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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1)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길.
류성은 식당 두 곳에 전화를 걸어 원장과 상의했던 메뉴로 저녁을 주문했다.
(예, 오후 6시까지 가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식당 한 곳에서는 토종 닭백숙을 주문했고 나머지 한 곳에서는 랍스타와 킹크랩, 그리고 대게를 주문했다. 워낙 배달이 잘 되는 세상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 물론 거리가 좀 있어서 추가 배달비가 붙기는 했지만.
“6시까지 온다네요.”
“금방 오겠군요.”
“네, 애들이 맛있게 잘 먹어줬으면 좋겠네요.”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해맑았다.
특히 중, 고등학생들.
이제 세상살이를 조금 알고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할 나이. 일찍이 철이 들어 스스로 어떻게든 해보려는 눈빛과 어느새 지쳐버린 표정이 얼핏 보였다.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는 류성의 눈에도 너무나 선명하게 말이다.
꾸벅.
눈이 마주치자 고등학생 둘이 다시 한번 인사를 해왔다. 류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준 뒤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음, 원장님.”
“네?”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후원을 하면서 애들과 한 걸음이라도 더 친해져 볼 생각이었다.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직접 본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도움을 주기 시작한 이상 끝을 맺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류성의 어린 시절은 분명 그러했다.
애초에 외면하거나.
그러지 못할 거라면 끝까지 돕거나.
처음부터 중간은 없었다.
다만,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세월에 녹아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대부분의 일에서 눈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어린 시절의 도움과 성인이 된 이후의 도움은 결이 달랐으니까.
순수했던 그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그런 삶에 적응해버린 걸까.
이제는 안 좋은 기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살인, 강도, 성폭행 등등.
기분만 더러워졌으니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일을 쳐다봐야 뭐하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바라곤 했다.
누군가는...
저들을 제대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 누군가가 지금은 류성이 되어버렸다.
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해나갈 뿐이었다.
*
아이들과 친해지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경계심은 금방 사라졌다.
다만 중, 고등학생에 이른 녀석들은 확실히 낯을 가리는 편이긴 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가까워지면 되리라.
♪♩♩♬♪.
마침 음식이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도착했다고 하네요.”
“그래요? 얘들아, 먹을 거 가지러 갈까?”
“네에!”
“밥이다, 밥!”
아이들과 함께 보육원 입구로 향하니 차가 멈춰있었고 한 사람이 내려 음식을 꺼내는 중이었다. 양이 꽤 되었기에 아이들이 달려가 음식이 담긴 포장지를 받았다.
류성도 몇 개를 들었는데 얼마나 정성스럽게 포장을 한 건지 냄새가 나질 않았다. 식탁 위에서 포장을 뜯고서야 튼실한 토종닭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오늘 몸보신 제대로 할 것 같았다.
“형아, 이거 봐. 엄청 커!”
“우와, 진짜!”
“다리가 얼굴만 해, 히히.”
거의 동시에 갑각류 요리도 도착했다.
킹크랩, 대게, 랍스터.
이번에도 수분과 온기가 아주 잘 유지되도록 포장이 된 상태였다.
세상 참 좋아졌다니까.
그것들을 거대한 식탁 위에 내려놓으니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하나같이 눈을 빛내며 음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원장님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다들, 맛있게 먹자.”
“잘 먹겠습니다!”
류성도 한 자리에 끼어 음식을 즐겼다.
크으, 예술이네.
요즘 배달 퀄리티는 정말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웬만한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에 직접 가서 먹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맛있지, 얘들아?”
“네! 최고에요!”
“진짜 맛있어요오!”
“많이 먹어.”
조금 놀아주고 같이 밥도 먹으니 한결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중, 고등학생 아이들도 시선에 친근함이 조금 생긴 것 같고.
좋네.
지금 이 분위기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잠시 후.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밥은 맛있게 먹었고?”
“응, 엄마는?”
“잘 먹었지. 피곤할 텐데 씻고 쉬어.”
“옙!”
방으로 들어가 샤워를 한 뒤 침대에 누웠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럭키가 침대로 폴짝 뛰어 올라와 류성의 가슴팍에 자리를 잡았다.
“왔어?”
어느새 조금 커버린 럭키였다.
내 눈엔 여전히 아기지만.
그래도 처음 봤을 때보다 덩치가 커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갸르르릉.
왼손으로는 럭키를 쓰다듬어주고 오른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증권사 어플을 열고 지문으로 로그인을 하고서 현재 수익 현황을 체크했다.
종목명 : 진상과학
보유주식 : 2,252주.
매입금액 : 50,219,600
수익률 : -1.27%
평가손익 : -637,789
총평가 : 49,581,811
진상과학은 마이너스 63만 원가량.
종목명 : 매트리온
보유주식 : 572주.
매입금액 : 50,050,000
수익률 : -0.63%
평가손익 : -215,215
총평가 : 49,834,785
매트리온도 마이너스긴 했지만 진상과학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마지막 기업인 아랑생명이 유일하게 15만 원의 수익을 보면서 선전하는 중이었다. 전부 더한다면 총합 78만 원 수준의 손해를 보는 중이었지만.
“나쁘진 않아.”
류성의 표정에는 안타까움 대신 미약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어느새 8월 초.
반응이 오는 8월 중순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때까지.
그저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증권사 어플을 끄고.
최근 정리하기 시작한 스케줄표를 살폈다.
<8월, 확인해야 할 부분>
9일-어둠이 드리워진 개봉
11일-돈쭐 퀘스트 정산
중순-바이오 기업 훈풍 시작
25일-서울전쟁 개봉
말일-정기후원 퀘스트 정산
다섯 개의 주요 일정이 적힌 상태였다.
아, 영화...!
그간 잊고 있던 영화 개봉일이 바로 내일이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소름이 돋았던 영화기도 했기에 첫날에 바로 감상하기로 했다.
이건 보러 가야지.
누구랑 봐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일 오전에 함께 볼 사람은 없었으니까. 심지어 어머니조차 내일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고.
아버지는 출근에.
동생들은 학교에.
이신우는 장사준비를 해야 했다.
“...물어보지도 말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가 괜히 거절당하면 놀림만 당할 테니까.
친구도 없냐.
차라리 여자친구를 만들어라 등등.
뻔한 레퍼토리였다.
결국 1인 관람으로 '어둠이 드리워진'을 예매했다.
그래도 기대가 되었다.
글로 봤던 시나리오가 아직도 생각이 날 만큼.
영상은 어떨까.
과연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슬쩍 너튜브를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관심도가 적은 모양이었다. 메인 예고편의 조회수가 턱없이 낮았고 댓글도 거의 없었다.
“흐음.”
배우가 조금 아쉽기는 했다. 조연으로 유명한 배우가 처음으로 주연으로 발탁이 되었는데 그래서 더 반응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작품이 또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법. 부디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그날 밤을 보냈다.
*
다음 날, 아침을 먹고 헬스장에 들러 운동을 하고서 곧바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10분 일찍 도착해서 콜라 하나와 미니 사이즈의 캐러멜 팝콘이 들어있는 1인 세트를 주문했다.
화장실도 다녀왔다.
더는 할 일이 없었기에 미리 관람실에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3층에 올라가 2관 앞에 있는 직원에게 표를 보여줬다. 그녀는 표에 동그라미를 치더니 류성에게 다시 돌려줬다.
"E열 7번 자리, 확인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좌우로 열렬히 흔들었다. 무릎도 살짝 굽혀주면서 말이다.
"재밌게 관람하세요!"
"아, 네..."
조금 뻘쭘하면서도 활기찬 기운이 전해지는 느낌이라 은근히 좋았다. 미소를 머금은 채 어두운 내부로 들어가 자리를 찾았다.
중간보다 살짝 뒤쪽.
한가운데 자리.
최고의 명당이라 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생각보다 더 적네.
주변을 둘러보니 관람객이 정말 적었다.
기껏해야 스무 명?
인원파악을 마치고 조금 더 기다리니 드디어 영화관 내부를 비추던 조명이 완전히 꺼졌다. 류성도 스마트폰을 끄고서 나오는 화면에 집중했다.
홍보 및 예고가 끝나고.
시작된 영화는 첫 장면부터 흡입력 있게 그를 빨아들였다.
"..."
시간이 삭제된다는 게 이런 걸까.
영화가 분명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몰아치는 긴장감.
뛰어난 연출력.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력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시나리오에서 봤던 그 이상의 것을 류성에게 안겨다 줬다.
가만히 여운을 음미했다.
부스럭.
그러다 다른 관객들이 자리에서 이탈하면서 들려오는 소음에 눈을 떴다. 류성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를 챙겨 출구로 향했다.
“이거 보길 잘했지?”
“응, 완전 대박...!”
“거 봐, 내가 재밌을 거라고 했잖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연인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의 대화가 앞에서 들려왔다.
반응이 좋았다.
뒤에서도 마찬가지.
“개소름이네.”
“오늘 친구들한테 추천해야겠는데?”
“무조건이지, 이건.”
“요즘 볼만한 거 없었는데 진짜 쩔었다.”
“크으...!”
“나중에 2회차 관람, 콜?”
“콜!”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당연했다.
이 영화에 투자한 금액만 1억이었으니까.
동시에 확신이 들었다.
이건, 무조건 대박이 터질 거라고. 본격적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될 것 같았다.
*
생각보다 대중들의 반응이 빨랐다.
[어둠이 드리워진]
어제까지만 해도 해당 영화를 검색하면 예전 기사만 보이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따끈따끈한 다량의 기사가 인터넷을 장식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영화의 평점이었다.
9.6점.
아직 초기라곤 하지만 놀라운 점수인 건 분명했다.
[우리나라 오컬트 영화 중에 최고다]
[이건 진짜 압도적...!]
[무조건 보세요, 안 보면 인생 낭비하는 거!]
[두 번, 세 번 봐야 할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했다.]
[올해 최고의 영화다]
[역대급 대작으로 남을 것!]
[찢었다, 지렸다, 발랐다!]
댓글도 하나같이 호평 일색이었다.
“좋네, 좋아.”
이 정도면 초대박 흥행까지는 몰라도 투자 수익을 내기엔 충분할 것 같았다. 애초에 손익분기점이 163만 명으로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었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래도 한동안은 주기적으로 반응을 보기로 했다.
중요한 건 끝났으니.
일단 나가볼까.
딱히 해야 할 일도 없었기에 동네를 산책하기로 했다.
“산책하고 올게요.”
“그래, 갔다 와.”
걸음을 옮기는 류성의 표정이 조금 찌푸려졌다.
퀘스트때문이었다.
8월 1일부터 오늘까지, 그러니까 이제는 중순에 돌입한 11일까지 자잘한 퀘스트가 단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꾸만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현재 모인 포인트가 20점.”
거기서 더 늘어나지 않고 정체되어버렸다. 물론 오늘 돈쭐 퀘스트가 클리어되긴 하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이대로라면 8월 말일 정기후원 퀘스트로 포인트를 얻어도 30점이 채워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최소한 두, 세 개.
자잘한 퀘스트가 그 정도는 더 등장해줘야만 했다.
일종의 동기부여였다.
적어도 8월 마지막 날이 될 때까지는 30점을 모아보자는 단기 목표라고나 할까.
눈을 부릅뜬 채 열심히 움직였다.
1시간, 2시간.
걷다 보니 어느새 번화가 거리였다. 많은 사람이 뒤섞여 돌아다니는 공간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시선이 가는 사람이 존재했다.
특히 바로 앞에 있는 학생.
가방의 지퍼가 열린 상태였는데 당장이라도 책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다급히 걸음을 내디뎠다.
저벅.
퀘스트고 뭐고를 떠나서 이건 그냥 인간의 본능이었다.
“저기...”
지퍼가 열렸음을 알려주기 위해 학생을 부르려는데.
[띠링!]
[퀘스트 발동!]
오랫동안 기다린 퀘스트가 드디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