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임드 고오수(1) >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었다.
어디까지 썼더라.
내용을 확인할 겸 스스로가 쓴 글을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글근육이 활성화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장면이 이어지더니 이미지가 되어 뇌리에 박혔다.
다만 몇 곳이 어그러진 상태였다.
부족한 부분이 느껴진 것이다.
류성은 즉시 해당 부분을 수정 보완하기 시작했다. 문장이 지워지고 새로운 문장이 나열된다. 장면이 삭제되고 다른 장면으로 이어진다.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다시금 완성된 11화 부분을 눈에 담았다.
다시 읽으면서 또 한 번 어그러진 곳을 찾아냈다.
아, 여기...!
즉시 수정을 이어갔고 그 과정을 두 번 더 반복한 끝에 드디어 그럭저럭 괜찮은 이미지가 완성되었다.
"나쁘지 않네."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재밌었다.
그래, 재미.
가장 중요한 재미가 이 글에서 느껴졌다. 더 많이, 더 빨리 써서 완성되어 가는 소설 속 세계에 온전히 몰입하고 싶어졌다.
글을 쓴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세계를 창조하는 기분.
흥미로웠다.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서 놀이공원에 가던 순간이 떠오를 정도로.
퇴고도 마무리했으니 7화까지의 편수를 예약연재로 걸어놓고 8화를 쓰기 시작했다. 글근육 덕분에 집중력이 고조된 상태라 글은 막힘없이 뻗어 나왔다.
회귀를 받아들인 채 매니저 생활을 이어가면서 한편으로는 개인 자본을 착실하게 불려 나가는 주인공. 마음 깊은 곳에서는 복수라는 열망을 숙성시키며 지닌 정보를 이용해 유리한 선택을 이어갔다.
매니저임에도 주목받기 시작하는 장면.
여기가 중요했다.
위화감 없이, 개연성이 엇나가지 않게끔 보는 이들을 납득시켜야 하는 구간이었다. 이럴 때 재능 '글근육'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희미한 이미지를 진하게 만들고 어그러진 모양을 바로잡고 어긋난 부분을 제자리로 만들어 놓으면.
"...좋아."
만족스러운 퀄리티의 장면이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타닥, 타다닥.
다시 집중의 시간이 이어졌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아...!"
집중력이 깨어지는 걸 느끼고서 기지개를 켰다.
"으으읍!"
이후 오늘 얼마나 썼는지 확인해봤다.
공백 포함 11,017자.
생각보다 꽤 많이 적었다.
겨우 3시간 동안.
이 속도로 온종일 쓴다고 가정하면 2만 자 이상은 무난하게 적어낼 수 있겠지만 사실상 그건 불가능했다. 일정 시점이 지나면 뇌에 과부하가 온 건지 도무지 글에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도, 뭐.
하루 1만 자면 충분히 빠른 속도라고 생각했다.
문토피아 유료연재를 기준으로 1화당 5,000글자를 넘기면 되었다. 그 미만이면 자동으로 무료로 풀리게 되고. 글자를 완벽하게 끊을 수는 없으니 5,500자에서 6,000자를 1편으로 본다면 하루에 2편 분량을 꾸준히 써나갈 수 있는 속도였다.
물론 생각대로 흐르진 않을 것이다.
막히는 구간도 있을 테고.
다른 일에 집중해야 할 시기도 존재할 테니까.
생각의 정리를 끝내고 휴식도 취할 겸 문토피아에 접속했다.
로그인하고 내 서재로 들어가니 필명인 뉴페라는 글자가 가장 먼저 보였다. 새로운 얼굴을 뜻하는데 사실 엄청나게 고민해서 정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독자들이 집중하는 건 글의 재미 하나뿐일 테니까.
<별을 품은 매니지먼트>
이후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무수한 탑스타들이 상주하게 될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설명글은 짧고 굵게.
하지만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법하게 작성했다. 현재 올라간 건 4편까지였는데 1화 조회수가 어느새 37이었다.
이제 곧 5편이 올라갈 예정이었다.
잠깐 기다리자 예약시간이 되면서 5편이 올라갔다.
[문토피아에 5편을 연재했습니다.]
[선행포인트(1점)를 획득합니다.]
[특수 연계 퀘스트 갱신.]
[3번. 일반연재로 승급하라.]
덩달아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얻은 선행포인트 1점.
꽁으로 획득한 느낌이라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
닉네임, 고오수. 그는 문토피아에서 네임드라 불리는 독자였다. 레벨 99에 수많은 작품에 댓글을 남기는 행적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는 어김없이 문토피아의 신작을 찾아다녔다.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5화까지는 읽는 성미를 지녔고 읽은 글 대부분에 댓글을 달았기에 많은 이들이 그의 댓글 내용으로 초반 작품의 흥행을 짐작하기도 했다. 그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어디 보자..."
오늘 올라온 새로운 글을 몇 개 읽어보던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
그리곤 습관처럼 댓글을 남겼다.
고오수 : 파이팅입니다.
댓글 내용만 보면 긍정적인 뉘앙스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소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남기는 댓글이었으니까. 찌푸려진 미간만으로도 그의 마음이 좋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신, 또 신작 찾는거야?"
"어, 뭐. 알잖아. 유일한 취미니까."
"재밌는 게 없나 봐."
"오늘따라 더 그러네."
그렇다고 신작 탐색을 멈추는 건 아니었다. 진흙 속에 숨은 보석을 찾아내는 건 본래 어려운 법이니까.
"하나만 찾자, 하나만."
과정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아내는 순간의 희열은 감히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편수가 쌓이면서 무너지는 글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서도 끝까지 빛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글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 글은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곤 한다. 중년에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강력한 에너지였다. 그 감각에 중독되어 지금도 신작을 찾아다니는 것이고.
"으음...?"
그러다 눈에 들어온 소설 하나.
<별을 품은 매니지먼트>
제목만으로도 일단 대충은 예상이 갔다. 무수한 스타들을 거느리게 될 매니지먼트 대표의 성장 이야기일 터였다.
예상하는 그대로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전개는 생각보다 훨씬 독자를 즐겁게 만든다. 예상대로 움직일 때 다가오는 만족감이 개연성을 납득하게 만들고 주인공에게 더욱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래야 할 상황에서 굳이 뒤통수를 친다면서 이상한 전개가 나오게 되면 거기서 이미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 그대로의 설명과 예상 가능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특유의 맛깔스러움도 존재했다.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듯한 감각에다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마치 생명을 품은 것처럼 빛이 났다.
"괜찮네, 시작은."
주인공은 매니지먼트사의 대표였고 소속 배우를 지키기 위해 대기업 계열사이자 업계 최고에 속한 K엔터와 척을 지게 되었다. 거기에 열이 받은 K엔터는 악랄한 수를 동원해 주인공을 나락으로 빠트리고 말았다.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
그는 복수를 꿈꾸며 발악했으나 결국 타살당하고 만다.
그러나 신이 기회를 준 걸까.
알 수 없는 이유로 과거로 돌아오게 되었다.
평범하지만 몰입하게 되는 스토리에 흠뻑 빠졌다.
자연스레 2화를 클릭했다.
역시나 재밌었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기대감은 충만했고 돌아온 시점도 마음에 들었다. 중소형 에이전시에서 매니저를 하는 한편, 알고 있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똑똑함도 겸비했다.
3화, 4화, 5화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모난 곳이 없었다.
깔끔하면서 심플했는데 그 와중에 묘하게 유려했다.
복수를 갈망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꾸준히, 일관적으로 그려졌다. 자그마한 계획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정확한 기일을 정했고 그 기일에 맞췄다.
소소한 성취감이 느껴졌다.
더불어 주인공은 이루고자 하는 걸 분명하게 이뤄나간다는 게 느껴졌다.
만족스러웠다.
"...상당한데?"
어느새 연재분을 모두 독파하고 말았다.
아쉽다.
어서 빨리 다음 편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주인공에게 극도로 몰입하면서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이야기 하나 하나에 감정이 담겼던 까닭이었다.
"후아."
과연 이 느낌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보통은 20화, 길면 50화.
기성 작가도 100화를 넘어가면 글이 무너지곤 했다.
하지만, 이 글은.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댓글 하나를 달았다.
고오수 : 기대하겠습니다^^
평소와 다른 내용의 댓글을 기분 좋게 남겼다.
어서 빨리 다음 편이 올라오기를.
"허허."
이런 기다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
캐주얼 정장 느낌이 나는 멋들어진 옷을 차려입었다.
9월 31일.
오늘은 작사 공모전 시상식에 참여하는 날이었기에 힘을 준 듯 편안한 느낌을 살려 스타일을 꾸민 것이었다.
"흐음, 괜찮네."
거울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나가볼까.
주차장으로 향해 BMW135i에 올랐다.
"크흐."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검색한 뒤 운전을 시작했다. 일부러 최대한 한적한 길로만 다녔다. 속도를 조금 내면서 운전을 즐기고 싶었으니까.
창문도 열어주고.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마저 상쾌해졌다.
"뷰도 좋고."
드라이빙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멋들어진 특급 호텔이었다.
공간을 대관하여 시상식을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주차장 입구로 진입해 지하로 내려가 차를 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화려했다.
1층 로비에서부터 시선이 휙휙, 돌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아, 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여기서 오늘 드라큘라 스튜디오 시상식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 시상식 말이군요.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정면에 바로 보이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띠링.
문이 열리는 순간 드러난 광경에 눈이 조금 커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시상식이었다. 걸음을 옮겨 입구로 향하자 좌, 우측에 위치한 두 사람이 친절하게 응대해왔다.
"어서 오십시오, 드라큘라 스튜디오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입니다. 참여자신가요?"
"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류성이라고 합니다."
이름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직원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아, 류성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직접 자리까지 안내를 받았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는데 한 사람이 더 등장했다. 단발머리에 머리끝을 노랗게 염색한 젊은 여성이었다.
"반가워요, 수상자시죠?"
"네, 맞습니다."
"저도 수상자에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류성이라고 합니다."
"아, 그, 최우수상이신...?"
"맞아요."
그에 여성이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율리아라고 해요."
"율리아...?"
대상 수상자의 이름에 적혀있던 작사가였다.
"아아, 대상 축하드립니다."
"뭘요. 그쪽도 최우수상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자리에 앉은 율리아가 위스키를 한잔 주문하더니 자연스레 류성에게 말을 걸었다.
"기존 작품은 있으시고요?"
"네?"
"설마 신인은 아니시죠?"
뭔가 아니꼬운 어투긴 한데 말투 하나로 뭐라 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대충 대답해주기로 했다.
"신인입니다."
"네? 정말요? 허, 참."
그 이후로 율리아는 더는 류성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류성도 그게 편했기에 굳이 그녀를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후 도착한 다른 수상자들과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야, 대단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그 즈음, 사회자가 단상에 올라왔다.
[드라큘라 스튜디오 작사 공모전에 참여하신 모든 분을 환영합니다. 기다리느라 지루하셨을 테니 시상부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시상에는 드라큘라 스튜디오의 장근수 대표님께서 직접 시상해주시기로 했습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십시오!]
류성은 힘껏 박수를 쳤다.
등장하는 대표, 장근수.
중년의 나이가 지닌 중후함과 묵직함을 함께 지닌 사내였다.
[반갑습니다. 오늘은...]
가벼운 연설이 끝나고 시상이 진행되었다.
장려상, 우수상.
상을 받은 이들은 모두 한 마디씩 소감을 말하고 내려왔다.
[이어서 최우수상을 받으신 류성 작사가님, 축하드립니다. 단상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올라갔다.
"축하해요. 가사, 정말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대표 장근수와 악수하고서 상을 받았다.
"시상식 끝나고 대표실에서 따로 봤으면 하는데, 괜찮겠어요?"
"아, 네. 그럼요."
"그래요, 그럼 조금 이따가 봅시다."
"예."
류성은 상패를 손에 쥐고서 단상 중앙에 놓인 마이크 앞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