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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킹(2)
평소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던 류성은 또다시 들려오는 노래에 방향을 틀었다.
전에 그 사람이네.
공원으로 이동하는데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뭔 일이라도 있나?”
조심스레 접근해보니 수십이 훌쩍 넘어가는 인파가 노래를 듣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양복 차림의 사내도 몇 명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마치 감평을 하듯 노래를 듣던 그들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
류성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거, 나 때문인 건가?
예전과는 너무 다른 상황에 얼핏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둘러 인터넷을 뒤져보니 생각보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허, 진짜였네."
설마 누군가 영상을 찍고 있었을 줄이야.
화제가 될만하긴 하네.
이게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영상에는 류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잘 됐네.
저 가수에게는 분명 그럴 것이었다.
나한테도 그렇고.
퀘스트 보상도 쏠쏠하게 얻었으니 말이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고.
"실례합니다."
한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넸다.
"기획사에서 나왔습니다."
"아...!"
"직접 들어보니 목소리가 아주 좋네요. 계약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무, 물론이죠."
"당장은 그렇고, 시간 나면 연락해주십시오."
"네...!"
그 뒤를 이어 두 사람이 더 같은 행동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류성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등을 돌렸다.
저벅.
새로운 퀘스트를 얻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으면서 인터넷 뉴스를 훑었다.
“오늘도 비슷하구만.”
“응? 뭐가?”
“그 바보같은 얼굴이 어제랑 비슷하다고."
"뭔 헛소리야! 바보는 내가 아니라 오빠겠지!"
그보다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이것들은 대체 뭘까.
"...밥은 다 먹고 말해라, 더러우니까."
얼굴에 묻은 것들을 떼서 류현아의 볼에 닦아냈다. 그걸 또 날름 핥아먹는 걸 보니 속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맛있기만 하구만."
"어휴, 어쩜 그렇게 더러운 짓만 골라서 하냐?"
"내 맘이거든요?"
그러더니 갑자기 그 못난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아, 그래서 뭐냐고! 뭐 보는데?"
그리곤 스마트폰에 떠있는 인터넷 기사를 확인하더니 김빠진 표정으로 돌아갔다.
"뭐야, 뉴스 보는 거였어? 이상한 거라도 보는 줄 알았네."
“내가 넌줄 아나.”
“내가 뭐! 흐음, 그래도 전업투자자 한다더니 본격적인데?”
“크흠, 제대로 해야지.”
꼭 그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뭐가 비슷한데?”
“뉴스 기사들이.”
“아하...?”
“이제 신경끄고 밥이나 먹지?”
“예엡!”
어휴, 정말.
한대만 제대로 때려주고 싶지만 꾸욱 참기로 했다.
그래, 다 그런 거지.
이젠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으니까.
다시 인터넷 기사를 눈에 담았다. 세상사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거기서 거기인 걸까. 무언가 시선을 끄는 종류는 없었다. 그래도 읽는 걸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인터넷 기사를 접하다가 퀘스트의 단초를 발견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던 와중이었다. 올라온지 얼마되지 않는 따끈따끈한 소식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우 떠들썩했던 버스킹 가수가 능력 좋은 중대형 기획사에 들어갔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야.”
퀘스트 하나로 시작된 행동 하나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었다.
신기하긴 하네.
좋은 일이었으니 기억 속에 남겨두기로 했다.
이름이 연지은이었구나.
비슷한 기사 하나를 더 보면서 이름도 알아냈다. 그 이상은 특별한 내용이 없었기에 다른 기사를 찾아봤다. 그러는 사이 아침밥도 깔끔하게 클리어했다.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서 집을 나섰다. 주말이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옆동네를 탐방하러 나섰다.
나와주면 좋겠는데.
버스킹 가수 이후 한동안 퀘스트가 등장하지 않았으니 오늘은 조금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
*
행운이 폭발하는 날이었다.
매우 간단한 퀘스트가 무려 2개나 등장했고 그것들을 클리어함으로써 현재까지 총 27점의 선행포인트를 모을 수 있었다. 이제 3점만 더 모으면 주식이나 코인 정보권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내일 저녁에 시작하는 동창회 모임에 참가해서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면 3점 이상의 선행포인트는 무조건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럼 30점이 되는 거지.
그걸로 다시 한 번 돈을 크게 불릴 수 있으리라.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두근, 두근.
하루만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오늘은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지금까지 쓰지 않고 모아둔 카드를 오픈하기로 했다. 전부 꽝이 나온다면 내일의 대박을 위한 액땜으로 삼아도 괜찮으리라.
카드 오픈.
핑그르르 돌아가는 카드 하나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상당한 속도로 카드가 접근하더니 꽝이라고 적힌 글귀가 눈앞에 드러났다.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충분히 예상했었으니까.
카드 하나를 더 오픈했는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화아아악-
강력한 빛이 날아들었다.
[최하급의 ‘재능’카드를 택했습니다.]
[놀라운 재능입니다.]
[보상으로 ‘침착함(Passive)’을 습득합니다.]
[재능을 떠올리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능이 다시 등장했다.
“오오옷...?”
당장 확인을 해봤다.
[침착함]
[언제 어디서건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이다.]
무언가 대단한 듯 대단하지 않은 느낌의 그런 재능이었다.
“...기분 참 묘하네.”
더러우면서도 좋은.
이중적인 감정.
류성은 재능을 몇 번이나 더 읽어본 뒤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 남은 카드를 오픈했다.
역시나 꽝이었다.
그래도 재능 하나를 건졌으니 상당한 이득이었다. 저 침착함이란 재능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음 날.
오늘은 외출 대신 주식과 코인 시장에 관해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경제의 흐름이 어떠할지.
그에 발맞추는 각 기업의 비전에 대해서.
보면 볼수록 확신밖에 들지 않았다.
4차산업.
그 흐름에 올라탄 거대 기업들은 앞으로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하게 될 것임을 말이다.
침대에 누워 럭키와 함께 너튜버 영상도 몇 개 시청했다. 그중에 퀄리티가 좋은 영상의 채널에는 구독 버튼을 눌렀다.
띠띠띠.
그러다 울린 알람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벌써 5시였다.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하고서 출발하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고.
동창회에 참가할 준비를 시작했다.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에 현관을 나섰다.
“다녀오겠습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도착함.”
(오케이, 지금 내려간다.)
“어.”
치킨집 앞에 도착하기 전, 이신우의 차가 도로에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류성은 해당 차량의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며 이신우를 가볍게 훑었다.
“평소랑 다르다?”
“크흠, 너도 만만치 않아, 인마.”
“오랜만이니까.”
“그치, 흐흐.”
뭔가 단정하게 꾸민 서로의 모습이 어색했지만, 그래서 더욱 재밌었다.
“크, 진짜 간만에 얼굴들 보겠네.”
“가끔 연락은 하잖아.”
“단톡방이 있긴 한데 솔직히 1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렵잖아.”
“하긴.”
“은근히 다들 바쁘다니까.”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동창회 모임 장소로 이동했다. 약 35분을 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규모가 있는 깔끔한 호텔이었다.
“여기 뷔페식당을 빌렸다는 거지?”
“어, 평일에는 단체 손님만 받나 보더라고. 뭐,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작년에는 엄청 이상한 식당이었는데 먹고 마시다 보니까 1인당 3만 원 넘게 나왔었잖아. 이번에는 뷔페라서 미리 가격도 알 수 있고. 2만 5천 원에 퀄리티도 굿.”
“전보다 훨씬 낫겠네.”
“그치.”
“크흐, 오랜만에 포식하겠구만.”
둘은 주차하고서 2층으로 올라갔다.
벌써 분주한 내부.
얼굴만 아는 이들부터 해서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그리고 유독 친하게 지냈던 이들이 한 명씩 눈에 들어왔다.
“여기!”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손을 흔들었다.
“여, 성찬이.”
“얼마 만이냐, 이게?”
“진짜 반갑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최성찬이었다. 류성과 이신우는 최성찬이 자리 잡은 원형 식탁의 맞은편에 앉았다.
“야, 최성찬. 완전 그대론데?”
“마찬가지야, 인마.”
둘의 인사에 류성이 웃었다.
“야야, 둘 다 작년에 봤으니까 그대로지.”
“아, 그런가?”
“그런 거지. 그보다 선생님은?”
“아, 참. 저기 중앙 홀 보이지? 저기 다 계셔.”
“인사나 드리고 와야겠다. 가자, 너도.”
“오케이.”
“난 했으니까 여기 있을게, 갔다 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선 류성과 이신우는 중앙 테이블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허허롭게 웃고 계신 고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류성의 걸음이 빨라졌다. 거의 뛰어가듯 그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오? 류성이 아니냐, 신우랑.”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담임선생님이었다.
김창호 선생님.
오랜만에 뵈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그럼, 아직 힘이 넘쳐.”
“저보다 좋아 보이시는데요?"
"녀석, 농담도."
"흐흐. 그보다 오늘 모금도 한다고 들었어요.”
“맞아.”
김창호 선생님이 고개를 돌려 김미소를 쳐다봤다.
“저기 있는 미소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더구나. 힘들게 지내는 학생들이 좀 있었는데 우리로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지. 미안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참.”
류성도 그녀를 쳐다봤다.
김미소.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장이었지만 대화를 많이 나눠보진 못했다. 같은 동아리에 속했었기는 한데 역시 데면데면했었고. 뭐, 그래도 착실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항상 전교 3위 내에 들었던가.
그녀는 매번 시험을 칠 때마다 이름이 들려오는 학생이었다. 몇 반에 있는 누가 이번에도 1등을 했다더라, 혹은 모의고사에서 몇 점을 맞았다더라. 거기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이름이 바로 김미소였다.
“모금은 자유롭게 받는다고 하니까 부담 갖지 말고.”
“네, 그럴게요.”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다행이구나.”
선생님의 이런 점이 좋았다.
대부분 사람이 가볍게 던지곤 하는 질문을 결코 쉽게 입에 담지 않으셨다.
취업은 했냐.
했으면 무슨 일 하는 거냐.
회사는 어디냐, 등등.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바라봐주실 뿐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 그래.”
그 사이 얼굴이 가물거리는 다른 친구들이 다가와 선생님께 인사를 올렸다. 류성과 이신우는 다른 선생님한테도 인사를 드린 뒤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아, 오랜만에 뵈니까 좋다.”
“그러게, 여전하시네. 난 애 아빠가 되어서 그런가, 뭔가 더 뭉클한 게 있네.”
“그럴 수 있지.”
“가끔 학교에 들러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참 쉽지가 않아, 이럴 때 아니면.”
“다 그렇게 사는 거지.”
그래도 앞으로는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주위를 바라보면서.
무거웠던 한 걸음을 나아가면서.
숨겨뒀던 손을 내밀어보면서.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그런 삶.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순응하자는 말은 아니고.”
“응?”
“노력하잔 얘기야.”
“아아, 그래야지. 웬일이냐, 옳은 소리를 다 하고?”
“뭐, 그냥.”
퀘스트를 알던 때와 모르던 때의 류성은 분명 다른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