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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포인트(1)
충분한 기쁨을 나눈 다음 날 아침. 동생 두 녀석이 등교하기 전에 지갑을 꺼냈다.
“자, 받아.”
그동안 줘야겠다고 생각만 했었다가 이제야 겨우 행동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물론 어제 했던 안 준다는 말은 농담이었고.
“오, 오빠?”
“형, 너무 많은데?”
“괜찮아.”
류현아와 류환, 각각 50만 원씩. 대학생이니 쓸 곳이야 차고도 넘칠 터였다.
그런데 둘 다 머뭇거렸다.
언제는 용돈 달라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우더니 막상 주니까 또 쉽사리 받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짜식들.
무슨 마음인지는 알겠다만.
“싫으면 말고?”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잘 쓸게, 형.”
“그래, 앞으로 내가 주면 그냥 고맙게 받으면 돼. 오케이?”
“콜!”
“알겠습니다요, 오라버니!”
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본 이후 거실 소파에 앉아 아버지가 나오길 기다렸다. 출근 준비를 마친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준비했던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아버지.”
“응?”
“이거 용돈으로 쓰시라고 준비했어요.”
“뭐? 용돈?”
“네, 제대로 돈 벌면 꼭 드리고 싶었거든요. 받아주세요.”
잠깐 얼떨떨한 표정을 하시던 아버지의 표정이 이내 밝아지셨다.
“고맙다, 우리 아들. 정말 다 컸구나.”
“뭘요.”
“잘 쓰마.”
평소보다 훨씬 더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아버지를 배웅했다.
“다녀오세요.”
“그래.”
이후 어머니에게도 같은 금액을 용돈으로 드렸다.
“내가 살면서 이런 걸 다 받아보네.”
“좋지?”
“그럼, 우리 아들 최고다!”
“나중에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고 해.”
“안 그래도 오늘 보기로 했는데.”
“오, 잘됐네.”
“고마워, 아들. 맛있는 거 사먹을게.”
머지않아 어머니도 외출했다.
집은 조용했지만 기분은 넉넉했다.
“자, 럭키도 약 먹어야지?”
냐아아아....?
반항하는 듯한 럭키에게 분유를 먹인 뒤 류성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노트북 앞에 앉아 증시에 관한 공부도 했고 투자를 한 영화에 대해서도 가볍게 검색해봤다.
그리고.
파워에디슨의 주가도 살폈다.
18,720원.
가격이 상당히 오른 상태였다.
원금과 약간의 수익금을 빼버린 게 조금은 후회될 정도였지만 이미 놓친 버스였다.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는 것만이 돈을 버는 길이란 생각은 변함이 없었으니까.
"조금 더 팔아야겠다."
이렇게 천천히, 분할매도를 이어갈 심산이었다.
생방송도 틀고.
마침 오전 9시였기에 타이밍도 딱이었다.
<파워에디슨, 벌써 이 가격이라고?! 오늘도 매도해 보겠습니다!>
-주식대마왕TV
구독자가 어느새 150명을 넘어선 상태였기에 생방송을 틀자 빠르게 숫자가 채워졌다.
익숙한 닉네임도 보였다.
알탕 : 이게 얼마만이에요! 그동안 왜 방송 안 틀었어요? 아, 공지를 보긴 했는데ㅠㅠ
짝발 : 아니, 이 사람이...!
“이야, 알탕님. 진짜 반갑네요. 짝발님도 어서 오시고요. 공지에도 남겼듯이 주기적으로 방송을 하는 건 조금 힘들어요. 주식 매매 자체를 자주 하는 편도 아니라서요.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보다, 두 분 모두 수익은 좀 나셨어요?”
알탕 : 너무 아쉽네요! 저는 아직 전부 들고 있죠! 주식대마왕님은 왜 벌써 팔아요?
짝발 : 난 밑장빼기는 안 해!
류성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분할매도가 취미입니다.”
그리고 현재 수익현황을 체크했다.
종목명 : 파워에디슨
매입금액 : 80,051,790
수익률 : 102.8%
평가손익 : 82,293,240
총평가 : 162,345,030
수익률이 100퍼센트가 넘어간 상태였다.
“이야, 오랜만에 봤더니 엄청나네요.”
정말 감탄밖에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원칙은 원칙.
분할 매도할 타이밍으로 나쁘지 않다고 여겼기에 즉시 매도버튼을 눌렀다.
현재 지닌 8673주.
그 중에 2663주의 수량을 입력했다.
“그럼 매도할게요.”
순간적으로 채팅 화력이 거세게 솟구쳤다.
알탕 : 아, 너무 아까운데...!
주린잉 : 들어오자마자 이게 머선 일이야!
펜다 : 이야, 그래도 수익 축하^^
가물치 : 익절은 언제나 진리!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덕분에 생겨난 거금 5천여만 원.
돈이 쌓이네, 정말.
이 돈으로는 자동차를 한 대 구매할 계획이었다. 럭키를 데리고 동물병원까지 뛰어갈 때의 그 염원이 너무 강력했던 탓인지, 요즘 들어 차량에 관심이 급증했다.
한 대 있으면 좋으니까.
면허도 있었고.
돈도 부족하지 않을 수준이었으니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자, 그럼 잠시 증시에 관해서 이야기나 좀 해볼까요?”
그간 공부했던 것들을 풀어서 이야기하며 소통을 이어갔다.
“요즘 미국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더라구요. Fed에서 금리를 올린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면서 특히 나스닥이 고꾸라지고 있거든요.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나라도 결국 올릴 수밖에 없는 건 아실 겁니다. 결국 증시 자체가 조금 휘청일 거라는 예상이 드네요. 물론 이런 와중에도 올라갈 기업을 찾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지만요."
그렇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 뒤.
“그럼, 분할매도 할 타이밍이 오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생방송을 종료했다.
*
류성의 어머니, 이희연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점심은 내가 쏠테니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응? 희연이 네가 웬일이야?”
“그러게? 그런 말 잘 안하잖아.”
“얘네는 내가 언제...”
“에이, 다 아는데 무슨.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친구들의 재촉에 이희연이 손을 살짝 저으며 웃음기를 머금었다.
“호호, 글쎄 성이가 용돈을 주더라고.”
“응? 류성이? 첫째 아들?”
“응. 맞아.”
“어휴, 우리 아들은 용돈은커녕 매일 속 썩이기 바빠 죽겠는데.”
“그래서 용돈이 얼만데?”
그에 이희연이 잠시 멈칫했다.
“실은, 아직 안 봤어. 뭔가 보려니까 괜히 두근두근하는 거 있지.”
“첫 용돈이지?”
“응.”
“그럼 그럴 수 있지. 같이 볼까?”
“그럴까...?”
그제야 이희연은 가방에 넣어뒀던 봉투를 꺼냈다.
“그럼, 본다?”
“어서.”
봉투를 열고 손을 넣어봤다. 잡히는 느낌은 그렇게 두툼하지는 않았다. 친구들 앞에서 너무 자랑을 많이 했나, 싶은 생각을 하면서 지폐를 꺼냈다.
“으응?”
5만원짜리 지폐가 한가득이었다.
“어머머, 이게 얼마야?”
“와, 용돈을 많이 줬네.”
헤아려보니 정확히 100만 원이었다.
“너, 너무 많은데.”
사실 한 20만 원 정도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100만 원이라니.
당황은 잠시, 솔직히 너무 기뻤다.
“요즘 성이 뭐하는 거라도 있어?”
“아, 최근에 이모티콘을 내긴했는데...”
“이모티콘?”
“응. 잠깐만.”
이내 깨톡에서 머슴 이모티콘을 검색해서 보여줬다.
“이거야. 성이가 예전에 웹툰 하겠다고 그림 잠깐 배웠었잖아. 재능이 있었나봐, 글쎄 바로 심사에 넣어서 통과했다지 뭐야.”
“대단한데?”
“아오, 부럽다, 부러워.”
“호호, 이게 인기가 좀 있다나 봐. 잘 팔리고 있어서, 그래서 이렇게 많이 줬나 보다.”
“축하해.”
“아들 잘 뒀네.”
친구들도 하나같이 기뻐하며 웃어줬다.
“그럼 희연이, 오늘 나 비싼 거 먹어도 돼?”
“당연하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희연은 오늘 제대로 친구들한테 한 턱을 쏘기로 했다.
*
회사 대표 업무를 마무리 지으려던 오후 4시 55분 경.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저녁?”
(응, 어때? 다들 모였는데.)
류성의 아버지, 류희석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토종 닭백숙에 인삼주 한 잔 어때?”
(토종닭? 꽤 비쌀 텐데. 어쩌냐, 우리가 지금 지갑이 얇아서.)
“뭔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 오랜만에 내가 쏘는 거니까 돈 걱정은 말고.”
(으응? 그래? 괜찮겠어?)
류희석이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괜찮고말고. 아들 녀석이 오늘 아침에 갑자기 용돈을 주더라고.”
(뭐? 진짜?)
“그래. 그러니까, 오랜만에 몸보신이나 하러 가자.”
(크으, 좋지. 아는 곳은 있고?)
"주소 보낼 테니까 바로 튀어 와."
(알았어, 지금 간다!)
그렇게 토종 닭백숙과 인삼주를 마시며 그 날, 하루종일 아들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아이고, 고막 떨어지겠네, 거, 참.”
“얼마나 대견하냐.”
“알았어, 인마. 부럽다, 부러워!”
“크흐흐.”
모두가 행복한 하루였다.
*
드디어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에게 원하던 연락처를 받았다.
“네 곳이네.”
간단한 설명이 문자에 첨부되어 있었다. 세 사람은 개인적으로 유기견, 유기묘를 돌보는 중이었고 한 곳은 정식으로 운영되는 보호소였다.
보호소부터 볼까.
상호명을 검색해보니 장소가 나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오호.”
리뷰에 적힌 글은 좋았다.
자세하게 읽어보니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다.
<정말 흔하지 않은 보호소...!>
<소액 후원합니다.>
<항상 감사해요ㅠㅠ>
<건강하길...>
하지만 역시나 직접 보는 게 가장 확실할 터. 일단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봉사활동 메뉴를 선택했다. 어떻게 운영되는지 제대로 보려면 역시 몸소 체험해보는 게 최고일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당일 예약을 운영하고 있었다. 시간을 좀 보다가 오전 11시 타임을 지정했다.
[예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 창이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하늘땅 별땅 유기견 보호소입니다. 오늘 봉사활동 신청해주셔서 문자 안내 보내드립니다. 참고하셔서...]
내용을 읽으면서 출발 준비를 시작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조금 일찍 도착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서둘러 방을 나섰다.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를?”
“그냥 간단하게 운동 좀 하려고.”
“럭키 약은 분유에 섞어서 주면 되지?”
“응!”
“조심하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오니 후덥지근한 바람이 맞이해줬다.
습습하면서도 더운.
진정한 여름의 시작이었다.
“날씨가, 어우...!”
그나마 오전이라 견딜만은 했다.
오늘 땀좀 흘리겠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이는 공원.
산책을 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음?”
어느 한 곳,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지?
시끌벅적한 상태였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발걸음을 돌려 그곳에 도착해 보니, 상처 입은 강아지가 구조되는 장면이 보였다.
다만 신기한 것은 구조 중인 사람이 아무리 봐도 구조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봐도 일반인이었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마침 옆에서 아주머니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 너튜버래요.”
“그래요?”
“네, 산책하러 왔다가 유기견이 쓰러진 거 보고 데려간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고, 가서 뭐한대요?”
“치료하고 입양 보내기 전까지 보살피나 봐요.”
“좋은 일 하네요.”
“검색해서 보니까 유기견, 유기묘 많이 돕는 거 같더라고요. 끝까지 입양이 안 되면 직접 키운다는데, 영상으로만 봐도 어휴... 이미 키우는 애기들이 스무 마리는 훌쩍 넘겠던데.”
“아이고...”
“고생이죠, 뭐.”
류성이 슬쩍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저 사람 너튜버 채널명이 뭔지 아세요?”
아주머니가 류성을 보더니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여기 있네요.”
“아, 고맙습니다.”
채널명은 ‘해피강냥이TV’였다.
류성은 즉시 본인의 스마트폰에서 해당 채널을 검색한 뒤에 구독 버튼을 눌렀다. 그사이 구조가 끝나고 너튜버가 강아지를 데리고 사라졌다.
“흐음.”
이상하게 시선이 가는 사람이었다.
저벅.
고민하다가 그 사람의 뒤를 조금 멀리서 따라가 봤다. 너튜버가 향한 곳은 동네의 어느 한 동물병원이었다. 다친 강아지를 데리고 내부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확인하고서야 류성은 다시 지하철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