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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재능(1)
선물을 사놓고 보니 정말 잘한 일 같았다.
이건 써먹을 수 있겠어.
전업투자자라는 직업을 가족에게 어떻게 설득시키느냐, 그 부분이 사실상 가장 큰 문제였다.
말하지 않은 채 지내볼까도 싶었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언제까지 백수처럼 지낼 거냐고. 취업준비는 안하냐고 물어올 때마다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포부를 밝히는 것.
이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다만, 증권사에 취직한 것도 아니고 집에서 주식을 매매하면서 살겠다는 말을 그 어느 부모가 좋아할까. 그러니 최소한의 설득을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일단은 조금 전에 구매한 선물을 주면서 환심을 하는 게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그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느냐.
그게 설득의 승패를 좌우할 테니까.
"음, 그러니까..."
아무래도 상담할 사람이 필요했다.
인간관계가 참 좁다니까.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집을 나섰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저 멀리 목적지인 치킨집이 보였다. 그 앞에서 서성이는 한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듣기 좋은 소리가 울렸다.
[띠링!]
반가운 퀘스트였다.
[퀘스트 발동!]
[치킨은 언제 어디서나 진리?!]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는 어린아이가 눈앞에 있다. 치킨이 먹고 싶으나 들고 있는 돈은 500원뿐! 그런데도 본인의 배고픔보다 오늘도 집에서 굶주리고 있을 동생들을 먼저 떠올리고 있다. 동생들 생각에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는 아이에게 치킨을 선물하라!]
[남은 시간 : 20분.]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자전거에 치입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쉬웠다.
뚜벅뚜벅.
빠르게 걸음을 옮겨 아이의 앞에 섰다.
"어이, 꼬마야."
"네...?"
"치킨 먹고 싶어?"
"...."
낯선 사람의 질문에 아이가 대답하지 못한 채 손을 꼼지락거렸다.
"오다가다 본 것 같은데, 맞지?"
"네..."
"그럼 동네 친구네. 반갑다."
"아, 네. 안녕하세요오."
배꼽 인사하는 모습이 참으로 귀여웠다.
"아이고, 인사도 잘하고 착하네. 이 아저씨 친구가 여기 치킨집 사장이거든. 잠깐 기다려 봐."
퀘스트를 몇 번 클리어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선행이란 건, 꼭 상대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분명 스스로를 위한 행동이기도 했다.
상대를 불쌍하게 여긴다거나 혹은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라거나. 여러 이유를 잣대로 사람들은 남에게 무언가를 베푼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때리고 싸우고 헐뜯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
그래, 기왕에 돈을 벌 거라면 사람 짓밟는 대신 이렇게 돈쭐내면서 버는 게 훨씬 괜찮으리라. 보무도 당당하게 닫혀있던 치킨집의 문을 열어젖혔다.
"여, 오늘은 돈쭐 좀 내러 왔다!"
"또 헛소리 시작한다. 최근 들어서 약간 미친 것도 같고. 괜찮냐?"
"...애 있어, 인마."
"헙. 꼬마야, 안녕?"
"아, 안녕하세요."
시선을 돌린 친구, 이신우가 눈으로 물어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냥. 치킨이나 한 세 마리 정도 포장 좀 해봐."
그리고 거리를 좁혀 낮게 속삭였다.
아이가 듣지 못하도록.
이미 충분히 부끄러운 상태일 테니까.
"밖에서 서성이더라고. 돈은 오늘치 포함해서 넉넉하게 미리 낼 테니까 앞으로도 신경 좀 써주고."
"허얼. 네가... 웬일이냐?"
"웬일은 무슨."
"...돈 벌더니 드디어 사람 됐구나."
"시끄럽고. 빨리."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봐."
얼마 지나지 않아 후라이드, 양념, 간장이 고루 섞인 세 마리의 치느님이 출격 준비를 마쳤다.
다만 문제는.
치킨을 튀기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는 점이었다.
젠장할.
떠오른 퀘스트 갱신내역을 무시한 채 일단 아이에게 치킨을 건넸다.
"저, 저기... 돈이 없어요..."
"선물이야."
"네...?"
"원래 인사 잘하는 착한 아이한테는 가끔 그런 날도 오는 거야. 선물 같은 날. 그러니까 배고프면 다시 와서 치킨 달라고 해. 괜찮으니까."
"아..."
아이가 한참을 망설이더니 이내 주먹을 꼬옥 쥐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라고 자존심이 없을까. 그래도 동생들 생각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고맙... 습니다."
"짜식."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치킨집을 나서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날씨 한 번 쥑이네. 안 그러냐, 꼬마야?"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따라 하늘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손에 들인 치킨도.
"네... 쥐, 쥑이는 거 같아요."
"어? 크크큭. 그래, 정말로 쥑여주는구에에엑!"
말을 끝내기 직전, 자전거가 달려와 류성을 쳤다.
쾅!
시야가 날아갔다.
[패널티로 자전거에 치입니다.]
[앞으로는 좀 더 시간을 준수하길 바랍니다!]
땅바닥을 구르며 생각했다.
이건 전부 치킨을 너무 늦게 튀겨버린 이신우의 잘못이라고.
*
자전거를 타고 있던 꼬마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아.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까 그냥 가도 돼.”
정말로 크게 다치진 않았다.
너무 갑작스레 부딪힌 탓에 반사적으로 바닥을 굴렀을 뿐이었다. 꼬마를 보내고서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옆에는 당황한 듯, 굳어있는 아이가 보였다.
“응? 아직도 안 갔어?”
“네? 아, 네.”
“그래, 가도 돼. 아, 다음에도 꼭 오고.”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안 오면 혼나, 진짜로.”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마친 아이가 천천히 멀어졌다. 퀘스트가 실패한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 뭐.
[띠링!]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닌 모양이었다.
[퀘스트 발동!]
[퀘스트 실패가 낳은 연쇄작용?]
[꼬마 아이가 자전거를 끌다가 성인 남성과 부딪혔다. 부딪힌 상대는 멀쩡했으나 꼬마는 넘어지면서 무릎에 상처가 났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멀어졌으나 지금은 절뚝이고 있을 꼬마를 찾아 상처를 치료하라!]
[남은 시간 : 60분.]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축구공에 맞습니다.]
퀘스트의 제목이 참으로 알맞았다.
실패가 낳은 연쇄작용이라.
"허, 다쳤다고?"
류성은 서둘러 꼬마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
절뚝이는 꼬마가 보였다.
“꼬마야!”
“네, 네...?”
“다쳤잖아.”
“아, 그, 괜찮아요.”
“괜찮긴. 치료부터 하러 가자.”
꼬마를 자전거 안장에 앉히고서 조심스레 끌고 갔다.
“진짜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마침 주변에 정형외과가 있었다.
치료는 금방이었다.
소독을 하는 정도로 그친 덕분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고.”
“네에!”
꼬마가 더는 보이지 않을 무렵,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퀘스트 클리어!]
[정산 중...]
[정산 완료.]
[최하급 랜덤카드가 지급됩니다.]
[선행포인트 1점을 획득합니다.]
보상을 떠나서 오랜만에 참으로 뿌듯했다.
꼬맹이들이 참 씩씩하네.
오늘 만난 두 녀석이 전부 그랬다.
똘똘하기도 하고.
가만히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아무튼, 두 녀석 모두 잘 자라길 바랄 뿐이었다. 상념을 내려놓고서 치킨집으로 돌아갔다.
최하급 카드라.
도착하기 전에 바로 카드 보상을 획득하기로 했다.
꽝일 확률이 높았으니까.
이런 건 빨리 써버리는 게 속이 편했다.
핑그르르 돌아가는 카드.
손가락을 뻗어 대충 아무거나 건드리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종류의 빛깔이 미간에 스며들었다.
[최하급의 ‘재능’을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그림작가의 창의력(소모성)’을 습득합니다.]
[재능을 떠올리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잠깐 눈을 비비고서 다시 확인해봤다.
어라...?
다시 봐도 획득한 보상은 분명 ‘재능’이었다. 비록 소모성이고 애매한 재능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이런 보상은 처음인지라 무언가 미묘한 감정이었다.
좋은 거... 맞지?
일단 자세한 확인부터 해보기로 했다.
재능을 떠올리자 설명이 보였다.
[그림작가의 창의력(소모성)]
[독특한 창의력이 6시간 동안 발휘됩니다. 그 안에 한 번의 작업을 완성하면 거기서 종료되며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종료되며 해당 재능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림작가의 뛰어난 실력이라던가, 혹은 손재주같은 재능이었으면 모르겠지만 창의력은 짐작이 잘 되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아이디어 정도나 떠오르고 말지 않을까 싶었다.
"흐음."
무엇보다 그림 실력이 부족해서 창의력이 과연 쓸모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림을 배운 적은 있지만 그건 일반인의 취미수준일 뿐이었으니까.
일단 ‘아니오’ 버튼을 눌렀다.
당장 사용할 수는 없었으니 나중에 집에 가서 생각이 나면 써보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신우가 치킨을 튀기면서 슬쩍 쳐다봤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아, 일이 좀 있어서.”
“애는 잘 갔고?”
“잘 갔지. 그리고 이거나 받아.”
류성은 지갑에 있는 현금 20만 원을 이신우에게 건넸다.
“뭔데?”
“아까 말했잖아, 저 꼬맹이 지나가면 좀 챙겨주라고.”
“허어, 진짜 의외네.”
“크흠.”
“10만 원은 너 해라.”
“응?”
“새끼야, 나도 절반 정도는 부담할 테니까 10만 원만 내라고.”
“오올.”
“확, 그냥. 좋은 일 하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어휴.”
“크흐흐.”
다른 손님이 없어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던 중, 최근 가장 고민하고 있던 문제가 툭하고 튀어나왔다.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뭘 한다고?”
“전업투자자.”
“진짜 제대로? 직업으로 삼겠다고?”
“어. 이번에 코인하다 보니까 관심이 생기더라고. 그래서 미래 산업이랑 기업들도 찾아봤고 너튜브 보면서 공부도 해봤는데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 아니, 솔직히 재밌더라. 이렇게 관심 가는 거 오랜만이야, 진짜.”
“흐음...”
고민하던 이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문제는 이걸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을까 싶은 거지.”
그 말에는 녀석이 피식하고 웃었다.
“너, 예전부터 그런 거 있었잖아.”
“어떤 거?”
“어릴 때는 무슨 검사가 꿈이랬던가. 그때도 너희 부모님은 흔쾌히 수긍하셨고. 1년도 안 지나서 무슨 음악 한다고 지랄했을 때도 응원해주셨잖아.”
“크흠, 그랬지.”
“그래, 음악도 몇 개월 하다가 때려치우더니.”
“크흐으음.”
“이후에는 무슨 웹툰 작가?”
“하, 하하...”
“그때도 학원 몇 달 다니다 말았었지?”
“...”
듣고 있다 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이 반대한 적 있었냐?”
“없었지.”
“이번이라고 다를까.”
“아...”
단번에 고민이 해결되어버리려는 찰나.
“물론 주식을 도박으로 보고 계신다면 좀 힘들겠지만.”
“...크흠. 그게 문제지.”
“잘 설명해 드려 봐.”
“사실 미리 선물을 주문하긴 해뒀거든.”
“오, 그래?”
“어. 다음 주에 도착할 예정인데... 선물 드리면서 어떻게 잘 얘기해봐야겠네.”
그 말에 고민하던 이신우가 길을 하나 제시했다.
“기왕이면 투자 중인 현황 같은 것도 보여드리면 좋겠지. 기업도 모두가 알 만한 곳으로. 그래야 도박으로 안 여기실 테니까. 건전한 투자라는 걸 증명하는 방향으로 해 봐.”
“오호, 좋은 생각인데?”
“내가 좀 똑똑하잖냐. 잘 해 봐라, 혹시 모르지. 이번에는 진짜 적성일지도.”
”새끼, 기대해라.”
“기대는 개뿔. 돈 잃고 울지나 마라.”
“흐흐흐.”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인마.
*
상담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증시에 관한 공부를 이어갔다.
주식을 하려다 보니 기업을 공부하게 되고 그 기업을 공부하다 보니 여러 관련 업체나 시장 상황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다. 사방으로 뻗어가던 가지가 모이기 시작하니 기둥이 보이고 그 기둥을 쫓다 보니 그것들이 결국 시대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뿌리에 속해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율주행, 전기차, 수소차에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ai에다가 양자컴퓨터에 메타버스까지."
4차산업이 세상을 지배하려는 과도기에 있음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엄청나구나, 진짜.
더불어 그런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 기업에 투자하면 적어도 돈을 잃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미국 기업들, 그중에서도 몇십 개의 기업을 추리고 고민하다 다시금 절반으로 추렸다.
너무 많아.
조금 더 공부하고 기업을 추린다.
다시, 또 다시.
그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한 끝에 남은 4개의 기업.
“누구나 알만한 기업들.”
이신우의 말대로 이런 기업에 투자중인 걸 보여드리면 설득하기가 더 쉬울 터였다.
좋아, 이걸로 사자.
미리 만들어뒀던 증권어플에 접속했다.
저녁 10시 35분.
이미 미국 증시가 개장한 시간이었기에 바로 해당 기업들을 매수했다. 자금 규모는 기간을 두고서 천천히 높여나갈 생각이었기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각각 500만 원씩.
총 2천만 원의 자본을 들인 소소하지만 소소하지 않은 투자가 진행되었다.
“은근히 살 떨린단 말이지.”
막상 투자가 시작되니 꽤나 두근거렸다.
설렌다고 해야 하나.
멍하니 차트의 움직임을 보게 되고 그 흐름에 일희일비하게 되었다.
“오오, 가나요, 가나요!”
“으음, 떨어지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헉...!”
황급히 고개를 털어내며 이성을 찾았다.
미쳤네, 이거.
왜 사람들이 주식을 도박이라고 말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되지.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도박이 아닌 투자를 지향하고 있었으니까.
“크흠.”
당장 증권 어플을 꺼버렸다.
간신히 호기심을 억누르고 나니 오늘 얻었던 카드 보상이 떠올랐다.
재능.
강하게 떠올리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그림작가의 창의력(소모성)]
[독특한 창의력이 6시간 동안 발휘됩니다. 그 안에 한 번의 작업을 완성하면 거기서 종료되며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종료되며 해당 재능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
다시 봐도 애매한 재능이었다.
“쯧.”
뛰어난 그림 실력도 아니고 그냥 창의력이라니 이걸 어디에 쓸 수 있으랴. 지금 써버리고 말자라는 생각으로 ‘네’버튼을 눌렀다.
[그림작가의 창의력이 샘솟습니다.]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