 김은 정신을 집중한다. 내력이라는 불가해의 힘이 만들어 낸 심상 공간에서 의지를 집중,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한다.
만악의 근원을 지워 버리고자 오색찬란한 빛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를 예민하게 알아챈 검은빛, 형태 없이 오직 바르지 못함으로 존재하던 그것은 형태를 갖추어 저항한다.
순식간에 자신을 재구성한 거대한 검은 뱀이 심상 세계에 출현한다. 포효하며 감히 여기에 발을 들이냐고, 자신은 물러설 수도 없어질 수도 없다며 의지라는 것을 다진다.
다니엘 김에게는, 그와 연결된 두 사람에게는 가소로운 일.
‘사라져라, 벌레 같은 것.’
다니엘 김은 두려워하지 않고 심상 세계를 가로지른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에게 무공을 가르친 이가 누구였던가? 연화존자 아니었던가?
그런 자신이 고작 저런 사념 따위에, 근원조차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건 제대로 되지도 못한 무언가에게 심상 세계에서라 한들 겁조차 먹을 수 없었다.
이런 건 다니엘 김과 그의 형제들이 겪어 온 수라장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고, 이는 곧 증명된다.
하늘과 땅을 덮을 듯 아가리를 벌린 뱀의 주둥이 사이로 용감하게 뛰어든 다니엘 김의 두 손에서 뻗은 살기 어린 무지개가 그것들을 갈기갈기 찢어 냈던 걸 보면.
이윽고 평정의 마음으로 눈을 뜬 다니엘 김 앞에 보이는 건, 가냘프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연신 죄송하다는 아들과 그를 붙잡고 우는 부부의 모습.
비슷한 시기에 눈을 뜬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말없이 문 밖으로 나온 다니엘 김이 하원 의장의 경호원들에게 뒤를 맡긴 채 피곤한 몸을 지프차에 뉘인다.
“아, 죽겠다.”
보안을 위해 국가무공원 측에서 다른 사람들은 데려오지 않았던 탓에 마찬가지로 피곤함에도 최익현이 운전대를 잡았다.
“뭘 봤어?”
하지만 이때 말한 보안이 단순히 미 하원 의장의 개인사 혹은 국가무공원의 진기요상과 마약중독 치료가 완전하지 않다는 걸 알리지 않기 위한 것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만한 고수 세 사람이 와야 했을 만큼 근본적인 문제를 이들은 예상했다.
“거대한 뱀. 삿된 무공. 사파.”
팔을 눈두덩이 위에 올린 채 다니엘 김은 말했고 남은 두 사람의 표정이 깊어진다.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긴 했지만 진짜 그런 것일 줄이야.
“…중국 놈들인가?”
이러한 의심이 칠익회 출신 고수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청해마도가 와도 되었지만 칠익회 출신으로 온 세상을 누비며 온갖 것들을 보고 들으며 경험한 셋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마약이 아니라, 무공을 통해 야로를 부린 게 틀림없다는 가정이었고 그 가정은 지금 옳다고 증명되었다.
“무공은 중국 공산당의 것이 맞는 것 같지만, 모르지.”
누구의 사주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꼭 걔네가 아니더라도 이런 일을 벌일 동기가 있는 자들은 제법 여럿이지 않나?”
다니엘 김의 이 말을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지프 안 또한 고요해진다.
상념만이 많다. 누가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누구를 공격하고, 누구를 잡아야 하는가?
그렇게 세 사람의 고민은 곧 국가무공원의 고민이 된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문제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