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인 OST(1) >
수상 소감을 말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건 또 처음이네.
학창시절에는 발표하는 것도 정말 싫어했는데 지금은 이 상황이 오히려 즐거웠다. 시선이 집중된 이 순간이 묘하게 가슴을 자극했다.
"음, 일단 최우수상 정말 감사합니다. 앞선 분들이 여기에 서서 했던 말들, 그리고 심정은 저도 똑같습니다. 그러니 생략하고 포부 하나만 추가로 밝혀보겠습니다."
류성이 부드럽게 웃었다.
"비록 공모전에선 최우수상에 그쳤지만 음원에선 꼭 1위에 올라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짧고 굵은 소감이었다.
박수가 터졌다.
류성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테이블로 향하는 길에 율리아의 불편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지만 무시했다.
[멋진 소감이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 대상 발표가 있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율리아 작사가님, 단상으로 올라와주십시오!]
율리아가 일어나 단상으로 향했다. 그 사이 자리로 돌아온 류성은 고개를 들어 시상을 지켜봤다.
[확실히 드라큘라 스튜디오의 명성이 거짓은 아니었네요. 다들 보는 눈이 있으신 거 같아 다행이에요. 가수 마이유님이 직접 녹음하게 되면 더 분명하게 드러나겠죠. 제 가사가 이번 드라마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요. 어서 빨리 앱플릭스에 방영되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그 날이 벌써 기다려지네요.]
류성 못지 않게 자신만만한 발언이었다.
뭐, 아무튼.
그렇게 시상식이 마무리되고 축제가 이어졌다.
[축하 무대를 위해 모셨습니다.]
가수, 마이유가 등장한 것이다.
몇 명의 사람은 시상식인 것도 잊고서 환호를 내질렀다.
그 정도 파급력이었다.
류성도 그들 못지 않게 흥분해버렸다.
마이유라니...!
그러나 곧이어 흘러드는 차분하면서도 허스키한 음색에 빠져들었다. 환호는 이내 멎었고 모두들 노래 그 자체를 감상하기에 이르렀다.
"...미쳤네."
실제로 듣는 노래는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끝내줬다.
*
드라큘라 스튜디오 대표실 내부.
대표, 작곡가, 류성.
셋이 모여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작곡가 전은아라고 해요."
"아, 류성이라고 합니다."
"가사가 너무 좋더라고요. 반했어요."
"감사합니다."
"허허, 전은아 작곡가가 유난히 말이 많았지."
"대표님...!"
"알았네, 알았어. 부끄러워하기는."
기분 좋은 대화이긴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다른 수상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에 의문이 든 류성이 물었다.
"근데 왜 저만...?"
"아, 이거 너무 수다만 떨었군요. 크흠, 그럼 본론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단 대상은 율리아 작사가입니다. 가이드 곡에 어울리는 가사를 찾는 공모전이었으니까요."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현재 류성 작사가님의 가사는 곡을 찾지 못한 상태죠. 공모전 요강을 보면 우수상, 최우수상은 다른 작곡가와 협업하여 드라마의 ost로 제작한다고 나와 있고요."
"네, 기억 나네요."
"다만 류성 작사가님의 가사가 너무 좋다 보니 가이드 곡을 만든 작곡가, 그러니까 여기 있는 전은아 작곡가가 영감을 얻어 벌써 한 곡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고개를 돌려 전은아를 쳐다봤다.
벌써 만들었다고?
조금 놀란 표정이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그렇게 쳐다보실 건 없구요. 가사가 좋으니 곡은 따라 나오는 거죠."
"아니, 그래도..."
"일단 들어보실까요?"
"아, 네. 좋죠."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등장한 사람은 마이유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조금 늦었죠?"
"괜찮습니다. 여기 앉으시죠."
"네, 고맙습니다."
류성의 맞은 편에 마이유가 자리를 잡았다.
심장이 덜커덕거렸다.
이거, 꿈인가...?
고개를 저어서 다시 봤지만 정말 손 닿을 거리에 마이유가 있었다.
"류성 작사가님 맞으시죠?"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와서 더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그 순간 발동한 침착함의 패시브가 아니었다면 멍청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네, 맞습니다. 깜짝 놀랐네요, 제가 팬이거든요."
"정말요? 고마워요."
헤헤거리며 웃는 미소도 참으로 예뻤다.
"자, 그럼 일단 노래를 들어보죠."
그때 전은아 작곡가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며 음악을 틀었다.
흘러나오는 전주.
처음은 짙은 감성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가이드곡과 비슷했다.
[고단한 하루 길 끝에...]
그 순간 들려오는 마이유의 목소리.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거울을 보면 비치는 내 모습
마치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어둠이 드리워질 때
가는 길이 보이지 않아도
공허한 골목길 아래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너]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굳건함이라는 기둥이 노래를 떠받치고 있었다.
공모전에 나온 가이드 곡과는 차이가 분명했다. 분명 같은 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게 이렇게나 달랐다.
[먹구름이 자욱해지고
빛이 사라져 시야가 멎어도
너는 오늘도 나를
나는 내일도 너를]
짙은 어둠 사이에 숨어있는 강함이 들려온다.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어떤 좌절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 또한.
노래가 멎었으나 여운은 길었다. 류성은 눈을 감은 채 감상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작곡가와 마이유, 그리고 대표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어떤가요, 작사가님?"
비록 작사가의 재능이 사라진 상태지만 이 정도 차이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노래 자체가 너무나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다르네요. 제 가사가... 여기에 더 어울린다는 건 분명한 거 같습니다."
"그렇죠? 사실 공모전에 나온 가이드 곡은 슬픔이 주를 이루거든요. 짙은 감성으로 가득한 곡이었죠. 거기에도 충분히 잘 어울리는 멋진 가사였지만 반복해서 듣다보니 문제점이 보이더군요."
"어떤 문제점이었나요?"
"돈이 전부인 사회에서 처참한 삶을 살아온 여자. 초반 이야기는 그 여주인공의 삶을 담아야 하니까요. 처음에 등장하게 될 OST와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거죠."
"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공모전에 나온 가이드 곡은 여주인공의 절망어린 상황을 비춰주는 OST였다.
"류성 작사가님의 가사는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고 있더군요. 거기에 영감을 받아 빠르게 곡 하나를 만들 수 있었죠."
"그랬군요."
이제 진짜 본론이 나올 차례였다.
"작사가님."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던 대표가 상체를 살짝 숙였다.
"네, 대표님."
"저는 이번 드라마에 한정하여, 더블 메인 OST를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네...?"
그제야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더블 메인 OST.
류성의 가사가 곡 전체를 아우르는 또 다른 메인 OST로 결정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따로 불러 이야기를 한 것이고.
솔직히 조금 감동이었다.
메인이라니.
포기하고 있던 상태라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헤헤, 쑥쓰럽네요."
그때 들려온 정면에서의 소리.
마이유가 웃고 있었다.
"결국 제가 두 곡을 다 부르게 된 거잖아요?"
아, 그렇구나.
마이유에게도 신선한 도전이 될 일이었다.
"크흡."
"허허허, 그렇게 되겠군요."
작곡가와 대표도 그 모습이 귀여웠던 모양이다.
웃음이 번지고.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류성은 뒤늦게 전달받은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의 가사가 머지않은 시일 내로 앱플릭스 드라마에서 들려오게 되리라. 드라마를 관통하는 메인 OST가 되어, 전 세계를 상대로 말이다.
*
호텔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올랐다.
"후아."
아직도 정신이 몽롱했다.
마이유를 직접 보고.
그녀와 대화를 나눈 걸로도 모자라서 더블 메인 OST에 속하게 되었다.
노래?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공모전 가이드 곡보다 훨씬 더 말이다.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부르르릉!
시동을 틀어놓고 예열이 되는 동안 운전석에 몸을 파묻었다. 그렇게 잠깐 시간을 보내자 정신이 들었다.
"...기대되네."
어서 드라마가 나오면 좋을 것 같았다.
뭐, 아직 좀 남았으니까.
일단은 다시 현재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문토피아.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어 어플에 접속해보니 알람이 번쩍이고 있었다. 최신화인 9화에 달린 여러 개의 댓글이 시선을 끌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기분으로 확인해보니 독자가 남긴 응원의 댓글이 보였다.
앞으로도 기대하겠다거나.
재밌다거나.
엄청나게 잘 보고 있다거나.
“크흠.”
정말로 단순한 그 말들이 이상하게도 힘이 되었다.
조회수도 나쁘지 않아.
이제 겨우 최신화가 100을 넘어가고 있지만 성장세인 건 분명했으니까.
*
집에 도착했을 즈음이었다.
[연계퀘스트 '어서와, 정기후원은 처음이지?가 갱신됩니다.]
[후원금액 : 3,000만 원.]
[선행 포인트 15점을 획득합니다.]
[후원금액이 초기화됩니다.]
기다리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이번 달 정기후원 보상으로 무려 15점을 획득했다.
"...엄청난데?"
이걸로 67포인트가 모였다.
생각보다 빨라.
시간이 지날수록 포인트 쌓이는 속도가 가팔라지는 느낌이었다.
긍정적인 일이었다.
현재 후원금액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매달 말일에 최소 15점은 확보가 된 셈이었다. 놀라운 건 아직도 상한선이 몇 점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600만 원에 3점.
900만 원에 5점을 습득했었다.
그리고 지금.
3,000만 원에 15점을 얻었다.
대략적인 기준을 파악했다.
200만 원에 1점.
900만 원은 반올림으로 5점을 준 것 같기도 했다.
예전에도 코인 한정퀘스트로 집계가 애매했을 땐 반올림으로 줬었으니까. 앞으로도 꾸준히 후원을 늘려나갈 테니 점수는 차곡차곡 늘어날 게 분명했다.
나중에는 30점, 아니 50점 이상을 얻는 날도 분명 오리라.
뭐, 일단은.
현재 모은 67포인트로 정보권을 구매해보기로 했다.
상점 오픈.
정보란에 들어가 1, 2번 물품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겼다.
주식이냐, 코인이냐.
이번에 양자콤 사건을 경험하면서 주식도 결코 코인에 못지 않다는 걸 느껴버렸다. 양자콤의 경우 하루 만에 300%나 올라버렸으니까.
국내 주식 정보라면 그렇게는 안 되겠지만 미국 주식 정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상한가와 하한가가 존재하지 않기에 나올 수 있는 그 가파른 움직임이 생각보다 더 중독적이었다.
"으음..."
선택의 기로에 선 기분이었다.
이럴 때는 왜 안 나오는 건지.
운명의 타로카드가 발동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쯧,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끌리는 걸 선택하기로 했다.
1번, 주식 정보권을 눌렀다.
[구매 완료]
[선행포인트(60점)를 차감합니다.]
['2차 미·중 무역전쟁 일지'를 획득합니다.]
마치 그게 정답이었다는 것처럼 기대를 넘어선 큰 선물이 등장했다. 미·중 무역 일지가 나타난 것이다.
서둘러 내용부터 확인했다.
[2차 미·중 무역전쟁 일지]
1.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던 불안감이 결국 10월 초에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제 2차 미·중 무역전쟁으로 전 세계가 크게 휘청거렸다.
2. 10월 5일 미국의 S&P500, 그리고 나스닥 지수가 급락하면서 SQQQ가 13% 상승했다.
3. 10월 17일까지 이어지던 하락세가 멎고 18일부터 드디어 반등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상승은 겨우 5일 동안만 이어질 뿐이었다. 다만, 그 5일간 TQQQ는 무려 41%나 상승했다.
4. 10월 25일부터 다시 증시가 흔들렸다.
5. 꾸준한 우하향이 이어졌다.
6. 11월 7일, 드디어 저점을 찍었다. 최고점 대비 나스닥이 무려 27%나 하락하는 공포의 장세였다. 덕분에 인버스 레버리지 ETF인 SQQQ가 100%가량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7. 11월 9일부터 V자 반등이 나타났다.
일지는 거기서 끝이었다.
SQQQ와 TQQQ.
최근 QQQ에 투자를 하고 있어서 관심이 조금은 있던 ETF였다. 다만 저것들은 무려 3배만큼 움직여서 등락률이 매우 심한 편이었다.
나스닥이 2퍼센트 상승하면 QQQ도 2퍼센트 정도 상승하게 된다. 하지만 3배수인 TQQQ는 6퍼센트가 오르게 되고 TQQQ와 반대로 움직이는 SQQQ는 6퍼센트가 하락하게 된다.
그 움직임이 너무 과한 느낌이라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투자 일지에 나온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리라.
“3배수 투자라.”
해당 일지를 활용해 SQQQ와 TQQQ를 적절한 시점에 매수하고 매도한다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