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천마의 시신을 찾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다.
아무리 요즘 시대의 최고라 불러도 무방할 고수들이 즐비한 탐색대라고 하지만, 이 크고 넓은 호수를 맨몸으로 뒤지는 건 효율의 문제를 떠나 성공 여부와 관련된 문제.
처리해야 할 문제가 여럿 있었다.
당국의 허가는 물론이고 장비를 들여오는 것들, 하다못해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사람들이 오고 가고. 이들이 먹을 것과 수색을 위한 모터보트나 미니 잠수함 등을 들여오는 일에는 세간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바.
대만 정파 연합의 의혹 제기는 점점 사실로 굳어 갔다.
아무리 막는다고 막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지구촌 어디, 벽촌 오지라고 핸드폰 하나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소문은 무성하고, 의심은 짙어진다.
이는 대한민국과 북한에 그리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여론은 그나마 동요는 있을 지언정, 정쟁의 대상이 되어 비난과 정치적 공세의 대상은 됐을지언정 심각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굳건했으며, 그간 국가무공원이 쌓아 온 지난 행보라는 것이 이 정도로 와르르 무너질 만치 얕지 않은 덕에 그랬다.
북한의 경우에는 문제가 약간 심각했다. 애초에 이 작은 공산주의발 독재국가에 신뢰가 없는, 신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여러 나라가 있었기에 이런저런 의심을 많이 사고 있었다.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평화 협상에 난항을 겪게 된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연화존자가 마교와 짜고 음모를 꾸미는 게 아니냐는 의심은 음모론자뿐 아니라 대중의 구미까지 당기는 맛 좋은 재료였으니.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천마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은 연화존자를 비롯한 발굴단 여럿은 이 이야기들을 싸그리 잊는다.
다 잊어버리고 눈앞의 일에 집중한다. 몇 달에 걸친 수색, 초음파 장비를 비롯한 각종 첨단 장비와 중장비를 동원해 맹렬하게 쫓아온 천마의 시신, 무극검마의 오래된 기억에 의존해 학자들의 도움까지 받아 바이칼 호수 내의 유속과 유류를 분석한 최근까지, 이들은 단 하나만 생각해 왔다.
그러니 그 오랜 무공 공부에도 가슴이 뛰어 서둘렀음이 어찌 흠이 될 것인가?
“…맞군.”
천마의 시신을 발견하고, 이를 건져 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오면서 연화존자는 이것이 잘못된 정보가 아님을 알았다.
온몸에 저릿저릿하게 느껴지는 마기가 가까이 가면 갈수록 커졌다.
죽은 지 수십 년이 된 마두의 시신에는 그런 것이 남아 있었다. 정파의 무공을 익혔다면 생리적인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기운, 마공의 힘이.
그러자 덜컥 연화존자는 의심이 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마교의 기이함이라면 지겹도록 맛보았다. 애초에 왜 그가 천마를 죽였던가?
그건 분단된 조국의 상황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강대국 중에서도 마교의 지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그럴 수 있던 배경에는 그들의 기이한 사고방식과 강력한 힘이 있다고 당시의 연화존자는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천마가 되라는 저 말이 사실은 단어 그대로라는 상상은 비약일까?
‘이상한 일을 벌이는 이상한 자들.’
인류가 달을 밟은 지도 수십 년이 지난 시대에 검은 안개를 뿜어 대는 말라비틀어진 대나무 피리 같은 걸 모시는 자들이었다.
이상한 힘으로 한 사람의 이지를 제압해 괴물로 만들기도 했으니, 가끔은 생각한다. 전설이다 못해 허황되기까지 했던 옛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진실은 아니었을지.
무극검마와 함께 차에 탄 채 이동하며 이런 생각을 연화존자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거나 돌아가지는 않는다.
천하 제일의 고수에게는 절대적인 믿음과 확신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믿었다.
부모님의 유산을 믿었다. 격동의 20세기를 살아 내며 훌륭한 여러 가지를 물려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믿었다. 무공뿐 아니라 삶의 가치관,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러 주신 그 가르침을 김철민은 잊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무공과 수련을 믿기도 했다.
연화신공, 오행무극도과 칠색홍예수로 구성된 이 무공은 현시점뿐 아니라 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무공일 것이라고 그는 자부하고 있다.
그간 오랜 탐색, 찢겨지고 조각난 옛 무공들을 탐색하며 내린 결론이 그것이다. 세상 어떤 무공도 연화신공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자신감이 있다. 왜냐고? 결과가 실제로 그랬으니까.
천마조차 그의 손에 죽었다. 대만 정파 연합? 우물 안 개구리로 진정한 세상을 모르는 이들이다. 지금 저렇게 까불고, 제 실력을 믿고 온갖 소리를 늘어놓지만 연화존자는 질 자신조차 없다. 언제까지 허울뿐인 중원 정파의 의기를 들먹일 것인지.
제 손으로 죽은 천마를 만나러 가는 연화존자는 그렇기에 마음을 다잡으며 알 수 없는 예감, 마교도들이 자신을 보며 복종하는 것과 같은 기이한 예지를 받아들인다.
저 멀리 주변을 엄중히 지키는 가운데 전율하는 중인 마교도들과 국가무공원 인원들이 보인다.
대체로 마교도들은 천마의 주변에 모여 있었다. 정파 계열 무공을 익힌 자들은 아예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그나마도 개중 무공이 뛰어난 자들만 겨우 가능한 일.
기실 마교도들조차 천마의 시신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니라면 아니었다.
연화존자에게는 달랐지만.
“크흠…….”
연화존자의 뒤로 붙어 천마의 시신에게 다가가려던 무극검마조차 열 걸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죽은 천마는 가공할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걸 보며 연화존자는 궁금해진다.
“어떻게 건졌지?”
무극검마조차 버티기 힘든 이 정도 기세라면 가까이 가기는커녕 손을 대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텐데, 어떻게 저 깊은 곳에서 여기까지 시신을 가져왔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 그것이…….”
연화존자의 질문에 책임자가 가까이 다가오려 애를 쓰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창백해지는 안색에 연화존자가 거기서 답하라며 손짓하자 안도의 한숨과 답을 낸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분명 마기를 머금고 있기는 했지만 미약했고, 뭍으로 건질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아까부터 갑자기…….”
그러면서 연화존자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니, 재빠른 눈치로 그 답을 알 만하다.
“내가 여기로 이동하면서 마기가 진해지기라도 한 건가?”
비록 논리적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맞습니다.”
천마의 시신에서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서 연화존자는 가설들을 생각한다.
천마의 혼백이라도 남아 있는 걸까? 죽은 지 100년은 지나야 흩어진다는 그런 것이, 절세의 무인이었던 천마의 의념 같은 것이 저 깊디깊은 곳에 잠겨 있었음에도 여전히 있는 것일까?
아니면 천마신공을 대성한 홍혈천마의 내단이 무슨 조화를 부리는 걸까? 기이한 마교의 기예가 알 수 없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만, 생각은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국장님!”
“자, 잠시!”
연화존자는 대뜸 거리를 좁혀 다가간다. 네 걸음, 세 걸음 그리고 시신의 바로 앞.
주변의 놀라 만류하는 소리를 어깨 위로 흘리며 과감하게 다가간다. 시간 속에 많이 낡은 지퍼백, 시대를 풍미한 거인의 관으로는 참으로 초라한 바삭거리는 재질의 포대의 지퍼를 위에서부터 천천히, 하지만 망설임 없이 곧바로 내려 버린다.
그 안에 있는 건 아는 얼굴이었다.
그가 빼앗은 무수히 많은 목숨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의 얼굴이 그 안에 있었다. 목이 베인 채였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격전 끝에 잘린 머리카락과 수염 따위가 당시의 급박함을 알려 주듯 정돈되지 못한 채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하나 이상할 정도로 묘한 생동감. 피가 멎긴 했지만 분명히 목과 얼굴이 분리되어 있음에도 어딘지 모르게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연화존자는 물론이요, 멀리서 보고 있던 자들도 느낀다.
그러니 그 눈이 뜨였을 때, 그 입이 벌어졌을 때 얼마나 다들 놀랐겠는가?
“허억!”
괴담의 한 장면처럼 죽은 천마의 눈과 입이 열렸다. 그 안은 까만 자위로 채워져 있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존재감으로 천마는 눈을 떠서 그의 앞에 있는 연화존자를 바라봤고, 입을 벌려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그러한 의지는 확실했다. 오죽하면 무림의 고수로 온갖 험한 일을 겪은 주변 마교도와 국가무공원 요원 중에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자들마저 나왔을까?
“처, 천마…….”
저 무극검마조차 땀을 삐질 흘리며 탄식을 내뱉는다.
살아 생전에도 두려웠던 이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 버렸다는 걸 믿을 수 없던 이가 죽어서 부리는 공포스러움에 무극검마는 숙련된 고수로서의 태도조차 순간 저버리고 두려움을 느꼈을 정도.
“웃기고 있네.”
그 안에서 안온한 건 오직 연화존자뿐.
“죽어서도 난리군, 천마. 그렇지?”
연화존자는 겁도 없이 죽은 홍혈천마의 얼굴에 손을 뻗어 주변을 경악케 했다.
말도 나오지 않는지 놀라는 그들을 무시한 채 얼굴을 들여다보이기까지 한다.
연화존자라고 둔하지는 않다. 생생하게 느껴진다. 자신을 보는 어떤 의지, 저것이 진정 죽은 천마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저것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연화존자는 확실하게 인식한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죽었건, 아니건 간에 이건 좀… 추하군.”
소리 없는 포효가 주변을 휩쓴다.
연화존자와 조우하며 한층 강렬해진 마기는 이제 존재하는 실체로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어찌나 극렬한지 주변의 공기가 밀려나고, 땅이 갈라지고, 살아 있던 풀 같은 것들이 메마르다 못해 불씨로 날아가 버릴 정도.
근처에 모여 있던 인원들은 최소 세 발자국씩은 물러나야 했으니, 여기에는 무극검마 정도 되는 고수조차 예외가 없는바.
그럼에도 연화존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느새 그의 주변을 감싼 사나운 무지개가 마기의 포효에 은은히 맞서며 연화존자에게 둘러져 있던 덕.
그 안에서 연화존자는 매섭게 미소 지었다.
“살아서 잘하지 그랬나. 죽어서 난리 치지 말고. 뭐… 찾은 건 우리 쪽이니 달리 할 말은 없네만.”
마기의 분노는 거세지지만, 여유로운 천하 제일인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으며 목만 남은 천마를 응시한다.
죽은 자의 시선과 대화한다. 말은 없지만, 그건 할 수 없는 면보다 필요가 없는 면이 컸다.
‘아무래도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이거.’
그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비난과 분노의 의지를 느끼며 김철민은 생각했다.
죽은 천마의 몸속 내공이 연단이든, 그 비슷한 것이든. 뭐가 되었든 간에 되긴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게 미리 예상했던 것과는 어쩐지 조금 다른 형태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정말로 영혼이란 게 있어서 그 의지가 깃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폭포처럼 연화신공의 호신강기를 두드리는 마기들, 더 버티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이쪽만 바라보고 있는 자들을 느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확인해 봐야겠다.
“대화를 시작해 보지.”
그렇게 무지개가 걷히자 어두운 연기가 목만 남은 천마의 눈과 입, 코, 귀에서 분수처럼 솟구치기 시작해 연화존자를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