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48화 (4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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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싶은 공부(1) >

그는 류성을 보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아마도 이곳으로 오는 길에 미리 보고를 받은 모양이었다.

"행정실장 박현호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실장과 악수했다.

"여기 졸업했던 류성이라고 합니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후원을 하신다구요?"

"네. 소소하지만요."

"금액은 중요하지 않죠. 이런 관심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니까요."

"그렇게 말해주셔서 고맙네요."

"빈말 아닙니다. 이런 자그마한 관심 자체가 적은 시대라서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요. 자, 일단은 앉으시죠.“

"네."

자리에 앉아 행정실장과 정기후원에 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눴다. 생각 이상으로 상세하고 꼼꼼한 내용에 류성은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간혹 후원금을 학생들에게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체크를 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거야 괜찮습니다만 굳이 직접 만나서 학생들의 인성이나 가정환경을 파악하려는 분이 계시죠. 안타깝지만 그런 경우는 딱 잘라서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건 학생에게도 못 할 짓이라서요.“

그 정도까지 참견하는 것도 참 대단하다 싶었다.

"저는 그렇게 참견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나온 학교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경험했던 일도 있고 해서요. 그래도 최소한의 사용내역서는 보내주셔야겠죠."

"물론입니다."

"그 정도면 될 거 같네요."

"시원하시네요."

깔끔하게 서류를 작성하고서 후원금을 계좌로 보냈다.

300만 원.

다른 곳에 후원할 금액까지 생각하면 매달 꾸준히 수천만 원의 금액을 써야 할 수도 있었다.

상당한 금액이었지만 코인 정보를 통해 벌어들일 돈을 생각하면 사실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 코인 수익까지 나아갈 것도 없었다. 현재 이모티콘 매출이나 영화 투자 수익만 생각해봐도 충분히 감당 가능한 정도였으니까.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엔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 너무 많았으니까.

"이 금액으로 매달 후원을 하신다구요?"

"네, 일단은요."

"이거, 참. 젊은 나이에 성공하셨네요."

류성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모교 후원이 마무리되었다.

다음은 중학교였다.

그곳에도 300만 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또한 마찬가지.

[연계퀘스트 ‘어서와, 정기후원은 처음이지?’가 갱신됩니다.]

[정기후원 금액 : 900만 원]

이걸로 초, 중, 고 모교에만 900만 원의 금액을 매달 후원하게 되었다.

"이야기 들었다. 괜찮겠어?"

"네, 선생님."

"그래, 정말 큰 결심을 했구나."

행정실에서 서류를 작성한 뒤에 김창호 선생님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소주도 한 잔 마셨는데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기분이 들떴다.

선생님과 술이라.

괜스레 옛 추억에 빠져들었다.

"선생님, 그거 생각 나세요?"

"어떤 거 말이냐."

"예전에 저한테 신발 선물해 주신거요."

"아아, 운동화 하나 사줬었지."

류성이 김창호 선생님을 빤히 쳐다봤다.

"감사했습니다, 그때. 정말로요."

그 당시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던지.

"허허, 그때는 받고 멍하니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러게요. 당황했었거든요."

"그럴 수 있지."

"인사가 좀 늦었죠? 체육복도 사주셨었는데."

"괜찮다. 근데 성이 너한테만 사줬던 건 아니야. 그러니 그렇게 고마워할 건 없다."

"그래도요."

그때 이후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다.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했고.

학창 시절을 떠올리니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그땐 그랬지."

"맞아요, 생각나네요."

"은근히 속 썩이는 구석이 있었는데 말이야."

"제가요? 그랬던가요?"

"그럼."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분이 참으로 좋았다.

그 탓인지, 시간이 빨리도 흘러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오늘 저녁은 내가 살 테니까 다음에 또 보는 걸로 하자."

"네. 오늘 잘 먹었습니다, 선생님."

"오냐. 들어가 봐라."

"선생님도 조심해서 가세요."

선생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쁘네."

밤하늘을 수놓은 별이 유난히 반짝였다. 멍하니 감상하던 와중에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다른 곳들이 떠올랐다. 아마 지금도 봉사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시작한 김에 제대로 끝을 내자는 마음으로 9월 후원금을 미리 입금하기로 했다.

유기견 보호소.

개인 두 명과 너튜버.

하늘 보육원까지.

후원금액도 소폭 늘렸다.

[연계퀘스트 ‘어서와, 정기후원은 처음이지?’가 갱신됩니다.]

[정기후원 금액 : 2,500만 원]

이 정도면 분명 한계치에 다다른 포인트를 습득할 수 있으리라.

9월 말일이 기다려졌다.

*

도유종, 그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공부에 집중했다.

펜이 굴러가고.

문제집이 넘어가는 소리만이 조용한 가운데 번졌다.

삭, 사삭.

그러다 문제가 막히면서 잠깐 집중력이 깨어졌다.

“하아...”

공부에 몰입할 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들러붙었다.

그게 아니면 인생을 책임일 그 어떤 수단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지금처럼 집중이 깨져버리는 잠깐 사이에도 무수한 상념이 흘러 다니곤 했는데 그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보육원에서 나간 이후 사회에 내던져지는 것에 대한 막연함. 아무것도 없는 맨몸으로 맞서 싸워야 할 세상에 대한 공포.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게 될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

그런 잡념이 싫었다.

어쩌면 다가올 미래가 싫은 건지도 몰랐지만.

“쯧.”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펜을 강하게 쥐었다.

공부나 하자.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형아! 유종이 형아!”

그때 어린 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 공부하는 중이야.”

“놀자, 조금만 놀자아.”

무시한 채 문제에 집중하려는데 동생 녀석이 울먹거렸다. 이럴 때마다 참 생각이 많아지고는 했다. 공부도 중요했고 미래도 중요했지만 저기서 울고 있는 동생도 소중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알았어, 그만 뚝.”

“뚜욱!”

“다들 뭐 하고 있는데?”

“숨바꼭질 중이야!”

“그래, 그러면 형이랑 같이 여기에 숨어있자.”

“응!”

그렇게 노는 듯, 놀아주지 않은 채 다시 공부를 이어갔다. 도유종, 그로서는 최선을 다해 두 가지 전부를 챙기는 중이었다.

그것도 잠시.

술래가 방으로 들어오면서 결국 집중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찾아따아아!”

“아, 들켜써!”

“에휴.”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도유종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진 상태였다.

여기가 좋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지금이 더없이 행복했다. 동생들은 물론이고 원장 어머니도 너무나 좋았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될 그 날이 더더욱 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래, 다 같이 놀자.”

하지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어느새 고등학생이었다.

이제 2년만 더 지나면 만18세가 되기에 이곳을 떠나야 한다.

가족과 헤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지낼 남은 시간이라도 소중하게 보내고 싶었다. 공부도 하면서, 동생들과도 추억을 최대한 많이 쌓고 싶었다.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서 서글펐고.

그래서 두려웠다.

“이번엔 형이 술래할게. 내려가자.”

“응! 좋아!”

“헤헤.”

“짜식들.”

그렇게 30분가량을 신나게 놀아줬다. 조금 얌전해진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유종 오빠.”

“응?”

같은 고등학생이지만 그보다는 한 살이 어린 예지은이었다.

“문자가 왔는데... 좀 이상해서.”

“문자?”

“응, 아마 오빠도 왔을걸?”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자세하게 물어보려는데 마침 도유종의 휴대폰이 크게 울렸다.

“지금 왔나 본데?”

“뭔데 그래?”

손가락은 이미 휴대폰의 메시지함을 여는 중이었다.

그러자 내용이 펼쳐졌다.

[농협 입금 600,000원

09/01 17:23

잔액 900,000원]

후원 계좌 입금 메시지였다.

다만 문제는.

금액이 전보다 두 배나 커졌다는 사실이었다.

“어, 이게 왜...?”

“이상하지?”

“어어, 그러네. 이거 빨리 말씀드려야겠다.”

둘은 서둘러 원장실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갔을 무렵.

원장실 내부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금액이 잘못 입금된 게 아닌가 싶어서요. 네? 아아...!”

잠시 목소리가 끊겼다.

도유종과 예지은은 서로를 힐끔 쳐다보다가 문을 두드리지 않고 기다렸다.

궁금했으니까.

마침 다시 들려오는 원장님의 목소리는 처음과 달리 조금 떨리는 기색이었다.

“고마워요, 정말...”

이후 문이 벌컥하고 열리면서 눈시울이 조금 붉어진 듯한 원장님과 마주쳐버렸다. 그 탓에 크게 당황해버린 도유종과 예지은.

“어, 그게...”

원장님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마침 잘 왔다. 이야기해줄 게 있었거든. 아, 벌써 문자가 왔겠구나. 그치?”

“네. 입금된 금액이 이상해서 말씀드리려고요.”

“저두요!”

“그래, 나도 의아해서 통화를 해봤는데 후원금액을 늘리기로 했다더구나.”

“네? 거기서 더요?”

두 사람은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그것도 엄청난 금액이었는데.

매달 30만 원.

1년이면 무려 360만 원이었다. 보육원을 졸업하고 나라에서 주는 돈이 300만 원임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가늠할 수 있으리라. 나이가 어릴수록 지급되는 금액이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액수였다.

남은 기간 2년.

그동안 모이게 될 돈만 700만 원이 넘어갔기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컸었다.

그런데.

그 큰돈이 두 배로 늘었다고?

“그, 그게... 진짜에요?”

“그래, 진짜야.”

그럼 대략 1,400만 원이 모이게 될 터였다.

그 정도 돈이면...!

장학금을 받지 않고 더 좋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것도 보육원 근처로 말이다.

산을 조금 오르긴 해야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 지하철역까지 겨우 10분. 거기서 1시간 이내에 있는 in-서울 대학교만 최소 열 곳은 넘을 터였다.

충분히 등교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보육원 근처 대학을 다니면서 연장 보호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원장 어머니는 물론이고 동생들과 더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래는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가려고 생각했기에 보육원 근처 대학교는 선택지가 없었다. 서울은 턱도 없었고 지방으로 눈을 돌리던 중이었다.

“정말...”

그런 와중에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추가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 학자금 대출 또한 안 받아도 될 것 같았다. 막막하던 미래에 자그마한 희망의 빛이 드리워진 느낌이었다.

“진짜로... 매달 이렇게 후원해주시는 건가요?”

“그래,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해주신대.”

도유종의 눈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면 저... 장학금 안 받고 더 좋은 대학 가도 돼요?”

“당연하지.”

“진짜, 진짜로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 하면서 여기서 더 지내도 돼요?”

“물론. 그래도 돼.”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기뻐서.

먹먹한 감정에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오직 한 가지만을 빌고 또 빌었다.

부디.

이게 꿈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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