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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통장(1)
가는 길에 혹시 몰라 전화를 걸어봤다.
(하늘 보육원입니다.)
“안녕하세요?”
(네, 누구시죠?)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제가 보육원에 한 끼정도 먹을 걸 후원하고 싶은데요.”
(아, 음식 말인가요?)
“네, 배달 음식이요.”
(아아...)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고마워요. 하지만 배달 음식이라면 치킨이나 피자같은 걸텐데, 아이들한테는 너무 기름지고 과한 게 아닐지 걱정이 되네요.)
그 말에 류성의 입가로 미소가 그려졌다.
이야, 정말.
설마 그런 걱정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갔다.
“꼭 치킨이나 피자가 아니어도 괜찮은 음식들이 많아요.”
(그런가요?)
“네, 초밥도 있고 한정식도 요즘은 다 배달이 되거든요. 고기도 그렇고요.”
(으음, 그렇다면야 환영이죠.)
“일단 직접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에요.)
“그럼 지금 바로 갈게요. 마침 동네라서요.”
(네, 알겠어요.)
통화를 끊고 지도를 보면서 움직였다.
여기가 맞나...?
주택가 뒤쪽, 좁은 길을 돌아 굽이진 곳을 거닐었다. 한참 올라가다보니 등산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즈음.
건물 하나가 거대한 나무 뒤에 얼핏 보였다.
“이야...”
저기가 바로 하늘 보육원이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넘어.
보육원의 정문에 도달했을 때 뒤를 돌아보니, 동네가 한 눈에 들어왔다.
“장관이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육원의 위치 자체는 좋지 않았다.
차도가 있긴 한데.
상당히 험난해 보였으니까.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원장님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여인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혹시 전화 주신 분인가요?”
“네, 맞습니다.”
“하늘 보육원의 원장, 한애라에요.”
“류성입니다.”
“일단 들어가실까요?”
“네.”
슬쩍 돌아보는데 분위기가 묘했다.
자애로우면서도 뭐랄까.
억척스러운 면도 느껴진다고 해야 되려나.
“잠시 앉아 계세요.”
그리곤 차를 한 잔 타왔다.
날씨가 더웠지만 산속이라 그런지 바람이 시원했다. 차에 얼음까지 동동 떠있는 상태라 한 잔 마시니 남아있던 더위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시원하니 좋네요.”
“다행이에요. 그보다 아이들한테 음식을 사주고 싶다구요?”
“네.”
“마침 오늘 저녁은 또 뭘 해줘야 하나 싶었는데, 고맙네요.”
“그럼 허락해주시는 건가요?”
“물론이에요. 대신 너무 기름진 건 빼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근데 아이들은 총 몇 명인가요?”
“영유아가 둘, 초등학생 저학년이 셋, 고학년은 두 명이이에요. 중학생이 세 명에 고등학생이 두 명이네요.”
생각보다 숫자가 꽤 되었다.
집이 넓은 편이긴 하니까.
“총 12명이군요.”
“네, 대신 애기들은 많이 못 먹으니 그 정도만 감안하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식당은 제가 몇 군데 보여드릴게요.”
“한 번 볼까요.”
류성은 미리 체크해뒀던 식당을 확인했다.
착한 영향력 스티커가 붙은 식당 중에서 크게 과하지 않은 음식을 만드는 건 총 세 곳이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이긴 하지만 배달비를 충분히 낸다고 하면 이 정도 거리까지는 배달을 와줄 것 같았다.
“백숙도 있네요.”
“네, 여기도 괜찮을 것 같죠?”
“충분하죠. 사실...”
원장의 표정에 미안함이 서린다.
“이런 음식을 쉽게 해줄 수가 없으니까요. 말로는 건강을 생각한다지만 핑계겠죠. 비싸서, 혹은 부담돼서 사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답니다. 미안할 따름이죠.”
“...”
여기서 뭘 말할 수 있으랴.
이해한다?
그건 너무나 뻔한 거짓말이었다.
그렇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원장님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도 아이들은 치킨이나 피자를 더 먹고 싶어 할 거예요. 그저 제가 좋자고 이러는 거죠. 아이들이니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거든요. 쓸데없는 욕심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정말이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으니까.
건강하게 자라는 것.
이곳의 원장은 그걸 가장 바라고 있었다.
“여기도 좋네요.”
“그럼, 이렇게 두 곳에서 주문할까요? 아, 혹시 배달이 별로면 더 마음에 드는 식당에 직접 가서 먹는 건 어떨까요?”
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애들은 여기서 먹는 게 편할 거에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원래대로 배달 주문이 낫겠네요. 여러 음식을 먹기엔 그게 더 편하고 좋긴 하니까요.”
“그래 주시면 고맙겠어요.”
“상세 메뉴도 골라주세요.”
“그럼, 이거랑 이거...”
원장님의 메뉴를 체크해뒀다.
“이 정도면 되겠죠?”
“충분할 것 같아요. 오후 6시까지 도착하도록 예약해 둘게요.”
주문이야 나가서 하면 되는 거고.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았다.
원장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욱 확고해진 부분이었기에 거리낌없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요.”
“네, 말씀하세요.”
“정기 후원도 하고 싶은데요.”
“정기 후원이요?”
여기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자주 찾아오고.
또 내역서를 받아보긴 하겠지만 말이다.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을 리가 있나요. 그저... 그저, 고마울 뿐이에요.”
어떤 방식일지 그리고 또 액수가 어떤지에 대해서 듣지 않았음에도 원장님은 밝게 웃었다. 그 기뻐하는 모습에 류성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후원은 감사드려요."
그러나 원장은 이내 미소를 지우며 류성을 똑바로 직시했다. 다시 특유의 분위기로 돌아온 원장님이었다.
“금전적인 후원을 해주신다면 내역서를 꼼꼼하게 작성해서 보내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 믿을 수 있으신가요?”
“네?”
“어디든 안 그렇겠냐마는, 이런 사설 보육원은 내역서 조작이 훨씬 더 쉽답니다.”
“어, 음. 그렇군요. 몰랐어요.”
“그러니 기왕이면 다른 방식이 좋겠어요.”
"다른 방식이라면...?"
"한 가지 추천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러자 원장님이 이야기를 꺼냈다.
“보육원 아이들 개개인 통장을 만들어서 적립하는 후원은 어떠세요?”
“개개인 통장이라...”
“통장 내역서는 조작하기가 불가능하니까요. 영 꺼림칙하면 직접 은행에 가서 확인할 수도 있는 일이죠.”
“그렇겠네요.”
“여기서 졸업할 때까지 해당 통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면 더 좋을 거 같아요. 애들이 생각보다 돈을 쉽게 쓰는 경향이 있거든요. 아, 물론 제 기준에서요. 아무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졸업한 이후 아이들의 사회 정착에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말을 하는 원장의 눈이 빛났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이곳이 아닌, 떠나갈 아이들의 미래에 후원해달라는 그녀의 진심을 어찌 거절하랴.
“좋네요, 정말로 좋습니다.”
“괜찮으신가요?”
“그럼요, 완전 마음에 들어요. 다만... 제가 아이디어를 하나 더 내자면 후원금액에 차등을 두는 게 현재로서는 더 좋을 거 같네요.”
“차등이라면...?”
“고등학생 아이들은 이제 곧 보육원에서 나가야 할 나이가 되지 않나요?”
“맞아요."
"일단은 비율을 크게 높여서 고등학생 두 명을 더 많이 후원하고 그 아래로 나이별로 차등을 두어서 후원하면 될 것 같아요. 차등이라는 점이 조금 걸릴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고등학생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는 게 맞을 거 같아서요. 부족한 부분은 후원을 이어가면서 수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당장 1, 2년 뒤에 떠나게 될 고등학생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후원이었다.
원장으로서.
거절할 수 없었으리라.
"...고마워요, 정말."
총인원 12명.
200만 원을 쪼개어 후원하더라도 시간이 쌓이면 상당한 액수가 되리라. 원장과 10분가량 더 대화를 나누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당장은 이 정도면 되겠어요.”
“그럼 후원통장부터 만들러 가시죠.”
“그럴까요.”
“그리고...”
“네.”
“보육원에도 따로 후원할게요.”
류성의 말에 원장님의 눈이 커졌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사설 보육원이 내역서를 조작하기 쉽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이었다. 게다가 한 점의 의심조차 지워버리게 만드는 시스템이 있지 않던가.
[퀘스트 ‘어서와, 정기후원은 처음이지?'가 반응합니다.]
[해당 인물은 보육원을 운영함에 있어서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구청에서 지원을 받고는 있으나 운영을 유지할 수도 없는 미비한 수준이며 얼마간의 후원을 받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턱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원하는 것은 오직 아이들의 밝은 미래뿐입니다.]
기다리던 퀘스트의 문구가 떠올랐다.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라.
이걸로 신뢰도가 100%까지 상승해버렸으니 후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믿을게요.”
“사람... 그렇게 함부로 믿는 거 아니에요.”
류성은 그저 웃었다.
시스템을 설명해줄 순 없었으니까.
“일단 아이들 전용 통장에 총 200만 원이랑 보육원 통장에 따로 100만 원. 이렇게 후원할게요. 당연히 내역서는 일정 주기마다 주셔야 합니다.”
“...그럴게요.”
“지금 애들은 전부 있나요?”
“네, 있어요.”
“그럼 다 같이 은행부터 가시죠.”
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아이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들은 은근한 경계심을 유지한 채 낯선 사람인 류성을 쳐다봤다.
“안녕? 그냥 봉사활동 하러 온 사람이야.”
“네에.”
“잘 부탁할게.”
친해지는 건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은 은행이 문을 닫기 전에 통장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출발하시죠.”
“자, 얘들아. 오늘은 엄마랑 은행 좀 갔다 오자. 알겠지?”
“네, 좋아요!”
“근데 은행은 왜요?”
“은행 좋아, 은행!”
“전부 다 가는 건가요?”
아이들의 질문에 원장이 웃었다.
“여기 이분이 너희들한테 후원해준다고 하셔서. 전부 다 통장 만들러 가야 해.”
“후, 후원이요?”
“그래.”
“저희한테 직접이요?”
“맞아, 너희한테 직접. 나중에 여기서 나가게 될 때를 대비해서.”
“아...”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건 고등학생 둘이었다.
남학생, 그리고 여학생.
둘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다시 류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머지 아이들도 인사를 해왔다.
배꼽에 손을 올리고.
90도로 고개를 숙이면서 말이다.
“고맙습니다아아!”
류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 일단 출발할까? 늦을지도 몰라서.”
“아, 네!”
“어서 가요!”
그들과 함께 근처 은행으로 향했다. 입구 근처에 놓인 기계에서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린 뒤 아이들을 위한 후원통장을 개설했다.
몇 가지 조건을 달아서.
그러자 은행직원이 반응했다.
“보육원 아이들 후원통장이네요?”
“네, 맞아요.”
“그러면 이걸 개설하시는 게 어떨까요?”
직원이 한 가지 상품을 추천해줬다.
“이 통장은 기간을 지정해서 출금을 불가능하게 설정할 수 있어요. 청약통장처럼 입금만 가능하게 만드는 거죠. 해지할 때도...”
들어보니 확실히 원하던 것이었다.
출금을 막을 수 있다는 부분이 가장 좋았다.
합격점이었다.
해지하게 되면 그 내용이 담긴 메시지는 류성과 원장, 그리고 통장 주인까지 해서 총 세 사람이 받아볼 수 있게 설정했다.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추가한 뒤 모든 아이의 후원통장을 개설했다.
“그럼, 개설하겠습니다.”
“네.”
곧이어 만들어진 통장이 주인을 찾아갔다.
깔끔한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