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의 타로카드(2) >
타로카드에서 본 문구를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해둔 상태였다.
현재 위치를 지켜야 하고.
해가 저무는 순간 카드를 뽑아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두 가지였다.
인터넷으로 일몰 시각을 검색해보니 7시 35분으로 나왔다.
지금이 5시 41분.
아직 2시간 정도가 남은 상태였기에 류성은 편의점을 한 바퀴 돌면서 간식거리를 조금 더 구매했다.
"맛있게 드세요!"
"네."
대답하면서 음료수 하나를 내밀었다.
"알바 힘들죠? 이거 하나 드시면서 하세요."
"네? 아, 가, 감사합니다...!"
아르바이트생이 얼굴을 붉히며 음료를 받았다.
여기 오래 있을 거니까.
기왕이면 점수를 조금 딴 상태에서 눌러앉는 게 아무래도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주섬주섬, 간식거리를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두 시간이라..."
역시 시간을 때우는 건 너튜브 감상이 최고이리라. 일단 경제정보를 훑어보기 시작했는데 최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미국과 중국의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미중 무역 전쟁, 또 시작되나?]
[무역 전쟁 초읽기!]
비슷한 제목이 많이 보였다.
흐음.
정말 무역 전쟁이 시작되면 증시가 흔들리긴 할 터였다. 기업 자체의 가치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크게 신경 쓸 건 아니겠지만.
많이 하락하려나.
고개를 저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버렸다.
"뭐, 3억 정도야."
40억을 전부 투자한 것도 아니니 충분히 버틸 여력이 있었다. 심하게 떨어지면 오히려 저점에서 매수할 기회가 될 테니 그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보다..."
한참을 공부한 것 같은데.
여전히 1시간이나 남은 상태였다. 평소에는 재밌던 것도 오늘은 이상하게 집중이 되질 않았다.
꾸역꾸역 시간을 보냈다.
편의점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게 신기했던 걸까. 아르바이트생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다시 30분이 지났다.
여전히 아르바이트생의 시선이 간간이 느껴졌지만 그럴 때마다 너튜브에 더욱 집중했다.
조금 창피하긴 하구만.
그 순간이었다.
드드드.
드디어 기다리던 알람이 울렸다.
"...왔다."
인고의 시간을 버텨낸 것이다.
7시 25분.
하늘은 저물어가는 태양 빛에 영향을 받아 새빨간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편의점을 나와 고개를 들었다.
서쪽 건물 사이로 가라앉고 있는 태양이 보였다. 이미 절반은 몸집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태양이 모습을 감출 때까지 기다렸다.
태양의 흔적이 사라져갔다.
이윽고.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는 순간, 카드를 뽑았다.
[등급 외 '물품'을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웹소설 마스터 상자'를 획득합니다.]
[상점에 갱신되지 않습니다.]
순간 류성의 몸이 굳었다.
어라...?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보상이었다.
정보권이 아니었다.
"...."
물론 등급 외 물품이니 범상치 않은 건 분명 맞으리라. 상점에 갱신되지 않은 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타로카드 또한 등급 외에서 등장했었으니 아직 기대를 저버릴 때는 아니었다.
그래, 일단 까보자.
손에 들린 상자를 오픈했다.
[웹소설 마스터 상자를 오픈합니다.]
[재능 '글근육'을 습득합니다.]
[영구적인 재능이라 상점에 갱신되지 않습니다.]
[지닌 재능과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부족했던 재능이 더욱 완벽해집니다.]
[특수 연계 퀘스트가 등장합니다.]
여러 설명을 차분하게 읽어갔다.
영구적인 재능이라.
분명 좋은 일이었는데 그 아래 문구가 독특했다. 지닌 재능과의 조화라니.
특수 연계 퀘스트도 처음이고.
"특이하네."
감상을 마치고서 세부적인 능력을 확인했다.
[글근육]
웹소설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 중 하나입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최대한의 집중력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사용할 경우 정신적인 피로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수 연계 퀘스트]
[1번. 문토피아에 작품을 등록하라.]
[보상 : 선행 포인트]
묘한 재능에 신기한 퀘스트였다.
"흐음."
하지만 뭐,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그거면 됐지.
게다가 타로카드의 점괘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납득이 되었다. 정보권은 그냥 지레짐작한 것일 뿐, 펜과 종이는 따지고 보면 소설과 더욱 잘 어울렸으니까.
[단호한 결정은 펜과 종이를 만들고 그것들은 비처럼 흩날리는 돈다발로 변하게 됩니다. 당신은 무수한 돈에 파묻혀 왕좌에 앉을 운명입니다.]
저 특수 연계 퀘스트를 쫓아가다 보면 돈다발이 정말 비처럼 쏟아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웹소설이야 꽤나 읽은 가락이 있었으니 나름 자신도 있었고. 무엇보다 소설 하나 써보는 건 어릴 적부터 누구나 갖고 있는 로망이기도 했으니까.
"사용해보면 알겠지."
꽤나 기대가 되었다.
*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아 새로 얻게 된 재능 '글근육'을 사용해봤다. 이번 재능은 소모성도 아닌 영구적인 재능이라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재능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집중모드로 변했다. 모든 생각의 흐름이 웹소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과거에 봤던 여러 가지 웹소설이 스치듯 지나가고, 요즘 유행하는 웹소설 원작 드라마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흐름과 특색, 다양한 요소들이 퍼즐을 맞추듯 머리 한구석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언가 부족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다.
최신작을 좀 봐야겠어.
자연스레 웹소설 사이트에 접속했다.
문토피아.
퀘스트에도 나왔던 바로 그 플랫폼이었다. 류성이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현대 판타지의 전문직 소재가 흘러넘치는 곳.
베스트 1위 작품을 먼저 읽었다.
마침 배우물이었다.
스킬이 사용된 상태라서 그런 걸까. 내용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떠올랐다. 영화처럼 장면과 장면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선명하지는 않았다.
충분히 1위에 오를만한 작품이기는 했다.
다만.
아쉬운 점 또한 분명하게 느껴졌다.
연기하는 묘사도 좋았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화 줄거리도 좋았지만 주변 반응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미묘하게 부족했다. 그게 곧 이미지의 흐릿함으로 나타난 것이고.
"만약, 내가 작가였다면..."
13화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을 서술했을 것이다.
그가 느끼는 감동을 전달하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 누구 하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충격의 침묵을 묘사했을 것이다.
영화관에서 나온 관객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올리게 만들고 직후 주변에서 들려오는 대화로 해당 영화에 대한 관객의 감상을 표현했을 것이다.
추가로 주인공의 연기에 감탄하는 인터넷 댓글을 조금이라도 보여줬더라면 13화에서 느낀 빈약한 기대감이 풍만하게 차올랐을 터였다.
주인공을 위주로 돌아가는 배우물에서 미처 전하지 못한 소설 속 세계관을 얕게나마 인지하게 만들면서 한층 더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을 테니까.
"으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충분히 흥미로웠으니까.
어느새 스킬이 종료된 상태였지만 웹소설 특유의 재미에 흠뻑 빠져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
며칠간 웹소설에 빠져 살았다.
이젠 글을 쓸 차례였다.
웹소설을 구성하는 것들이 난잡하게 펼쳐졌다. 인기작들의 공통점이 도대체 뭘까. 일단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기로 했다.
흥미. 기대감.
인기작은 시작부터 글 자체의 분위기가 달랐다. 잔잔하게 흐르는 기대감이라고 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그런 기류가 넘실거렸다.
분명 평범한 스토리인데.
무수히 읽은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다음 내용이 기대되는.
그런 묘한 느낌.
그렇다면 그런 기대감은 어디서 오는 거지?
주인공.
기대는 그 소설의 주인공에게서 온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의 미래.
성장할 미래.
그 힘으로 이루어나가고 달성할 미래. 끝내 도착해 펼쳐질 영광들.
그게 바로 기대감이다.
"아...!"
그래서 작가들이 회귀, 빙의, 환생을 기본적으로 깔고서 글을 쓰는 모양이었다. 과거로 회귀한다는 건 곧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거고 그 미래정보를 활용해 성장한다는 의미였으니까.
회귀가 이뤄진 순간부터 성장할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감이 바탕에 깔리게 되는 것이었다.
배신을 당한 뒤에 회귀를 했다는 설정이라 가정하면 소설 속 주인공은 반드시 복수를 다짐할 것이다. 그게 곧 캐릭터가 되는 거고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복수할지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류성은 눈을 빛내며 계속 생각을 이어갔다.
스토리도 중요해.
세계관과 번쩍이는 소재, 그리고 설정도 그렇고 연출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역시 처음은 소재와 캐릭터였다.
뭐를 써야 할까.
어떤 캐릭터로 어떤 이야길 그려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것."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과 같은 다양한 컨텐츠들. 그걸 아우르는 사업.
엔터 이야기를 써도 괜찮을 거 같은데.
그렇게 줄기가 만들어졌다.
*
어느새 월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간 참 빠르네."
정기후원이야 며칠 뒤면 알아서 클리어될 퀘스트였기에 기다리는 동안 웹소설 연재나 시작해보기로 했다.
문토피아에 접속했다.
로그인을 하고.
서재로 들어가 작품 하나를 생성했다. 제목과 소개글을 적고 기본 표지를 올린 후에 완료 버튼을 눌렀다.
[문토피아에 작품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선행포인트(1점)를 획득합니다.]
[특수 연계 퀘스트 갱신.]
[2번. 5편 이상 연재하라.]
그러자 특수 연계 퀘스트가 클리어되었다. 1점의 선행포인트를 얻었고 두 번째 퀘스트로 이어졌다.
"이런 식이었어?"
흥미로움이 한층 더 진해졌다. 과연 5편 이상 연재한 뒤에는 또 어떤 퀘스트가 나타날 것인지, 벌써부터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재밌겠는데, 진짜.
연재도 흥미로웠지만 퀘스트 역시 빠질 수 없는 자극적인 요소였다.
일단 연재부터.
글은 미리 써둔 게 있었기에 고민하지 않고 1, 2, 3편을 동시에 올렸다.
크게 반응을 기대하진 않았다.
자유연재였으니까.
적어도 일반연재로 승급하지 않는 이상 조회수를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상관없겠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처음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없다는 얘긴 아니었지만. 일단은 퀘스트를 따라가며 포인트 수급에 중점을 둬보기로 했다.
그랬는데.
"크흠."
은근히 자꾸 보게 되네.
증시공부를 해도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보면 어느새 문토피아에 접속한 스스로의 모습을 뒤늦게 인지하고는 했다.
알면서도 손을 멈추지 못했다. 결국 서재에 들러 조회수를 확인하고서야 호기심이 가라앉았다.
...차라리 운동을 가자.
땀을 흘리면서 잊어버릴 목적으로 헬스장으로 향했는데 오랜만에 명함을 받은 인상적이었던 사내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이야, 오랜만이군요."
가볍게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운동을 했다. 헬스장이나 몇 번 마주치다보니 몇 가지 운동에 대해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것이다.
"크흐읍...! 후아, 아직은 힘들긴 하네요."
"그래도 많이 좋아지셨는데요?"
"하하, 고맙습니다."
덕분에 문토피아에 대해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류성은 본인도 모르게 문토피아 어플을 누르고 말았다.
"...중독이네."
담배보다 더한 중독성이 그곳에 존재했다.
1화의 조회수는 현재 11.
언제 12로 올라갈지, 댓글은 또 어떻게 달릴지 기대하며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