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화 (1/277)

956만 원(1)

"이틀이라..."

교통사고를 당하고 이틀 동안 의식이 없다가 간신히 깨어났다.

꿈을 꾼 것 같은데.

흐릿해서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저승사자의 실수로 인해...

-선물...

-이행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

-최소한의 패널티...

뭔가 들은 것도 같고.

에라, 모르겠다.

이내 고개를 털어내며 상체만 살짝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던 이신우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귤껍질을 깠다.

"크으, 그래도 참 대단하다."

"뭐가, 인마."

귤을 한입에 넣어버린 이신우가 손을 뻗어 류성의 신체 여기저기를 가볍게 건드렸다.

"어우, 셔. 크흠. 안 아프지?"

"어."

"아무리 소형차랑 부딪혔다지만 어쩜 이렇게 멀쩡할 수가 있냐?"

"야. 이틀이나 기절했는데 뭐가 멀쩡하다는 거야?"

"뼈는 안 부러졌잖아. 금도 안 갔고. 그럼 됐지."

"뭐, 그건 그렇지만."

"다친 곳도 없는데 이틀간 기절한 건 나도 좀 의아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확실히 이상할 정도로 멀쩡하기는 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퇴원은 아직이고?"

"어. 며칠만 더 지켜보자고 하시더라고."

"그게 맞지. 교통사고는 원래 멀쩡하다 싶을 때 후유증이 오는 거니까."

"난 진짜 아무렇지 않은 거 같은데..."

"혹시 모르잖냐. 며칠만 더 참아."

"쩝, 그래야지. 스마트폰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어우. 그거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죽었을 거야."

"크큭, 인정."

"근데 너 치킨집은?"

"오늘 쉬는 날이거든, 이 자식아."

"아아. 그랬지, 참. 근데 쉬는 날이면 더 바쁘지 않냐?“

그 말에 이신우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이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크허어엄, 그래도 친구가 입원했는데 와야지."

"그것도 맞네. 아, 나 잠깐 화장실 좀."

류성이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도 한동안 수다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리 길지는 않았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이신우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킨 것이다.

"어쩌냐, 나 그만 가봐야겠는데?"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애들이 평소보다 너무 심하게 울고 있다고 마누라가 좀 도와달라네."

"둘 다?"

"어, 둘 다. 어쩜 그렇게 하는 짓도 똑같은지."

"뭐, 쌍둥이니까. 어휴, 너도 참 고생이 많다, 진짜.“

그 말에 이신우가 입꼬리를 기계처럼 말아올렸다.

"고생은 무슨, 행복이지.“

"지랄."

"크큭, 아무튼 미안하다."

"됐어, 빨리 가 봐."

"다음에 보자."

대충 손을 휘젓자 이신우가 바삐 걸음을 옮겼다.

다시 갖게 된 혼자만의 시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면서 스스로의 한심함에 혀를 찼다.

쯧, 이번엔 자신 있었는데.

하필 면접 보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다니. 또 한동안 백수 생활을 이어가야 할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에휴."

살았으면 된 거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어느새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취업사이트에 접속하고 있었다. 퇴원할 날과 준비시간을 대략 가늠한 뒤 날짜를 조정해 구인구직 정보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꽤나 집중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띠링!]

종소리 비스무리한 게 머릿속에서 울렸다.

"응?"

주변을 둘러보는데 눈앞으로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발동!]

[땅을 파봐라, 500원이 나오나?]

[돈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때로는, 돈은 어떻게 버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지금 이 한 걸음으로 살아온 방향을 조금이라도 틀어보자. 어디라도 좋으니 당장 500원을 후원하라!]

[남은 시간 : 10분.]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오한 및 두통을 느끼며 3시간 동안 고통에 시달립니다.]

[첫 번째 퀘스트입니다.]

[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패널티가 주어집니다.]

정말 뜬금없는 상황이었다.

"이게 뭔...?"

눈을 감고 고개를 털어낸 뒤 다시 눈을 떴다. 시야를 가리던 기이한 글귀가 사라진 뒤였다.

잘못... 봤나?

그런데 이 찝찝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에이, 미친 것도 아니고.

잡념을 지운 채 다시 구인구직 정보를 살펴보는 사이 5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남은 시간 : 5분.]

[미이행 패널티 발동 : 미약한 두통 및 오한.]

다시금 보이는 반투명한 창과 글귀. 패널티의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전신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으윽?"

머리가 지끈거리고 시야가 어질어질하더니 속이 느글거렸다.

가, 갑자기 뭐냐고!

당황한 채 그 자리를 지키길 1분.

[남은 시간 : 4분.]

[2차 패널티 발동 : 증상 악화.]

증상이 극대화되었다.

갑자기 시베리아 한복판에 놓인 듯한 추위가 몰려왔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음에도 추위를 물리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어느새 윗니와 아랫니가 딱딱거리며 부딪혔다.

"미, 미친."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움직여야 한다.

그래, 저 이상한 글귀가 알려주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걸음을 옮겨보는데.

두통이 극심한 탓인지 시야가 어지러웠다.

"끄으응...!"

퀘스트에 실패하면 이 고통을 무려 3시간이나 느껴야만 했다. 아니, 실패를 떠나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악화하는 증상만으로도 이미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계속해서 강해지는 패널티를 버틸 자신조차 없는데, 실패할 경우 느낄 통증의 강도는 가히 짐작할 수준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병실에서 나와 품을 뒤졌다.

도, 돈이 있던가?

다급히 지갑을 살펴보자 다행스럽게도 만 원짜리 한 장이 들어있었다.

더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 몇 명이 류성을 쳐다봤지만 남의 시선에 일일이 반응할 겨를이 없었다.

젠장...!

도대체 어디에 돈을 쓰란 거야! 비틀거리며 걷고 있으니 복도의 중앙 즈음에 위치한 데스크와 그 위에 놓인 모금함이 보였다.

저거다!

결식아동을 위해 쓰인다는 문구도 적혀있었다.

[남은 시간 : 2분.]

[증상 악화.]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손에 들린 만 원을 꾸깃꾸깃 집어넣었다.

"어? 환자분, 괜찮으세요?"

간호사가 이상을 알아차리고 다가왔다.

“환자분?”

그녀가 곁에 도착하기 직전, 거짓말처럼 통증이 가라앉았다.

아...?

너무 멀쩡해진 것이다.

그 지독한 고통이 정말 눈이 녹듯 사라졌다.

꿈이라도 꿨던 걸까.

아니야.

그 고통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도저히 거짓이라 여길 수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멀쩡해진 이 상황이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퀘스트 클리어!]

[퀘스트가 인정하는 상한선에 닿아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정산 중...]

마음을 다잡을 시간도 없이 다음 글귀가 시선을 가득 채웠다.

[정산 완료.]

[최하급 랜덤카드를 습득합니다.]

[선행포인트 1점을 획득합니다.]

[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선 카드를 오픈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발현해야 합니다.]

정말 빌어먹을 상황이었다.

"환자분?"

"네...?"

"괜찮으세요?"

"아, 네. 잠깐 어지러워서요."

간호사가 걱정스레 쳐다봤다.

"혹시 모르니 선생님부터 호출할게요. 몇 호실이죠?"

류성은 멍한 표정으로 병실과 이름을 알려준 뒤 간호사와 함께 자리로 돌아갔다. 곧이어 의사가 와서 가볍게 진찰을 했으나 큰 이상은 없다는 소견을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무리하지 마시고 쉬고 계세요."

"네, 선생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병실에서 나가고, 홀로 남은 류성은 화장실을 향해 느린 걸음을 내디뎠다. 문을 여는 손에는 힘이 없었고 걸음은 언뜻 비틀거리는 모양새였다.

진이 빠진 까닭이었다.

쏴아아.

화장실로 들어서자마자 세면대의 물을 틀고서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다.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자 언뜻 비어버린 듯한 동공이 포착되었다.

그것도 잠시.

빠르게 초점이 돌아오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호기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랜덤 카드, 보상.

그 단어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팠던 건 진짜잖아?

그럼 보상도 진짜여야하는 게 아닐까.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었다.

그래서 떠올렸다.

의지를 발현해야 한다는 글귀를.

카드... 오픈!

강한 열망을 담아 상상하자 기대했던 것 이상의 장면이 눈앞으로 흘러들었다.

“진짜라고...?”

믿기지가 않아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그러나, 분명 현실이었다.

촤르르륵.

두꺼운 카드집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카드가 여전히 펼쳐졌다. 그것들은 빼곡하게 공간을 채우더니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아갔다. 뒤이어 선택을 재촉하는 듯한 글귀가 중앙에 떠올랐다.

[단 한 가지의 카드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신중해야 할 것 같았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카드의 뒷면만이 보일 뿐이었으니까.

생각은 짧았다.

일단은 가장 끌리는 카드를 선택하기로 했다.

투욱.

미묘한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지더니 선택된 카드가 크게 확대되어 날아들었다.

[최하급의 ‘현금’카드를 택했습니다.]

[랜덤한 금액이 설정됩니다.]

[보상으로 9,560,000원을 지급합니다.]

적지 않은 거금을 지급한다는 글귀에 순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러나 이내 글귀는 은은한 빛을 발산하며 카드와 함께 사라졌다.

모든 것이 환상처럼 지워졌다.

내 보상은?

아무리 살펴봐도 돈은 보이지 않았다. 준다고 해놓고 그냥 사라져버리니 속은 기분이 들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 거지 같네, 진짜."

순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미친 건가.

어쩌면 교통사고 후유증일 수도 있었다. 머리에 이상이 생기면서 헛게보이는 거다.

뇌 검사를 받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침대 머리맡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거칠게 진동했다. 화장실에서 나와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는 중이었다. 기묘한 찝찝함을 느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류성 고객님, 맞으시죠?)

"네. 맞는데, 누구시죠?"

(축하드립니다! 올해 초 oo마트에 응모하셨던 현금이벤트에서 최고금액에 당첨되셨습니다!)

"네?"

(세금을 제하고 956만 원이 입금될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통화가 끊어졌다. 곧이어 956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956만 원.

카드 보상과 동일한 액수였다.

1원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건 머리를 다쳐 헛것이 보이는 게 아니었다.

명백한 현실이었다.

앞서 경험했던 것들이 전부 진짜인 것이다.

"...."

몇십만 원이 전부였던 계좌에 상당한 금액이 꽂혀버렸다.

두근, 두근.

단순히 돈이 들어왔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무언가.

삶, 그 자체가 달라질 것만 같은 어떤 본능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