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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관찰자(1)
투자했던 영화 ‘서울전쟁’이 8월 25일 개봉했다.
솔직히 기대감은 부족했다.
‘어둠이 드리워진’에서 느낀 그런 전율을 경험할 순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5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영화였기에 보러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시나리오의 눈이 얼마나 정확한지도 알아내야 했으니까.
이른 시간.
아침을 먹고서 시간에 맞춰 영화관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주문 도와드릴게요!”
“1인 세트로 할게요.”
“음료 사이즈랑 팝콘 맛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음료는 큰 거로 하고요. 맛은 캬라멜이요.”
스마트폰을 건네자 계산이 되었다.
띠링.
폰을 돌려받고 잠시 기다리니 주문했던 음료와 팝콘이 나왔다. 조심스레 들고서 영화가 상영되는 7관으로 이동했다.
의외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이 꽤 있었다.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서울전쟁, 확인되었습니다!”
조금 기다린 끝에 상영관으로 들어섰는데 이번에도 자리는 중앙이었다. 다만 전과 달리 편하게 지나갈 수는 없었다. 진입하는 경로에 사람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빈자리를 찾는 게 어려울 지경이었다.
생각보다 많네.
아무래도 홍보를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
이러면 또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만 재밌어라.
곧이어 광고가 시작되었다.
스마트폰을 껐다.
고요한 가운데 시나리오로 봤던 첫 장면이 영상으로 떠올랐다.
[너, 이 새끼...!]
[너부터야. 너부터... 시작해줄게.]
복수의 서막이었다.
이야...!
대사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영상에 훨씬 더 잘 어울렸다. 이어지는 적절한 긴장감. 시작된 전투와 상대의 뒤통수를 치는 여러 가지 수.
잔인하면서도 사실적인 액션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거기서 파생되는 인물들의 행동이 의외로 개연성을 갖추어 움직이고 있었다.
재밌잖아...?
시나리오로 봤을 때보다 더 좋았다.
그것만은 분명했다.
영화가 끝났을 땐 주변 사람들이 뱉어내는 자그마한 탄성이 고막을 때렸다.
“크흐, 상당히 괜찮은데?”
“액션 좋더라.”
“요즘 나오는 영화가 대체로 재밌네.”
“어둠이 드리워진에는 안 되지.”
“고건 인정.”
“그래도 뭐, 볼만은 하네.”
“이런 게 오히려 관객수는 많더라고.”
입가가 절로 씰룩거렸다.
느낌이 좋았다.
퀘스트가 내려준 재능으로 판별한 시나리오인 만큼 애초에 의심한 적도 없었지만 그래도 실제로 영화를 보고 반응을 체감하니 영화 투자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수익만 적당하면...”
재능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날에 바로 투자를 이어가도 좋을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보는 눈]
[90일마다 한 번씩 사용할 수 있으며 24간 동안 유지됩니다. 시나리오의 개연성, 몰입감, 작품성 및 흥행 가능성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재사용 시간 : 41일]
지금은 재사용 시간이 꽤 남은 상태였다.
아직은, 뭐.
딱히 고민할 사안은 아니었다.
*
영화관을 벗어나면서도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 액션 장난 아니더라."
"크으, 쥑이긴 했지."
간간이 들려오는 이야기 대부분이 긍정적이었다. 확실히 시나리오에서 부족했던 점이 보완되면서 한층 더 대작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날씨도 좋고."
영화관에서 나왔는데도 그렇게 덥지가 않았다. 푹푹 찌는듯한 더위는 이제 물러가고 이른 가을이 물씬 다가온 느낌이었다.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라?
공원 한쪽에 마련된 미니 축구장에서 낯익은 꼬마 아이를 발견했다.
"여기! 여기 패스!"
"나도 줘어!"
"빨리 막으라니까아!"
상당히 열정적으로 뛰고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는 꼬마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최초로 퀘스트의 실패를 경험하게 해줬던 바로 그 아이였다.
"안녕?"
"앗, 안녕하세요오."
"오랜만이네."
"네에."
"치킨은 맛있었고?"
"네, 동생들이 좋아했어요. 감사합니다."
"아냐. 지난 일인데 인사는 무슨."
그러고보니 궁금해졌다.
"그 이후로도 치킨 잘 먹었고?"
"아, 네. 가끔 지나갈 때마다 아저씨가 주시더라구요."
"아이고, 맛있었겠네."
아이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잠깐 쳐다보다가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축구공을 따라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근데 왜 구경만 하는 거야?"
"아, 그게..."
"뭔데?"
"그, 제가 축구화가... 없어서요."
그 말이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고개를 돌려 지금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신발을 확인했다. 축구화를 신은 아이도 있었지만 그냥 평범한 운동화를 신은 아이도 있었다.
그런데, 왜?
혹시 따돌림이라도 당한 걸까.
"쟤들이 너랑 축구하기 싫대?"
"네? 아, 아니에요. 계속 같이하자고 하는데 제가 괜찮다고 그랬어요."
"응...?"
의아하게 쳐다보자 아이가 고개를 숙였다.
"운동화 신고 축구하러 뛰어다니면 금방 못쓰게 되잖아요. 그럼 또 운동화를 사야하니까..."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류성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아, 운동화가 해질까 봐.
그래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다른 삶을 살아가는 아이구나.
그 사실을 깨닫자 감히 함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재능 '침착함'이 아니었다면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으리라.
"그런 거였어?"
"네에."
아무렇지 않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 이유 아니었네. 전에도 나 따라와서 좋은 일 있었지? 오늘도 그럴 거니까 따라와 봐."
"어, 그게..."
"3분이면 돼."
앞장서서 걸으니 고민하던 아이가 천천히 따라왔다.
"어서."
퀘스트도 류성의 등을 떠밀어줬고.
[퀘스트 발동!]
[축구할 때는 축구화가 필수라고!]
[운동화가 해질까 염려되어 축구를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당장 그 아이에게 축구화를 비롯한 각종 축구용품을 선물하라!]
[남은 시간 : 60분.]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축구공에 맞습니다.]
동네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빠삭했다.
3분만 걸어가면 스포츠 용품점이 나오는데 본래 목적지가 그곳이라 방향을 틀어야하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그런데.
용품점 근처에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도대체..."
아이가 자리에 우뚝하고 멈춰 섰다. 류성은 몸을 돌렸고 아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음?"
"전에 치킨도 사주고 이번에도 뭔가 사주려고 하고..."
류성은 아이의 눈을 직시했다.
그곳에서 깊고 넓은 그늘진 어둠을 느꼈다.
"제가 불쌍해서 그런 거라면..."
감이 좋지 않았다.
고민은 짧았다.
류성은 단호한 어투로 의지를 드러냈다.
"나중에 갚아야지."
"네에?"
"나중에 다 갚으라고. 설마 그냥 받으려고 한 건 아니지?"
"아..."
"전부 다 받아낼 거야. 이해했어?"
돌려받을 거라고 강하게 말하자 아이의 표정에 서려 있던 그늘진 감정이 조금 흐려졌다. 그 대신이라고 할까, 강한 의지와도 같은 힘이 눈동자에서 느껴졌다.
"진짜 받으실 거죠?"
"어, 받을 거야."
"...꼭 갚을게요."
마치 어떤 목표라도 생긴 듯한 모습이었다.
어리기 때문일까.
어른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믿는 순수함이 있었다. 그걸로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흐른다면 나쁠 게 없으리라.
"그럼 들어가 볼까."
"...네."
순조롭게 쇼핑이 이어졌다.
"일단 축구화 두 켤레랑 운동화도 하나 사고."
거기에 운동복이랑 축구스타킹까지 구매했다. 각종 보호구는 물론이고 축구공까지 필요하다 싶은 건 되는대로 구매해버렸다.
"이렇게 계산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값을 치르고 해당 물품 전부를 아이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어차피 다 받을 거라니까."
"그래두요."
"그래, 뭐. 난 이제 가야겠다. 친구들이랑 축구 잘하고 다음에 또 보자."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걸음을 옮기는 순간.
"저기...!"
아이가 류성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소년의 결심이 깃든 시선과 마주쳤다.
"연락처 알려주세요."
"음?"
"갚으라면서요."
외통수였다.
이건 알려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적어줄게."
다시 가게로 들어가 필기도구를 빌린 뒤 종이에 연락처를 적어줬다. 아이는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고맙습니다."
"오냐. 그럼 재밌게 놀아라."
인사를 받고 돌아서니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퀘스트 클리어!]
[정산 중...]
[정산 완료.]
[최하급 랜덤카드가 지급됩니다.]
[선행포인트 1점을 획득합니다.]
랜덤카드는 곧바로 사용해버렸다.
무수히 돌아가는 카드.
물음표로 가득한 세상이 언제나처럼 시야에 들어왔다. 큰 기대 없이 카드를 택했다.
화아아악-
빛을 뿜어내며 확대된 카드가 미간으로 스며들었다.
[최하급의 '재능'을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재능 관찰자(3회)'를 습득합니다.]
묘한 재능이 등장했다.
[재능 관찰자(3회)]
상대가 지닌 재능의 가능성을 재단합니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스포츠면 스포츠 등. 해당 인물이 어디에 가장 적합한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1분간 사용할 수 있으나 사진이나 영상 속 인물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대면해야 하며 유지시간이 존재하는 동안 파악 가능한 인원에 제한은 없습니다.
재능을 파악한다라.
사실 꽝이 나왔어도 지금의 좋은 기분을 어그러트리진 못했을 것이다. 꼬마 녀석의 당찬 모습을 보며 류성 또한 많은 것을 느끼는 중이었으니까.
그래, 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여기에 재능까지 주다니.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물론 이 재능을 어디에 써야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
8월 말이 되자 ‘경제 시황정보’에 나왔던 대로 바이오 기업의 주가가 고점을 찍은 느낌이었다. 이건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지 않은 이라면 누가 보더라도 상승세가 과하다고 느낄 수준이었다.
"팔아야겠네."
주식을 매도하고 수익을 누리기로 했다.
충분해.
이미 넘칠 정도로 돈을 버는 중이라 그리 아쉬울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바이오 주식을 팔고 현금이 손에 들어와야 정보권을 구매할 수 있었다. 사용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매도해야만 했다.
스윽.
가면을 쓰고 생방을 틀었다.
[‘알탕’님이 입장합니다.]
시작과 거의 동시에 한 명의 시청자가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알탕님은 오늘도 방송 켜자마자 들어오셨네요."
알탕 : 흐흐흐, 언제나 1위!
짝발 : 저도 보자마자 왔는데...
코인만한다 : 저도 왔습니다!
"아이고, 짝발님도 고맙습니다. 코인만한다님도 어서 오세요."
볼수록 정이가는 시청자들이었다.
"자, 어떤가요? 제가 분명히 바이오 오를 거라고 말씀드렸었죠?"
어쩐지 하회탈의 미소가 더 짙어진 느낌이었다. 실제로 가면 속에서 웃고 있긴 했지만 그게 시청자들에게 보일 일은 없을 터였다.
"아직도 바이오는 아니라고 보시나요?"
알탕 : 완전 바이오죠!
우상향 : 지금은 바이오 시대^^
쏘리 : 와, 씨. 바이오가 진짜 이렇게나 오를 줄이야...!
꼬맹이 : 역시 정보꾼님이시네ㅋㅋ
주린잉 : ㅋㅋㅋ바이오가 갓입니다!
"다들 생각이 많이 변하셨네요. 그런데 전 이제 그 좋은 바이오, 매도하려고 합니다."
그 말에 의문을 표하는 채팅이 올라왔다.
류성은 일일이 대답해줬다.
"왜 벌써 파나구요?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요. 물론 알탕님처럼 너무 이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열기가 과하다고 느꼈거든요. 지금 정도면 적당하다 싶네요. 짝발님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익절하러 온 거라 시간을 길게 끌 이유가 없어서요. 수익만 확인하고 바로 매도 진행하도록 할게요."
수익 현황을 화면 중앙에 확대했다.
종목명 : 진상과학
보유주식 : 6,945주.
매입금액 : 150,012,000
수익률 : 87%
평가손익 : 130,510,440
총평가 : 280,522,440
진상과학의 수익률이 벌써 87%였다.
평가손익.
그러니까 순수익은 무려 1억 3천만 원이었고.
"이야..."
이건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