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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퀘스트(1)
일단 드론의 정확한 위치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위쪽을 열심히 살펴봤지만, 드론으로 짐작되는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잘 안 보이는데 어디에 걸린 거야?”
“쩌기요오!”
아이가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쳐다봤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리저리 각도를 틀면서.
“아아, 저거?”
“네!”
그제야 상당히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드론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뭇잎이 시야를 방해한 탓에 간신히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기계를 빌려 조작을 해봤다.
키릭, 키리릭.
드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흐음.”
나무를 타야 할 것 같았다.
힘들긴 하겠지만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형, 꺼내주세요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제한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탓에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일단 해보자.
나무 기둥을 잡고 슬쩍 팔에 힘을 줘봤는데 생각보다 몸이 가벼웠다.
오, 되겠는데?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흐으읍!”
원숭이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날렵한 편이었다. 그러다 첫 번째 난관이 나타났다. 나무 기둥이 갈라지면서 얇아지기 시작했다. 다리를 쭈욱 들어 올려 기둥이 갈라지는 틈으로 발바닥을 집어넣었다.
“휘유.”
전신의 힘을 사용해 몸을 일으키자 세 갈래로 나뉜 부분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일단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드론은 한참이나 높은 곳이 있었다.
아니, 이거...?
그런데 기둥은 이미 너무 얇아져서 잘못 밟았다가는 부서질 것 같았다.
“쯧.”
별수 없이 바닥에 내려왔다.
“미안, 얘들아. 잠깐만 기다려봐. 무조건 꺼내줄 테니까."
“네에!”
주변을 슬쩍 둘러보는데 놀이터 끄트머리에 적당한 크기의 막대가 보였다.
“되려나?”
일단 막대를 주워들었다.
이걸로 드론이 걸린 나뭇가지를 쳐보고자 했다.
“어? 저기...”
그때, 낯이 익은 여자가 다가왔다.
“맞으시죠?”
“아...!”
“정말, 정말로 감사했어요! 전에 그, 후원해주신 덕분에 좋은 회사랑 계약할 수 있었거든요."
"아아, 네. 기사로 봤어요."
노래를 참으로 매력적으로 부르던 버스킹 가수였다.
이렇게 보니 신기하네.
“정말요? 이 근처에서 만날 줄은 진짜 몰랐는데, 실은 뵙고 싶었거든요.”
“저를요?”
“네. 전에 주신 돈이 너무 커서 돌려드려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노래가 좋아서 그런 건데요, 뭐.”
류성의 대답에 잠깐 고민하던 그녀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저기, 혹시 번호라도 알려줄 수 있으세요?“
"네?"
"다른 의미는 없구요.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하니까요. 돈도 안 받으신다고 하셨으니 나중에 제가 잘 되면 꼭 몇 배로 갚고 싶어서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서 어찌해야 할까 싶은 그때.
[서두르세요.]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떠오른 홀로그램에 정신이 들었다.
빨리 번호를 주고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주세요."
"여기요!"
번호를 눌러준 뒤에 스마트폰을 돌려줬다.
"그럼, 전 이만."
서둘러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호기심이 생긴 모양인지 가수가 쫓아왔지만 무시했다.
"자, 다시 해볼까?"
"네에!"
일단 바닥에서 막대기를 들어봤는데 생각보다 길이가 짧았다. 여기선 도저히 닿을 거리가 아니어서 나무를 좀 탄 뒤에 막대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하기엔 버거운 일이었기에 뒤를 따라온 버스킹 가수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네?"
"제가 말하면 이 막대 좀 넘겨줄 수 있어요?"
"아, 네. 그럴게요!"
그녀에게 막대를 맡기고 나무에 올랐다. 중간 즈음 올랐을 때 아래를 보며 손을 늘어트렸다.
"지금 주세요."
"여기요!"
그녀에게 전해 받은 막대를 들어 올렸다. 적잖게 올라온 상태라서 그런지 막대가 드론에 간신히 닿을 정도는 되었다.
"우오오오!"
"닿는다!"
"우와...!"
아이들은 열광했고 지켜보던 가수도 감탄했다.
됐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막대로 드론을 치는 순간이었다.
[제한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패널티로 새똥이 떨어집니다.]
마침 류성의 위쪽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가 하얀 응가를 푸드득 싸버렸다.
투욱.
피할 길 없이 새똥이 이마에 묻어버렸다.
*
퀘스트는 실패했지만.
“형, 고맙습니다아!”
“최고에요!”
“그래, 앞으로 조심하고.”
“네엡!”
드론 구출은 성공적이었다. 보상을 못 받은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미 지난 일에 미련을 크게 두는 성격은 아니었다.
"엄청 친절하시네요."
"아, 뭐... 그냥요."
버스킹 가수가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줬다.
"이걸로 닦아요."
"고맙습니다."
아직 이마에 남아있는 새똥의 흔적을 물티슈로 닦아냈다. 고이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있는데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직 이름도 모르네요. 전 연지은이에요.”
“아아, 네. 류성입니다.”
얼떨결에 이름을 밝히면서 악수를 했다.
"오늘 재밌었어요. 전 이제 연습하러 가봐야겠네요. 다음에 꼭 연락드릴게요!"
"네, 들어가세요."
그녀는 쿨하게 자리를 떠났다.
류성도 혼자가 편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적잖게 움직인 탓인지 목이 말라왔다. 마침 지나는 길에 편의점이 보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어서 오세요.”
어쩐지 아르바이트생의 표정이 새파란 느낌이었다.
뭔 일이라도 있나.
슬쩍 지나치며 일단은 음료수부터 골랐다. 이후 계산대로 향하는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제는 파랗다 못해 거무죽죽하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기색이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죄, 죄송합니다! 편의점 잠깐만 봐주세요!”
“네...?”
아르바이트생이 황급히 어딘가로 달려갔다.
[퀘스트 발동!]
[가끔은 참을 수 없는 흐름이 있는 법.]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결국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손님이 와서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으나 인간의 인내심으로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생리적 욕망에 스스로를 놓아버린 아르바이트생을 대신하여 편의점을 봐주어라.]
[남은 시간 : 없음]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아무래도 오늘은 운이 폭발하는 날인 모양이었다.
또 퀘스트라니.
물론 상황은 좀 애매했지만서도.
“시간제한이 없는 건 처음이네.”
보아하니 아르바이트생이 돌아올 때까지 편의점을 지켜주면 되는 모양이었다. 일단은 카운터 내부로 들어가서 기다렸다. 멍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들어왔다. 편의점을 한바퀴 비잉 돌던 손님이 물건을 가져왔다.
띠익.
아르바이트 경험이 꽤 있었던지라 계산을 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3,800원입니다.”
“여기요.”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두 명의 손님이 더 다녀갔을 무렵.
끼이익.
편의점 뒤쪽 문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나타났다.
얼굴이 새빨간 상태였다.
“아, 고, 고맙습니다...”
“오셨네요.”
“네, 죄송해요!”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네?”
“얼굴이 너무 빨개서요.”
“아, 아니에요!”
“네, 그럼 뭐... 일단 계산부터 좀 해주세요.”
“네, 네에!”
그녀가 이온 음료의 바코드를 찍는 것과 동시에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최하급 랜덤카드를 습득합니다.]
[선행포인트 1점을 획득합니다.]
카드와 포인트 1점.
하나하나가 소중한 터라 기쁘지 그지없었다.
좋네.
이 카드는 조금만 묵혀둘 생각이었다.
모았다가 까야지.
적어도 3개 이상은 모을 작정이었다.
“여, 여기요.”
“수고하세요.”
“네에, 또... 오세요.”
“네, 자주 올게요.”
목까지 빨개진 아르바이트생에게 인사를 하며 류성은 편의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괜스레 웃음이 터져버렸다.
*
드디어 반려동물 퀘스트가 종료되는 날이 찾아왔다.
언제 완료가 되려나.
퀘스트를 받았던 날의 시간은 대충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막무가내로 기다릴 순 없었기에 오늘도 일상을 보냈다. 아침을 먹고 증시 공부를 하다가 몸이 뻐근할 즈음 헬스장으로 향했다.
“럭키야, 운동 갔다 올게.”
배웅하는 럭키가 눈에 걸렸다.
너무 귀여워도 탈이네.
5분 정도 럭키를 만져주다가 신발을 신었다.
“갔다 올게, 엄마.”
“아직도 안 갔어?”
“지금 가려고.”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럭키를 쳐다봤다.
가지 말라는 듯 앙증맞게 앉아 큰 눈으로 쳐다보는데 심장이 덜컥거렸다.
“그래도 가야 돼,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냐아아.
럭키을 두고 갈 때마다 발걸음이 참으로 무거웠다.
그래도 버텨내며 현관문을 열었다.
“휘유.”
간신히 집을 나서 헬스장으로 향했다.
가볍게 해야지.
아직은 헬린이라 스트레칭 10분에 유산소 30분, 그리고 근력 운동에 30분 정도를 할애하는 중이었다.
오늘의 목표는 하체였다.
“아야...!”
그때 맞은 편에서 다가오던 자전거가 돌부리에 걸린 건지 휘청이면서 넘어졌다.
어라, 저 녀석은.
아직도 기억이 선명했다. 자전거에 치이는 패널티를 받았을 때 어찌나 놀랐는지 바닥을 한참이나 뒹굴었었다. 그날, 류성을 쳤던 바로 그 아이였다.
놀란 마음에 달려갔다.
멀리서 볼 때는 크게 심각해 보이진 않았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게 아니었다.
“으으, 으으윽...!”
아이의 다리 하나가 체인에 제대로 걸려버렸다. 그 상태로 꼬여버렸는지 체인이 정강이를 긁으며 파고드는 모양새였다.
[퀘스트 발동!]
[자전거...]
떠오른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할 겨를은 없었다.
다급히 아이를 살폈다.
“괜찮아?”
“아, 아파요...”
“가만히 있어 봐. 체인부터 풀어볼게.”
페달을 아주 살짝 반대로 돌려서 체인을 헐렁하게 만들어 봤지만 꼬여버린 체인 탓에 쉽사리 벗겨지지 않았다. 아이의 종아리를 파고들려는 체인을 손바닥으로 막은 뒤 뒷바퀴의 체인을 조심스럽게 풀어나갔다.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다행스럽게도 체인이 한 줄기 풀렸다. 그 이후로는 수월했다.
“후우, 끝났네.”
꼬여있던 체인이 전부 풀렸지만 끝난 건 아니었다.
“피가 너무 많이 나는데.”
“으으...”
“일단 병원부터 가자.”
바로 앞 건물에 정형외과가 있어서 그곳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자전거는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근처에서 지켜보던 아주머니 한 명이 도움을 줬다.
“으으...”
“아이고, 얼마나 아플꼬.”
움직일 때마다 피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뼈가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큰 문제는 없으리라.
곧이어 도착한 정형외과에 접수하고 아이의 부모님께 연락을 넣었다.
(지, 지금 바로 갈게요! 근데, 지금 회사라서 30분은 걸릴 거 같은데...)
“제가 보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하고 검사가 진행되었다.
“뼈에는 이상이 없네요. 상처도 많기는 한데 대부분이 긁힌 정도에요. 생각만큼 깊지는 않아서 꿰맬 필요도 없을 거 같고요. 소독하면서 지켜보면 될 것 같네요.”
“다행이네요.”
“그럼 소독부터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치료를 끝낸 뒤 계산을 마쳤다.
[퀘스트 클리어!]
[정산 중...]
[정산 완료.]
[최하급 랜덤카드가 지급됩니다.]
[선행포인트 1점을 획득합니다.]
그러자 퀘스트 보상이 들어왔다.
지금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슬쩍 눈길을 돌려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아프지?”
“아뇨, 괜찮아요. 그보다, 고맙습니다.”
아픈 다리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해왔다.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전에 나랑 부딪혔던 거 기억해?”
“네에.”
“인연이네, 이것도. 몇 살이야?”
“8살이요.”
“그래, 뭐. 그때는 다치면서 크는 거야, 원래.”
아이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대기시간, 치료시간이 더해지니 30분은 금방이었다. 늦지 않게 도착한 아이의 어머니가 상처를 보며 타박했다.
“조심했어야지...!”
“죄송해요.”
깊은 한숨을 쉬었으나 거기엔 애정이 있었다. 잠깐 지켜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몸을 틀어 류성을 보더니 과할 정도로 인사를 해왔다.
“정말 감사드려요, 정말.”
“괜찮습니다.”
“치료비도 내주셨다면서요? 얼마나 나왔나요? 제가 드릴게요.”
“제가 돕고 싶어서 그랬는데요, 뭐.”
“그래두...”
“정말 괜찮습니다.”
류성은 연신 사양하면서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미 돈을 내고 퀘스트를 클리어했는데 갑자기 돈을 돌려받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어서였다. 게다가 선의로 낸 돈을 굳이 돌려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니야.”
그 말에 아이가 바로 단어를 수정했다.
“형, 고맙습니다!”
멀리서 외치는 아이의 소리에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 뒤 원래 목적지인 헬스장으로 이동했다. 탈의실로 들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스트레칭을 했다. 이어서 러닝머신으로 땀을 듬뿍 빼고 하체를 제대로 조졌다.
“으으으읍!”
허벅지가 후들거려서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을 즈음에야 운동을 멈추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으어, 내일 죽겠네.”
물을 강하게 틀었다.
쏴아아아.
미지근한 물이 몸에 닿자 땀을 비롯한 노폐물이 씻겨 내려갔다.
이 기분, 이 느낌.
모든 스트레스가 녹아내리는 이 감각.
“흐아아아.”
아직은 운동보다 마무리 샤워를 하는 이 순간이 훨씬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