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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1)
정신을 차리고서 대답부터 했다.
“어, 그럼요. 해야죠.”
“표정에 쓰여있네요, 너무 넓다고요.”
“아, 하하...”
“너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봉사자가 더 올 거라서 한 구역만 맡으면 되니까요.”
“그랬죠, 참. 어후, 다행이네요.”
사실 운동장이 너무 넓어서 조금 걱정하긴 했었다. 다른 봉사자도 있다는 걸 잠시 까먹은 것이다. 그 사실을 상기하면서 맡은 구역으로 이동했다.
“여기 이 부분만 정리하면서 아이들이랑도 놀아주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가벼운 청소 겸 강아지와의 놀이를 이어가는 사이 다른 봉사자들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어서 와요. 또 왔네요.”
“그럼요!”
“자자, 일단 여기부터...”
그들도 구역을 맡아 운동장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라난 잡초를 자르기도 했고 강아지들이 싼 응가를 치우거나 위험해 보이는 잔해를 정리했다.
외에도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면서 강아지를 살피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의심스러운 장소를 확인하는 등, 최선을 다해 살펴봤지만.
"여긴 진짜..."
유기견들에게는 최고의 보호소인 것 같았다.
*
봉사활동을 마무리하고 후원 의사를 밝힌 순간이었다.
[이미 동일한 퀘스트가 존재합니다.]
[퀘스트가 공유됩니다.]
[유기견 보호소 ‘하늘땅 별땅’은 유기견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입니다. 해당 보호소에 후원을 결정한 것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정기후원 퀘스트가 공유되었다.
좋은데, 이거?
여러 곳에 후원하게 되고 해당 퀘스트가 계속 합쳐진다면 써야 할 후원액은 커지겠지만 그에 비례하여 보상도 증가할 터였다.
상한선이 얼마인지 안다면 거기에 맞춰서 후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진 않기로 했다. 후원금액만큼은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고 싶었다.
“후원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정기적으로요.”
“아이고, 저희야 정말 감사하죠.”
“오늘 보니까 정말 강아지들이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금액이 크진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그럼요, 정말 많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일단...”
당장 후원금액을 보내기로 했다.
여기도 200만 원.
계좌에 돈을 입금하니 운영하는 부부가 눈을 크게 떴다.
“액수가 큰데요?”
“괜찮아요.”
“아이고, 다음부터는 조금만 주셔도 됩니다.”
“금액이야 매달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매달 꾸준히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야말로요.”
[퀘스트 ‘이제는 반려동물의 시대’가 갱신됩니다.]
[후원 목표치 : 2/3]
[연계퀘스트 ‘어서와, 정기후원은 처음이지?’가 갱신됩니다.]
[정기후원 금액 : 400만 원]
날씨가 더워서 땀을 많이 흘리긴 했지만 정말 뿌듯한 시간이었다. 정말 열심히 움직였는데도 체력적인 부담이 크지 않았다.
체력 물약의 효과일 터.
두고두고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보상이었다.
“그럼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네, 고생하셨어요!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서는 길.
앙앙! 왕왕! 월월!
울타리 너머 보이는 운동장에서 강아지들이 거칠게 짖어대며 달려왔다. 하나같이 꼬리를 흔드는 것이 꼭 가는 길에 인사를 받는 것만 같았다.
“올 때랑은 다르네, 녀석들.”
정말로 배웅이라고 해주는 걸까.
“잘 지내고 있어라, 다음에 또 보자.”
그렇게 환송을 받으며 유기견 보호소를 나섰다.
*
봉사활동이 힘들긴 했던 모양이었다.
하루종일 늘어진 채로 지냈다.
오랜만에 산책도, 공부도 하지 않은 게으른 하루를 보냈다.
가끔 이런 것도 좋네.
매일을 바쁘게 살아갈 순 없었으니까.
“음, 그리고.”
조금 더 체력 물약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건 좀 더 활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제대로 해봐야지.
일단 마무리부터 좀 짓고.
일전에 수의사에게 받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미 후원을 마친 ‘하늘땅 별땅 보호소’를 제외하면 세 사람이 남은 상태였다.
그들에게 차례대로 연락을 돌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일전에 수의사 선생님한테 연락처를 받은 사람인데요.”
(혹시 그 후원하려는 그분이신가요?)
“맞습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네, 제가 연락이 좀 늦었죠. 말씀드렸듯이 후원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저야 정말 감사하죠.)
“그럼 혹시 뵐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러면...”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한 사람씩 전부 만나 어떻게 유기견과 유기묘를 보살피고 있는지 살펴봤다. 하나같이 힘들어 보여서 후원을 결심하면 그때마다 연계 퀘스트가 반응하면서 숨겨진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인물은 유기묘를 기르고는 있으나 그걸 빌미로 너튜버 후원을 비롯해 군청에서 여러 가지 혜택을 받는 중입니다. 유기묘 입양지원비, 중성화 수술 지원비 등을 받고 있으나 정작 유기묘들의 영양 상태와 건강상태는 좋지 못합니다.]
절로 분노가 치밀 정도의 인간도 있었다.
빌어먹을 놈.
심지어 시스템의 언급으로 보아 중성화 수술 지원비를 받았음에도 수술은 안 시킨 거로 보였다. 열이 뻗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거기서 나와 바로 군청에 연락을 넣었다.
“네, 군청 맞죠? 문의할 게 있어서요. 네, 여기 주소가... 네, 거기요. 군청에서 여러 가지 편의를 봐준다고 들었는데요. 지원금도 주고요.”
(아, 네. 맞습니다. 거기가 유기묘를 돌보는 곳이라서요.)
“그래요? 제가 보니까 아니던데요?”
(네? 그게 무슨...)
“후원하려고 와봤는데 아이들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요. 심지어 대다수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을 안 한 상태였고요.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중성화 지원금까지 지급한 것 같은데, 이게 맞습니까?”
(어, 그럴 리가...)
변명하려는 모습에 한층 더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아무리 무심해도 영양 상태랑 건강 정도는 제대로 체크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세금, 그렇게 쓰라고 내는 거 아닙니다.”
세금이란 단어가 나오자 전화를 받은 이도 사태를 파악했는지 사과를 해왔다.
(일단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즉시 제대로 확인해보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머지 두 사람은 전부 진심으로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보살피고 있었다.
“일단 매달 100만 원씩, 정기적으로 후원할게요.”
“가, 감사합니다, 정말.”
한 사람당 100만 원씩.
두 사람이었기에 200만 원이 추가되었다.
[퀘스트 ‘이제는 반려동물의 시대’가 갱신됩니다.]
[후원 목표치 : 4/3]
[초과 달성중입니다.]
[연계퀘스트 ‘어서와, 정기후원은 처음이지?’가 갱신됩니다.]
[정기후원 금액 : 600만 원]
퀘스트는 일단 초과로 달성을 했다.
남은 시간은 6일.
기간이 완전히 종료되면 보상이 들어올 모양이었다.
“후우, 깔끔하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정기후원을 늘려나갈 생각이었다. 이렇게까지 떠먹여 준다면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류성은 퀘스트를 통해 선행 포인트를 얻고 그 포인트로 주식이나 코인 정보를 확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 포인트를 1점이라도 더 얻어낼 수만 있다면 돈은 쓰는 게 맞았다.
“더 벌면 되니까.”
그게 가능한 선순환 시스템이기도 했고 말이다.
*
류성의 모교인 대국 고등학교.
땡땡땡.
수업이 모두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반으로 들어왔다.
“자, 집중.”
곧이어 서류를 한 장씩 나눠줬다.
“뒤로 돌리고.”
“네!”
중간 즈음에 앉아 서류를 받은 윤가희는 나머지 서류를 뒤로 넘긴 뒤 내용을 훑었다.
[수학여행 안내문]
[안녕하십니까? 다가오는 여름, 건강하길 기원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2학년 수학여행에 관하여 안내하고자 하오니...]
첫 문장부터 미간이 좁혀졌다. 기간과 장소까지는 눈에 담지도 않은 채, 개인이 부담해야 할 금액이 적힌 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4번. 개인 부담액 : 238,000원
더 이상 읽어내려갈 수 없었다.
23만 8천원.
분명히 학교에서 부담하는 금액에 대해서도 안내되어 있었다. 그에 비한다면 개인 부담액은 확실히 적은 금액인 것은 맞았다.
하지만.
윤가희에겐 그마저도 재앙이었다.
“자, 수학여행 비용은 이번 주 금요일까지 내야 하니까 집에 가자마자 부모님께 서류 전달해드리고. 알겠지?”
“네에!”
윤가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안내서를 책상 수납장에 쑤셔 넣었다.
안 가면 돼.
엄마에게는 보여주지도 않을 작정이었다.
너무 큰 부담일 테니까.
어차피 1학년 때도 수학여행은 못 갔었다.
돈이 없어서.
그 당시 수학여행에 참가하지 못한 학생은 한 학급을 통틀어서 총 여섯 명이었다. 그들은 1반에 전부 모여 자율학습시간을 가졌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대화는 없는 기묘한 적막이 이어졌었다.
모두가 그저 각자 챙겨온 문제집을 풀어나갈 뿐이었다.
지독하게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이번에도 그렇겠지.
힘없이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을 때, 선생님이 그녀를 불렀다.
“그리고 윤가희?”
“네?”
“이번 기말고사 성적 많이 올랐던데 몇 가지 상담 좀 받고 가자.”
“아, 네.”
“그래, 그럼 다들 집으로 가.”
“수고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인사를 하고서 교실을 벗어났다. 윤가희는 가방을 챙긴 뒤에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로 이동했다.
자리에 도착해 마주 앉은 두 사람.
“가희야.”
“네.”
“이번에 수학여행 말이다.”
“...”
꺼내도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하지만 이어진 내용은 생각과는 달랐다.
“성적이 많이 오른 학생에 뽑혀서 학교 측에서 전부 부담하기로 했단다.”
“네...?”
순간 무슨 이야기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쳐다봤다.
“일종의 성적 우수생이랄까? 아무튼, 몇 가지 혜택도 주기로 했어.”
“혜택... 이요?”
“그래, 여기 받아.”
“이게 뭐예요?”
“교복 상품권이랑 문제집을 살 수 있는 도서상품권이다.”
“아...!”
안 그래도 교복이 한 벌밖에 없는 상태였다.
너무 비쌌으니까.
그녀의 집안 형편으로는 교복 한 벌도 엄청나게 부담되는 게 현실이었다.
문제집도 마찬가지.
과목마다 준비해야 하는 문제집이 있는데 그걸 사야 한다고 엄마에게 말할 때마다 죄송스러울 뿐이었으니까.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가는 형편임을 알기에 더욱 그랬었다.
“자, 받아야지.”
“감사합니다...”
“그래, 이제 가 봐. 2학기 중간고사도 열심히 준비하고.”
“네, 정말... 감사합니다.”
교무실 문으로 향하면서 상품권을 꺼내 봤다.
진짜인가 싶어서.
정말로 교복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권 한장과 도서상품권이 여러 장 보였다. 문제집 한정이긴 했지만 1만 원짜리 상품권이 무려 20장이나 들어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아서 정신이 멍했다.
저벅.
그렇게 교무실을 벗어나가기 직전이었다.
“요즘 수업 태도가 좋아졌어.”
“헤헤, 그런가요?”
멍한 상태에서도 대화 소리가 고막에 꽂혀 들어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작년에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못해 함께 자습했던 친구가 보였다. 직접 대화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그 친구의 집안 형편도 썩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수학여행비를 내주기로 했어.”
“저, 정말요?”
“응. 모범 학생으로 뽑혔거든.”
“우와...!”
그 학생마저도 혜택을 받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집안이 어려운 이들에게 혜택이 주어졌음을 말이다.
울컥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솟구쳤다.
꽈악.
자그마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주먹을 그러쥔 채로 묵묵히, 한 가지를 결심했다.
꼭 성공해서.
모두에게 이 고마운 마음을 갚아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