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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엔 천하제일인이 산다-174화 (174/175)

174화

달리는 세단의 뒷좌석, 건장한 사내 셋이 끼어 타고 있는 그 가운데에 앉은 젊은 남자는 달리는 내내 느껴지는 답답함에 속으로 연신 투덜거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꼰대 소장 놈 새끼.’

원망의 대상은 미리 예고도 안 해 주고 부하 직원을 버리듯이 던져 버린 직장 상사.

워낙 평소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나 늘어놓는 꼰대 새끼 주제에 이럴 때는 또 등신처럼 입 싹 다물지.’

양옆의 과묵한 사내들도 그렇지만 본인도 건장한 탓에 목이 졸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의 남자, 진현우와 그의 직장 상사는 평소에도 유감이 많았던 사이다.

통일한국의 가장 낙후된 지역에서 동고동락하는 사이이니 만큼 관계가 개선이 되려면 얼마든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인류애와 민족정신의 무장만으로 좁히기에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의 간극은 넓디넓었고 메워질 기미 따윈 깃털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비단 통일 이후의 불거진 세대 차이, 이른바 ‘비통일 세대와 통일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향상성을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위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진취적 성향의 진현우와 대비되는 구시대적인 작태로 무장한,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주의 그 자체인 교도소장의 인간적 충돌이 이 갈등엔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끌고 간다니 오히려 좋다고 떠밀었을 지도.’

회식 좋아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며 되도 않는 말들을 조언이랍시고 늘어놓는,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으면서 뭐 그리 꼴보기 싫은 인간인 건지.

그만큼 개인 연차를 쓸 때마다 무슨 일로 쉬는 거냐고 물으며 남의 내밀한 사생활 떠보는 걸 좋아하는 함경북도 제1교도소장을 좋아하는 휘하 직원은 아무도 없었지만, 진현우처럼 경멸하는 자가 그렇게까지 많은 건 아니었다.

그냥 참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운이 나쁘면 두 번 정도 할일없이 싸돌아다니는 추한 인간과 마주치는 걸 감내하는 것은.

하지만 진현우는 교도소장을 혐오했고 동시에 억울했다. 자기가 먼저 싫어한 게 아니라 그쪽에서 자신을 싫어한 게 먼저였지 않았나?

승진 시험에서 세 번 떨어지며 발생한 조기 퇴직의 위기에 처한 교도소장은 남들이 잘 가려고 하지 않는 오지, 강력한 통일대한민국의 공권력에도 일 년에 한 번쯤은 목숨을 건 격전이 펼쳐지곤 하는 함경 제1교도소로 자원하는 강수를 둔 처지였다.

이것이 그라고 좋아서 한 일은 아니었다. 조직과 직원의 근무 환경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심각하게 시대착오적으로 새벽까지 이어지는 회식을 좋아하는 교도소장의 독백에 의하면 이러한 결정은 퇴직과 동시에 이혼이라는 와이프의 으름장이 전적인 이유였으니까.

시대가 이리 바뀌었음에도 교도소장의 가정은 전형적일 정도로 그대로.

그렇게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귀양 오듯 함경도까지 밀려난 교도소장이었으니, 그 눈에 이곳으로 자원해서 온 촉망받는 교도 행정조직의 엘리트가 얼마나 꼴보기 싫었을 것인가?

‘개 같은 꼰대 새끼.’

진현우는 교도 행정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함경 제1교도소에 자원했다. 교도소의 다른 직원 중에서 그와 같이 지원한 자는 한 명도 없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눈에 띄는 사실.

대한민국의 가장 흉악한 범죄자뿐 아니라 몇 년 새 급증하고 있는 무공 익힌 강력범들을 수용하는 오지 속 교도소는 그 반대급부로 엄청난 인사고과 점수를 미끼로 흔들었다.

위험수당이었다. 통일이 된 지 벌써 칠 년이 넘었지만 쪼개진 중국 정부의 공권력 약화와 더불어 여전히 혼란한 한반도 이북의 정세상 대규모의 조직적 탈옥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회수하지 못한 북한산 무기와 사적 무공으로 난립하는 갱단의 개입은 연례행사나 마찬가지.

저 강대한 국가무공원조차 이를 완전히 뿌리 뽑지 못했기에 대한민국 교도 행정조직은 크고 강력해졌으며 동시에 위험해졌던바.

진현우에게는 그 안에서의 두각이 필요했다.

남들은 설령 본인이 욕심나도 가족들이 드러눕고, 발목을 잡으며 말린다지만 어차피 진현우에게 가족이라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홀어머니뿐.

홀가분하게 나설 수 있었다. 마침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기도 했고.

그 덕에 나이만 먹은 꼰대, 인격적 결함과 그 결함을 인지조차 못하는 버러지 같은 인간을 상사로 둔 채 고통받고 있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예정된 오 년의 일정 중 이제 일 년도 채 남지 않은 처지였으니, 진현우의 계산대로라면 승진 후 자리를 옮겨 더 높은 연봉과 더 높은 대우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오늘 이 뜻밖의 부름은 이상하고, 두렵다.

‘무슨 일이지, 대체?’

자신의 신분조차 밝히지 않은 남자들이었다. 하나같이 과묵했고, 또 하나같이 고수였다.

진현우 역시 통일 이후 제정된 법률에 따라 정해진 대한민국 공무특수직으로서 무공을 익힌 처지라 알 수 있었는데, 이러한 인지는 진현우의 가슴 한편에 치밀어 오른 저항 의지를 다독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함경 제1교도소에서 가장 무공이 뛰어난 이로 손꼽히는, 비단 교도 행정이 아니라 군을 제외한 특수직 중에서도 미래가 가장 촉망되는 공무원 중 하나인 진현우였지만 그렇기에 알았다.

저 세 사람을 상대로 도주는커녕 버티는 것도 불가능하다는걸.

고로 순순히 연행되다시피 한 진현우는 자신의 지난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의 아버지는 대한민국 통일 직후 일어난 중국과의 국경 분쟁 중에 사망했다. 원인은 중앙정부의 통제에 반발하며 일어난 반군 세력이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일으킨 테러로, 진현우의 나의 열여섯의 일.

이에 어린 진현우가 복수심에 눈이 돌아가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지만, 그래도 젊고 똑똑했던 진현우는 생각했다.

무엇으로 출세할 수 있을 것인가?

군인이 되는 건 첫 목표였지만 통일 후 변화한 사회 분위기를 냉정히 살피며 깨달았다. 군에서 성공하기에는 경쟁이 너무 심하며 또 치열하다는걸.

국가무공원이 주도한 사회 개혁에 의해 대한민국 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지어 군사독재 시절보다도 높은 인기를 가지게 된 탓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월급과 개선된 복지는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강한 유인 요소가 되었던 것.

여전히 징병제는 유지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반발심은 내공심법 보급에 의해 완화되었고 직업군인의 경우 전역 후 다른 국가직에 도전하는 데 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았다.

설령 그게 아니라 직업군인으로 남아도 좋다고 여기는 건 대한민국 군대가 중국과 대만 등지에 주둔 중이기 때문.

통일 후에도 군은 인재를 원했고, 적어도 몸이 튼튼하고 무공에 적성이 있는 이들 중 군인을 꿈꾸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그래서 진현우는 시선을 돌렸다. 수많은 젊은이가 청운의 꿈을 안고 도전하는, 혹은 거쳐 가는 관문으로 여기며 입대를 선택하는 와중에 두각을 나타내기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어린 그에게는 없었다.

그리하여 내린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커지기 전이었던, 하지만 관심을 갖고 보는 이라면 모를 수 없게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던 교도 행정직이었다.

이전에도 치안 유지에 탁월함을 보이던 대한민국의 검거율은 통일 후에도 유지되었지만 범죄율은 그렇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과 중국의 혼란을 피해 도망 온 중국의 난민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그래서 진현우는 군대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교도 행정에 투신했고 이는 성공했다. 노력도 노력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무공에 대한 재능 덕분이었다.

‘설마 그 일이 발각된 건……?’

이후 진현우는 나름 승승장구하고 있다. 탈옥을 시도하던 범인을 격투 끝에 제압한 일이 여러 번이었고, 개중에는 사회에서 이름 높던 범죄자들도 여럿이어서 나름 뒷세계에서조차 이름이 알려졌을 정도.

이는 통일 이전. 인권이라는 이름 앞에 무기력했던 교도관들의 업무에 비해 적극성을 많이 요구하게 된 현재 상황 덕분이기도 했다.

무공을 익힌 범죄자들을 상대로 인권을 챙겼다가는 문자 그대로, 물리적으로 목이 날아가게 생긴 것이 현 대한민국 교도소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아냐… 그거는 아닐 거야. 들킬 수가 없고, 또 설령 들켰어도 내가 별거 한 것도 없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모범적인 교도관으로, 미래에 조직의 중추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던 진현우였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딱 하나 있기는 했다.

아울러 자신을 데려가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짐작 역시도.

“진현우 씨, 반가워요.”

몇 시간을 꼬박 달려 평양에 도착했다. 통일 이후 가장 시급했던 북한의 도로 문제가 얼마 전 해결된 덕분에 가능했다.

침체된 남한의 경기 부양을 위해서도, 심각하기 짝이 없던 도로 사정을 개선함으로써 물류의 유통 및 인력 이동을 수월히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반갑게 인사하는 눈앞의 남자를 마주한 진현우는 그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

“아, 저런.”

진현우는 자기 이름조차 못 밝히고 덜덜 떠는 것이 전부였다. 만약 함경 제1교도소에서부터 자기를 끌고 온 사내들이 잡아 주지 않았다면 쓰러져서 못 볼 꼴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눈앞의 남자의 기세는 전율적이었으니.

“듣던 것보다 실력이 좋으시군요. 미안합니다. 본의 아니게 고통스럽게 했네요.”

남자는 자신의 기세를 방금 전보다 더 갈무리했고 재밌다는 듯 진현우를 내려다보았다.

진현우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눈높이가 같음에도 그가 자신을 위에서 보고 있다고 느낀다.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남자는 그만큼 위에 있었다. 사회적으로도, 공무원 조직상으로도, 무공으로도.

“국가무공원에서 나왔습니다. 어느 정도 짐작하실 테죠?”

남자가 자신의 기세를 거둔 덕분에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는 가능했지만 동시에 절망이 솟구친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조직에서 자신을 찾아왔다면, 역시 ‘그 일’밖에 없음을 직감한다.

“저희가 왜 왔는지 아는 눈치군요. 좋은 자세입니다, 솔직하다는 건.”

그런 진현우의 표정을 보며 남자는 웃었다. 나름 호감을 표시하려고 한 것 같지만, 글쎄. 보는 쪽에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권한이 막강하기에 우리는 대체로 신중하게 움직이려는 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어느 정도 확신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말이죠. 진현우 씨와 그… 동방요선의 일도 그렇습니다.”

동방요선이라는 단어에 분위기가 칼날처럼 변하고, 진현우는 눈 위로 흐르는 땀 때문에 질끈 눈을 감았다.

“얼마 전 있었던 흑해파 습격 사건에서 진현우 씨가 국가무공이 아닌 다른 무공을 쓰는 것 같다는 제보를 받았고, 영상 자료 등을 판독한 결과 국가무공원은 그것이 동방요선의 소요신공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동방요선은 함경 제1교도소에 수감 중이고 그가 수감되어 있는 흉악동을 담당하는 인력 중에 진현우 씨가 포함되어 있더군요?”

역시 그 일이 맞았다.

“거기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당신을 불렀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그 눈에 더 이상 호의는 보이지 않는다.

“아까처럼 솔직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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