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1)
병원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퀘스트가 더는 등장하지 않았다.
한 번으로 끝인 걸까.
어쩌면 진짜 환상이었거나 혹은 꿈을 꿨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금 956만 원은 그냥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행운이었을지도.
“아니면...”
어떤 발동조건이라도 있는 걸까.
이건 고민해봐야겠는데.
일단은 퇴원 절차를 밟는 게 우선이었다.
마침 들어오는 가족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끌려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동생과 여동생까지. 그래도 가족이랍시고 눈이 마주치자 귀찮은 기색을 지우며 퉁명한 듯, 걱정이 묻어나는 시선을 보내왔다.
"앞으로는 조심 좀 해, 멍청아!"
류현아의 말에 어머니가 등짝을 찰싹, 하고 때렸다.
"오빠한테 멍청이라니!"
"아파!"
"아프라고 때리는 거야!"
"맨날 나한테만 그러고...!"
아주 화목한 집안이었다.
진짜로.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충분한 애정이 있음을 아니까. 피식하고 웃는데, 못 말린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크흠, 병원비는 상대측이 다 냈으니까 퇴원 준비만 하면 돼."
"죄송해요, 아버지."
"죄송은 무슨. 안 다친 게 어디냐."
"앞으로는 더 조심할게요."
"그래, 준비하고 집에 가자."
"네."
딱히 챙길 것도 없는 간소한 물품들을 캐리어에 넣고서 병원을 나섰다. 남동생, 류환이 다가와 캐리어를 낚아챘다.
"줘."
"얼씨구."
"아, 뭐!"
짜식이 부끄러워하기는.
"고맙다고."
"뭐, 알면 됐고."
류환이 쑥스러운 듯 빠르게 걸음을 옮겨 맨 앞에 섰다. 그 모습을 부모님이 흡족한 듯 쳐다봤고 류성 또한 자그마한 미소를 지은 채 뒤를 따랐다. 어느새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1층으로 내려왔다.
사람 많네.
환자와 그들의 보호자로 바글거리는 복도를 지나쳐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후아, 공기 좋고."
언제든 나와서 바람을 쐴 수 있었지만 퇴원이라는 단어가 안겨주는 해방감은 전역에 못지않았다. 아, 전역이랑 비교하는 건 조금 과한가. 아무튼 중요한 것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
20분 뒤에 도착한 집은 역시나 편안했다.
"으아, 집이 최고라니까."
"오늘 퇴원했으니까 한동안 취업 준비는 말고 그냥 푹 쉬어. 알겠지?"
"넵! 알겠습니다!"
어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간 류성은 털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눈에 담았다. 집에 와서 좋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병원에서 겪은 그 이상한 퀘스트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카드 오픈!
의지를 담아 생각해도 반응조차 없었다.
퀘스트! 상태창!
이젠 마음속으로 외쳐대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목소리까지 내봤다.
"카드 오픈! 퀘스트! 상태창!“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하, 씨. 쪽팔리게."
아무래도 이런 식은 아닌 모양이었다.
다른 걸 생각해봐야겠어.
정말 퀘스트가 실재하는 거라면 분명 다시 한번 얻어낼 방법이 존재할 테니까.
그러나.
적잖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기대하던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
생각보다 바쁘게 지냈다.
퀘스트는 무슨.
어떻게 해야 퀘스트를 받아낼 수 있는가. 그 부분에 집중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해봤지만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뭘 해야 하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끝내 퀘스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대감도 사라졌다.
“쯧.”
얼마 전, 취업 준비도 다시 시작했다.
회사를 알아보고 직원을 채용하는 시기 등을 조사했고 몇 곳에는 서류도 넣어뒀다. 물론 현재까지는 통과된 곳이 없긴 했지만.
“어렵네, 참.”
마침 이신우에게 연락이 와서 스트레스도 풀 겸, 집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차 조심하고!“
어머니가 나와 류성을 배웅했다.
"당연하지. 이제 절대로 사고 안 당해."
"그래, 내일 다 같이 아울렛가기로 한 것도 알지?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
"옙!"
밖을 나서니 지고 있는 해가 보였다.
이야.
붉은 기운이 구름을 빼곡하게 끌어안은 모습은 언제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날씨 한 번 좋네.
경치를 친구로 삼아 뚜벅뚜벅 걸어가기를 10분. 저 멀리 이신우가 운영하는 치킨집이 보였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건물 옆으로 난 좁은 골목이 자연스럽게 시선에 들어왔다.
냐아...
거기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음?"
생각 없이 골목을 쳐다보는 순간 아기고양이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어미 고양이가 보였다. 직시와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솟구쳤다.
안타까움, 불쌍함, 연민 등.
그 순간.
귀에 익은 소리가 벼락처럼 뇌리에 꽂혔다.
[띠링!]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추자 눈앞으로 반투명한 창과 글귀가 떠올랐다.
[퀘스트 발동!]
[죽어간 생명을 위로하며.]
[반경 10미터 내에 있는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버린 어미 옆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며칠간 굶주린 상태이며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죽어가는 생명을 서둘러 구하라.]
[남은 시간 : 120분]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감기에 걸립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퀘스트였다.
이걸로 두 번째.
이젠 착각이라거나 꿈이라고 여길 필요가 없었다.
이건 진짜니까.
계속해서 의심했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현실감은 외면하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생명이 죽고 또 자그마한 생명 하나가 위험에 처해있는 상황 자체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이 퀘스트가 머뭇거리는 그의 등을 밀어주는 것만 같았다.
"퀘스트가 아니었다면..."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을 확률이 훨씬 높았으니까.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저벅.
더이상 발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거침없이 골목으로 나아갔고 좁은 길에 진입한 뒤에는 아기고양이가 놀랄 것을 대비해 최대한 기척을 줄였다.
냐아아...
불꽃이 꺼져가는 듯한 힘없는 울음소리에 긴장감이 올라왔다.
늦은 건 아니겠지?
조금 더 진입하자 구석에 놓인 어미 고양이의 사체와 그 옆을 지킨 채 쪼그려 앉아있는 아기고양이가 보였다.
"이런..."
생각보다 상태가 나빠 보였다.
도망칠 기력도 없는 걸까.
아기고양이는 다가오는 류성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어미 고양이의 사체가 신경 쓰였지만 일단은 살아있는 아기고양이가 우선이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오자, 알겠지?"
마치 알아들은 것처럼 조용히 우는 녀석.
냐아...
조심스레 안아 든 채 서둘러 치킨집의 문을 어깨로 살짝 밀었다.
"야! 나 동물병원부터 갔다 올게!"
"응? 뭔 소리..."
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몸을 돌려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대기 중인 손님이 없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검사가 진행되고.
걱정으로 점철된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보호자님, 들어오세요."
"아, 네!"
"검사는 잘 끝났어요."
"어떤가요?"
"심장사상충이나 허피스 등, 크게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보이지 않네요."
"후우, 다행이네요."
"지금은 영양결핍으로 기운이 없는 상태에요. 한동안 굶주렸으니 음식도 급하게 먹이면 안 되구요. 음, 이온 음료를 조금씩 먹이면서 기운부터 차리게 만드는 게 좋아요. 기운이 좀 나면 새끼고양이 전용으로 나온 분유를 먹이면 됩니다. 아직 어려서 추위를 많이 타니까 집 안 온도에도 신경을 써주시고요. 봄이긴 한데 보일러를 틀어서 따뜻하게 만드는 게 좋아요. 추가로..."
부드러운 음성에 차분한 표정. 더불어 단호한 어조가 곁들어지니 신뢰가 가득 솟구쳤다. 그에 류성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보다 길고양이 같은데..."
수의사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아기고양이 걱정에 몰랐는데 다시 보니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기에 시선을 고양이에게로 돌렸다.
"맞아요. 엄마 고양이가 죽어있더라고요."
"아아.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어쩌다 보니 아기고양이를 데려오긴 했는데 이대로 거리에 풀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못 본 척 지나갔다면 모를까. 움직인 이상 끝을 봐야만 하는 성미였다.
"제가 보살펴야죠."
한 번 손을 뻗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에 행동한 이후에는 도리어 고민이 사라진다고 해야 할까.
"그러시군요. 간간이 뵈었으면 좋겠네요."
"네."
"그리고 어미 고양이 사체는 가능하면 데려오시거나 아니면 해당 구청에 연락하면 거기서 잘 처리해줄 거예요. 나머지는 데스크에서 안내받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각종 검사비를 결제한 뒤에 병원을 나섰다.
[퀘스트 클리어!]
[기준 이상을 넘어선 금액입니다. 상한선을 적용하여 추가 보너스를 지급합니다.]
[정산 중...]
[정산 완료.]
[최하급 랜덤카드를 습득합니다.]
[선행포인트 4점을 획득합니다.]
[선행포인트가 5점에 도달하여 포인트 상점이 오픈됩니다.]
[상점 오픈을 원할 때는 상점을 떠올리면 됩니다.]
떠오른 글귀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포인트 상점?
다양한 물건이 진열된 가상의 상점이 홀로그램처럼 생성되었다. 병원 문을 가로막은 채 포인트 상점을 살펴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단은 하단 중앙에 보이는 '닫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모든 것이 사라지면서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냐아아.
순간 품에 안긴 아기고양이가 류성의 손등을 핥았다. 까슬한 감촉 속에 깃든 안도감을 느끼며 걸음에 힘을 가했다.
"그래, 일단 가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애견용품점이 보였다.
으음.
아무래도 몇 가지 물건을 사야될 것 같았다. 즉시 애견용품점에 들러 점원에게 물어본 뒤 필요하다 싶은 물건을 구매했다.
"이거 전부 계산할게요.“
"네, 잠시만요."
적잖은 금액이 사용되었다.
이렇게 물건까지 구매하고 보니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다.
"지르긴 했는데..."
괜찮으려나.
가족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은 부딪혀보기로 했다. 어느새 도착한 집 앞에서 손을 뻗었다.
띠릭. 띡띡.
비밀번호를 누르고서 철옹성 같은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다녀왔습니다."
거실에서 TV를 보던 어머니가 현관으로 걸어왔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어머니의 시선이 류성의 품에 안긴 아기고양이에게 닿았다.
"응? 웬 고양이?"
"어어. 죽은 엄마 고양이 옆에서 울고 있더라고. 밥도 못 먹었는지 당장 쓰러질 것처럼 보여서 병원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야. 검사는 잘 받았는데, 다시 길에 두고 오기가 좀 그래서."
"그래?"
"응, 집에서 키우고 싶은데..."
그 말에 어머니가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휴, 그래. 좋은 일 한 건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다행스럽게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키워도 돼?"
"뭐, 어쩌겠어. 이미 데려왔는데."
"진짜?"
"그래. 안 그래도 집안이 조금 적적한 것 같았는데 잘됐네."
"응? 우리 집이 적적하다고?"
"너희 아빠는 회사 운영하느라 늦지, 현아랑 환이는 이제 대학생이라고 친구들끼리 놀러 다니느라 바쁘지. 너는 또 다쳐서 병원에 있었고. 지금이야 쉬고 있다지만 취업하고 나면 마찬가지로 바빠질 거 아냐."
"아..."
듣고 보니 많이 미안했다.
"에이, 엄마 때문에라도 취직은 천천히 해야겠다."
"아이고, 그 성격에 잘도 그러겠다."
"흐흐. 진짜 그럴 수도 있지, 뭐."
절반은 농담, 절반은 진담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퀘스트.
거기서 얻는 보상으로 인해 인생이 달라질 거라는 건 분명했으니까.
쫘아아악!
그 순간, 갑자기 등짝 스매싱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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