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54화 (54/277)

< 시인이 보는 세상(1) >

점심 무렵, 이신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간판 바꾼다, 드디어!)

"오늘이었냐?"

(그래, 인마! 그러니까 빨리 와. 영업도 쉬는 날이고 같이 치맥이나 한잔해야지. 치킨은 당연히 신메뉴고.)

"오오, 신메뉴 좋지. 내가 또 치느님의 혀 아니냐. 아주 냉혹하게 판단해줄 테니까 실망하지나 마라. 나 맛없으면 없다고 하는 거 잘 알지?"

(빨리 오기나 해, 인마. 이번 신메뉴는 하나같이 전부 대박이니까. 먹자마자 아주 그냥 감탄을 할 거다.)

"바로 간다, 흐흐."

통화를 끊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차가 보이지 않았다.

"아, 참."

동생 녀석이 끌고 간다는 메시지를 아침에 잠깐 봤었는데 까먹고 있었다. 어차피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도 했고 술을 마실 예정이었으니 그냥 가볍게 걸어가기로 했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선선했다.

공기도 맑았고.

산책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이신우의 치킨집이 보였다.

"이야."

두 사람이 건물 외벽 상단에 올라 간판을 교체하는 중이었다. 깔끔하고 멋들어진 글씨체에 세련된 아름다움이 가미된 간판이었다.

천천히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고서 결제 페이를 열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아, 네. 무슨 일이신가요?"

"여기 간판 제작 비용 다 지급되었나요?"

"그건 왜...?"

"치킨집 주인 친구거든요. 선물이나 좀 하려고요."

"선물이요?"

"네, 제가 결제하려고요."

그 말에 직원의 표정에 감탄이 서렸다.

"이야, 우정이 대단하시네요."

"그냥 그런 거죠, 뭐."

괜히 어색해서 말을 버벅거렸다.

그에 웃는 직원.

"일단 선금만 결제했고 잔금은 안 치렀습니다."

"오, 잘됐네요, 그거 제가 낼게요."

"알겠습니다."

그 순간 퀘스트까지 떠올랐다.

이런 행운이.

류성은 웃으며 퀘스트 내용을 대충 훑어본 뒤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페이로도 되죠?"

"물론입니다."

"그럼 이걸로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그렇게 결제가 완료되고.

[퀘스트 클리어!]

[최하급 랜덤카드를 습득합니다.]

[선행포인트 2점을 획득합니다.]

보상으로 최하급 카드와 포인트를 2점이나 받았다. 잔금이 꽤 되는지라 적지 않은 돈이 나간 덕분이었다.

"흐흐."

류성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이걸로 40포인트.

아주 빠른 속도로 선행 포인트를 모아가는 중이었다.

"그럼 나머지도 수고해주세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사를 하고서 치킨집으로 들어갔다.

"여, 왔냐?"

"어. 간판도 거의 다 바꾼 거 같던데?"

"그래? 그럼 결제 좀 하고 와야겠다."

"그러던가."

류성은 아무것도 모른 척 그냥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사이 이신우는 치킨 튀기는 걸 멈추고서 바깥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들어오더니 류성을 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새끼, 돈지랄은 왜 하냐?"

"돈지랄은 무슨."

"아무튼, 고맙다."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선물이라고 생각해."

"선물은 내가 해줘야지, 인마."

"갑자기?"

"주식 정보 알려준 덕분에 계획보다 더 빠르게 시작한 거야. 특히 이번에 바이오 기업들, 진짜 장난 아니더라. 매도할 때 손 떨려 죽는 줄 알았다니까."

"아아, 그런 거냐? 그럼 다음에 맛있는 거나 쏴."

"오케이, 기대하라고. 일단 신메뉴 좀 준비할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봐. 아, 그리고 마누라도 불렀는데 괜찮지?"

"나야 좋지, 하민이랑 하빈이도 보고."

머지않아 김민희와 이하빈, 이하민이 도착했다.

"류성씨,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잘 지냈죠?"

"그럼요."

"하빈이랑 하민이도 안녕?"

"안뇽하세요오!"

"삼촌! 삼촌이다아!"

"오냐, 삼촌이다."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자 두 아이가 류성에게 들러붙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좋은 모양이었다. 전에 한식당에서 봤을 때는 조금 낯설어하는 것 같더니. 친근한 장소에서는 예전과 같은 애교가 튀어나왔다.

"히히, 삼촌 좋아!"

"내가 더 좋아!"

녀석들의 귀여운 다툼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고개를 들어 김민희를 쳐다봤다. 그간 프랜차이즈로 고생하다가 계약이 끝나고 드디어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상태였다. 그러니 축하를 해주는 게 우선이었다.

"축하드려요. 새로 시작하는 거."

"고마워요. 잘 되길 바라야죠."

"잘 될 거에요."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치킨 냄새가 공간을 채웠다. 이어서 신메뉴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치킨은 총 두 마리였는데 양념 종류는 네 개였다.

"후라이드랑 양념은 전에 봤으니까 넘어가고. 새로 개발한 소스가 총 4개거든? 어떤 게 괜찮은지 한 번 먹어 봐."

"오케이, 그럼 맛 좀 볼까."

류성은 일단 마요네즈 소스가 묻은 것부터 선택했다. 사실 마요네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제일 먼저 택한 거기도 했다.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으로 한입을 베어 물었는데 마요네즈 소스의 느끼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호...?"

대신 묘하게 달콤한 맛과 조금은 매콤한 맛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눅눅한 느낌의 소스였는데 치킨 자체는 바삭했고 속살은 부드러웠다.

"뭐냐, 이건."

"왜? 이상해?"

"그게 아니라..."

류성은 말을 하다말고 한입 더 베어 물었다.

맛있었다.

뭔가 처음 맛보는 치킨이었는데 이상하게 중독적이었다. 그렇게 몇 조각을 쉴 새 없이 먹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와, 씨. 나 마요네즈 싫어하는 거 알지?"

"알지."

"근데도 맛있네, 이건."

"흐흐흐, 그래?"

"어, 이건 되겠다."

이어서 이신우가 김민희를 쳐다봤다.

"당신은 어때?"

"최고야. 완전 맛있어!"

김민희는 엄지를 몇 번이나 치켜들었다.

"아빠, 마시써요!"

"오구, 그랬어?"

"네에!"

다른 소스가 묻은 치킨의 맛도 냉정하게 평가해봤다.

아니, 이건 뭐.

먹으면 먹을수록 확신만 들었다.

"야, 무조건 되겠다."

"그래?"

"어. 이게 안 되면 전국 치킨집 다 망해."

"그 정도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먹는 걸 멈추지 않았다.

맥주도 한 잔 들이켰다.

"크으, 쥑이는구만."

흠 잡을 곳 없는 완벽한 치맥이었다.

*

맥주라서 크게 취하지는 않았다.

그저 배가 부를 뿐.

치킨도 넉넉하게 먹은 터라 집으로 돌아가 바로 샤워부터 했다.

"럭키야."

냐아아.

럭키를 품에 안고 침대에 누웠다.

카드 오픈.

오늘 퀘스트를 깨고 받은 보상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최하급이라 크게 기대가 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으니까.

"잘 부탁할게."

오늘도 럭키의 행운과 함께하기로 했다.

꾸우욱.

앞발로 카드를 함께 눌렀다.

강렬한 빛을 뿜어내던 카드가 확대되듯 날아들었다.

[최하급의 ‘재능’을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시인이 보는 세상(소모성)’을 습득합니다.]

[재능을 떠올리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점이 갱신됩니다.]

[해당 재능이 상점란에 추가됩니다.]

뭔가 상당히 괜찮아 보이는 재능을 얻었는데 그 재능이 상점에 추가까지 되었다.

일석이조였다.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재능을 확인해봤다.

[시인이 보는 세상(소모성)]

[1시간 동안 시인의 감성이 폭발한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건 그 모든 것에서 문학적인 영감이 끌어낸다. 단, 작품 하나가 완성되었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재능이 소멸한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

시인의 감성이 폭발하는 재능이라.

시집이라도 내야 하나.

하지만 다양한 시도 아니고 겨우 하나의 시로 시집을 낼 수는 없었다.

"흐음."

이걸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그러다 몇 개의 블로그 제목에서 이끌림을 느꼈다.

[노래 가사가 마치 시처럼 좋은...]

[좋은 노래, 좋은 감성, 그리고 가사]

[시인이자 작사가로 살아가는...]

작사가.

시인의 능력을 분명하게 발휘할 수 있는 분야였다.

"괜찮겠는데?"

세상에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류성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이라는 건 사람의 마음을 휘감는 마법적인 감성이 존재했으니까.

가사라, 가사.

예전 노래 몇 개가 떠올랐다.

검색을 통해 가사만 따로 확인해보니 정말 시를 읽는 기분이었다.

압도적이네.

이런 느낌의 가사를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혹시 공모전이 있나 싶어 검색을 해봤다.

그러자 몇 개가 떠올랐다.

현재 진행 중인 공모전이 생각보다 다양했다.

이것도 좋고. 이것도.

하나씩 차분하게 살펴보던 와중이었다.

"어...?"

아직 방영되지 않고 있는 드라마 OST의 작사 공모전이 열리는 중이었다. 심지어 앱플릭스에 방영예정인 드라마였다.

조금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졌다.

드라마 좋지.

꼼꼼하게 검색해본 결과 방영까지 약 3개월이 남은 상태였다.

스토리도 괜찮게 느껴졌고.

가사를 쓰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상금이 역대급이었다. 대상에 당선이 되면 무려 1억 원으로 다른 공모전에 비해서 금액이 월등하게 컸다. 작사에 대한 저작권은 당연히 작사가의 몫이었고 공모전 마감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가수도 정해진 상태였다.

평소 즐겨듣는 노래의 가수인 마이유였다.

시기도 그렇고 모든 게 완벽했다.

"그래, 여기에 참여해보자."

설사 떨어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재능을 소진하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언제나 최상의 결과로 이어질 순 없는 법이니까. 도전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리라.

일단 해당 사이트에 나와 있는 공모전 요강을 상세하게 살폈다. 해당 드라마가 추구하는 방향과 스토리를 몇 번이나 읽었다.

[돈이 전부인 사회에서 처참한 삶을 살아온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온갖 일을 하며 생을 연명했고 그러던 와중 조용한 카페에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된다.]

[카페 사장은 그녀의 삶을 대략 짐작하며 은근히 보살피기 시작한다. 순수한 호의를 받아보지 못한 그녀는 그런 카페 사장의 행동에 혼란을 느끼는데...]

[그 어떤 흑심도 없는 한 남자의 호의가 그녀를 온전한 한 명의 사람으로서 우뚝서게 만든다.]

자극적인 요소가 적은 명품 드라마 느낌이었다.

이런 거 좋지.

요즘 같은 삭막한 시대라면 더더욱.

다음으로 가이드 곡을 들을 차례였다.

♪♩♩♬♪.

곡을 재생하자 음이 흘러나왔다.

잔잔하면서도 먹먹한.

감정을 자극하는 진한 느낌의 멜로디였다.

한번 더.

한참을 들으며 곡에 빠져들었다.

가사가 없어도 좋았다.

이 정도면 사전파악은 충분했다.

이젠 재능을 사용할 때였다.

[시인이 보는 세상(소모성)]

[재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

네를 누르자 번뜩이는 영감이 뇌리에 꽂혔다.

모집 요강에서 봤던 드라마의 줄거리. 가이드 곡에서 느껴지던 먹먹한 멜로디와 짙은 감수성. 그것들이 이미 머릿속에 존재해서일까, 툭하고 튀어나온 시인의 감성이 그 즉시 감성이 담긴 글자를 만들어냈다.

탁, 타다다닥.

노트북을 펼쳐 머릿속에서 펼쳐진 글자를 화면에 옮겨 적었다.

[고단한 하루 길 끝에

거울을 보면 비치는 내 모습

마치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잠시 손길이 멎었다.

감정이 가라앉은 까닭이었다.

으음.

다시금 가이드 곡을 들으면서 시인의 감성을 끌어올렸다. 또 한 번 영감이 폭발하며 곡에 딱 맞는 가사가 화면을 빼곡히 채우기 시작했다.

"후아..."

1시간은커녕 20분 만에 작업이 끝나버렸다.

[재능이 사라집니다.]

아름다운 시였다.

그 시가 가사가 되어 노래와 하나가 되었다.

"좋네."

재능이 사라졌음에도 그렇게 느껴졌다.

노래가 정말 좋았다.

*

본격적인 심사 기간에 돌입했다.

"이번에 대표님이 거는 기대가 큽니다."

앱플릭스에 방영될 드라마를 제작하는 드라큘라 스튜디온은 유명한 작곡가와 전문적인 심사위원을 대거 고용했다.

"가능성이 있는 가사는 절대 놓쳐선 안 됩니다."

"물론이죠."

"적어도 20%는 1차 예선을 통과시켜야 해요. 애매하다 싶으면 그냥 통과작으로 분류해주시면 되고요. 정말 좋다 싶은 건 바로 본선으로 올리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부드렸습니다. 기분 나빠하지 마시구요. 자, 그럼 이제 시작해봅시다."

해당 가사가 가이드 노래와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사라는 게 그렇게 긴 분량은 아니었으니까.

첫 단어만 봐도 감이 온다고나 할까.

물론 애매한 건 전부 통과였다.

한 사람의 관점에서 애매해도 다수의 관점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었으니까.

최소한의 가능성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드라큘라 스튜디오만의 철칙이었다. 심사 기간이 긴 이유기도 했고.

조용한 가운데 심사가 이어졌다.

그중에 한 사람.

해당 가이드 곡을 작곡한 전은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안 어울리잖아.

속으로 혀를 차며 공모전 참여작을 탈락시켰다.

애매한 것도 아니고 그냥 별로였다.

다음도.

그다음도 마찬가지.

"뭐, 무난하네."

그나마 이번 가사는 나쁘지 않았다.

딱 평균 정도.

그건 1차 예선을 통과시켰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함께 들어볼 최소한의 자격이 되었다. 그 이후로 다시 한참이나 기준 미달 작품이 나타났다.

눈이 피로할 지경이었다.

잠깐 쉬었다가 다음 참여작의 가사를 읽어내려갔다.

"어...?"

드디어, 범상치 않은 느낌의 가사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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