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6화 (1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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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1)

일상을 보내던 중, 드디어 선물이 도착했다.

일단 내 건 풀어놓고.

가족들을 위한 선물은 침대 아래에 밀어 넣었다.

“괜히 긴장되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곧 저녁이니 한 사람씩 도착할 터.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을 때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좋을 것이다.

언제가 좋을까.

일단 저녁은 먹은 후가 나을 것이고.

으음.

마침 가족들이 모두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오늘 밤 10시에 시작이니까 그걸 다 보고 말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먼저 선물을 주고 전업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현재 투자 중인 현황을 보여준다면? 수익률도 좋은 편이니 충분히 도움이 되리라.

거기에 한 가지 더.

카카오 이모티콘에 관한 것도 이야기를 하면 부족한 부분이 보완될 터였다.

주식 수익 및 배당금.

그리고 이모티콘.

잠을 자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수단, 즉 파이프라인을 늘려나가는 비전을 제시하기에 더없이 적합했다.

“딱 좋은데?”

마침 기다리고 있던 계약 관련 전화까지 왔다.

(안녕하세요, 류성 작가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저는 이모티콘 부서에서 계약을 담당하고 있는 최연수라고 합니다. 오늘 계약 관련으로 연락을 드렸는데요.)

“아아, 네.”

드디어, 계약하는 건가.

(계약 내용은 먼저 이메일로 보내드릴 예정이에요. 일단 자세하게 읽어보시구요. 계약서를 작성할 마음이 생기시면 연락을 주시면 돼요. 계약서 작성은 이메일로 하거나 혹은 직접 만나서 해도 되거든요. 이메일로 하길 원하시면 통화하면서 몇 가지 작업을 해주셔야 해요. 이후 따로 자택으로 서류를 보내드릴 예정이구요.)

“그래요?”

(네, 방법은 작가님이 편하신 대로 결정하시면 됩니다.)

“음, 저는 직접 보는 게 편하겠네요.”

우리나라 초거대 기업과의 계약인데 직접 만나서 하는 것도 추억이 될 것 같았다.

“만나서 할게요.”

(알겠습니다, 작가님. 그러면 메일부터 보내드릴 테니 검토하시고 연락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서 메일부터 확인했다.

[이모티콘 표준 계약서]

[1조 1항. 작가를 갑으로 칭하며...]

계약 내용을 천천히 읽어봤지만 크게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뒤, 수익 배분을 체크했다.

적당하다 싶은 수치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구골링을 해보니 수익 배분에 관한 내용이 적잖게 보였다. 찾아보니 확실히 표준계약서라는 게 느껴졌다. 외에도 계약할 경우 조심해야 할 악의적인 조항도 보이지 않았고.

“이 정도면, 뭐.”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의 계약서였다.

*

그날 저녁,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제 곧 저녁 10시.

어머니가 준비한 과일을 먹으며 거실에서 함께 TV를 시청했다.

"와, 진짜 똑똑하네."

"저 정도야, 뭐."

"헹. 아는 척은."

요즘 인기 있는 추리형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다 같이 모여서 즐겨보는 편이었는데 함께 추리하기도 하고 문제도 풀다 보니 어느새 프로그램이 끝나버렸다. 물론 류성은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후우..."

긴장의 연속이었으니까.

성인이 되고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포부를 가족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 이상의 압박감으로 다가온 까닭이었다.

"으, 왜 여기서 끝나냐고!"

"아오, 겁나 궁금하네."

"허허."

아버지도 아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

이제부터 그 아쉬움은 거짓말처럼 사라지리라.

"크흠."

류성이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레 모이는 시선들.

무시한 채 방으로 들어가서 몰래 받아뒀던 선물을 전부 꺼내왔다.

“응? 뭐야, 그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건 류현아였다. 류성은 접근하는 그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어낸 뒤 가장 먼저 부모님에게 다가갔다.

“여기, 선물이에요.”

“선물...?”

놀란 듯한 표정의 아버지와 어머니. 둘은 서로를 잠깐 쳐다보았고 이내 어머니가 먼저 깔끔하게 포장된 선물상자를 받았다.

“웬 선물일까? 오늘 무슨 날이었나?”

“그건 아니고, 그냥...”

“아들 선물인데 일단 풀어봐야지. 당신도 어서.”

“어어, 그래, 봐야지.”

이어서 아버지가 상자를 받으셨다.

“한 번 볼까.”

의외의 선물에 기분이 좋은지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지는 두 사람. 하지만 상자를 여는 순간 미소가 사라지고 표정이 굳어갔다.

“이건...”

두 사람이 류성을 쳐다봤다.

고민이 가득한 눈동자.

그 의미를 알 수 있었지만 류성은 침묵을 유지했다.

“이건, 너무 비싼 거 아니니?”

“무리 좀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에게 선물한 것은 지갑과 구두였다.

당연히 명품이었다.

두 물건의 가격만 해도 500만 원이 훌쩍 넘어갔으니까.

어머니의 선물은 가방이었다.

이 또한 300이 넘어갔다.

부모님의 선물만 더해도 800만 원이 넘어가는 거액이었으니 두 사람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전에 이벤트로 받았다던 그 돈, 다 쓴 거냐?”

“아뇨.”

“그럼...?”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요즘 투자를 하고 있었거든요.”

“투자?”

“네, 쉬면서 할 것도 없고 해서. 공부도 하고 투자도 조금 해보는 중이었어요.”

듣고 있던 가족들의 눈이 커졌다.

“주식 말이야, 오빠?”

“어, 뭐.”

“요즘 주식 많이 하기는 하지. 그래도 위험하지 않아?”

“미국 대기업에 투자 중이라서 괜찮아.”

“그래? 애폴이랑 구골같은 곳?”

“어.”

“오올!”

다행히 심각해질 뻔했던 분위기를 류현아가 부드럽게 풀어줬다.

짜식, 나름 눈치가 있다니까.

나중에 용돈이나 쥐여주자고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여기요. 현재 투자현황이에요.”

투자금은 2천.

현재 수익률은 10%를 넘어가는 상태였다. 코인으로 벌어들인 거액은 아직 보여주지 않을 예정이었다. 너무 큰 금액이라 오히려 반대할 수도 있을 테니까.

“으음.”

고민하던 아버지가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직접 보여주는 걸 보니, 제대로 투자를 하고 싶은 모양이구나?”

“네.”

“직업으로 삼아서?”

“맞아요. 전업투자자, 제대로 도전 해보려고요. 외에도 몇 가지 파이프라인도 만들고 싶고요.”

“파이프라인?”

“자고 있어도 알아서 돈이 들어오는 저만의 라인이요. 주식 배당금도 한 종류가 될 테고요.”

생각보다 준비를 해왔다고 여긴 걸까.

아버지가 미소를 머금었다.

“다른 건 더 없고? 주식 배당금 하나로 파이프라인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과한데?”

“사실은... 이모티콘도 곧 판매가 될 예정이에요.”

“으음?”

“얼마 전에 깨톡 이모티콘 심사를 넣었는데 통과했거든요. 이제 계약만 남았어요.”

“허어. 진짜냐?”

“그럼요.”

이번에는 이메일을 보여드렸다.

승인되었다는 문구와 심사에 넣었던 이모티콘 시안까지.

“이걸 직접 그렸다고?”

“네, 예전에 학원도 다녔잖아요.”

“그랬지.”

“어머머, 귀엽네.”

옆에서 함께 보던 어머니도 이모티콘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버지는 그림체보다는 상태를 표현하는 반어적인 단어에 집중했다.

“아이디어가 괜찮구나.”

“네, 이모티콘 판매가 시작되면 많이는 아니어도 매달 꾸준히 조금씩은 돈이 들어올 테니까요. 이것도 저만의 파이프라인이 되는 거죠.”

아버지가 재밌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튜브도 하겠구나?”

“에...?”

갑자기 너튜브라니.

“잠을 자면서도 돈을 벌고 싶다면서. 그럼 너튜브만한 게 없지.”

“아...!”

그 말에 좋은 아이디어가 스쳐 갔다.

지금 하는 투자.

그걸 가끔 너튜브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선행포인트를 사용해 상점에서 주식이나 코인에 대한 정보권을 뽑았을 때만 말이다.

그럼 아주 정확한 정보만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될 테고 그런 영상이 쌓이다 보면 가볍게 경제 시황을 분석한 영상이나 때로는 일상과 관련된 영상만 올려도 조회수가 뒷받침이 될 것 같았다. 그런 영상이 수십, 수백 개가 쌓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돈을 벌어다 주는 황금알이 되리라.

“그, 그렇죠. 너튜브도 할 생각이에요. 투자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거든요. 요즘 너튜브에 보면 경제 시황이나 증시에 대해 알려주는 영상도 많잖아요.”

“그렇지.”

“어, 음. 기회가 되면 책도 내고...”

“으흠.”

흡족한 표정을 짓는 모습에 안도감이 솟구쳤다.

“그래, 생각은 많이 한 거 같구나.”

“그럼요.”

“당신은 어때?”

“나야, 뭐. 우리 아들이랑 남편만 좋다면야.”

그에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가 류성을 쳐다봤다.

“그래, 성아.”

“네, 아버지.”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듯 즐기던 아버지의 분위기가 묵직하게 변했다.

이제부터가 진짜이리라.

“우린 널 믿는다.”

“아...”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걸 해야지. 그래, 투자하다가 돈? 잃어도 돼. 뭐가 됐건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그 정도는 우리가 해줄 수 있다. 다만, 지금처럼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어. 나는 그러질 못했지. 너무 늦게 실패를 경험했고 그 탓에 너희들을 힘들게 했어.”

“아버지...”

“고생이 많았을 거다. 근데도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고... 고마웠다.”

이런 이야기까지 들을 줄은 몰랐다.

더 힘든 건 당신이었을 텐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사이 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실패는 젊을 때 경험하는 거다. 그걸 밑거름으로 삼아서 실수를 줄이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되는 거야. 무엇보다, 지금처럼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우리를 설득한 적도 처음 아니냐. 이 정도 진심이면, 그래. 한 번 제대로 해 봐라.”

괜스레 먹먹한 감정이 올라왔다.

후우.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

“네, 정말... 열심히 할게요.”

이럴 거라고 예상했었다.

부모님이라면 이번에도 허락할 거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아버지의 말대로 열심히 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믿으마. 대신 도박처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투자를 했으면 싶다.”

“투자요.”

“그래, 지켜줄 수 있지?”

“네, 지킬게요.”

조금은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아들, 엄마도 믿을게.”

“응...”

어머니의 단출한 한 마디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크흠.”

울컥한 감정을 감추기 위해 몸을 돌렸다. 동생 두 녀석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는 순간 거짓말처럼 감정이 가라앉았다.

어우, 짜식들.

아직 남아 있는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너희도 하나씩 받고.”

류현아에게는 살바토레 신상 가방이 들어있는 상자를 줬고 류환에게는 최신사양의 태블릿이 들어있는 상자를 줬다.

“와, 오빠. 대박! 진짜 이걸 준다고? 리얼루다가?”

“형, 고마워... 잘 쓸게.”

“아껴서 써라.”

“예썰!”

부모님에게도 그렇지만, 동생에게도 이런 제대로 된 선물을 주는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받은 게 아니라 줬을 뿐인데 즐겁다니.

“럭키도 여기 간식 먹고."

냐아아아!

"어, 음. 저는 그럼 공부할 게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볼게요.”

“그래, 열심히 해라.”

뻘쭘한 마음에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끼이익, 탁.

문을 닫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으아...!”

한 차례 전쟁을 치른 듯했다.

먹먹하면서도 시원한.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여러 감정이 뒤섞여 폭포처럼 그를 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따스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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