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한때 기승을 부렸으나 중국 내부의 사정으로 멈추었던 중국산 펜타닐의 역습은 근래 새로운 방식으로 부활했다.
너무도 쉽게 국제우편을 통해 배송이 되던, 그럼으로써 기존 마약 조직과도 극심한 분쟁을 겪는 동시에 간편하게 큰 위험을 불러오던 중국산 마약이 다시금 미국을 침범하기 시작한 것.
그냥 오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분노는 다시 할지언정 전보단 수월하게 막아 내고, 버텨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무공원의 진기요상 프로그램이 무고한 시민들을 골머리를 잡게 하던 마약중독 문제에 강력한 효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증산방과 국가무공원 파견 무인들의 진기요상을 받은 뒤 기존 치료소와 연계할 경우 90프로 이상의 단약이 가능했으니까.
이는 근래 가장 악명 높았던 마약, 매우 싸게 합성이 가능하며 또 그렇기에 이를 개발한 제약 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부작용과 중독 증상이 거의 없다는 거짓말과 함께 퍼져 나간 펜타닐에조차 적용되었다.
괜히 미국 사회 내에서 대한민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또 그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게 아니었다. 몇몇의 진정 특수한 사례와 정신적인 부작용을 제외하면 증산방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진기요상은 대부분의 마약류를 중독자들과 영원히 결별시켰다.
하지만 새로운 중국산 마약은 달랐다.
‘이번 약은 뭔가 다른 것이 들어갔다!’
종전과 마찬가지로 가벼운 패치 타입의, 알약 타입의 우편으로 날아오는 건 같은 방식이었지만, 이번 마약은 증산방의 진기요상에 강력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력을 퍼부어도 약 기운이 씻겨 나가지 않는 괴현상이 바로 그것.
이 초유의 사태에 증산방은 물론이요, 다니엘 김을 비롯한 칠익회 출신들이 모였고 그도 모자라 국가무공원의 고위직 일부도 급하게 미국으로 넘어와야 했다.
“…정리하지.”
토론은 온갖 추론을 격렬하게 태우는 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왜 아니겠나? 이와 같은 괴현상은 듣도 보도 못 한 기사인데.
한낱 신외지물 따위가 온몸의 혈관을 돌며 불순물을 태우는 진기요상에 저항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괴현상.
“본인은 이것의 제조에 또 다른 무림인이 개입했다고 본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유를 특정 지을 수 있었다.
“아마도 사파 쪽, 그러니까 중국 쪽의 입김이 들어가 있지 않나 의심한다.”
술렁거림은 작은 파문처럼 퍼져 나간다.
여러 모로 믿기 힘든 일 아닌가? 지금 중국에 누가 있어 이런 일을 벌일 여력이 있을까?
아니, 그런 건 다 차치하더라도 대체 무슨 수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선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이에 대한 의문은 당가 그룹 쪽 인사가 설명한다.
“성분 분석 결과 대부분은 평범한 펜타닐입니다만… 일부 성분이 기묘한 형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기묘한 형태라면?”
누군가의 질문에 당가그룹의 직계로 그룹 계열사의 주요 연구원 중 한 명인 그는 얼굴을 굳히며 답한다.
“이 사진을 보시죠.”
이어 화면에 띄운 사진 여러 장의 의학적 혹은 기술적 의미를 알아볼 만한 지식을 가진 이가 자리에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분명했다.
두 사진상의 유사성은 그만큼 확실하다.
“왼쪽은 이번에 입수한 새로운 형태의 펜타닐을 확대한 사진이고, 오른쪽은 본 그룹에서 제조 중인 영단 중 일부의 사진입니다.”
“…비슷하군.”
청해마도의 말이 아니라도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경악은 다음의 일.
“지금부터 할 말에 대해서는 모두 비밀을 엄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당가그룹의 연구원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그건 그룹의 가장 큰 영업 비밀 중 하나를 밝혀야 하기 때문.
“오른쪽 사진은 본 그룹의 최상위급 단약을 찍은 겁니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죠. 대저 내공이라는 힘, 적어도 그 비슷한 걸 단약에 담기 위해 굉장히 번거롭고도 까다롭게 재료를 선별하고, 키우고, 가공합니다. 그러고도 부족해 완성품의 유통기한도 굉장히 짧게 잡습니다. 그래야 효능이 극대화되니까요.”
여기까지 말한 당가그룹 연구 책임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쉰다.
“중국의 새로운 마약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걸로 추정됩니다.”
이해할 수 없음과 그 과정을 밝혀 내지 못한 자책,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학구적 열망을 담아 그는 털어 놓는다.
“우리는 이 마약 제조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까지는 밝혀 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룹의 가장 큰 예산이 쓰인 제조 시설에서 가장 우수한 기술자와 연구자들이 매달려도 한 해 생산분이 한 자릿수를 넘지 못하는 최고급 단약에 적용된 것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증산방의 소방주인 송철우가 손을 들고 물으니, 연구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단순히 구조가 같다고 해서 효능이 같다거나, 같은 제조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습니까? 뭐, 그래요. 저도 저 약에 중독된 이를 치료하는 걸 시도해 봤으니 저게 얼마나 까다로운 약인지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이야기의 군데군데에 비약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송철우의 질문은 좋은 지적이었다. 단순히 보이는 게 같다고, 진기요상에 저항하는 힘이 있다고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은 듣기에 합당했다.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짐작 역시도.
“…본 그룹의 배신자들이 여기에 개입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당가그룹의 연구원은, 당가그룹은 그러니까 이에 대한 가설이 하나 있는 것이다.
“그룹의 역사에 배신은 늘 있어 왔습니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마냥 남의 이야기만은 아닐 거라는 짐작이.
“물론 본 그룹의 복수는 지독합니다. 당씨를 타고 났다면 언젠가는 깨닫게 되죠. 우리의 이 핏줄 안에는 남들과 다른 게 있다고, 정말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의 독기라는 것이 이 안을 꽉 채우고 있어서 배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작게 받은 걸 크게 갚아 주는 거라는 걸 살다 보면 언젠가는 깨닫게 됩니다.”
이 말을 하는 연구원의 유순했던 인상이 더없이 싸늘하고, 살기 어린다.
그로써 자신의 말을 논증해 낸다. 당가의 독기라는 게 실존하는 거라는걸.
“독군께서 가문을 그룹으로 바꾸신 이래로도 우리의 이 마음가짐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배신자들을 추적하고, 응징했죠. 하지만 결국 배신한 이 또한 당가였던 터.”
깊은 한숨은 바로 그곳에서 흘러나온다.
“많지는 않지만 놓친 자가 몇 있습니다. 이십여 년 전, 그룹의 가장 핵심 연구 자료를 들고 대만 정파 연합으로 도망가려던 자를 우리는 놓쳤습니다. 거기에 더불어 또 얼마 전, 신임회장님의 취임에 앞서 일어났던 사태들과 더불어 처리해야 할 자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몇몇의 행방이 끝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인즉슨…….”
“이 일에 당가그룹의 일원이었던 자들이 연루되어 있을 거라는 게 본 그룹의 최종 결론입니다.”
곳곳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온다.
하긴, 어쩌면 모두의 흉중에 숨어 있던 마음가짐일 수도 있다. 내공에 저항할 수 있는 게 내공뿐이라는 건 21세기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 진리였으니. 이전에는 잘만 치료되던 마약 중독이 이번엔 잘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림의 기술이 접목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았을 테지.
그리고 무림의 정기가 훼손되어 사라진 지 오래인 작금의 시대에 당가그룹만 한 곳이 없다는 건 상식이나 마찬가지인바.
“이 일은 그러니 본 그룹이 맡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연구 책임자는 고로 이 일을 국가무공원이 아닌 당가그룹 주도로 처리해야 함을 역설한다.
“당가는 원한을 잊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청해마도는 여기에 대해 말한다.
“당가그룹의 배신자들이 전부는 아닐 터. 그렇지 않나?”
묵묵한 그의 한마디였지만, 태산처럼 무거웠고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는 자명하다.
“그 배신자들이 정파 연합으로 가고자 했다고 했던가?”
“맞습니다. 본가의 직계로 20세기에 태어난 당씨 중 독에 대해서만큼은 최고의 천재라 불리던 이였습니다.”
“어쩌다 놓쳤지?”
“추적 전에 미리 준비해 놓았던 대규모 최루탄을 터트렸다고 하더군요. 자신만의 비전을 섞은 산공독 등을 섞는 바람에 추적대가 주춤하는 사이 사라져서 세상에 나온 법이 없었습니다.”
“그럼 그는 목적을 이루었겠군.”
청해마도는 여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당가그룹의 영향력이 거의 온 세상에 뻗어 있는 마당에 생존 반응을 잡아 내지 못했다는 건 그 의미하는 바가 분명하다 하겠지. 당가그룹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비호를 받았거나, 아니면 죽었거나. 그러나 지금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이 빌어먹을 약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당가의 배신자는 살아 있는 모양이야.”
무언의 동의가 주변으로 퍼지는 건 이러한 설명 말고는 저 값싼 합성 마약, 그 넘치는 가성비 덕분에 제약 회사의 이익 추구의 수단이 되어 수많은 선량한 이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마약이 수십 년 고련한 내력조차 이겨 내는 천혜의 독약이 되었음을 말해 줄 수 없기 때문이리라.
엄청난 천재가 붙어 있지 않고서는 그런 게 가능할 리 없고, 그만한 천재이자 악당을 누군가 보호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거란 걸 이 자리의 모두가 알았다.
“정파 연합이 선을 넘었어.”
청해마도는 선언했다.
“우리는 그들을 신의로써 대했다고 들었다.”
“맞습니다. 우리는 중국 공산당이라는 대적을 맞이하여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힘을 빌렸고, 함께 싸웠습니다.”
누군가 답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잘못을 한 게 있던가?”
“그들이 우리를 대하듯 대했습니다. 공평했습니다.”
또 누군가 말했다.
“그런대도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더는 우리가 참을 이유가 없겠군.”
청해마도의 눈이 새파랗게 빛나기 시작한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격렬한 분노와 함께, 늘 조용하고 과묵했던 또 하나의 고수가 애병을 힘껏 움켜쥔다.
“나는 세상에 다시 나온 이래 형님의 뒤를 지키려 했지만, 아! 결국 세상이라는 파도치는 바다는 물러난다고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구나.”
청해마도는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신중하도록 한다.
“칠익회에 부탁하지. 조사를 맡아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칠익회의 인맥과 역량은 아직 살아 있기에 이러한 종류의 조사를 하기에는 아무 문제 없었다. 자격 역시 연화존자의 의동생인 청해마도의 부탁인데, 어찌 아니 들어줄 것인가?
“당가그룹에도 부탁하지.”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증좌를 찾아오겠습니다.”
바이칼 호수로 떠난 연화존자에게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는 그는 정파 연합과의 일을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윤아영 전직 검사가 도제에게 비무로 승부를 보자고 했었던가?
차라리 잘되었다. 도제의 칼이 얼마나 대단한지 견식할 기회가 왔으니. 또 그쪽 사람들과는 옛 인연이 남아 있기도 하고.
“나는 폐관에 들겠다.”
청해마도가 주변을 돌아보며 선포한다.
참아 주는 것도 더는 한계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길진 않을 것이다. 폐관을 끝내고, 정파 연합과 승부를 보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