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치를 부리다(1)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쉴 새 없이 떠돌아다녔다.
으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간 자식과 손주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오랜만에 보는 얼굴임에도 차마 더 머물라 말하지도 못하고 그 말을 끝내 삼키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였었다.
그렇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봐야 쉬어도 쉬는 게 아닐 것 같았다.
"아버지."
"응?"
결국, 안 되겠다 싶었던 류성이 입을 열었다.
"아직 추석 연휴 3일 넘게 남았잖아요."
"그치."
"근처 해외여행이라도 가면 어때요?"
"해외여행? 으음."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모습에 혹시나 같은 마음일까 싶어서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요."
"음? 양가 전부 말이냐?"
"네."
아버지가 류성을 슬쩍 쳐다봤다.
이내 미소를 지으신다.
대견하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에 괜히 멋쩍어졌다.
"우리 아들이 멋진 생각을 했네. 당신은 괜찮겠어?"
"그럼, 당연하지. 사실 현아랑 환이 공부 때문에 일찍 가는 거였는데 애들이 제대로 공부할 거 같지도 않구."
그에 류현아랑 류환도 고개를 저었다.
"엄마! 공부는 무슨 공부야? 이럴 때는 그냥 쉬는 거라구. 나는 여행 완전 강추!"
"음, 친구랑 약속이 있긴 한데 그건 미루면 되는 거라서. 솔직히 추석이라 공부에도 집중은 안 될 거 같고."
그 말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뭔가 혼내야 할 거 같은 상황이긴 한데 이번은 그냥 넘어가주마. 그럼 오랜만에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여행이나 갈까?"
"꺄아아악! 좋아, 아빠!"
아버지도 내심 바라던 모양이었는지 결정을 내리자마자 차를 돌렸다.
부아아아앙.
일단 외가로 이동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설득했다.
"이 나이에 무신 해외여행이야?"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래요, 할머니."
"크흠, 그래...?"
"네, 가는 거죠?"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뭐. 가는 거야 문제될 건 없지."
예상대로 쉽게 수락하셨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오냐, 해외여행 좋지.)
"그럼 저희도 집에 들렀다가 준비 끝나면 바로 모시러 갈게요. 간단하게 짐은 싸두시고요."
(그려. 조심해서 오고.)
일단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부터 짐 싸는 걸 도와드렸다. 가족 모두가 나서서 준비하니 10분도 걸리지 않아 여행용 가방 하나가 뚝딱하고 완성되었다.
"우린 이거면 충분혀."
그렇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친가는 인천이기에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보다 어디가 좋으려나."
"일단 근처가 좋겠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셨다.
"그치, 2박으로 가야 하니까."
"그럼... 홍콩 어때?"
홍콩이란 말에 모두들 눈을 반짝였다.
"직항으로 가면 3시간 30분이면 도착하잖아."
"그러네."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다양해서 괜찮을 거 같은데."
류현아와 류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나는 좋아, 아빠!"
"저도요."
"아버님, 어머님은 어떠세요?"
"어디든 문제겠냐."
"우리야 동네만 나가도 그냥 좋아."
"그러면 홍콩으로 가죠."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류성이 끼어들었다.
"아버지."
"음?"
"표랑 호텔은 제가 예약할게요."
"괜찮겠어?"
"네, 이모티콘 매출도 많이 나왔는데 할아버지랑 할머니한테 제대로 선물도 못 해드렸잖아요."
"...녀석."
"오늘 저녁에 출발하는 거로 하면 되죠?"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모두가 동의한 가운데 류성은 스마트폰으로 홍콩행 비행기의 종류부터 검색했다.
여행할 때는 항상 비행기의 체급을 먼저 검색하는 습관이 있었다. 작은 사이즈의 비행기는 일등석이어도 대형 체급 비행기의 비지니스석보다 불편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음, 이거 괜찮네.
마침 기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대한항공 747-9i
꽤 유명한 A380이나 747-8i보다 더 최신 기종었다.
조건 설정에 들어가 제한을 걸었다.
성인은 9명.
혹시나 싶어 일등석을 검색해봤는데 나오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퀄리티가 좋은 대형 비행기일수록 일등석 좌석이 적기 때문이었다.
보통 6석이나 8석 정도가 끝이라고 보면 되었다.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프레스티지석을 예매했다. 일등석과 비교하면 조금 부족하지만 체급이 큰 최신기종이라 자리가 상당히 넓고 편해 보였다.
가격은 성인 9명 전원 왕복으로 1,500만 원이 조금 넘어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편하게 이동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돈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류성은 기분 좋게 결제를 진행했다.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호텔을 찾아봤다. 다양하고 좋은 호텔이 많았는데 하버시티 뷰가 정말 예쁘다는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하버시티 앞에는 이름 모를 강이 있었는데 엄청나게 화려한 하버시티와 함께 있으니 사진으로만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더 페닌슐라 호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호텔이라 서비스가 좋다는 이야기가 많이 보였다. 호화로움도 특징이라는데 특히 에프터눈티와 뷰로 유명하다는 말에 바로 예약을 결정했다.
"방은, 음..."
가장 넓은 방으로 선택했다.
슈페리얼 디럭스 룸으로.
9인이니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
"음?"
"예약 다 했어요. 오후 6시 전에만 집에서 출발하면 될 거 같아요."
"그래? 알겠다, 시간은 넉넉한 편이니 집에 들러서 짐부터 싸고 친가로 이동하면 되겠네."
"꺄아아아악, 좋아!"
머지 않아 도착한 본가.
"속옷이랑 충전기..."
가족들은 꼼꼼하게 짐을 쌌다. 류성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들을 넉넉하게 챙겼다. 이후 고양이 호텔에 전화를 걸어서 2박을 연장신청했다.
(2박 추가, 확인했습니다.)
"네. 럭키는 잘 지내나요?"
(그럼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보고 싶을 테니까 조금 있다가 영상이라도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아,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그럼 3일 뒤에 뵙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마음을 조금 놓고서 캐리어를 한 곳으로 모았다.
짐이 한가득이었다.
아버지가 모는 7인승 SUV로도 부족하리라.
"너희 둘은 나하고 가자."
이번에는 류성도 차를 끌고 이동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승차감을 생각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차에 타는 게 맞았으니까.
"형, 운전은 내가 해도 돼?"
"그러던가."
"예쓰!"
운전을 저렇게 좋아하니 이럴 때 운전기사로도 쓰고 나쁠 게 없었다.
"자, 그럼 친가로 다시 가볼까?"
"좋아!"
기분 좋게 친가로 내려갔다. 이미 준비를 마친 두 분을 모시고서 드디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차를 주차하고서 공항에 진입했다.
"그러고보니 시간도 제대로 안 물어봤구나."
"그러게, 몇시 비행기야?"
아버지와 류현아의 물음에 류성이 대답했다.
"8시 15분 비행기에요."
"어...?"
현재 시간이 6시 50분이니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말이다.
"그럼 서둘러야겠는데...!"
"괜찮아요, 아버지."
"음?"
"프레스티지석으로 예약했거든요."
류성의 말을 이해한 아버지가 눈을 크게 떴다. 류현아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 가격이..."
"일단 짐부터 부쳐야죠. 이쪽으로 오세요."
"오빠, 대박! 그게 그거지? 비즈니스석?"
"어,맞아."
"우오오! 기내식도 막 스테이크 나오겠네!"
류현아의 따가운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면서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셨다.
"이쪽이에요."
"오냐. 근데 우리 전부 비즈니스석이면 너무 무리한 거 아니여?"
"괜찮아요. 저 그 머슴 이모티콘 많이 팔렸거든요."
"그려?"
"네. 그걸로 충분히 감당돼요."
"그래도 돈을 모아야제."
"앞으로 모을게요. 어서 오세요."
"그려... 내 새끼. 이제 다 컸네."
흐뭇하게 웃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수속 카운터로 향했다. 프레스티지석 전용 카운터라 한산했다. 덕분에 10분도 걸리지 않아 수속을 마치고 짐을 부칠 수 있었다.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라운지에서 쉬면 될 거 같아요."
"그래, 그러자."
아버지도 이내 상황을 받아들이고선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슬며시 다가와 류성의 어깨를 툭하고 건드렸다.
"진짜 무리한 건 아니지?"
"에이, 괜찮아요."
"크흠, 알았다. 더 말하는 것도 좀 아닌 거 같으니 믿고 맡기마. 이렇게 아들 덕 좀 보고 그러는 거지."
"흐흐, 제가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아부지."
"오냐, 기대하마."
이윽고 도착한 라운지는 외관부터가 고급스러웠다.
실내는 말할 것도 없었고.
"어이구, 의자가 편안하네."
"세상 좋아졌구만."
"먹을 것도 많고 말이여, 클클."
다행스럽게도 라운지 퀄리티에 크게 만족하신 모양이었다. 여동생과 어머니도 설레는 표정으로 라운지를 돌아다녔다.
"뭐가 많은데."
머지않아 한쪽에 놓인 먹을거리와 음료를 양껏 가져와 즐겼다.
"어머, 맛이 괜찮네."
"엄마, 비행기 타면 더 맛있는 거 나오니까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
"알았어."
편안한 시간이 이어지니 1시간이 순삭이었다. 어느덧 비행기에 탑승해야 할 시간이었다.
모두 함께 움직여 일등석/프레스티지석 전용 출입구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는 승무원에게 표를 보여주자 바로 통과를 시켰다.
"우리 2층이지, 오빠?"
"맞아."
"으으으. 너무 좋겠다!"
모두 2층으로 올라갔다. 옆 좌석과 비스듬하게 놓여 독립성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류성은 의자에 앉자마자 다리부터 뻗어봤다.
"이야."
공간이 상당히 넓어 발을 쭉 뻗을 수 있었다. 의자 또한 뒤로 180도까지 눕혀졌는데 그 상태에서 받침대에 발을 올리면 침대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3년 전, 태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는 이코노미석에 탑승했었는데 키가 큰 편이다보니 아무래도 심각할 정도로 불편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때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지금은 전혀 달랐다. 프레스티지석의 여유로움과 안락함이 전신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모니터도 엄청 커!"
옆자리에 앉은 류현아가 시시덕거렸다.
"헤드폰도 좋고."
류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살폈다.
"의자가 편안하구만."
"허허."
모두들 즐거운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머지않아 웰컴드링크가 나왔다.
거의 다 마셨을 즈음 이륙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승무원이 나와 안내멘트를 했다.
-오늘도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륙시에는 의자를 세우고 안전벨트를 착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벨트를 해제했다.
기내식 타임이었다.
류성은 양식 코스요리를 선택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모두 한식코스를 택하신 것 같았다. 머지않아 나온 음식이 정갈하게 자리에 놓였다.
"맛있게 드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연어요리.
심플하니 담백했다.
횟감 자체도 싱싱해서 만족스러웠다. 함께 나온 샴페인을 음미하며 다음 음식을 기다렸다. 하나같이 맛이 좋았는데 최고는 역시 스테이크였다.
"으으음...!"
입 안에서 터지는 이 육즙.
완벽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류현아는 메인으로 육회비빔밥이 나왔다.
"한 입만 줘 봐."
"그럼 나도 스테이크 줘."
"그래. 옜다."
스테이크를 썰어주자 류현아도 앞접심에 비빔밥을 담아서 줬다. 한 입 먹어봤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스러운 풍미가 느껴졌다. 채소도 신선했는데 그 조화가 신비할 정도로 절묘했다.
"...맛있네."
"그치? 지금까지 먹은 비빔밥 중에서 최고야."
"인정."
이후 모니터로 영화를 보거나 창문으로 하늘을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헤드셋을 끼니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담요도 따뜻하니 좋았다.
안락한 비행시간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돈을 벌려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