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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1)
머지않아 대학교에 도착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차량에 탑승한 채 기다리고 있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오는 류현아가 보였다. 좌, 우에 위치한 친구가 그녀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양새였다.
힐끗-
주변 남학생들은 또 어찌나 쳐다보는지.
“...인기가 저렇게 많았나.”
차에서 내려 류현아를 눈에 담았다.
그때였다.
어떤 남학생이 잰걸음으로 접근하는 게 보였다. 거리가 멀어서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대충 어떤 내용일지 상상이 되었다.
류현아의 곤란한 듯한 몸짓과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나는 남학생. 누가 보더라도 그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가 퇴짜를 맞은 모습이었다.
“허, 이럴 수가.”
집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이미지가 지금 펼쳐지는 중이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그때 눈이 마주쳤는지 류현아가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봤어? 봤냐고.”
“어.”
“크흠, 내가 이런 여자라고.”
“뭐가?”
“아니, 봤다면서!”
보긴 했다만.
쉽게 인정할 순 없었다.
“봤지. 저 남학생이 너한테 화장실 어딨냐고 물어보는 거.”
“뭔 헛소리야! 나한테 전화번호 물어본 건데!”
“응, 안 들렸어.”
“아, 진짜라고!”
“응, 너무 멀어서 안 들렸다고.”
“얘들아, 말좀 해봐.”
“그, 진짜인데...”
“친구라고 감싸주고 그러면 안 돼요.”
“아, 그게...”
동생 친구가 말을 흐리는 사이 류성은 손을 뻗어 남학생을 가리켰다.
“직접 봐. 저기 뭐 마려운 것처럼 뛰어가잖아.”
“아, 씨. 그런 거 아니라고!”
“아무리 봐도 맞는데?”
“아오, 진짜!”
만족스러울 만큼 류현아를 놀리고서야 류성은 고개를 돌렸다. 쿡쿡거리며 웃고 있는 그녀의 친구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눴다.
“그보다, 오랜만이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예전에 몇 번 봤던 친구들이라 크게 어색한 부분은 없었다. 그저 아직까지도 류현아와 친하게 지내는 게 조금 신기할 뿐이었다.
저 녀석, 성격이 보통은 아닐 텐데.
“현아랑 놀아주는 것도 어지간히 힘들 텐데...”
“네? 아뇨, 아니에요.”
“오빠아아!”
“농담이야, 인마. 그보다 환이는?”
“몰라, 내려오겠지!”
“흐음, 근데 어쩌냐. 차가 좁은데.”
“뒤에 저거?”
“어.”
“오올!”
류현아가 차를 훑더니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좋겠다...”
“넌 면허도 없잖아.”
“그래도!”
이내 뒷자리에 탑승해보더니 썩 괜찮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좁긴 한데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은데?”
“괜찮으려나.”
“어. 우리 셋이 뒤에 타고 환이가 앞에 타면 되겠네.”
“그래, 뭐. 멀지는 않으니까.”
마침 류환도 멀찍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을 흔들자 녀석이 뛰어왔다.
“대박!”
그리곤 류성을 휙하고 지나쳐 차량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려댔다.
“미친, 겁나 예쁘잖아!”
BMW를 보며 연신 감탄을 터트려댔다.
아주 난리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럴 순 없는 법이었기에 녀석의 어깨를 툭하고 치면서 지나갔다.
“나중에 직접 운전해보면 되니까 그만하고, 일단 조수석에 타.”
“진짜지? 진짜!”
“그래, 진짜다, 이 자식아.”
“약속했어!”
“알았다고.”
류환이 움직이는 걸 확인한 뒤 고개를 돌려 류현아의 친구들을 눈에 담았다.
“좁을 텐데 조금만 참아요.”
“저희는 괜찮아요!”
“태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성이 참으로 바른 친구들이었다.
아무튼 모두 차량에 탑승했다.
“히히, 날씨 짱 좋다!”
“그치, 그치!”
뒷자리에 앉은 셋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떨어지는 나뭇잎만 봐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날씨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저렇게까지 밝게 웃을 수 있다니.
활력이 넘친다고나 할까. 같이 있으니 괜히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류성은 백미러 거울을 통해 뒷자리를 확인하며 다시금 물어봤다.
“자리는 괜찮고?”
“응, 괜찮은데? 다들 어때, 별로 안 좁지?”
류현아가 친구들을 보며 물었다.
“완전 여유로운데?”
“딱 좋아!”
몸집이 작은 친구들이라 다행이었다. 뒷자리가 좁기로 유명한 BMW 1시리즈 차량에 무려 셋이서 탑승했는데도 그리 좁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럼 출바아아아알!”
류현아의 괴성을 들으며 시동을 걸었다.
부와아아앙!
BMW 135i특유의 승차감을 즐기며 미리 찾아뒀던 맛집 식당으로 향했다.
*
오랜만에 제대로 칼질을 했다.
슥, 스슥.
두툼한 안심스테이크를 썰어서 한입에 먹으니 육즙에 한 번, 고소한 맛에 또 한 번 감탄하고 말았다.
“으음, 맛있네.”
“완전 최고! 근데 오빠, 무리하는 거 아냐?”
“뭐, 딱히.”
“오올! 그럼 더 시켜도 되지?”
“실컷 먹어라, 돼지야.”
“예쓰!”
그리곤 티본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우리 셋이서 나눠 먹을게!”
“...그래, 잘 먹을 돼지지.”
“뭐래, 이 바보가.”
아재 개그 한 번에 옆에 있던 류환이 썩은 표정을 지었다.
“형, 재미없어.”
“크흐으음.”
하지만 실패만 한 건 아니었다.
“푸훕.”
“큽...!”
류현아의 친구 둘은 웃음을 참지 못했으니까.
나쁘지 않은 타율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이어가던 도중이었다. 그냥 동생 녀석이 어떻게 지내는가 싶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있는데 류현아의 친구 한 명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학교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요.”
“맞아요, 진짜, 완전!”
“성격도 엄청 좋잖아요.”
성격이 좋다니.
그럴 리가.
친구라고 그래도 칭찬을 해주는구나, 싶었다.
“그래요? 밖에선 뭐 평범하게 잘 지내나 보네요.”
“평범하진 않죠! 현아 보려고 다른 학교 남자애들도 오는걸요! 그리고 완전 유명한 배우가 꿈이잖아요! 배우 동아리에도 들고 따로 연기 연습까지... 헙!”
“야, 너...!”
그에 류성이 손에 들린 포크를 내려놓고 얼굴을 들었다.
끼리릭.
로봇처럼 고개를 꺾으며 류현아를 쳐다봤다.
“배우?”
“어, 아니. 그게...”
그냥 바보처럼 헤실거리면서 생각 없이 대학교나 다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꿈이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여동생에게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여동생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환이야 자동차 디자이너고.
현아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무지했다는 사실에 솔직히 많이 놀랐다.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하기도 했고.
그보다, 표정이 왜 저래?
류현아는 마치 범죄라도 저지르다가 들킨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
“잘됐네.”
“응...?”
“커서 뭐가 되려나 싶었더니 그래도 목표가 있긴 했잖아.”
“으응?”
류현아의 굳어있던 표정이 슬며시 풀어졌다.
“혼내는 거 아니고...?”
“뭘 혼내?”
“아니, 그 배우가 쉬운 것도 아니고...”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는데?”
“어, 그건 그렇지만.”
“뭐라도 하면 된 거지. 물론 그 얼굴로 배우가 가능할까 싶긴 하다만.”
“...아오, 진짜!”
류성이 피식하고 웃었다.
“잘 해봐. 좀 의외의 직업이긴 하지만.”
“으응...”
다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하는데 엄청나게 조그마한, 모기의 앵앵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고맙다는 말처럼 들리기는 한데, 착각이려니 여겼다.
저 녀석이 그런 말을 한다고?
설마, 세상에.
상상만으로도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으음, 맛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어우, 배불러.”
후식까지 깔끔하게 처리한 뒤 식당에서 나왔다. 대학교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었기에 왔던 인원 그대로 다시 태워다줬다.
“수업 잘 듣고.”
“알았어.”
“안녕히 가세요!”
“오빠, 다음에 또 봬요!”
“으응? 아아, 그래요.”
오빠라는 단어에 조금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류현아가 피식하고 웃었다.
저 녀석이 또.
이러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환아.”
“응?”
“용돈은 아직 안 떨어졌고?”
“어? 아직 많은데.”
“많기는!”
녀석에게 20만 원을 쥐여줬다.
“어어, 고마워, 형. 난 수업이 있어서 먼저 갈게.”
“그래.”
“오빠, 나는!”
예상했던 대로 류현아가 발광을 떨어댔다. 한참 동안 킬킬거리며 놀리다가 슬며시 20만 원을 줬다. 용돈을 받고 헤죽거리던 류현아가 친구들과 함께 멀어졌다. 잠깐 바라보고 있는데 일단의 무리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게 보였다.
“흐음, 진짜 인기가 많네.”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떠올려봤다.
“배우라...”
재능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사용한다면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뭐, 언젠가는 말이지.
그것도 류현아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어떤 성과를 보인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 될 터였다.
아무튼.
동생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하루였다.
*
어느새 8월 중순이었다.
정보에 나왔던 대로 바이오 증시에 훈훈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드디어 바이오 기업 움직이는가?]
[바이오 기업 꿈틀거리기 시작!]
[오랜만에 우상향하는 바이오 기업들, 지금 주식은 순항중!]
[바이오 기업, 눈을 뜨다!]
[긴 잠에서 깨어난 바이오주! 인기 종목은?]
기다리던 바이오 열풍이었다.
“왔구나, 드디어.”
기사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최근 바이오의 훈풍을 몰고 온 특정 종목에 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진상과학 2상 시험계획 순조롭게 승인!]
[어제저녁, 드디어 FDA로부터 진상과학의 2상 시험계획이 승인되었다. 모든 연구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면서 3상 시험계획 또한 순조롭게 승인될 것이라는 예측과 그 이후 전 세계 각국으로 판매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클릭해보니 생각보다 더 자세한 내용이 펼쳐졌다.
현재 오전 9시 15분.
아직 주가가 어떤지 알아보지 않았음에도 어느 정도나 올랐을지 가히 짐작되었다.
[진상과학, 쾌조의 스타트!]
[시작부터 급등하는 진상과학!]
[진상과학 장중 11% 상승!]
[순항중인 바이오 기업들!]
각종 인터넷 기사가 두 눈에 내용을 때려 박아버린 덕분이었다. 그래도 정확한 상태는 알 수가 없었기애 증권 어플을 열어서 제대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단타 이후 각 1억 5천만 원씩 매수했었는데 과연 정확한 수익이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로그인했습니다.]
즉시 자산 현황 메뉴를 눌러봤다.
종목명 : 진상과학
보유주식 : 6,945주.
매입금액 : 150,012,000
수익률 : 16.8%
평가손익 : 25,202,016
총평가 : 175,214,016
그저 보기만 해도 황홀해질 지경이었다.
수익이, 어후.
어느새 2,500만 원이나 수익을 내는 중이었다. 심지어 진상과학 한 종목의 수익금이었다. 나머지 메트리온과 아랑생명도 각각 4%, 7%씩 오른 상태라 금액이 상당했다.
"시작치고는 좋은데?"
만족하며 침대에 누웠다.
냐아아.
럭키와 함께 휴식을 취하면서 주식의 가격을 간간이 체크했다. 크게 변동이 없어진 까닭에 금방 지겨워졌다. 뭔가 재밌을 게 없나 고민하던 와중에 너튜브 채널이 떠올랐다.
구독자가 좀 늘었으려나.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강한 호기심을 안고서 채널에 접속해봤다.
“오...!”
재능 ‘차티스트의 눈’을 쓰면서 홍보 효과가 제대로 이뤄진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