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5화 (15/277)

────────────────────────────────────

────────────────────────────────────

첫 번째 재능(2)

설명하기 힘든 추상적인 무언가가 뇌리를 파고들었다.

“어, 어어...?”

조각 같은 것들이 떠다니고 다시 합쳐지더니 이윽고 기이한 형상을 이룸과 동시에 어떤 깨달음을 줬다.

이미 알던 것들이.

그 모든 종류의 어떤 감각들이 재구성되었다.

새로이 바닥을 다지고.

구조를 세우더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마치 사진처럼.

부르르.

전율에 전신이 떨려왔다.

그것도 잠시.

처음 경험하는 기이한 영감이 부채질을 해댔다.

움직이라고.

지금 당장 이 영감을 사용하라고 말이다.

황급히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옆에 놓인 태블릿을 펼쳤다. 그림 전용 어플을 열고서 펜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슥, 스슥.

손끝에서 탄생하는 아기자기한 그림체.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예전에 웹툰 작가가 되겠다며 그림을 배운 적이 있었기에 일반인보다는 좋았고 그림 좀 배웠다는 사람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지금 떠오른 것은 말 그대로 창의력이었으니까.

남들보다 조금 더 특이한 것.

그러면서 시선을 끄는 것.

그런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그림체가 그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봉밥 그릇 앞에 앉아 우는 머슴.

장작을 패면서 웃는 머슴.

통장을 확인하는 머슴.

혼나는 중인데 무심한 머슴.

막걸리를 마시는 머슴.

곤장을 맞는 머슴.

화가나 펄쩍 뛰는 머슴 등등.

그 위로 상태를 드러내는 창의적인 글귀까지 집어넣는 순간 머릿속에 가득했던 기이한 감각이 사라졌다.

무언가 빠져나간 것만 같은 공허함.

“으음...!”

허우적거려도 되찾을 수 없는 감각이었다.

안타깝고도 아쉬웠다.

조금은 허망한 시선을 가만히 내렸다.

“이건...”

보이는 것은 19종류의 그림체였다.

이모티콘.

한눈에 이 그림들이 이모티콘 시안임을 알 수 있었다. 류성 또한 메신저를 사용하면서 많이 접하다 보니 충분히 알고 있는 영역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만 해도 이모티콘 심사를 넣어볼까, 계획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물론 실행하진 못했다.

그런데 지금, 독특하면서도 눈길을 끄는 완성된 이모티콘이 마법처럼 생겨났다.

잘 모르는 그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상당한데, 이거.

창의력이란 재능이 설마 이런 방식으로 나타날 줄이야.

그 감각이 너무나 아련했다.

다시는 잡을 수 없는 구름을 잠깐 손에 쥐어 본 기분이었다.

허망함은 잠시였다.

앞으로도 어쩌면 생각보다 자주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퀘스트만 계속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다시.

"후우..."

깊은 호흡을 한 번 뱉어내는 것으로 기분을 전환했다.

“이젠 보상으로 뭐가 나오건 절대 무시하면 안 되겠어. 그치, 럭키야?”

냐아아?

럭키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 이모티콘 시안을 정리했다.

밤 11시 45분.

다행히 하루가 끝나기 전에 심사에 넣을 수 있었다.

“기왕이면 통과되면 좋겠다.”

퀄리티는 충분해 보였다.

기다려보면 알겠지.

럭키를 안고서 침대에 누웠다. 천천히 녀석의 미간을 쓰다듬어주자 골골거리는 소리가 평화롭게 퍼졌다.

*

위로 조금 찢어진 듯한 눈매와 그 아래로 검은 먹물이 흘러내리는 느낌의 다크서클.

퀭한 볼살에 다부진 턱.

거기에 얄팍한 입술이 더해지니 깐깐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중년의 생김새로 둔갑 되었다.

“후우, 지겹네, 정말.”

“황대리님, 커피라도 한 잔 사드릴까요?”

“그래 주면 고맙고.”

“금방 갔다 올게요!”

그 사이에도 황대리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모티콘을 심사하는 중이었다.

“하, 진짜.”

이건 무슨 퀄리티도 저질이고 창의력도 꽝이었다. 그런 이모티콘 시안이 대다수였기에 시안을 걸러내면서도 스트레스가 쌓였다.

“황대리님, 여기요!”

“고마워.”

“헤헤, 그럼 저도 볼게요!”

“심사 참여자가 많으니까 오늘 들어온 건 다음 시즌으로 넘기고.”

“그럴까요?”

“그래, 어제 보내온 것까지만 확인하자고.”

“넵!”

1시간 정도가 더 지났을 무렵.

커피를 가져왔던 사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황대리님.”

“왜?”

“이거, 괜찮지 않나요...?”

“뭔데?”

황대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의자에 앉은 채로 미끄러졌다. 이어 모니터 화면에 떠오른 이모티콘 시안을 눈에 담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해당 이모티콘을 훑어가는 황대리.

“벼, 별론가요?”

“으음. 이거 언제 도착한 거야?”

“어젯밤이요.”

“어제?”

“네, 차례대로 보다가... 영 괜찮은 게 없어서 거꾸로 보고 있었거든요.”

“흐음, 그거야 각자 스타일이니까 뭐라고 말은 안 하겠지만, 대신 실수하지 말고.”

“넵!”

“그보다, 이건 왜 추천한 거야?”

“이거요?”

“어.”

“어, 음, 그러니까...”

사원이 고민하는 동안에도 황대리는 이모티콘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림체 자체는 뛰어나지 않았지만, 아이디어가 톡톡거리는 게 느껴졌다. 머슴을 형상화한 게 아기자기하면서도 서글펐는데 화룡점정은 바로 마지막을 장식한 절묘한 문구였다.

“얘는 고봉밥을 앞에 놓고서 배고프다고 울고 있잖아요.”

“그렇지.”

“장작을 패면서 힘든 게 아니라 즐겁다고 하고 분명 머슴이라 돈을 못 벌 텐데 통장 확인하면서 이제 부자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밌더라구요.”

“또?”

“혼나는 중인데 무심한 표정이 대비되고 화가 난 게 분명한 그림체인데 문구는 그거랑 반대되어서 눈에 확 들어온다고 해야 하려나요.”

그에 황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좋네. 이거, 다음 회의에 올리자.”

“진짜요?”

“어.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매력이 있어. 이건 내가 봐도 좋으니까.”

“넵, 팀장님!”

“자, 그럼 이런 거 몇 개 더 찾아봐야지?”

“어휴, 그래야죠.”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그렇게 류성의 시안을 포함한 몇 개의 이모티콘 시안이 다음 회의에 올라갔다.

*

심사결과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음?”

인터넷을 미리 찾아봤을 때만 하더라도 10일 정도는 걸린다고 들었었다.

근데, 벌써?

이제 겨우 5일이 지났는데.

나야 좋지만.

기다려야 할 시간이 줄었으니 좋은 일이기는 했다.

붙었으려나.

기대를 숨기지 못한 채 스마트폰 상단에 떠오른 메일 알람을 눌렀다. 그러자 자동으로 메일함으로 이동되었다. 최상단에 승인되었다는 글귀가 굵은 색깔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허, 진짜로?”

이미 거기에서 류성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기대는 했지만 설마 정말로 통과가 될 줄이야.

그 기쁨을 한참 누렸다.

“럭키야, 이거 좀 볼래?”

냐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럭키와 함께 말이다.

“좋지, 좋지? 나도 좋다.”

행복을 충분히 만끽한 뒤 냉정을 되찾은 표정으로 아래 나열된 내용을 천천히 살펴봤다.

[안녕하세요. 이모티콘 스튜디오입니다. 먼저 좋은 제안 주시고 오랫동안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품화 시작에 앞서 신규 계약이 필요한 경우...]

계약 담당자가 따로 있으며 3일 안으로 연락하겠다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메일이 끝났다.

“간단하구만.”

메일을 끄고 다시 공부를 이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이 번쩍였다.

슬쩍 쳐다보니 문자 하나가 날아온 상태였다. 대출 관련이거나 혹은 이상한 메시지가 대부분이라 슬쩍 보고 무시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oo고교 17기 학생회장, 김미소입니다. 올해 동창회 모임은 조금 더 특별한...

동창회 모임 문자였기 때문이다.

내용을 자세하게 보려는데 이신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 왜?"

(문자 받았냐?")

"동창회? 이제 읽어보려고."

(아아. 그래서, 갈 거야? 날짜 보니까 한참 남긴 했던데.)

"뭐, 나쁘지 않지. 오랜만에 친구 녀석들 얼굴도 좀 보고. 선생님도 뵙고."

(그럼 같이 가면 되겠네.)

"그러던가."

(오케이, 그럼... 어, 야야, 손님 왔다. 끊는다. 다음에 자세히 얘기하자고.)

"어, 고생해라."

통화를 종료하고 문자 내용을 살폈다. 단순히 동창이 모이는 게 끝이 아니라 적게나마 돈을 모아 모교에 후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후원이라."

혼자 조용히 읊조리는 순간.

[띠링!]

오랜만에 들려온 소리에 류성의 눈이 반짝였다.

눈앞으로 떠오른 글귀.

[퀘스트 발동!]

[모교 후원은 못 참지!]

[학생회장, 김미소는 해당 금액을 아주 알뜰하게 사용할 인재다. 이번 모교에서 열리는 동창회 모임에 참가하여 충분한 금액을 후원하라. 다만, 학교 측에 해당 사용금액 출처를 주기적으로 받을 필요가 있다.]

[남은 시간 : 15일.]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감전됩니다.]

퀘스트를 보면서 피식, 하고 웃었다.

이런 점이 참 좋았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나와 있었으니까. 학교 측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확인절차가 필요함을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었다.

다른 건 없나?

다시 한번 퀘스트를 살펴보던 도중에 의미심장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충분한 금액.

이런 문구는 처음이었다.

그간 가장 많은 돈을 썼던 퀘스트가 럭키를 동물병원에 데려갔을 때였다. 그때 이런저런 검사비로 수십만 원을 썼었다. 상한선이 적용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무려 4포인트를 획득했던 날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도 저런 단어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도대체 얼마를 쓰라는 이야기일까. 그 금액에서 얻게 될 보상 포인트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흡족해졌다.

"기대되네, 진짜."

설레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동창회 모임에 관한 생각을 애써 지워버린 채 노트북 앞에 앉았다.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현재 투자 중인 미국 주식의 수익률을 확인했다.

플러스 7.2퍼센트.

금액으로 따지자면 144만 원가량 수익중이었다.

"충분히 좋은데?"

간단하게 체크를 하고 투자중인 기업에 대한 이슈를 검색해봤다.

특별한 건 없었다.

대신 해당 기업들이 요즘 관심을 갖는 분야갸 눈에 들어왔다.

“메타버스에 NFT라.”

가상화폐와 깊은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산업이기도 했다.

[웹3.0의 시대가 도래하는 중?]

[NFT관련 코인들이 대세다!]

[메타버스 세상, 코인으로 화폐를 대신하다!]

[가상화폐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

[비트코인, 도대체 어디까지...]

[비트코인이 금을 대체할 수도 있다?]

[나날이 커지는 가상화폐...]

자연스레 비트코인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가상화폐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하지만 어느 부분이건 알아두면 손해 볼 건 없을 터였다.

묘하게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 모든 산업이 이어져있음을 느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아직은 흐릿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 기술이 발달할수록 저들의 특수한 관계성 또한 조금씩 더 짙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흐아, 뻐근하네."

벌써 밤이 늦어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알아보기로 했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