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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정하다(2)
흑우 5인분을 주문했다.
곧이어 나온 소고기.
조금씩 불판에 올려 구워 먹었다.
"크으."
검은 소, 흑우 특유의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더럽게 비싸긴 하지만 그 값을 충분히 하는 맛이었다.
"끝내준다, 역시."
"한 2년 만인가?"
"벌써 그렇게나 됐냐? 너 치킨집 열고 첫날 매출 대박 떴을 때 기념해서 왔었으니까. 맞네, 대충 2년."
"희망에 부풀었었지, 그땐."
"지금도 손님은 많잖아."
"그야 그렇지."
이신우가 만드는 치킨은 정말로 맛있다. 덕분에 인기도 많은 편이고. 다만 프랜차이즈의 횡포에 마진이 거의 안 남는 편이었다.
"바뀐 건 없고?"
"그대로야."
"어휴, 젠장할 놈들. 뭔 염지한 닭에도 등급을 처맥이는지 모르겠네. 등급마다 가격 차이가 상당하다면서?"
"많이 나지. 근데 등급 낮은 닭은 못 써. 맛이 없어서."
"그러니까 문제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여기서도 수수료 떼고, 저기서도 떼고, 진짜 남는 게 없더라. 완전 지점들 상대로 돈놀이 하는 것 같다니까."
"쯧, 너도 참 대단하다, 그걸 용케도 지금까지 버티고."
하지만 이신우의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얼마 안 남았잖아."
"그건 그렇지.“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프렌차이즈 계약이 끝나게 되니까.
"갱신 안하고 전에 말했던 대로 내 이름 걸고 제대로 시작해봐야지. 아직 연구 중인 게 몇 개 있는데 나중에 시식이나 해줘 봐. 니가 그래도 치킨 맛은 또 잘 보잖아."
"오브콜스다, 인마!"
둘은 서로의 잔을 부딪치고서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직후 잘 구워진 소고기 한 점을 입에 넣으니 이곳이야말로 주지육림이었다.
"크으으으. 죽이는구만."
"크흐. 좋네, 좋아."
"스트레스가 쫘아아악 풀리지 않냐?"
"완전."
"아, 맞다. 계좌번호 보내줘. 빌린 돈 갚아야지."
"아아, 그래."
번호를 받은 류성이 바로 돈을 이체시켰다. 빌린 돈에 추가로 이자도 넉넉하게 넣었다.
"응? 훨씬 많은데?"
입금 문자를 받은 이신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자야."
"뭔 이자가 이렇게 많아? 언제부터 이자 줬다고."
"크흐으음."
"뭐냐? 니가 이럴 놈이 아닌데."
이신우가 실눈을 떴다.
괜히 찔끔한 류성이 시선을 피했다.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뭔데? 뭔 짓거릴 한 거야?"
"그냥..."
"그냥 뭐, 인마!"
역시나 불알친구에까지 숨기긴 어려웠다. 끝도 없이 계속해서 물어보는 통에 결국 실토하고 말았다.
"아, 코인 좀 했다!"
"뭐? 이 미친 새끼가...!"
"아니, 이게 정보가 너무 확실한 거라 어쩔 수가 없었다고."
"지랄한다."
"진짜라니까. 이건 완전, 찐으로 확실한 정보였다니까?"
계속해서 우기다 보니까 면박을 주던 이신우도 류성의 당당한 태도에 조금 마음이 흔들린 모양이었다. 여전히 의심은 조금 남아 있는 표정이지만 아무튼 얼추 넘어온 것 같았다.
"그 정도로 확실했다고?"
"그렇다니까."
"어디서 얻은 건데?"
"어... 예전에 알고 지내던 군대 선임이 있거든. 엄청 친했어, 너야 모르겠지만. 지금은 코인 관련된 업계에서 일하고 있더라고."
"그래...?"
"어. 그 형이랑 술 한잔하다가 나온 얘긴데, 말하고서도 아차한 표정이더라고. 그래서 술 더 먹이고 계속 물어보니까 얘기해주더라."
"흐음, 많이 벌었냐?"
기다리던 질문이었다.
"흐흐. 솔직히 많이 벌었지."
"그래, 벌었으면 됐지."
"고렇지. 덕분에 수익 많이 났으니까 이자도 그냥 받아두라고."
"...그래."
지금은 계약도 막바지라 훨씬 더 힘든 힘든 상황일 것이다. 치킨 연구에도 돈이 나가니까. 그런 상태에서도 거금을 선뜻 빌려준 녀석이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다음에는 너도 알려줄게."
"지랄."
"믿기 힘들어도 소액 정도는 괜찮잖아. 나도 큰돈 넣으라고는 안 해. 진짜 여윳돈으로 1, 2백 정도는 나쁘지 않을 거야."
"흐음."
"어차피 그 정도 돈 없다고 인생 안 망해, 인마. 근데 내 말 듣고 네, 다섯 배정도 되는 이익이라도 얻으면 그게 어디냐. 적어도 여유는 좀 생길 거 아냐."
"다섯 배는 무슨."
"아무튼!"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알려 줘? 말아?"
"크흠."
"콜?"
한참을 고민하던 이신우가 피식하고 웃었다.
"진짜 확실한 정보면. 그래, 콜이다! 그걸로 하빈이, 하민이 맛있는 거나 사줘야지."
"안 본 지도 꽤 됐는데, 그동안 많이 컸지?"
"그럼. 잠깐 사이에 쑥쑥 크는 시기잖냐."
"그럴 때지."
"가끔 너 얘기도 하더라. 또 언제 오냐고."
"진짜로? 그런 말을 했다고?"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어. 진짜로."
"크으, 그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네. 엄청 귀여웠는데."
"시간 나면 보러 와."
"그래도 되냐?"
"안 될 건 뭐라고. 가끔 가족끼리 다 모여서 보기도 하는데."
"그냥, 뭐. 너도 그렇고, 너네 와이프도 그렇고. 애들 보느라 바쁠 텐데 나까지 보태기 미안하니까 그렇지."
"별 게 다 미안하네. 그냥 보고 싶으면 보러 와, 언제든지."
"알았어, 인마. 기왕 이렇게 된 거 하빈이랑 하민이 생각해서라도 내가 무조건 돈 벌게 해준다!"
"또, 또 지랄한다."
"크흐흐."
"됐고, 한잔하자."
둘의 술잔이 부딪쳤다.
째앵-
역시 이 나이엔 돈 얘기가 최고라니까.
*
소고기라 그런지 그리 많이 먹히진 않았다. 그래도 배가 터질 정도로는 먹었다. 소고기가 몇 점 남지 않았을 즈음 류성은 가장 맛있었던 부위로 5인분을 포장했다.
"어우, 잘 먹었다."
"대리 부른다."
"그래야지."
계산을 마치고서 포장했던 고기를 받아 이신우에게 건넸다.
"집에가서 같이 먹어."
"허얼."
"뭐, 인마."
"요즘들어 자꾸 안하던 짓을 하네?"
"그땐 돈이 없었던 거고."
"그러냐, 흐흐."
"그래서, 받을 거야? 말 거야?"
"당연히 받아야지."
고기를 챙긴 이신우가 낮게 읊조렸다.
"크흠, 잘 먹으마."
"새끼가 어색하게 인사는."
마침 도착한 대리운전 기사가 다가왔다.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대리 부르셨죠?"
"네. 맞아요."
전화번호를 확인한 후에 대리기사가 운전석에 올랐다. 이신우는 조수석에, 류성은 뒷자리에 탑승했다. 적당히 수다를 떨며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먼저 내렸다.
"간다."
"그래, 다음에 보자."
근처 초밥집에 들러 모듬세트 2인분을 포장한 뒤 집까지 걸어갔다. 느긋하게 바람을 쐬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한 뒤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머니가 반겨줬다.
"왔어?"
"응. 여기 초밥."
"2인분이네?"
"현아가 또 뺏어 먹을 테니까."
"우리 아들, 센스 좋은데?"
예상대로 류현아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우와아아앗! 초밥이다, 초밥!"
"같이 먹을까?"
"엄마 짱짱!"
옆에서 듣고 있던 류성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이, 내가 사왔다만?“
"응, 땡큐?"
뭐랄까.
더럽게 약이 오른다고나 할까.
"확, 그냥."
"뭐! 왜! 또 때리게?"
"됐다, 가라."
오늘는 기분 좋아서 봐준다.
속으로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이후 럭키와 적당히 놀아주고서 잠을 청했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순식간에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으음...!
근데 갑자기 풍겨오는 이 고소한 냄새는 도대체 뭐지.
"와, 이래도 안 일어나냐?"
"...?"
"독하네, 진짜."
슬쩍 눈을 뜨니 비몽사몽한 와중에 냄새는 한층 더 강력해졌다. 고소하다고 여겼던 향이 악취로 바뀌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푸흐흡."
실실 쪼개고 있는 류현아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저 미친 악녀가 독가스를 풍겼다는 걸.
"아, 이 똘아이가 진짜...!"
침대에서 일어나 류현아의 뒤통수를 아주 제대로 갈겨줬다.
퍼억!
고통에 미간을 팍 찌푸린 류현아가 거칠게 손과 발을 휘둘러댔다.
"아씨! 왜 뒤통수 때리고 난리야! 그러게 누가 그렇게 안 일어나래?"
"아오, 젠장. 뭘 처먹었길래...!"
류성은 다급히 방구 냄새로 가득한 방에서 도망쳤다.
"너, 후회할 거야."
"후회는 무슨."
"내가 진짜 큰마음 먹고 주기적으로 용돈이라도 좀 챙겨주려고 했더니."
"헛소리하시네. 흐흐."
류현아가 실실 쪼개며 거실로 달려갔다.
"엄마! 오빠 깨웠더니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내 뒤통수 때렸어!"
"성아! 뒤통수는 때리지 말라니까! 안 그래도 머리 나쁜데 더 나빠지면 어쩌려고 그래."
"아, 자고 있는데 방구 맥이잖아."
"...그건 현아가 잘못했네."
"깨워도 안 일어나니까 그렇지! 그리고 나 머리 안 나쁘거든!"
계속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어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밥그릇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됐고, 어서 아침이나 먹어."
"알았어, 세수만 좀 하고."
"현아, 넌 아빠도 불러오고."
"응!"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서 세수를 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서 주방으로 돌아갔다.
가족이 전부 모인 자리.
"먹자."
아버지가 수저를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다 같이 인사하고서 식사를 시작했다.
*
아버지는 출근했고 남동생과 여동생은 대학 강의를 들으러 갔다. 집에 남은 건 어머니와 류성, 두 사람뿐이었다. 어머니는 설거지했고 그동안 류성은 청소기를 돌렸다.
"엄마, 더 할 거 없어?"
"이제 없어."
"그럼 나 쉰다?”
"그래, 쉬어. 과일이라도 깎아줄까?"
"아니, 괜찮아."
집안일을 끝내고 소파에 앉아 TV 프로그램 몇 개를 시청했다.
”푸훕, 크흐흐, 겁나 웃기네.“
처음에는 배꼽이 빠질 정도로 재밌었지만 조금씩 지루해지면서 상념이 솟구쳤다.
흐음.
언제까지 이렇게 놀 수 있으려나.
슬쩍 집안을 살펴보니 어머니도 외출을 나갔는지 조용했다. 럭키는 구석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고요한 가운데 류성 혼자만 소파에 너부러진 상태였다.
가족 모두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혼자만 제외하고서.
자연스레 앞으로 뭘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직장은..."
솔직히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백수처럼 지낼 수도 없었다. 특히나 부모님에게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뭔가를 하는 것처럼은 보이고 싶었다.
역시 투자가 답이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가장 그럴듯한 길이었다.
"그래, 전업투자자.”
불완전한 코인 정보권을 활용해 돈을 벌 때의 그 두근거림이 여전히 생생했다. 정말로 전업투자자 된다면 집에서 지내도 이상하지 않고 거금을 벌어들여도 주변인들이 크게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한번 해보자고, 그렇게 방향을 정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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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