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63화 (63/277)

< 운명의 타로카드(1) >

[퀘스트 발동!]

[예술가는 언제까지 배고파야 하는가?]

[국내 조각 예술가의 인프라가 너무나 열악하다. 그 탓에 많은 예술가가 해외로 시선을 돌리는 중이다. 재료를 준비하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해주는 업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 현실에 자그마한 균열을 일으켜라.]

[남은 시간 : 무제한.]

[성공 보상 : 랜덤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급체합니다.]

예술가를 위한 장기 퀘스트였다.

시간제한도 없고.

류성은 잠깐 퀘스트를 반복적으로 읽었다.

해외로 넘어가는 예술가.

재료의 비용과 시간.

그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아직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천천히 찾아봐야겠네.

고민을 접어두고 다시 감상에 집중했다.

"들어가 보자고."

"어여들 와."

"아, 네. 가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느새 정문 근처였다.

류성도 서둘렀다.

실내로 함께 들어가자 이번에는 각종 그림이 맞이해줬다.

역시 뛰어난 그림들이었다.

이번에도 감상하고 있는데 다시금 퀘스트가 떠올랐다.

[비슷한 퀘스트가 존재합니다.]

[퀘스트가 통합됩니다!]

[퀘스트명이 ‘국내 예술가의 발전을 위하여!’로 변경됩니다.]

퀘스트를 다시 읽어봤다.

다른 건 모두 같았는데 첫 문장이 달랐다.

조각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국내 예술가의 발전을 위하여!]

[국내 예술가의 인프라가 너무나 열악하다. 그 탓에 많은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은 똑같았다.

균열을 일으키는 것.

예술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림이 이쁘구나."

"볼 줄은 모른다만, 그래도 좋다는 건 알겠어."

퀘스트에 대한 생각을 잠시 멈추고 가족을 쫓아갔다.

류성도 그림을 감상했다.

"으음."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성이 자극되었다. 드넓은 곳을 모두 돌아봤을 땐 기묘한 충만함이 전신을 빼곡하게 채운 뒤였다.

*

예술을 감상한 뒤에는 쇼핑을 이어갔다. 침사추이에 왔으면 사실상 필수코스였다. 쇼핑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곳이었으니까.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갖고 싶어 하는 물건들을 거침없이 구매했다.

"선물이에요, 할머니."

"아이고, 고맙게시리."

"잘 쓰고 다니마. 어떠냐? 좀 어울리는 거 같어?"

"네, 잘 어울리세요."

"허허, 그래?"

정말 부담이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할아버지는 얼마 하지 않는 멋진 모자를 원하셔서 사드렸고 할머니는 마찬가지로 비싸지 않은 스카프를 원해서 냉큼 구매를 해버렸다.

가격을 떠나서 만족스러웠다.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고.

이후 충분히 쇼핑을 하고 나서는 고층건물 103층에 위치한 카페에 들러 커피와 차도 마셨다.

즐거운 나들이였다.

그래도 무리하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은 이후 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적잖게 피곤해하신 까닭이었다.

대신 호텔 내에서 휴식을 취하며 온천 수영장을 즐겼다.

마사지도 받았고.

덕분에 피로감이 싹 풀리셨는지 다시 표정이 밝아지셨다.

"기운이 나는구나."

"내일은 가는 길에 잠깐 구경하고 가면 되겠어."

"좋죠, 그것도."

그렇게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한없이 편안했다. 홍콩 공항까지는 리무진을 타고 이동했고 비행기는 프레스티지석을 탑승한 덕분이었다.

돈이 지닌 힘이었다.

제대로 돈을 쓴 여행은 모두를 완벽하게 만족시켰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는 잠깐 면세점도 들렸다. 이후 공항을 나와 차에 올라탔다. 어느새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의 집에 당도했다.

"할애비랑 같이 여행하느라 고생했다."

"고생은요."

"이제 집으로 가야겠구먼."

아쉬워하는 듯한 모습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던 할머니가 혀를 찼다.

"영감, 뭘 기죽은 표정이야?"

"크흠, 내가 언제."

"다음에 또 가면 되는 게지. 그리고 집에 가자마자 술판 벌일 거 아녀."

"어허, 무신 소리여?"

"자랑 안할겨?"

"크흠, 그거야 뭐..."

"실컷 놀았으니까 어여 가!"

"그래, 가자, 가."

그때 류성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끼었다.

"다음에 또 가요."

"으응? 괜찮겠어...?"

"전 시간 많으니까 언제든 저랑 같이 가면 되죠."

"크흠, 그럴까...?"

류성의 말에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네, 꼭이요."

"오냐."

"그려, 그래도 무리하지는 말고."

"그럴게요."

다음으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모셔다드리고 럭키가 있는 호텔에 들렀다.

냐아아아아!

개인 룸에서 나온 럭키가 반갑다는 듯 달려들었다.

"오구, 그래. 미안. 혼자 있느라 심심했지?"

가족들 모두 럭키와 인사를 나눴다. 이후로도 떨어질 생각을 안 해서 결국 류성이 럭키를 품에 안은 채 차에 올랐다.

"형, 출발할게."

"그래."

운전은 류환의 몫이었다.

아무튼.

참으로 즐거운 여행이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다시 일상을 보낼 때였다.

*

딱히 집에서 쉴 것도 없었다.

여행 자체가 힐링이었으니.

대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류성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럭키의 냄새를 한참 동안 즐겼다.

"아이고, 우리 럭키 심심했지?"

만져주자 우는 것도 잠시.

어느새 편안한 표정으로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골골골.

정말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흐아, 여행도 진짜 좋았는데... 역시 집이 최고네."

부정할 수 없었다.

집이 안겨다 주는 특유의 안정감은 분명 존재했으니까.

"특히 우리 럭키, 너무 보고 싶었다구우우!"

류현아가 럭키의 뱃살에 얼굴을 비볐다.

갸르르르.

럭키도 좋은 모양이었다.

나야, 뭐.

차에서 실컷 안아줬으니까.

가족들과 놀게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캐리어를 펼쳐 짐을 정리한 뒤 간단하게 씼었다. 어느정도 정리를 마치고서 치킨을 주문해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으차."

충분히 배를 채운 뒤에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9시였다.

피곤하긴 하네.

아무리 좋은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됴 이동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체력이 소모되긴 했으니까.

주식이나 볼까.

오랜만에 증권 어플을 켜고 들어갔다. 지문을 찍어 로그인한 뒤 계좌 현황을 살폈다.

종목명 : QQQ

보유주식 : 346주

매입금액 : 86,524달러

수익률 : 4.6%

평가손익 : 3,980달러

총평가 : 90,504달러

원화로 대략 450만 원 수익을 보는 중이었다.

나쁘지 않아.

고민하다가 2억 원 전부 매수하기로 했다. 본장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프리장에서도 매매가 되기에 문제는 없었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한방에 2억 전액 매수되었다.

통쾌했다.

거금을 사용한다는 느낌이 분명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26만 달러.

원화로 총 3억 치의 QQQ ETF를 지니게 되었다.

"나중에 크게 돌아오겠지."

류성은 믿었다.

미국의 기술주는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임을. 공부할수록 확신만 드는 분야였기에 아무런 정보 없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거금을 투자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벌어들이는 돈의 일부는 QQQ 매수에 사용할 계획이었다.

다음 날.

늦은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동네를 산책하던 중이었다.

음?

저 멀리 십여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어느 한 버스 앞에 줄을 선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정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대한적십자사에서 나온 헌혈 버스였다.

"이야..."

이걸 보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우리 동네는 특히 안 보였는데.

일단 눈에 들어온 이상 그냥 지나칠 생각은 없었다.

[퀘스트 발동...!]

그건 퀘스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바로 줄을 섰다.

앞에 있는 아홉 명의 사람이 순서대로 버스에 올라갔다. 대략 2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류성의 차례가 다가왔다.

"올라가시면 됩니다."

"네."

버스에 올라 대기실로 만든 공간에서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서류를 작성했다.

이후 헌혈까지 깔끔하게 끝마쳤다.

[퀘스트 클리어!]

[최하급 랜덤카드를 습득합니다.]

[선행포인트 1점을 획득합니다.]

어느새 50포인트였다.

월말에 정기후원을 생각하면 이제 곧 60포인트를 모으게 되는 것이다.

머지않았네.

흡족하게 웃고 있는데 직원이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네."

"이건 헌혈증인데요. 갖고 계시면 나중에 도움이 될 일이 있으실 겁니다."

헌혈증이라.

언제고 필요한 순간을 위해 잘 보관해두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네, 그럼 지혈 잘 하시구요. 여기 간식도 드릴 테니까 드시고 가세요."

홀로 남은 류성은 방금 받은 초코파이 봉투를 찢었다. 달콤한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초코파이도 오랜만이네.

군대에서 먹었을 때가 제일 맛있었는데.

특히 신병훈련소에서 먹은 초코파이의 맛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이후 전역을 하고서도 초코파이를 먹어봤는데 이상하게 그 맛이 아니었다.

뭐, 아무튼.

헌혈 이후니까 먹는 게 좋으리라.

한 입 크게 베어 물자 익숙한 맛이 올라왔다. 달콤한 초코와 속에 깃든 마시멜로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엄청난 당도를 자랑했다.

"...맛있긴 하네."

그래도 신병훈련소에 비할 건 아니지만.

아무튼 잘 먹었다.

이후 음료 한 캔을 전부 들이켜고 버스에서 내려왔다.

다시 산책를 이어가려는데 갈증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헌혈을 한 탓에 몸이 수분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공원 근처에 있는 익숙한 편의점에 들렀다.

"아...! 어서 오세요!"

"네, 오랜만이네요."

"네에...!"

가볍게 인사를 하고서 이온 음료를 골랐다. 문득 그러고 나니 이상하게 배도 좀 고팠다. 마침 컵라면이 눈길을 끌었다.

아, 하나만 먹을까.

고민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컵라면 하나와 편의점 김치를 들고서 카운터로 이동했다.

"저, 전에는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죄송했습니다!"

"네? 아뇨, 괜찮아요. 예전 일인데요, 뭐."

갑작스러운 퀘스트로 편의점 카운터를 봐준 일이 있었다. 그때 눈앞에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다급히 화장실로 향했었고.

마지막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었는데.

지금도 비슷했다.

붉어진 얼굴이 너무 티가 많이 났다.

"아? 젓가락도 드릴까요?"

"네, 하나만요."

"여기요! 물은 저기서 받으시면 되구요."

"고마워요."

대답하고서 편의점 우측에 마련된 식사공간으로 이동했다. 일단 컵라면 뚜껑을 열어 스프부터 털어 넣었다. 그 위로 뜨거운 물을 받았다.

벌써 퍼지기 시작한 냄새에 군침이 꼴깍 넘어갔다.

맛있겠네.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온 음료를 조금 마셨다.

"크흐."

갈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아, 참.

이참에 보상으로 받은 카드를 써보기로 했다. 큰 기대 없이 카드를 선택하려는 순간이었다.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때때로 선택은 인생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운명의 타로카드를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떠오른 홀로그램에 잠시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운명의 타로카드.

설마 저게 지금 나타날 줄이야.

잠깐 정신이 멍했다.

그러나 이대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당장 타로카드를 사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게 우선이었다.

"으음."

쉽지 않은 고민이었다. 겨우 최하급 카드를 뽑는데 저 아까운 운명의 타로카드을 사용하자니 내키지 않기도 했고. 그렇다고 또 거절하자니 그것도 문제였다. 하필이면 지금 떠오른 이유가 존재할 테니까.

그래, 분명 그렇겠지.

이참에 한 번은 써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타로카드가 어떤 방식인지, 그리고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타로카드는 세 번까지 사용할 수 있기도 했기에 그 부분이 감정적인 부담을 줄여줬다.

그래, 써보자.

손을 뻗어 사용하겠다는 버튼을 눌렀다.

[운명의 타로카드를 사용합니다.]

[사용가능 횟수가 3회->2회로 줄어듭니다.]

뒤집혀있는 여러장의 카드가 떠올랐다.

[사용자의 운명을 내려다봅니다.]

[운명이 타로카드에 깃듭니다.]

[타로카드 다섯 장을 선택해주십시오.]

어차피 뒷면이라 크게 고민할 게 없었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다섯 장의 타로카드를 선택했다.

휘릭, 휘리릭.

카드가 앞면으로 바뀌며 확대되었다.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는 그림.

검을 뽑아내는 그림.

펜과 종이가 흩날리는 그림.

떨어지는 돈다발.

왕좌에 앉은 마지막 그림까지.

[카드를 분석합니다.]

[현재 위치에서 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직후에 검을 뽑아내어 휘둘러야만 최고의 결과를 얻어낼 것입니다. 단호한 결정은 펜과 종이를 만들고 그것들은 비처럼 흩날리는 돈다발로 변하게 됩니다. 당신은 무수한 돈에 파묻혀 왕좌에 앉을 운명입니다.]

돈에 파묻힐 운명이라니.

"이건..."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점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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