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35화 (3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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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쭐(3)

금요일이 되었다.

류성은 시간에 맞춰 대국 고등학교 교무실로 들어갔다.

“왔어?”

“네.”

“날씨가 참 좋아, 제자가 후배들한테 맛있는 걸 사주는 날인데 미세먼지 한 점이 없네. 하늘도 좋은 일 한다고 칭찬해주는 모양이다.”

“어라, 몰랐는데 정말 그러네요.”

괜스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캐치해서 전달해주는 이 세심함은 학창 시절 때보다 지금에서야 더 와닿는 부분이었다.

“12시까지 음식들이 온다고 했지?”

“맞아요.”

“연락 오면 애들 데리고 움직여야겠네.”

“좋아하겠죠?”

“아주 신나서 죽을 거다.”

마침 주문을 했던 식당에서 연락이 왔다.

“아, 치킨 도착했다는데요?”

“나가자.”

몸을 일으킨 김창호 선생님은 일단 방송부터 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자, 지금 모든 학급의 반장, 부반장, 그리고 주번은 지금 당장 학교 정문으로 나오길 바랍니다. 치킨 받아가야 하니까 서둘러요.]

한 반에서 네 명 정도면 쉽게 들고 갈 수 있을 터였다.

“오오, 치킨이다, 치킨!”

“맛있겠다!”

밝은 표정의 학생들이 나와 손에 치킨과 음료수를 들고 교실로 돌아갔다. 류성과 김창호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양손에 음식을 가득 쥔 상태였다.

“저희도 도착했습니다!”

“여기도요!”

다른 식당의 치킨도 속속 도착했다.

“이야, 냄새가 좋은데?”

“치킨은 언제나 진리니까요.”

날씨까지 완벽하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어, 또 전화 왔네요.”

“허허, 이번엔 어디냐.”

“피자네요.”

“아이고, 방송 먼저 다시 해야겠구나.”

“전 먼저 가 있을게요.”

“그렇게 해라.”

류성은 서둘러 교무실에 치킨과 음료수를 내려놓은 뒤 다시 정문으로 이동했다. 도착하니 엄청난 양의 피자가 쌓여있었다. 피자가게 세 곳이 거의 동시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두 곳은 아르바이트생이 왔고 한 곳에서는 사장님이 직접 온 모양이었다.

“주문하신 분이신가요?”

“맞습니다. 사장님이시죠?”

“네.”

“배달 오느라 힘드셨겠네요.”

“아이고, 아닙니다. 이 정도 물량이면 힘들어도 즐겁게 해야죠.”

“그럼 다행이구요.”

“이야, 근데 치킨도 주문했던 모양이네요.”

“네, 애들이 워낙 잘 먹잖아요.”

“좋아하겠네요, 어라? 여기 치킨집들... 전부 제가 아는 곳이네요.”

“그래요?”

“네, 이거 참 묘한 우연이군요.”

곧이어 마지막 중국요리까지 도착했다.

“어, 여기는...”

“저기도 아는 곳인가 봐요.”

“네. 여기는 조금 먼 곳이긴 한데 사장님하고는 잘 아는 사이라서요.”

“이야, 신기하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추 예상은 되었다. 아무래도 착한 영향력 스티커를 붙이고 장사하는 곳이다 보니 서로서로 소통하는 모양이었다. 배달 온 곳이 전부 스티커를 붙인 식당이었으니 그 의도가 짐작될 터.

피자집 사장님은 물론이고 뒤늦게 도착한 중국집 사장님 또한 그 사실을 파악하고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류성을 쳐다봤다.

“정말 오랜만에 대량 주문이었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 적도 오랜만이군요.”

가게 사장님이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착한 영향력 스티커.

오직 그게 붙은 식당에만 주문이 들어왔음을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장님들이 감사를 표했지만 너무 정중해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류성은 손을 크게 휘저었다.

“뭘요, 그냥 애들한테 밥이나 한 끼 사준 건데요.”

“그런가요?”

“네, 그런 겁니다.”

“그런 거군요. 잘 알겠습니다.”

알겠다고 하면서도 묘하게 웃는 그들의 모습에 류성은 끝내 시선을 피해버렸다.

*

모든 음식이 전해졌다. 류성은 가까운 반을 돌아다니면서 치킨과 피자, 그리고 중국집 요리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눈에 담았다.

“와, 대박 맛있어!”

“피자랑 치킨이랑 탕수육이랑, 미쳤다, 진짜!”

“배 터지게 먹어보자아아!”

“야, 시끄러워, 어서 먹기나 해.”

“먹고 있거든?”

“야야, 나 음료수 좀!”

“여기.”

“땡큐!”

남녀를 떠나서 대부분 학생이 축제에 온 것마냥 즐기는 분위기였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진짜 재밌을 때긴 하지.”

집에서 혼자 먹는 것보다는 친한 사람과 함께 먹을 때가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한 법이니까. 저 아이들 모두가 표현하지 않아도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터였다. 저 나이에는 무엇보다 친구가 소중한 법이니까.

꼬르륵.

류성의 배가 요동을 쳤다.

어, 나도 배고픈데.

몸을 돌려 교무실로 돌아가 선생님과 함께 배달온 음식들을 먹었다.

“왔어? 같이 먹자.”

“네, 선생님.”

학생일 적에는 선생님을 대하는 게 마냥 어려웠는데 어느덧 30대가 가까워져서인 걸까. 그때보다는 훨씬 편하고 좋았다.

“참, 후원금도 잘 쓰고 있어.”

“아, 내역서 봤어요.”

“그래, 이번 방학에 몇 명한테는 식사 쿠폰도 전해줬거든.”

“좋네요, 그거.”

“정말 좋은 일이지. 방학 때 집에서 제대로 밥도 못 챙겨 먹는 애들이 있으니까. 적어도 배를 곪지는 않을 거 아냐.”

“으음, 그렇죠.”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더 현실감이 느껴졌다.

결코 짧지 않은 방학.

한 달이 넘어가는 동안 가난에 허덕여 제대로 밥도 챙겨 먹지 못하는 학생이 어딘가에는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다시금 뿌듯함이 솟구쳤다.

“열심히 벌어야겠네요.”

“돈 말이냐?”

“네. 돈은 많은 게 좋으니까요.”

자본주의 시대에서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돈은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더 많은 이들을 돕기 위해서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이어질 퀘스트를 제대로 쫓아가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럼 오늘 같은 기분을 꾸준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왜 많이 벌고 싶은데?”

“이번처럼 많이 쓰고 싶어서요.”

“허허, 그러냐.”

“네.”

“그래, 많이 벌어서 많이 쓰도록 해라.”

“그럴게요, 꼭.”

오늘만 봐도 그렇다.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겨우 점심 한 끼 먹이기 위해 쓴 돈만 천만 원이 넘어갔다.

없어서 못 쓰는 것뿐.

쓰고자 하면 하루에도 수천은 그냥 써버릴 수 있는 게 돈이었다.

그렇기에 부족했다.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이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달이 기대되었다.

8월은 열매를 수확하는 달이 될 것이었다.

영화와 바이오 주식 투자.

그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간이 될 테니까.

*

집으로 돌아가는 길.

흥겨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흐으음.”

자꾸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나 들을까.

고민하는데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방구녀 : 오빠! 오는 길에 나 김떡순 사다줘!

류현아의 메시지였다.

아, 귀찮게.

무시할까 싶었는데 마침 익숙한 포장마차가 저 멀리 보였다.

“에라, 그래. 인심썼다.”

알았다는 의미의 답장을 보냈다.

류성 : ㅇㅇ

방구녀 : 오, 웬일? 빨리 오셈! 환이도 있으니까 컴온!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포장마차로 향했다.

오우, 냄새 좋은데.

이렇게 배가 부른데도 떡볶이 냄새는 이상하게 식욕을 자극했다.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향이 자꾸만 코를 찔러댔는데 그게 불쾌하지가 않았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그래, 다음에 또 오고. 가서 애들하고도 나눠 먹고!”

“네!”

“어여 가.”

음식을 한가득 품에 안은 세 명의 아이가 포장마차에서 나왔다.

“빨리 가자!”

“응!”

“히히, 다들 좋아하겠지?”

“당연하지! 근데... 너희 원장님 무섭던데. 혼내지 않을까?”

“우리 원장 엄마 안 무섭거든!”

“그럼 나도 거기 가도 먹어도 돼?”

“그건 안 돼!”

“왜?”

“들키면 혼나니까!”

“안 무섭다며!”

“그래도 밥 말고 다른 거 먹으면 혼낸단 말이야.”

“몰래 먹으면 되지!”

“으으.”

“빨리 와!”

동생들, 그리고 원장 엄마.

그 단어만으로 상황이 파악되었다.

보육원 애들인가.

이 근처에 보육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서 와요.”

“아, 네. 근데 저 애들... 보육원 애들인가요?”

그 말에 아주머니가 조금 경계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건 어떻게...”

“그냥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알겠던데요.”

그러고 보면 왜 보육원을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멍청했다.

후배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는 것도 뿌듯한 일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보육원 아이들의 삶이 더욱 힘들 테니까.

“실은 제가 이번에 먹을 좀 사서 후원할까 싶었거든요. 근데 어디에 후원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어요. 바보같이 보육원은 생각도 못 했던 거죠.”

“아아, 그래요?”

다행히 좋은 일이라 여겼는지 아주머니의 표정이 풀렸다.

“여기 근처에 보육원 하나가 있어요. 원장님이 정말 좋은 사람이긴 한데 오히려 그래서인지 후원도 적은 편이고, 애들은 힘들고. 뭐, 그런 거죠.”

“좋은 사람이라서 후원이 적다는 건...?”

괜한 질문이었을까.

아주머니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시잖아요. 세상이 다 그렇죠, 뭐.”

명치를 때리는 한 마디였다.

세상이 다 그렇다는 한 마디가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게 만들어줬다.

좋은 사람이기에.

그래서 더욱 힘든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세상.

“그렇군요.”

잠시 적막이 흐르고.

다시 정신을 차린 류성이 음식을 먼저 주문했다.

“일단 떡볶이 3인분, 김밥 1인분이랑, 순대도 하나 주시고요. 어묵이랑 튀김도 골고루 넣어주세요.”

“네, 잠시만요!”

정말 넉넉하게 주문했는데도 2만 원이 나오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류성은 보육원의 이름을 먼저 물었다.

“하늘 보육원이에요, 검색하면 바로 나올 거에요.”

“감사합니다.”

“뭘요, 애들한테 맛있는 거나 실컷 좀 사주세요.”

“그렇게 할게요.”

확답을 주고서 김떡순 세트가 담긴 검은봉투를 건네받았다.

“수고하세요!”

“네, 고마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스마트폰으로 ‘하늘 보육원’을 검색했다.

딱 한 곳이 나왔다.

“우리 동네가 맞네.”

그것도 정말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일단 집에 먼저.

이제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으니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했다. 약 5분 뒤, 집에 도착한 류성은 환대하는 류현아와 류환을 보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꼭 손에 뭔가 있어야 환영하지?”

“당연하지!”

“그게 형제라는 거야, 형.”

“크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냐아아.

하지만 럭키는 손에 뭐가 있건 없건 언제나 류성을 반겨주곤 했다. 지금도 갸르릉거리며 류성의 발목을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아이고, 우리 럭키.”

이러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있나. 자리에 쪼그려앉아 럭키의 배를 만져줬다.

몰랑몰랑.

발바닥 패드도 주물러주고.

“그래, 오구오구, 역시 럭키뿐이라니까.”

그러면서 손에 들린 검은봉투를 툭하고 넘겼다.

“자, 너네는 이거나 실컷 먹어라.”

“형은?”

“난 먹고 왔지.”

“그럼 진짜 우리 둘이 먹는다?”

“먹어.”

둘은 바로 부엌에 있는 식탁에 앉아 김떡순을 펼쳤다.

“얼레, 쿨피스가 없는데?”

류현아가 눈을 치켜서 떴다.

류성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물 마셔.”

“싫은데? 바보, 집에 있지롱!”

냉장고에서 쿨피스를 꺼내드는 모습이 평소처럼 참 얄미웠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존재했다. 지금의 류성에겐 돈이 있다는 사실이다.

“류현아, 너 용돈 없다.”

“오빠, 미안.”

그 즉시 무릎을 꿇는 그녀.

대충 무시한 채 류환을 눈에 담았다.

“요즘 돈 떨어졌지?”

“응, 완전.”

“여기 용돈이다.”

"헐, 진짜로?"

"진짜니까 어서 받아."

"땡큐, 잘 쓸게.”

그나마 환이 녀석이 감사할 줄 안단 말이지.

“떨어지면 말하고.”

“진짜?”

“어, 진짜.”

“흐흐, 다 쓰게되면 바로 말할게.”

웃는 건 영락없이 판박이었다.

“오빠, 나는!”

“넌 떡볶이나 먹어. 나는 좀 나갔다 올 테니까.”

“오빠아아아아!”

울부짖는 류현아를 뒤로한 채 집을 나섰다.

하늘 보육원.

지금 바로 찾아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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