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4화 (4/277)

변해가는 마음(2)

[퀘스트 발동!]

[나물은 다양한 영양소를 품고 있다고?]

[어린 손주를 홀로 키우는 할머니가 직접 캔 몇 가지 종류의 나물을 팔고 있다. 나물도 이상하게 캐면 영양분이 모두 죽어버리고 만다. 노점상 할머니가 판매하는 나물은 모든 영양분이 골고루 살아있어 섭취하기에 매우 좋다. 당장 판매하는 모든 나물을 구매해 불균형한 신체를 타이를 식량으로 삼고! 더불어 할머니의 고단한 삶을 잠깐이라도 녹일 수 있게끔 짧은 휴식을 선물하라.]

[남은 시간 : 10분]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두통을 느낍니다.]

술에 취한 까닭일까.

아기고양이를 발견했던 때보다 조금 더 감정적인 상태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 탓에 이런저런 상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퀘스트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분명 별생각 없이 이곳을 지나쳤을 테니까.

“우습네.”

그 사실을 알기에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후우.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이미 퀘스트가 뜬 이상 패널티를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보상을 놓칠 생각은 더더욱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등을 떠밀어주는데도 외면한다면 스스로가 너무 창피할 것만 같았다.

저벅.

어느새 할머니의 앞에 도착했다.

“아이고, 총각. 뭐라도 사려고?”

“네.”

“그래요, 뭐로 줄까?”

“음, 여기 있는 거 전부 다 주세요.”

“응? 뭐라고?”

“전부 다 주세요. 오늘 모임이 있어서요, 나물 종류가 많이 필요하거든요.”

“아이고, 그래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내가 싸게싸게 담아드릴게.”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며 나물을 검은 봉투에 담았다. 그 과정이 참으로 길고 더뎠다. 할머니의 손길 자체는 빨랐지만 기다리는 류성의 마음이 불편했기에 느리게만 느껴졌다.

“오늘 손주한테 맛있는 거 사줄 수 있겠네, 그려. 총각 덕분이야. 고마워, 정말.”

“저도 필요해서 사는 건데요, 뭐.”

“이런 경험은 내가 또 처음이라 그래. 누가 이걸 한꺼번에 다 사려고 해.”

“하하...”

“어쩜 이럴 수가 있는지 정말. 내가 말이여, 그래도 여기서 장사를 한 지 10년이 넘어간단 말이지. 살다 살다 이렇게 일찍 집에 들어가게 될 줄은 진짜 몰랐어. 아이고, 말이 너무 많았지? 잠깐만 기다려보더라고, 싸게 담아줄라니까.”

할머니의 좋아하는 모습에 어느새 동화되기라고 한 걸까. 불편했던 마음은 서서히 사라지고 어느새 류성의 입가로 자그마한 미소만이 남았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주세요.”

“아이고, 성격도 좋지.”

“크흠.”

“자, 전부 담았구만 그려, 어디 보자, 이게...”

할머니가 계산을 마쳤다.

나온 가격은 3만 원.

하루 내내, 길거리에 앉아 판매하는 모든 나물의 가격이었다.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그거밖에 안 한다고?

이 많은 나물 가격이 고작 3만 원이라니.

“여기 5만 원이요.”

“어, 잠깐만. 잔돈이...”

“괜찮은데...”

“무신 소리여! 그건 아니지. 잠깐만 기다려보더라고!”

할머니가 잔돈을 어떻게든 구하기 위해 근처 다른 상인에게 다가가는 사이, 류성은 그냥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걸 또 어떻게 알고는 고함을 치며 다가오는 할머니. 도저히 그냥은 갈 수 없겠다 싶어서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냥 가면 우째! 자, 여기 잔돈!”

“정말 괜찮은데요.”

“어허, 그렇게 함부로 돈 쓰면 안 돼! 그려, 총각이 내 생각 해주는 건 알겠지만 나도 내가 생각한 가격만 받으면 충분혀.”

“...”

류성은 본인의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했다.

“죄송해요, 할머니.”

“죄송은 무신. 그저 고맙기만 한 것을. 정말로 고마우이.”

할머니가 애써 쥐여준 잔돈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주머니에 넣었다. 어느새 할머니는 자리로 돌아가 노점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퀘스트 클리어!]

[정산 중...]

[정산 완료.]

[최하급 랜덤카드가 지급됩니다.]

[선행포인트 2점을 획득합니다.]

[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선 카드를 오픈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발현해야 합니다.]

지금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기분이 묘한 탓이었다.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걸음을 내디뎠다.

“거, 참... 어색하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퀘스트를 핑계로 삼아 해버리고 말았다. 거기서 얻은 충만함은 분명 낯선 종류의 것이었지만 묘하게도 자꾸만 가슴을 자극했다.

*

집으로 돌아와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그래, 그랬었는데.

어째서 이런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거대한 망치가 전신을 두드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악의가 망치에 깃들고 그럴수록 망치의 파괴력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쾅! 콰아앙!

꿈인데도 통증이 느껴졌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이건 좀 많이 심한 거 아닌가.

하지만 망치질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어졌다.

퍽, 퍼억, 퍽!

그 순간 흔들리는 감각과 함께 정신이 들었다.

“어...?”

눈을 떠보니 류현아가 발로 때리는 중이었다.

“와, 씨. 언제까지 잘 건데!”

“이, 일어났잖...!”

분명 깨어난 기색을 보였음에도 류현아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래도? 이래도 안 일어나?”

“윽, 으윽! 그만해라... 일어나면 뒤진다...”

“아빠가 깨우랬거든? 빨리 일어나야 아울렛을 갈 거 아냐!”

“아울렛...?”

“오늘 가기로 했잖아!”

“...”

“와, 대박. 그걸 까먹었다고?”

이신우를 보러 나가기 전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간신히 뜨면서 몸을 일으켰다.

“까먹기는, 다 알고 있거든?”

“알기는 개뿔! 지금 다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리 나와!”

오랜만에 함께 하는 가족 쇼핑이었으니 빠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했고.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니 정신이 좀 들었다. 대충 옷을 입은 뒤 모자를 쓰고서 방을 나섰다.

“음?”

다른 가족은 보이지 않고 류현아 혼자서만 소파에 누워 히죽거린 채 TV를 보고 있었다.

“뭐냐...?”

“우와, 빨리 준비했네?”

“뭐냐고.”

“뭐긴. 아직 나가려면 30분은 남았는데?”

“아오, 너 이 새끼!”

류현아에게 달려가 뒤통수를 후렸다.

퍼어억!

통증보다는 밀어내는 힘이 강한 탓인지 휘청거렸다.

“꺄아아악!”

이내 중심을 잡고는 몸을 돌리는 류현아.

“이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날아차기를 해왔다.

퍼억!

복부에 제대로 꽂혔다.

뭐, 워낙 자주 느끼는 감각이라 금세 극복하며 대응할 수 있었다.

“오냐, 누가 이기나 해보자!”

아침부터 참, 기운이 넘쳤다.

*

류현아와 한바탕 전투를 치렀음에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아오, 힘들어.”

소파에 너부러진 채 멍하니 있다 보니 잊고 있던 한 가지가 생각났다.

아, 최하급 카드!

그간 잡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잠시 까먹고 있었다. 카드에서 또 어떤 좋은 보상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부지불식간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으차.”

몸을 일으켜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뭐가 나오려나.

병원에서 500원을 모금하면서 얻은 카드에서는 무려 천만 원을 획득했었다. 지금 모인 두 장의 카드는 아기고양이 병원비로 나간 수십만 원과 나물을 구매하면서 나간 3만 원으로 획득한 것이다.

500원보다는 훨씬 더 많은 돈을 썼으니 기대가 되지 않을 리가.

돈도 좋고.

아니면 조금 특별한 무언가도 좋으리라.

일단 한 장을 뽑았다. 무수하게 돌아가는 카드 중에서 가장 끌리는 것 하나를 고르자 확대되듯 날아들었다. 엄청난 빛이 뇌리를 강타했지만 그래서 더욱 좋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게 나올 것만 같은 기분. 이윽고 빛이 멎음과 동시에 결과물이 등장했다.

[최하급의 ‘선물’카드를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복권을 획득합니다.]

손에 들린 한 장의 복권.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긁는 복권이었다.

두근, 두근.

예상대로 심상치 않은 물건인 것은 분명했다.

당첨이겠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일단은 손톱으로 은박지의 우측 상단에 위치한 당첨금액란을 긁었다.

숫자가 드러났다.

당첨금은 100,000,000원!

무려 1억이었다.

행운의 숫자는 6이었으니 이제 아래쪽 3개의 빈공간을 긁어냈을 때 숫자 6이 하나만 나와주면 당첨금을 획득할 수 있었다.

“나와라, 나와!”

아래쪽 첫 번째 칸을 손톱으로 긁었다.

슥, 스슥.

숫자의 모양이 조금씩 형태를 드러냈다.

“아...”

단번에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숫자 1이었으니까.

다음 칸으로 넘어가 손톱으로 은박지를 긁으니 이번에는 동그란 모양이 나타났다.

설마...!

흥분하며 속도에 박차를 가해보지만.

“흐음.”

나온 숫자는 8이었다.

6과 비슷하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6은 아니었다.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

“보상인데, 설마.”

무조건 당첨될 것이라 믿고 마지막 공란을 긁어나갔으나.

침묵이 흘렀다.

원하던 6이 아니라 3이 나온 까닭이었다.

[어떤 보상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안타깝네요, 더 노력하세요!]

약이라도 올리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렇다. 꽝이었다.

“진짜로, 진짜 꽝이라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살짝 열이 뻗치긴 했지만 빠르게 납득하기로 했다.

이미 지나버린 일.

아쉬워한다고 돌아올 일은 없으니까.

무엇보다.

아직 카드 한 장이 더 남아 있었다. 해당 카드를 선택하자 이번에도 여러 장의 카드가 튀어나와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이번엔 나오겠지.

병원에서의 기억이 새록거린다. 그날, 카드를 뽑아 현금 900여만 원을 획득했던 그 순간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었다.

[최하급의 ‘현금’카드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병원에서와 같은 '현금' 카드가 뽑혔다.

“오오...!”

크게 확대되어 날아든 카드.

[최하급의 ‘현금’카드를 택했습니다.]

[운이 안 좋군요?]

얻은 보상은 겨우 50,00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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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