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그렇게 전 세계 곳곳에 퍼진 대한민국 국가무공원 그리고 연화존자의 사람들이 정파 연합과의 일전을 준비한다.
속속들이 증거를 모았다. 최소한의 명분과 응징을 위해서라면 정확한 사실관계가 먼저였던 바.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모두 갖추어지게 된다.
당가그룹의 배신자들이 대만 정파 연합의 비호를 받으며 생존해 있음이 곧 밝혀진다.
집요한 추적 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음에도 참혹한 상상력은 발휘하지 못한, 아무리 근래 사이가 좋지 못했기로서니 당가의 배신자들을 정파 연합에서 보호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력은 갖추지 못했던 당가그룹은 목적지가 정해지자 거침없이 이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고, 발견한다.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그렇지만 지난날의 정리, 비록 가는 길은 갈라졌을지라도 수백 년 역사가 중국 공산당의 득세로 끝장났다는 같은 아픔을 지닌 사이로서 질문을 먼저 던진다.
‘왜 본 그룹의 배신자들을 보호하고 있나?’
도제와 정파 연합은 이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은 상하이 사태로 혼란한 중국 공산당 내부의 무림인들의 처우에 주목했다.
중국의 사파 무림 생태계는 상하이 사태로 인해 몰락 직전의 위기에 처했다.
그것은 이전부터 가해지던 국제사회의 압박, 사파 무공이 가져오는 부작용에 대한 압박을 더는 막을 힘이 이들에게 없기 때문이었다.
국제적인 여러 인권 단체가 그0간 하지 못했던 말들을 작정하고 쏟아 내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비인간적인 내공심법의 연성을 당장 중지하라!’
‘인간을 재료로 삼는 무공이 마교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중국은 유엔 인권 결의안을 준수하라!’
예전이었다면 넘쳐나는 돈과 인력으로 이를 틀어막다 못해 비밀스러운 공작까지 서슴지 않고 했을 중국 공산당은 이제 그럴 여력이 없다.
국내에서 벌이던 인권유린의 대가를 치를 때였다. 신장위구르 자치구가 해방되었고, 티베트 자치구의 인민해방군은 철수했다. 그간 경제 발전과 권력 유지를 목적으로 억눌렀던 국내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이를 계기로 폭발 중이며 이는 동북아 평화 협상의 동력이자 장애물로 존재하는바.
해외라고 다를 바 없었다. 이리되었든, 저리되었든 중국 공산당의 업보가 없을 수는 없었으니.
그런 중국 공산당이니 그간 키워 놓은 여러 종류의 공무원, 사파 무공을 익힌 이들을 보호할 수 있었겠는가?
어림도 없지.
‘중국 정부를 퇴직하거나, 아니면 퇴직하지도 않고 사라진 무공 공무원이 상당수인데, 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국가무공원의 조사와 요구는 공식적인 채널과 비공식적인 채널, 양쪽에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의 특사 윤아영은 중국 측에서 일을 꾸미고 있는 게 아닌지 이와 관련되어 공개적인 문제 제기를 했고, 대한민국 국가무공원 소속 요원들은 은밀하지만 과감하게 중국 정부의 곳곳을 쑤시고 다녔다.
이 소식이 황금방패가 사라진 중국의 인터넷을 달구며 폭동이 일어날 뻔하기도 했다.
혹자는 이렇게까지 얘기했다. 저 예전, 아편전쟁 이후의 청나라가 생각난다고. 그것은 최근 수십 년간 받아 본 적 없는 내정 간섭에 가까운 외교적 어려움과 함께 되살아난 옛 시절의 악몽이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중국 공산당의 업보라면 업보라고 할 수 있는 일.
국가무공원은 기어코 밝혀냈다. 각국 정부의 필요에 따라 이를 등에 업은 국제 인권 단체의 압박에 중국 정부가 사파 무공을 익힌 공무원의 존재를 부정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생긴 이들 무림 공무원들이 대거 정체불명의 세력에 포섭되어 이동했다는 것을.
그리고 제삼국을 거쳐 세워진 여러 회사가 가리키는 시작점은 대만 정파 연합의 영향권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이러한 의혹에 대해 정파 연합은 물론이고 대만 정부 또한 입을 여는 일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본국을 음해하는 자들의 거짓 선동에 불과하다!’
…라는 것이 공식적인 해명의 전부.
분위기는 험악해질 수밖에 없다.
대만 정부와 정파 연합은 대한민국을 음모론의 중심으로 지목했으니, 상하이 사태에서의 협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대립은 현실화된다.
동북아 평화 협상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어 고성과 몸싸움 직전의 험악한 양상 끝에 파행.
결국 공식적인 비무로 해결을 본다는 현대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방식마저 언론과 정치에서 나오게 되었고, 실제로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양국 간의 의지라기보다는 양국 무림인들 간의 감정 문제였다.
-우리는 문제없다. 오히려 바라고 있다. 누가 몰락한 정파 무림의 진정한 적자인지 보여 줄 기회라고 생각한다.
완고하기로 유명한 정파 연합의 무림인치고는 참으로 파격적이게도 도제는 언론 인터뷰를, 그것도 서구 언론을 포함한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았고 이렇게 말했다.
자신 있다고, 오히려 바라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자신들은 피해자이며,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무림의 전통에 따라 이 문제를 해결하길 희망하고 있다고.
잘못을 무림의 방식으로 바로잡겠다고.
대만 정파 연합의 도제로부터 바로잡아져야 할 대상으로 지목당한 대한민국 국가무공원의 상황은 그보다 복잡하여 내부적으로도 잡음이 많다.
먼저 의견이 모이지 않는 것이 가장 컸다.
당가그룹은 개인적인 원한을 풀겠다고 했다. 가문의, 그룹의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데 국가무공원의 허락까지 받아야 하냐는 질문에 답은 조금 궁하다.
이러한 주도권에 대한 민감함은 무림인에게 있어서 중요했기 때문이었고, 명분이 다소 약한 것도 사실이었다. 가문이자 기업이지만 본질적으로 문파의 배신자를 처단하겠다는데, 무엇으로 말리거나 유보시킬 것인가?
국가무공원 내부의 문제는 그보다 더 복잡하여 설립 이후 처음으로 내부의 잡음은 극적으로 표출된다.
논제는 다음과 같다.
-정파 연합과 비무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는가?
대한민국의 모든 무림인과 무공을 총괄하는 곳이었지만, 국가무공원 측 내부에서는 이걸 굳이 비무로 승부를 볼 필요가 있냐는 의문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다른 방법은 많았다. 그들을 적대하는 자들을 압박할 수 있는 옵션이 여럿인 상황에서 굳이?
이런 생각이 표출된 건 아마도 국가무공원 내부에서 비무의 대상자로 나선 것이 연화존자가 아니기 때문이 컸으리라.
청해마도가 도제를 상대하기로 결정되었다. 공식화 직전임에도 이 비무를 위해 먼 만리타향, 미국에서 폐관에 든, 이 나라가 보유한 최고의 고수 중 한 명인 청해마도가 정파 연합의 도전을 받아 주기로 했다.
많은 이들은 이를 우려했다.
‘왜 연화존자가 아닌가?’
청해마도와 증산방이 이에 발끈했다면, 무림인의 자존심을 발휘했다면 문제가 더 심각했을 수도 있지만 이 바다 사나이들은 그런 말에 무관심했다.
되레 이해하기도 했다, 연화존자의 막강함을 누가 모를 것이냐며.
‘연화존자는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이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여기에 불안해하고, 다른 국가에서 공식적인 질의를 해도 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마저 비공식적으로 국가무공원에 물었지만, 그들은 답하지 않아 격노마저 살 뻔했다.
그러나 어찌 답하겠는가?
연화존자가 그가 죽인 천마의 시신을 찾아 바이칼호 주변을 떠돌고 있다고.
“…느껴지는 게 없는데.”
“이동하시죠.”
그것도 마교의 무리와 함께 정체를 숨긴 채 은밀히 탐색을 지속하고 있다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어쨌든 연화존자는 그러고 있다.
이것도 몇 주 된 일이다.
“이렇게 해서 찾을 수 있는 게 맞나?”
그러니 연화존자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소동들, 근본적으로 재편될 동북아 질서의 분기점이 될 현재 상황의 예민함을. 이 모든 상황의 설계자이자 주도자로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그렇기에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이 탐색은 너무나도 급작스럽고, 또 예민한 문제였기 때문에.
“앞선 두 시험을 모두 통과하신 당신이라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에 답하는 무극검마의 태도는 담담하기만 했지만.
완전히 뒤바뀐 태도로 무극검마는 연화존자를 대하고 있었고, 이건 비단 한때 마교 최대의 적이었던 사내를 대하는 데에만 해당되는 변화가 아니었다.
무극검마와 그의 무극검문은 마교지파 묵혈성에 대한 모든 자료를 뒤졌고 결론 내렸다. 묵혈성의 비의를 완성하는 데는 결국 천마신공을 연성했다고 알려진 무인이 필요하다고.
살아 있든, 죽어 있든 간에 상관없이 진정한 천마는 바로 그로 인해 탄생할 수 있다고 했다. 적어도 묵혈성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전에는 단순한 마교의 반골, 어울리지 않게 은둔하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신비주의자 정도로 취급되었던 묵혈성에 평생을 마교에 몸을 담은 자신조차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걸 무극검마는 연화존자로 인해 알게 되었다.
귀령살이 운명처럼 발견한 묵혈성의 신물부터 시작해 두 번의 시험을 거친 뒤 지상에 남은 최후의 마교도들에게 그간의 증오와 경멸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마공 그 자체에서 기원한 존경을 얻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 이후였으니. 이 또한 심히 기이하다면 기이한 일.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천마의 시신을 찾을 가장 확실한 동기가 있기는 있었다.
“본교의 신물을 함께 수장했으니, 찾아야 하는 건 맞습니다.”
“천마신상?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지?”
“…그거 말고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연화존자의 칠색홍예수에 목이 잘린 천마의 시신을 마지막까지 보관하다가 결국 가라앉힌 무극검마였고, 이때 그는 마교의 신물인 천마상을 천마의 잘린 목과 함께 지구 최대의 담수호에 가라앉혔다고 했다.
애초에 북한에서 무극검마를 받아 준 이유가 이에 대한 욕심이었다.
천마신상, 이것이 바로 천마신교가 남긴 모든 은닉 재산을 찾을 수 있는 열쇠였기 때문.
“솔직히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서라도 찾고 싶기는 해.”
마교는 자신들이 모아 온 모든 재산을 유럽의 프라이빗 은행 여러 군데에 분산해 보관했지만, 그 자산들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는 오직 하나.
천마신공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오랜 전설이 깃든 낡은 천마신상을 지정했다.
무극검마가 그것을 바이칼호에 가라앉힌 것은 첫째, 홍혈천마가 자신의 유고에 대비해 공개적으로 남긴 유언이 있었고 둘째로는 천마신상에 얽힌 전설과 실질적 이득을 생각하면 북한이 아니라 그 어디에 숨어도 무극검문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렇지만 무극검마는 후회한다.
천마신상을 그렇게 던져 버렸으면 안 되었다. 최소한 숨겨 놓고 마교의 적대자들을 분열시키는 데 사용해야 했다. 하다못해 북한의 독재자들을 구슬리거나, 협박하거나, 조종하거나.
또는 평양의 다른 지파들을 굴복시키는 데 사용해야 했다. 홍혈천마의 황망한 죽음으로 혼란스러웠다지만 그건 너무… 마교도답지 못했다.
천마의 시신을 던져 버린 곳 인근을 뒤지며 수도 없이 했던 생각이었다. 그때의 그는 나약했다.
하지만 기대한다. 이제는 달라질 거라고. 가슴속의 내력이 전과 달리 낯선 요즘의 기분으로는 왠지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마교가 새로운 천마를 맞이할 것 같다는 근거 없지만 확실한 예감 속에서 그들은 수색을 계속했다.
연화존자는, 끝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