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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72화 (172/175)

172화

세기의 대결이 될 뻔했던 도제와 청해마도의 비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 한 세기의 혼란과 충격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비롯된 놀라움과 곤란함이란 단순히 비무가 어그러진 것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고 자세히 살펴보면 끝도 아니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처음 기대감을 안고 지켜보던 비무, 도제와 청해마도의 준비를 보며 목격한 비장함이 이어진 도주와 경악으로 물들었을 때, 방송 장비 등으로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어리둥절해 했었다.

도제가 붙어 보기도 전에 겁을 먹고, 혹은 부족함을 느끼고 패배를 자인한 거 아니냐고, 대체 무슨 일이냐고 서로 물으며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은 잠시 뒤 닥쳐든 어둠과 이어서 알려진 중국의 미사일 발사 소식에 많은 이들이 황당함과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

그건 어찌 보면 중국이라는 나라가 쌓아 온 이미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있다면 비상식적인 논리를 들이밀며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던 얼마 전까지의 연장선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하이 사태로 그러한 일면이 꺾였다고 생각했건만, 전 세계가 보고 있는데 이런 일을 태연하게 저지르다니.

이럴 수가 있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중국의 인민들이 느끼는 심정은 이보다 더 복잡했는데, 다름 아닌 장소에 대한 기억 때문.

그들이 목격한 일련의 사태는 ‘천안문 광장으로 인민해방군이 미사일을 쐈다’라는 한 문장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이는 지난날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한 환기나 다름없었으니까.

도제가 보여 준 모습 역시 갑론을박을 불렀는데, 이때 던져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정파의 의협이니 어쩌니 해 놓고 정작 목숨이 위험하니까 다 던져 두고 도망가던데?’

변명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미사일의 출현을 알아챈 도제가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간 정황이 영상 매체에 고스란히 담겼으니.

이에 세상은 도제를 비웃었고, 정파 연합을 비웃었다. 끝까지 남아 뭐라도 하려던, 정확히 어떤 걸 하려고 했는지는 당사자가 입을 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지만 뭐가 되었든지 간에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시간이라도 벌어 보려던 의지가 가득한 청해마도와 비교되어 더더욱 그랬다.

그랬기에 실망감은 대만과 정파 연합 내부에서 더욱 컸다.

청해마도와의 비무 직전까지만 해도 도제가 보여 준 무공과 과단성, 대한민국에 빼앗긴 정파의 종주로서의 위치를 다시금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며 따르는 자들이 많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단 한 번의 패주로 한순간에 거품처럼 사라졌다.

도제가 펼진 강경노선은 결국 성과 없이는 계속 갈 수 없는 무리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정파 연합이라고 왜 신중하고, 생각 있는 자가 없었겠는가? 권성을 배제시키고 정파 연합을 손에 쥔 거야 기껏해야 내부투쟁, 좋게 보자면 혼돈의 시대에 단호한 리더십을 보인 거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정작 정파 연합을 틀어쥔 뒤의 행보란 무리하기 짝이 없는 강행군의 연속.

아군을 등지고 적만 만드는 일이라고 내심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으니, 이는 결국 만약 모든 것이 도제의 뜻대로 되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여론의 반전.

‘이대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정파 연합은 다시 내홍을 겪을 뻔도 했지만, 누군가는 그런 걸 바랐을 테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권성은 신속하게 정파 연합의 주도권과 권력을 가져왔다. 얼마 전까지 수족들이 잘려 나가 숨만 쉬는 상태였다곤 믿어지지 않는 과단성이었지만, 굳이 따지고 들어 대세를 거스르는 어리석은 이는 정파 연합 내부에 존재하지 않았다.

의혹은 당연히 있었다. 권성은 마치 이런 일을 예견한 사람처럼 보였기에 모든 이들을 가장 놀라게 한 어떤 이의 그림자가 여기에조차 드리운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자들도 간혹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결론을 내릴 만치 똑똑한 자들, 연화존자와 권성 사이의 교감을 상상할 만큼 과감하고도 눈치 빠른 이들이 입을 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여론은 발생하지 않는다. 권성에 이어 모처에 감금되다시피 했던 검제가 복권된 뒤, 남궁세가가 주도하는 대만 정파 연합의 새로운 주류는 의혹과 불안을 일소시키며 지난날의 책임을 물었다.

그러니 누가 감히 연화존자를 함부로 입에 올릴 것인가?

“…작금의 사태에 대한 중간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제압당한 중국 정부를 대신하여 베이징에서 마이크를 쥔 이는 억류되었던 대한민국의 특파원이자, 비상 상황을 맞이하여 동북아 평화 협상의 대표로 조사에 착수한 윤아영 전직 검사.

“이는 중국 공산당의 간부 일부가 동북아 평화 협상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테러입니다.”

윤아영은 피곤한 얼굴이었다. 베이징에서 일어난 혼란을 억류되어 있던 그녀라고 피해 갈 수 없었다.

기어코 중국 공안의 최고 실권자인 자안혈조를 격살한 천지극뢰와 혈마제가 그녀를 비롯한 특사 일행을 구하기 위해 난입했던 것이니 내부에서도 이에 호응, 윤아영은 그녀 인생에 거의 처음으로 마음껏, 아니 있는 힘껏 무공을 펼쳤어야 했다.

갇혀 있어 어찌 될 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전신이 노곤노곤해지는 극한까지 무공을 펼친 결과, 마교의 구원대가 도착한 직후 윤아영 전직 검사는 쓰러져 하루를 꼬박 앓았다.

“이에 우리는 관련자들을 색출 및 처벌해야 함을 강력하게 중국 정부에 요청합니다. 또한!”

그리고 일어나 늘 그렇듯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맥없이 귀국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에 대한 전방위적 조사와 외교적 참사를 일으킨 대만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일까지 윤아영은 해냈고, 여기에는 늘 그렇듯 조력자들이 있었던 바.

돌아온 연화존자의 마교도들이 이 일을 거들었다.

최선을 다해.

“대만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역시 요구합니다. 중국 공산당 내부의 반발이 자칫 거대한 참사를 부를 뻔한 테러 시도로 귀결된 것은, 결국 대만 정부의 자국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

이전보다 한층 두꺼워진 경호의 인력들 사이에는 국가무공원과는 다른 기질의 사람들이 섞여 있다.

마교도들이었다. 이전엔 단순히 연화존자의 말에 듣는 정도였던 마교도들은 이제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이 될 거라 믿는 대한민국에 협조한다.

“평화 협상에 참여한 나라 전부가 이에 동의했습니다.”

연화존자는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자마자 뒤틀린 모든 것이 바로잡힌다. 이탈의 움직임을 보였던 다른 모든 나라가 다시 돌아온 연화존자의 출현에 복종하며 동의하였고 두려움을 감춘다.

그리고 그는 혼자 돌아오지 않았다.

마교도들은 전보다 더 큰 성심성의로 그를 섬긴다. 당장 중국 정부와 대만 정파 연합으로 인해 손이 부족했던 베이징 곳곳을 누비며 도피 행각을 벌이려던 공산당 간부들을 사로잡은 것도 연화존자와 함께 입성한 마교도들이 아니었던가?

이전부터 기이한 존중심을 보이던 마교도들의 마음이 이제는 충성심으로 바뀌었다는 걸 많은 이들이 알 수 있었으니, 변화를 보여 준 건 침묵으로 항의하던 북한의 다소 전향적인 자세.

북한은 남한에 정상 회의를 제안했다. 그것도 북한 최고 존엄이 서울로 가는 방향으로.

이것이 윤아영이 대만 정파 연합의 억류로 이루어지지 못해 대통령의 복귀 명령을 지키지 못했음에도 별 반향이 없는 이유였다.

“동북아 평화 협상에 임하던 모든 이들은 결의했습니다. 이 사태에 책임 있는 자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북한의 최고 존엄은 돌아온 마교도들에게 정보를 취합한 뒤 영활하게 깨달았다. 대세는 거스를 수 없으며, 빠른 결단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를 보고 있자면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겠다.

돌아온 연화존자의 기묘한 분위기와 전과 다른 능력, 천안문 광장을 덮은 어둠은 물론이고 주변의 전자 기기와 사람들의 감각을 가린 어둠은 북한의 젊은 지도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행동에 나서게 한 건 가장 큰 변화로 무표정해진 마교도들, 무극검문이었지만.

“이어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 지을 예정입니다.”

이후의 일은 그렇기에 일사천리였다.

천안문 광장을 폭격하여 반전을 꾀하려던 공산당의 간부들은 모조리 색출되었다. 숨거나, 놓치는 자는 없었다.

사방을 뒤집어엎을 듯 펼쳐진 격전 끝에 자안혈조가 혈마제의 일장에 피를 토하며 죽어 버린 뒤 공안 조직조차 등을 돌린 그들을 지켜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형을 면한 걸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처지로 전락한다. 물론 인민의 혈세를 낭비할 수 없기에 호화로운, 감옥이라 이름 붙여졌지만 감옥 같지 않던 전과는 완전히 다른 참혹한 공간이 그들을 위해 배정되었다.

그러니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지, 재기를 꿈꾸기는커녕 하루의 생존조차 현실에 절망할지는 굳이 궁금해할 필요 없을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이루어진 남북 간의 정상 회의는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남북 관계에 있어 이전과는 달라진 상황 때문이었으니, 비단 남한과 북한 둘 사이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에 대한 어떤 진일보를 이루려고 하면 늘 끼어드는 주변국이 이번엔 없었다.

중국은 목소리를 낼 처지가 아니었고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이 자국에 더 이익일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여기에는 미국에 진출한 국가무공원 등이 환기한 여론 등이 한몫을 했고 그에 더해 중국 견제 등의 명분 역시 퇴색, 그보다는 시장의 확대라는 측면이 더 이익이지 않겠냐는 나름의 판단이 더해진다.

일본은 대한민국의 통일에 전적인 지지 의사를 보냈다. 미국의 변화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한 대한민국의 일본 내 영향력, 거기에 자민당을 몰아내고 집권 여당이 된 일본 공산당의 오래된 평화에 대한 기조는 그러한 태세 변화를 불러냈다.

그리고 상황이 이러니 러시아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낼 리 없었다. 어깃장도 상황이 되어야 놓는 법.

물론 그 와중에도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일부 러시아 정치인들이 있긴 했지만 은밀히 국경을 넘은 마교도들, 여전히 러시아에 영향력이 남아 있는 그들의 점잖은 설득에 침묵은 길게 유지되었다.

그리하여 평양의 젊은 독재자는 서울을 밟는다.

6.25 이후 처음 있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남북한의 진정한 협력은 바로 오늘부터라고, 민족의 역사는 이 자리에서 다시 쓰여야 할 것이라고.

민족의 대표로 두 손을 맞잡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북한의 최고 존엄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필요한 일이었다. 모두가 원하는 무대,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두 사람 다 많은 것을 양보하고 많은 것을 각오할 생각이 있었다.

상황은 그만큼 파도처럼 밀어닥쳤고, 거스를 힘도 의지도 없이 오히려 동조하며 따라가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니까 둘 다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홀연히 돌아와 이 모든 폭풍을 일으킨 거대한 한 남자를.

그리고 그 남자는 그 순간, 가벼운 마무리를 위해 또다시 대한민국을 떠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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