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마음(1)
언제 맞아도 어머니의 손맛은 세상에서 가장 매웠다.
“으어어어억! 왜 때려!”
"그러긴 뭘 그래!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일을 해야지!"
"으으, 일은 할 거야."
"크흠, 그래. 뭐가 되었건 일은 해야 하는 거야."
"알았다고."
너무 세게 때린 게 미안했던 건지 어머니가 손을 뻗었다.
쓰다듬어 주려나.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니었다.
"어디 좀 보자. 줘 봐."
그저 아기고양이를 원할 뿐이었다.
쩝.
속으로 혀를 차면서 조심스레 넘겨줬다. 뭐, 그래도 내조의 여왕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다른 사람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집안의 실질적인 권력자였으니까. 그 부분은 긍정적이었다.
"쯔쯧, 너무 말랐네."
어머니가 아기고양이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조심스레 쳐다보는 사이 류성은 포카리스웨트를 접시에 부어서 아기고양이 앞에 내려놓았다.
냐아아.
냄새에 반응한 건지, 혹은 목이 말랐던 건지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음료수를 핥았다.
"잘 마시네."
"그러게."
다행이었다.
"보일러도 좀 틀게!"
집 안 온도를 조금 올리니 어느새 나른해진 건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졸기 시작했다.
갸르릉.
골골거리며 잠든 아기고양이를 잠깐 지켜보다가 다시금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난 다시 좀 나갔다 올게."
"어딜?"
"신우 보러 가야지. 제대로 말도 못 했거든."
"아, 그래? 놀다 와."
평소였으면 배웅을 했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어머니는 아기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씨익 웃으며 집을 나섰다.
보기 좋네.
하지만 집을 나서는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어미 고양이가 떠오른 탓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일단 땅에 묻는 건 불법이었다. 동물병원에 데려가거나 혹은 구청에 도움을 청하는 게 베스트였는데 동물병원에서는 보통 의료폐기물로 처리하기에 내키지 않았다.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을 통해 몇 가지를 검색해봤다.
“이건, 괜찮은데?”
찾아보니 구청에서는 무료로 화장을 진행하고 있었다. 즉시 구청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바로 해당 부서로 연결이 되었다.
“네, 지금 고양이가 죽어 있어서요.”
(아, 그러시군요. 지금 혹시 위치가 어디시죠?)
“산호17길 앞에 있는 치킨집 옆 골목이에요.”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근데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알아보니까 고양이 사체를 구청에서 무료로 화장시켜준다고 하던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작년부터 장묘업체 몇 군데와 협약을 맺었고 해당 장묘업체에서 길고양이 사체를 무료로 화장하고 있습니다.)
“아아.”
(인식이 많이들 바뀌었거든요.)
“좋은 일이네요.”
(그렇죠.)
덕분에 일 처리도 인도적으로 변한 모양이었다.
(더 물어볼 건 없으시고요?)
“네.”
(그럼 지금 바로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기다릴게요.”
통화하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좁은 길로 들어서자 구석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어미고양이의 사체가 보였다. 준비해온 천으로 조심스레 덮은 뒤 구청직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
가만히 사체를 내려다보는데 왜 이렇게도 기분이 씁쓸한 건지.
"새끼는 내가 잘 키울 테니까, 편하게 쉬어라."
해줄 수 있는 말이 그뿐이었다.
그 사이.
두 명의 구청직원이 다가왔고 류성은 그들에게 사체를 인도했다.
“잘 부탁드릴게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신우가 운영하는 치킨집으로 들어갔다.
"왔냐?"
"어."
"좀만 기다려. 지금 주문 온 것만 배달하면 끝이니까. 후라이드로 바삭하게 한 놈 내갈 테니까 맥주나 한잔하자. 아까 그 동물병원 얘기도 좀 듣고."
"좋지."
여전히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부디 좋은 곳으로 떠났기를 바라면서 다시 살아가는 것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상점.
강하게 떠올리자 홀로그램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가장 먼저 글자가 보였다.
[상점]
손을 뻗어 해당 단어를 누르자 물품이 나열되었다.
1. 현금 100만원
필요 선행 포인트 : 1
2. 랜덤 주식 및 코인 정보
-국내 또는 해외 기업들, 그리고 코인과 관련 있는 정보를 취득할 수 있으나 정보의 수준은 랜덤이다.
필요 선행 포인트 : 30
3. 피로회복 물약(하급)
-일정 수준의 피로를 단번에 회복시켜주는 물약이다.
필요 선행 포인트 : 20
4. 치료제(하급)
-간단한 외과적 수술, 혹은 내과적 수술이 필요한 정도라면 즉각적인 치유를 기대할 수 있다. 심각한 병세에 사용할 경우 아주 미미한 효과만 볼 수 있다.
필요 선행 포인트 : 100
5. 랜덤뽑기(하급)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부터 상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일부 물품이 랜덤으로 등장한다. 매우 낮은 확률로 일반적인 상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특이한 상품도 습득할 수 있다.
필요 선행 포인트 : 10
[현재 지닌 선행 포인트 : 5]
다섯 가지의 물품이 전부였다.
조촐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어느 하나 눈길을 사로잡지 않는 물품이 없었다. 설명을 읽을수록 놀라움을 넘어선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진정 감탄사를 터트리기에 넘치도록 충분한 것들이었다.
“이건, 미쳤는데...?”
선행 포인트 1점으로 100만 원을 그냥 준다니. 현재 지닌 포인트가 5점이니 전부 사용하면 무려 500만 원이라는 현금이 수중에 들어올 터였다.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아래 나열된 다른 물품은 현금보다 더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치료제 항목은 충격적이었다.
즉각적인 치유라고?
하급의 치료제라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심각한 병세에도 미미하게나마 영향을 끼친다고 나와 있었다. 어떻게 써야 돈이 될지는 보자마자 떠올릴 수 있었다.
불치병에 딱이겠지.
거대 기업의 회장 혹은 그들의 핏줄 가운데 불치병에 걸린 이들에게 사용한다면?
완치는 당연히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차도만 보여줘도 어마어마한 돈을 벌 게 틀림이 없었다.
돈 버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왔지만, 실행할 순 없었다.
무섭거든, 재벌은.
진짜 재벌들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디든 비슷하겠지만 대한민국 내에서의 재벌은 특히나 더욱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잠시간 고맙다며 돈을 쥐여주겠지만 결국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치료한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호기심이 날 죽일지도.”
성격 더럽고 잔인한 재벌에게 잘못 걸리면 정말 호되게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망나니 재벌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으니까. 단순한 컨텐츠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에선 그보다 더 잔인한 일도 벌어지곤 했었다.
그러니 보류.
무언가 확실한 방편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치료제는 선행 포인트가 생기더라도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기로 했다.
그럼 뭐가 가장 좋을까.
돈을 벌려면...
주식과 코인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저게 최고긴 한데.
다만 필요 포인트가 30점이라 당장 구매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물품인 랜덤뽑기 역시도 5포인트가 부족했다.
“쯧.”
지금 바로 구매할 수 있는 건 현금밖에 없었는데 거기에 포인트를 쓰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에는 말이다.
아쉽네.
그래도 열심히 모으다 보면 하나씩 구매할 수 있을 테니까.
그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오래 기다렸냐?”
“어? 아니. 그보다 금방 끝났네?”
“흐흐, 일찍 정리했지.”
이신우가 접시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잡생각이 사라졌다.
피어나는 치킨의 향기가 후각을 사로잡은 까닭이었다.
“이야, 쥑이는데?”
"맛있겠지?"
"어, 냄새부터가 다르구만."
"자, 여기 맥주."
"땡큐."
맞은 편에 자리를 잡은 이신우가 닭 다리 하나를 앞접시에 옮겼다. 뜨거움을 조금 식힌 뒤 얇은 부위를 손으로 잡더니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크으, 내가 튀겼지만 더럽게 맛있네."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이신우가 류성을 쳐다봤다.
"그보다 동물병원은 뭐냐?"
"아아, 그거."
류성은 오늘 있었던 일을 간추려 설명했다.
"허. 겁나 불쌍하네..."
"오, 그래도 건강하다니 다행인데."
"나한테도 말하지, 그럼 더 일찍 닫고 같이 기다려줬겠구만."
"키운다고? 직접?“
"내가 쌍둥이 키워서 알잖냐. 뭔가를 책임진다는 거 장난 아니다, 알지?"
살아 숨 쉬는 듯한 반응에 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그래도 키워보려고."
"그래, 알면 됐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나도 고양이 키우고 있잖냐."
"아, 그랬지?"
"어, 양순이. 알지? 벌써 다섯 살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하민이랑 하빈이는 벌써 세 살이고."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20대 후반이라니.“
"내일 모레 서른이지.“
"서른...? 미친. 이게 현실이란 게 더 놀랍다."
"크흐흐흐."
녀석과 잔을 부딪친 뒤 맥주를 들이켰다.
크으으.
죽은 어미 고양이를 보면서 느낀 갑갑했던 마음이 사르륵 풀려나갔다.
"오늘 제대로 한번 마셔보자고!"
"콜이다!"
그날, 호기롭게 외쳤던 두 사람은 딱 2시간 정도 치맥을 즐겼다. 제대로 마셔보자고 다짐한 것치고는 참으로 소소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후아, 좋네.
술에 취하긴 했으나 소주도 아니고 맥주를 마셨을 뿐이라 크게 비틀거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천천히 걸으며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니 오히려 상쾌할 지경이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길거리 노점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지점.
할머니가 직접 산에서 캐낸 것으로 보이는 각종 나물이 초라하게 놓여 있었다. 그 나물을 팔기 위해 눈치를 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
분명 예전이라면 고개를 돌렸을 게 분명했다.
씁쓸한 표정으로 혀를 차면서.
아니, 어쩌면 무심히.
그러나 지금은 피하지 않은 채 할머니의 모습을 직시했다.
온전히 두 눈에 담았다.
[띠링!]
익숙한 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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