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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킹(1)
모자에 걸린 작대기 하나를 직시하며 그를 불렀다.
“저기요."
“네...?”
“무슨 일이에요? 도와드릴게요.”
“아, 가, 감사합니다. 제가 오는 길에 아무래도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비라도 빌릴 수 있을까 싶어서...”
순하게 생긴 얼굴에 구원의 빛이 드리웠다.
절망이 걷히고.
순식간에 차오르는 희망찬 음성.
“아아, 그러셨구나.”
“네, 그렇습니다!”
“제가 빌려드릴게요.”
“저, 정말입니까?”
“그럼요. 군인이신데 이렇게라도 도와드려야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할 테니까.
그에게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건넸다.
“이 정도면 되려나요?”
“아, 아뇨. 너무 많습니다. 5만 원도 충분합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받아두세요.”
“아...”
“그리고 스마트폰도 찾아야죠.”
“그게...”
“전화라도 한 번 걸어보실래요?”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여기요.“
이등병은 조심스레 스마트폰을 받고서 본인의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누군가가 주워서 경찰서에 맡겨놓은 모양이었다.
“스마트폰도 찾아서 가면 되겠네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차비는 꼭 갚겠습니다!”
“괜찮아요. 휴가 잘 보내세요.”
이등병이 멀어지려는 류성을 보며 자세를 바로 했다.
“충성!”
“아니, 굳이 경례까지야...”
류성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이등병의 경례를 받아들였다. 그 나름대로는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었으리라.
거, 참.
그래도 확실히 기분은 좋았다.
[퀘스트 클리어!]
[정산 중...]
[정산 완료.]
[최하급 랜덤카드가 지급됩니다.]
[선행포인트 2점을 획득합니다.]
이런 좋은 일을 하고서 보상까지 받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
평화로우면서도 활기찬 일상을 보냈다.
"기운이 넘치는구만."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에 걸쳐서 각 2시간씩 동네를 한 바퀴씩 돌아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제대로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기본 체력이 조금 빈약한 편이었으니 이건 퀘스트 보상으로 마셨던 체력 강화 물약의 효과가 분명했다.
“좋긴 한데.”
문제는 퀘스트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동창회 모임에서 상당한 포인트를 획득할 거라는 기대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움직였다.
그 다음을 위해서.
이렇게 쌓이는 하나하나가 시간을 단축시킬 테니까.
어느덧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그 아래,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보였다.
그곳을 가볍게 거닐던 중이었다.
"노래...?"
잔잔하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몸이 절로 이끌렸다. 소리를 따라가니 공원 한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
곧이어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가 들려왔다.
[별은 영원히 닿지 않고
나는 오늘도 그런 꿈을 꾸고 있어
이룰 수 없는 그곳을 향해 걷고
너는 여전히 빛나고 있네]
좋아하는 노래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서 가사를 음미했다.
매력적인 목소리.
그게 가사와 어울려 마음을 간지럽혔다.
아무런 상념도 없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노래, 그 자체에 빠져버렸다.
아련한 무언가.
손에 잡을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노래라는 이름으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3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시간이 많은 걸 정화시켜주는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노래가 끝나버렸다.
"아..."
저도 모르게 탄식을 뱉어버린 류성.
조금 더 듣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버스킹을 하던 가수는 바로 다음 곡을 이어갔다. 잔잔하면서도 힐링이 되는 노래였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단번에 귀를 사로잡았다.
이것도 좋네.
마음이 편안해졌다.
[띠링!]
그 순간, 감상을 방해하는 소리가 울렸다.
[퀘스트 발동!]
[음악에 인생을 건다는 것은.]
[뛰어난 재능에도 자만하지 않고 노력하여 실력까지 갖췄으나 이름을 알리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인생을 노래에 바쳤고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음악을 하고자 결심했다. 그녀는 오늘도 버스킹을 하며 모금을 받는 중이며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눈앞에 있는 이름 없는 가수에게 자그마한 한 줄기 희망을 전하라.]
[남은 시간 : 30분.]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나뭇가지에 옷이 걸려 찢어집니다.]
그토록 원하던 퀘스트였지만 지금만큼은 방해를 받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 아무튼 뜨긴 했네.
천천히 내용을 읽어가는데 조금 놀랐다.
“으음.”
이렇게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노래 실력을 지니고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희망을 전하란 건데.
이미 정답은 퀘스트 자체에 나와 있었다. 가수의 앞에 놓여있는 열린 기타 가방에 후원금을 넣으면 될 것 같았다. 그 속에는 이미 동전 몇 개와 지폐 하나가 들어있는 상태였으니까.
슬쩍 지갑을 확인해봤는데 들고 있는 현금이 없었다.
겨우 2만 원.
이 돈을 후원할 순 없었기에 서둘러 근처 편의점에 들러 현금을 뽑았다. 은행 ATM기기가 아니어서 5만 원짜리 지폐는 뽑히지 않았다.
티리리릭.
돈 세는 소리가 울리고 개폐구가 열렸다.
현금 뭉치를 쥐었다.
손에 들린 만 원짜리 지폐 100장.
이 정도면 되겠지?
코인으로 벌어들인 돈이 정말 많기는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게 이 정도의 금액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거금에 조금씩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많이 쓸수록 보상도 증가하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쓰는 게 맞아.”
퀘스트를 내키는 대로 받을 수 없는 형편인 만큼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어떻게든 보상의 최대치를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이제 가볼까.
걸음을 옮기려는데 문득 퀘스트의 제목이 떠올랐다.
[음악에 인생을 건다는 것은.]
인생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손에 들인 100만 원은 그 차이가 현격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다.
몇 번을 봐도 돈이 부족한 느낌이었기에 결국 현금을 더 뽑기로 했다.
200만 원만 더.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었지만 주머니가 작아서 그 이상의 돈을 품에 넣는 것은 적잖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총 300장의 지폐를 지니고서 노래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이동했다.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긴장된다고나 할까.
이렇게 현금 뭉텅이를 들고 다니는 경험이 처음이라 그런 것 같았다. 스마트폰에서 보던 숫자는 2억을 넘어가건만, 현실에서는 겨우 300만 원에 긴장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알바비는 통장으로만 받았었다. 생각해 보면 100만 원의 돈을 실제로 쥐어보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그래봤자 한 손에 쉽게 잡힐 두께일 뿐이었음에도 어떤 실감이 났다.
이게, 돈이라는 거구나.
우습게도 현실을 느꼈다.
*
그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들려오는 노래.
흥분되었던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흘러드는 가사를 온전히 음미하기에 이르렀다.
“좋네...”
몇 번을 들어도 좋을 것 같은 노래였다.
몇 곡이 더 이어졌다.
류성은 현금을 품에 넣어둔 채로 그 자리에 서서 노래를 들었다.
시간이 녹아버린 기분이었다.
대신 영혼이 무언가로 가득해졌다.
충만한 감각이었다.
그제야 가수는 떠날 준비를 했고 류성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서둘러 아직 닫히지 않은 통기타 가방으로 이동해 현금을 내려놓았다.
조금 급하게 내려놓은 탓일까, 지폐가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흩어졌다.
300만 원.
그리 놀라울 것은 없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만 원짜리 300장이 가져다주는 시각적 효과는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아...?"
놀란 듯, 눈이 똥그랗게 커진 가수와 눈이 마주쳤다.
"노래 잘 들었어요."
"가, 감사합니다."
뭐라 더 할이 없었기에 몸을 돌렸다.
"어머, 봤어?"
"대박. 도대체 얼마야...?"
"와, 미쳤다."
함께 노래를 듣던 이들의 웅성거림이 들렸고 그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적잖이 부담스러웠기에 서둘러 그 공간을 빠져나갔다.
"저, 저기...!"
멀어지던 류성을 바라보던 가수는 황급히 기타 가방의 지퍼를 닫았다.
"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서 자리를 떠났다.
*
별스타그램에 올라온 영상 하나가 인기를 얻었다.
엄청난 숫자의 하트.
그리고 달리는 댓글이 시선을 끌었다.
-와, 저게 도대체 얼마에요?
-리그램 해요! 퍼갑니당!
-ㅋㅋ주작 아님?
ㄴ저런 걸로 굳이 주작을?
ㄴ모르죠, 뭐
ㄴ제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주작 아닌 거 같아요! 한참동안 음악 듣던 젊은 사람이 돈 주더니 노래 잘 들었다고, 그러고 가더라구요! 가수는 당황해서 어버버거리던데ㅋㅋ
ㄴ그래요?
ㄴ네, 여기 산책 자주 와서 사진도 자주 올렸던 곳임!
ㄴ오...!
ㄴ신뢰도 업업!
-리그램 할게요^^
-와, 한 이백? 삼백? 정도 되어보이는데 만원짜리로 보니까 뭔가 다르네요
-그러게요, 맨날 숫자로만 보다가ㅋㅋ
-이야, 노래도 좋은데요?
-크, 그러게요
-저런 사람이 왜 아직도 안 뜬건지?
-리그램 합니다!
-노래 짱짱 좋아요!
-와, 좋당...!
잠깐 시선을 떼었다가 보면 댓글 수십 개가 붙었다.
리그램 역시 마찬가지.
해당 영상이 별스타그램에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 정도가 일정한 선을 넘어갔을 무렵, 드디어 여러 인터넷 기사에서 해당 소식을 언급했다.
[버스킹 공연 중, 현금 뭉텅이를 건네다?]
[현금다발 받은 버스킹 공연 가수,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
[돈을 부르는 노래?]
하나같이 자극적인 제목들이었다.
아주 간간이.
있는 그대로를 전하는 기사 또한 존재하기는 했다.
시선은 많이 못 받았지만.
아무튼, 그게 시작이었다.
어느새 각종 매체로 번져나갔고 너튜브에서조차 언급되기 시작했다.
[아, 그 사건이요?]
[저도 영상 보긴 했는데, 놀랍긴 하더라고요.]
[노래도 참 좋았죠?]
[맞아요.]
[노래도 노랜데 돈 주는 사람이 영상에 제대로 안 잡힌 게 너무 아쉽네요. 궁금했는데...]
[처음에는 가수만 나오다가 돈 내려놓는 손이 살짝 나오긴 했었죠. 이후에는 돈이랑 멍한 표정의 가수만 나오더라고요.]
[아주 잠깐 뒷모습이 나오긴 했지만요.]
[뭐, 그 의문의 재벌? 아무튼, 그 사람이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노래가 정말 좋았다는 거예요.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그런 거금을 후원하겠어요.]
[몇 만원을 내는 것도 어려운데 말이에요.]
[그럼요. 정말 쉽지 않죠.]
[지폐가 흐트러져서 더 자극적이기도 했지만요.]
[돈방석 느낌이었죠.]
[맞아요, 딱 그런 느낌!]
상당한 화제가 되다 보니 자연스레 엔터 회사에서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흐음, 노래 잘 부르는데?”
“영상이 좀 흐리긴 한데, 페이스도 나쁘지 않은 거 같고요.”
“그치?”
“네. 컨텍 한 번 해볼까요?”
“어, 찾아서 만나 봐.”
“알겠습니다!”
그들은 가수의 연락처를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게 쉽지 않자 결국 대부분이 해당 공원에 들러 가수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