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마교, 스스로를 천마신교라 부르는 이들 무림인 집단은 기실 종교와 무공이 하나가 된 생활과 사고방식의 소유자들로, 어떤 이들은 이 독특한 집단에 대해 무림인의 정체성보다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더 방점을 두기도 한다.
물론 마교에 대한 많은 것이 그러하듯 추측의 영역임은 다분하다.
마교라는 집단은 언제나 이해받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자들이었으니까.
그만큼 문외한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삶의 태도였다. 같은 칼밥을 먹는, 무공을 익힌 자들이나 겨우 이해할 만한 외골수적인 면. 그러나 같은 무림의 인사들이 보기에도 어딘지 모르게 꼬여 있고 경도되어 있는 삶. 이해할 수 없는.
물론 예전, 마교도들이 득세하던 몇몇 시기에 비하자면 한 줌도 제대로 남지 않은 요즘 시기에 마교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엔 어렵지만 어쨌든 전해지는 말들이 그렇다.
보통 마교라 함은 군림천하, 천하재패와 같은 패도적인 길을 추구한다고 여겨지지만 정작 본인들의 설명은 그런 게 아니기까지 하니, 마교도들과 대화를 나누어 본 이들은 하나같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는 했다.
그만큼 마교도의 세계관은 뭇 사람들의 그것과 동떨어진 어떤 것이었다.
스스로의 뜻과 의지를 투영하여 절대적인 강자로 우뚝 서는 것. 그리하여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마(魔)로 군림하며 인간들을 징벌한다는 그런 개념이지 않던가?
간결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면 모호한 이 가치를 그럼에도 마교도들은 숭앙했다.
하지만 그러는 한편으로는 바깥의 상황, 외부의 조건에 관계없이 스스로의 굴기를 이루어 자신만의 소우주를 이뤄야 한다고 설명하니, 듣는 외부인인 연화존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흐릿한 것이 사실.
다만 무공은 이를 위한 수단이었다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소비에트에 합류했던 건가?”
지루한 탐색, 대체 왜 이들이 천마의 시신을 찾겠다며 이 난리인지 아직도 완전히 이해 못 했음에도 알 수 없는 예감, 마교의 시험을 통과한 뒤 생겨난 기묘한 예지적 느낌에 이곳까지 끌려온 연화존자는 그래서 질문을 던진다.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언론은 물론이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마교의 소비에트 합류가 그러한 가치관의 발로인지, 천마척살자는 물었다.
“…우리는 그들이 전 세계를 지배할 거라고 생각했다.”
무극검마는 거기에 순순히 답한다.
소비에트가 붕괴하고, 천마마저 죽었을 때. 그 이후로 유수의 언론들이 그와의 인터뷰를 원했고, 또 그 과정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길 원했지만 늘 침묵으로 일관 혹은 무시하여 회신조차 없던 그 입이 오늘만큼은 쉽사리 열린다.
아련한 회상과 무너진 꿈의 조각을 붙잡은 채로.
“강자존. 오직 진정한 강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그 이상은 본교의 모든 것이었다.”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마교의 전격적인 소비에트 합류의 비사가 흘러나온다.
“당시 세상의 혼란함은 본교가 숨어 있던 궁촌벽지까지 흘러 들어왔다. 우리를 패퇴시킨 중원이 유럽의 야만인들에게 굴욕을 당했고, 그들의 잔혹함이 나라 바깥뿐 아니라 자국민조차 괴롭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알음알음 전해져 왔지.”
그것은 많은 이들의 추측 속에서 분분했던 마교의 소비에트 합류에 대한 속사정이었다.
대체 강자존을 숭상하며 정마대전의 치욕 이래로 숨어들었던 마교도들이 어떤 과정과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 코민테른에 참여하고, 적백내전에 참석하게 되었는지는 많은 것이 불분명했다.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무극검마는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굉장히 어렸고, 그랬기에 순수하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예전의 그 이야기를.
“당시 본교는 수백 년에 걸쳐 정마대전의 피해를 복구하고, 또다시 중원 정벌에 나가 승리하리라는 일념을 지니고 있었지. 모두가, 전부 그랬어. 가장 늙은 교도부터 가장 어린 교도까지, 가장 귀한 이부터 가장 비천한 이까지 본교에 속한 이라면 오직 그러한 일념만으로 인고의 세월, 고통의 세월을 버텨 왔건만. 아, 그런 중원이 고작 서역의 오랑캐 따위에 무너졌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나?”
연화존자가 보기엔 그러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무극검마는 자신의 이야기에 심취한 것처럼 보였다.
마교의 시험을 통과하고, 그 유산을 수습하여 바뀐 자신에게 늘 말을 높이며 공손한 태도를 취하던 그가 평대로 말을 하는 건 대답을 한다기보다는 차라리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봐도 무방할 일.
“우리는 그렇기에 중원 정벌의 목표를 잃었다. 진정한 강자라면 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서양 오랑캐들이 그보다 더한 강한 자들, 천마의 의지에 닿은 자들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본교의 중원 진출은 다른 방식으로 좌절되었다.”
“그래서 유럽으로 진출하려고 했나?”
“그래. 이를 위해 전력을 키우는 한편 긴 세월을 두고 조사했고, 그 또한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왜?”
“무공으로는 그들을 압도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무극검마의 눈에 침잠한다.
“당시에도 본교의 교주이자, 교 역사상 아홉 번째로 천마의 칭호를 획득한 홍혈천마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께서 전력을 다한다면 강대국 두어 개 정도는 몰락시킬 수 있다. 살령지문의 보조를 받아 암살을 자행한다면 유럽의 모든 왕가는 아주 머나먼 혈통들에게 고귀한 자리를 물려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세력 대 세력이라면, 그렇다면 본교가 유럽의 열강들을 압도하는 건 망상에 불과하다고.”
너무도 넓어 바다처럼 보이는 호수를 돌아보며 연화존자는 상상해 본다. 오래전, 마교가 겪었을 상실감과 치욕감.
그리고 절망을.
“그리하여 본교는 흔들렸다.”
평생을 넘어 대를 이어 품어 온 가치관과 목표가 표류하기 시작했을 때, 정마대전의 패배를 설욕하겠노라며 모든 인간적인 것을 거세한 무공을 익힌 살인기계로 거듭나던 중이던 마교도들은 현실감을 잃었을 거라는 걸 짐작한다.
그 또한 목표를 잃었을 때 비슷한 상실을 경험했던 바였다.
결과적으론 당연히도 달랐지만.
“그때 본교의 유럽 지부의 인물이 레닌의 측근과 인연을 맺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지하 조직을 구축하여 유럽의 정보를 수집 중이던 마교의 하부 조직에서 현상 수배 중이던 공산주의자의 도피를 도왔다.
당연하지만 단순한 이득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탐색의 성격이 짙었다.
“본교는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어찌 되었던 산 자들은 살아야 했다. 중원재패도, 유럽에 대한 도모도 여의치 않다면 손을 잡거나, 포섭하거나, 이용할 자를 찾긴 찾아야 했다.
그만큼 마교의 상황은 위험했다. 더는 마교가 세상의 강자가 아니라는, 심지어 그럴 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교도들은 위태로울 정도로 흔들렸던 것이니, 괜히 그 혼란을 수습한 홍혈천마에게 마교도들이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당시 유럽에는 재밌는 자들이 좀 있었지.”
공산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은 가장 우선적인 주목을 받았고, 그외에도 여러 대안이 제시되었지만, 결국 마교가 손을 잡고 전략적 협력을 맺게 된 건 소비에트였다.
걸출한 시대의 거인이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이었다.
“레닌은… 정말이지, 대단한 사내였네.”
중원에서 쫓겨난 사악하지만 강력한 무림인들이 우글댄다는 소문을 들은 블라디미르 레닌은 전격적으로 마교와 접촉했다.
무려 홀몸으로 마교도의 근거지를 찾아왔고 거기에서 홍혈천마와 조우. 삼 일 밤낮을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밝힌 뒤 마교를 끌어들였다.
“그를 보고 예감했지. 만약 저 남자가 공산주의 사회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면, 그렇다면 누구도 공산주의의 이상향을 세우지 못할 거라고, 절대로.”
그 이후의 역사는 알려진 대로다.
“레닌의 설득 이후, 수많은 부침을 겪으며 본교 또한 많이 변했다. 대표적으로 환희락락궁이나 거력패부 같은 자들이 그렇지. 애초에 스탈린마저 죽고 평양이라는 작은 땅에 웅크린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짓거리였어.”
“내부 다툼이었나?”
“그래. 이미 세상의 반을 가졌는데 무슨 욕심을 더 내냐는 거였지. 마교도로서의 태도가 아니었어.”
홍혈천마가 멀쩡히 살아 있음에도 마교는 분열했다. 그건 냉전에 이어 중소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한 환희락락궁과 거력패부의 술책도 술책이었지만, 한편으론 더는 마교가 전과 같은 독보군림을 꿈꿀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강자존의 법칙이 무너졌다는 사실 역시도.
“이에 홍혈천마께서는 걱정하셨었네.”
마교도로서의 정체성을 서서히 잃어 가는 교도들을 보면서도 홍혈천마가 행동에 나서지 못한 건, 그 가공할 무공으로 무언가 획책하지 못한 건 정말로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미래가 어디로 갈 것인지.”
“그렇게 걱정만 하다가 간 거군, 내 손에.”
연화존자는 심드렁하게 받는다. 어느새 지고 있는 해, 오늘 하루의 성과 없던 수색을 마무리하는 마교도들과 국가무공원 요원들의 어색한 어울림을 보면서 그는 감흥 없이 감상을 말한다.
결국 그 모든 건 끝맺지 못한 이야기 아니냐고.
“…본교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네.”
무극검마는 그러한 함의에 침묵한 채 또 다른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말한다.
“무림이 끝장난 지 오래인데 마교에는 전설이 많이도 남았군.”
“그게 아니고선 버틸 수 없는 세월이니까.”
무극검문 전체가 여기까지 온 이유, 대만 정파 연합이 준동하며 음모를 꾸미고, 동북아에서의 평화 구상이 흔들리는 이 엄중한 시기에 굳이 연화존자를 끌고 여기까지 왔어야 했던 근거에 대해 무극검마는 비로소 입을 뗀다.
“천마라 불린 이들은 하나같이 비범한 구석이 있었소.”
“교주가 천마인 거 아닌가?”
“천마라 불리는 이는 하나같이 교주였지만, 교주가 꼭 천마는 아니었소. 교주의 지위에 오른 것과 천마의 칭호를 받는 건 약간 다르오.”
“그런가?”
어느새 본래 자리를 찾은 말투에도 연화존자는 신경 쓰지 않고 내용에 집중한다.
지는 석양이 너무도 오래 산 마교도의 얼굴에 짙은 음영을 드리우는 가운데의 일.
“천마신공의 대성을 이루어야만 천마라 불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성을 이룬 천마신공으로 인해 천마라 불리는 이들의 몸에는 내단이 깃들더군요.”
“전설은 전설이군.”
“전설이 아닙니다.”
그림자 진 얼굴을 돌려 무극검마는 말한다.
“그것은 진실입니다.”
“…확인했군.”
침묵으로 긍정하는 무극검마를 보며 연화존자는 그가 천마의 상징과 천마의 육신을 자신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 던져 버린 이유를 이해한다.
천고의 보물을 두 개나 지니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생각이지만, 필시 느꼈겠지.
스스로의 안에서 꿈틀대던 욕망을.
“천마신공을 손에 넣으십시오.”
수색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그 시신이 남아 있다는 믿기 힘든 사실을 긍정한다면 그것이 있을 위치를 어느 정도 특정한 시점.
“그리고 새로운 천마가 되어 진정한 강자존의 세계를 이루십시오.”
마교도는 연화존자에게 천마가 되라 다시금 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