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70화 (70/277)

< 계약(1) >

영화 투자 플랫폼을 운영하는 대표가 읽고 있던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흐음. 박팀장님."

"네, 대표님."

"기존 투자자들 중에 눈여겨볼 이는 없는 거 같군요."

"그렇습니다."

"신규 투자자 중에서도 괜찮은 이가 없었습니까?"

"몇 명 체크를 해두긴 했습니다."

"개인적 호기심으로 물어보는 겁니다."

"으음. 아무래도 신규 투자자다 보니 행보를 조금 더 지켜보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그러나 대표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여기 이 사람 말입니다."

"누구... 아, 이 투자자 말씀이군요."

"네. 서울전쟁에 어둠이 드리워진을 동시에 투자했군요. 수익을 실현하자마자 곧바로 다른 작품에 재투자했고요."

"그렇습니다."

"특이하지 않습니까?"

그가 깍지를 끼며 눈을 빛냈다.

"많은 이들이 투자를 합니다. 그러나 성공적인 투자자는 극소수죠. 특히 이 영화판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인지 투자자들도 신중한 편이에요. 수익이 났으면 정말 긴 시간 고민하는 흔적이 보이곤 합니다."

그게 바로 정석적인 투자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보세요. 수익을 실현한 당일에 아홉 작품의 시나리오를 다운로드 받았고 그 중 3개의 작품에 벌어들인 돈 전부를 투자했습니다. 마치... 본인의 선택을 확신이라도 하는 것처럼요."

팀장은 대답을 하는 대신 침묵을 유지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애초에 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표의 눈은 이미 흥미로 가득찬 상태였기에 이럴 때는 한 걸음 물러서서 기다리는 게 최고의 선택이었다.

"심지어 투자한 3개의 작품 전부 제가 개인적으로 눈여겨보던 것들이군요. 정말이지, 흥미로운 투자자가 아닐 수 없어요. 신경이 쓰여요. 아니, 촉이 온다고 해야 할까요?"

"그럼..."

"이 사람, 예의주시하세요. 이번에도 성공적인 투자가 이뤄진다면...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으니까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지요?"

팀장의 의문에 대표가 미소를 지었다.

"저는 말입니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이에요. 근데도 대표 자리를 유지하고 있죠. 그 이유가 뭔지 압니까? 사람을 조금 볼 줄 안다는 거, 그게 전부입니다. 시나리오? 잘 몰라요. 저는 배우를 보고 감독을 보고 제작사를 봅니다. 그런데 이 투자자는... 저와는 또 다른 걸 보는 느낌이란 말이죠. 그러니 옆에 두고 싶은 게 당연한 욕구 아니겠어요? 제 말, 이해가 되십니까?"

그제야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시로 체크하고 보고 올리겠습니다."

"좋아요, 나가보세요."

국내 시나리오 투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투자회사의 대표 장석현이 눈을 빛냈다.

*

사무실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실 1인 법인이라 좋은 위치여야 할 필요가 없었기에 집과 가까운 곳으로 결정했다. 그래도 기왕이면 넓고 깔끔한 곳이 좋을 거 같아서 나름대로 괜찮은 사무실로 계약을 맺었다.

이후 보건복지부 사무관인 김일영에게 전화를 걸어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이어서 현재 일을 맡긴 법무사에게도 상황을 전했다.

그렇게 서로를 연결시켜줬는데 덕분에 나머지 일은 법무사가 맡아서 수월하게 진행될 예정이었다.

(제가 스피드하게 처리해드리죠.)

"감사합니다, 정말."

(별 말씀을요.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해드리는 겁니다. 저도 먹고는 살아야죠.)

"그럼요."

김일영과 다시 한 번 통화를 하고서 침대에 누웠다.

"후아, 급한 건 대충 끝났네."

어느새 다가온 럭키를 만지며 힐링을 하다가 작품 상태가 궁금해져서 문토피아에 접속했다.

19. 별품매(19화)

조회:13,812 I 추천:1,017 I 댓글:86

최신화 조회수는 1만 4천에 근접했고 투데이 베스트는 4위였다. 가장 치열한 시간대에 연재를 하는 중이라 아직 3위를 찍어보진 못했다.

"흐음. 3위 조회수가 13,917이라..."

조회수 차이가 크진 않았다.

105정도면은 뭐.

상승세가 아직까지도 매우 가팔랐기에 남은 연재 시간을 감안하면 오늘은 3위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으면 2위까지도.

"흐흐."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어서 86개가 넘어가는 댓글을 차례대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거북이 : 와, 씨. 뭔데 이렇게 재밌냐ㅠㅠ

에펠탑 : 다음 편, 어서 다음 편 주세요!

기린 : 작가님, 주소 알아내실 분 찾습니다!

ㄴ답댓글 : 저요ㅋㅋ, 찾으러 가죠!

ㄴ답댓글 : 찾아서 가둡시다, 글만 쓰게 해야죠ㅋㅋ

ㄴ답댓글 : 손!

ㄴ답댓글 : 통조림 각이군요ㅎㅎ

하로와 : 진짜, 미쳤다...!

고오수 : 오늘도 재밌네요^^

스마일 : 마지막 문장, 인상적이군요. 크으!

글을 추천해준 네임드 '고오수'도 보였다. 물론 중간에 조금 무서운 댓글도 있긴 했지만 일상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댓글이라 오히려 신선했다. 그만큼 글이 재밌다는 의미일 테니까.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입꼬리가 씰룩거리는지.

"...진짜 많이들 보는구나."

조금씩 올라가는 조회수, 추천, 선작, 그리고 댓글이 미묘한 성취감을 안겨다줬다. 그 성취감에 한 번 빠져버리니 헤어나올 수가 없다고 해야 될까.

정말로 고마웠다.

읽어주는 모든 독자들에게. 마음 같아선 비축분을 단번에 풀어버리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뭔가 당장이라도 다음 내용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욕구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조회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글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건 자제해야 할 부분이었다. 물론 충분히 비축분이 쌓인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참아야지."

지금은 인내하기로 했다.

그 순간이었다.

[15번. 투베 3위에 입성하라.]

[투베 3위에 들었습니다.]

[선행포인트(2점)을 획득합니다.]

[특수 연계 퀘스트가 갱신.]

[16번. 골베 3위를 달성하라.]

15번 퀘스트가 클리어되면서 2점의 포인트를 습득했다.

이로서 27포인트가 모였다.

"다음은 골베구나."

현재 '별을 품은 매니지먼트'의 골든 베스트 순위는 7위였다.

이것도 엄청 빠른 속도였다.

서두르지 않고 지금처럼 연재하면서 기다리면 금방 달성할 수 있으리라.

*

시간이 흐르면서 특수 연계 퀘스트는 자연스럽게 하나씩 클리어 되었다.

[16번. 골베 3위를 달성하라.]

[골베 3위를 달성했습니다.]

[선행포인트(2점)을 획득합니다.]

[특수 연계 퀘스트가 갱신.]

21화만에 골베 3위를 찍었고.

[17번. 투베 1위를 달성하라.]

[투베 1위를 달성했습니다.]

[선행포인트(2점)을 획득합니다.]

[특수 연계 퀘스트가 갱신.]

22화만에 투베 1위를 달성했으며.

[18번. 골베 1위를 달성하라.]

[선행포인트(2점)을 획득합니다.]

25화만에 골베 1위에 올랐다.

[특수 연계 퀘스트가 갱신.]

[19번. 선호작 2만을 달성하라.]

그리고 지금은 선호작 1만 8천대에 1화 조회수가 5만 초반이었고 최신화는 3만에 근접했다. 추천수 역시 상당히 많았고 댓글은 매회 150개가 넘어갔다.

정말 좋은 지표였다.

이제는 계약을 맺어야 할 시기였다.

그간 컨텍 쪽지가 더 쏟아지면서 총 17곳에서 제안을 받았다. 거르고 걸러서 딱 두 곳으로 압축했다.

리치 매니지먼트.

S북스.

최종적으로 선택된 두 곳에 연락을 취했다. 컨텍 쪽지에 답장을 적어 연락처를 남겨놓은 것이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뉴페 작가님 맞으신가요?)

"아, 네."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리치 매니지먼트의 판타지 부서 팀장직을 맡고 있는 정후성입니다. 답장 주신 걸 읽자마자 너무 기쁜 마음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꼭 작가님과 계약을 맺고 싶어서요.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해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내일 점심 어떠신가요? 동네 알려주시면 근처 맛집에 미리 예약을 해놓겠습니다.)

"어, 그러면..."

내일 오후 12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서 통화를 종료하는데 어딘가에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S북스의 대표직을...)

이번에는 S북스였는데 대표가 직접 연락을 해왔다. 그렇다고 선약을 깨트릴 순 없는 일이었기에 솔직하게 말했다.

"음. 사실 제가 다른 매니지먼트 관계자분이랑 내일 점심에 만나기로 해서요."

(괜찮습니다. 여러 곳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작가님께 도움이 될테니까요.)

당연하다는 듯한 어투였다.

진중하면서도 듣기에 편해서인지 불편하던 마음이 상당부분 가라앉았다.

(알고 계시겠지만 계약은 최대한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최대한 많은 곳과 대화를 나눠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로 저희하고도 만나서 대화를 한 번 나눠 주시면...)

"저야 좋죠."

(다행입니다. 그러면...)

얼떨결에 S북스와도 약속을 잡았다.

내일 저녁이라.

집이랑 멀지 않은 곳이라 S북스는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후우."

뭔가 시작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걱정은 없었다.

작가란 결국 글을 쓰는 동물이었기에. 더불어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소설의 재미일 테니까.

*

점심 시간에 리치 매니지먼트의 팀장을 만났다.

"...기대가 아주 큽니다. 아무래도 첫 작품을 연재하는 신인은 사실 위험부담이 크거든요. 글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일이라서요. 그래서, 계약을 하게 되면 저희는 7대3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업계 표준이기도 해서 비율을 마음대로 조정하기가 어렵거든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업계에 대한 전망과 비전, 그리고 재미난 일화까지도.

분명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만 아쉬운 건 정후성 팀장에게 류성의 글은 그저 그런 글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업계 표준 7대3의 비율.

플랫폼에서도 수수료를 떼고 에이전시에서도 떼어가는 마당이니 비율은 정말 중요했다.

어쩌면 자만일지도 몰랐다.

신인작가이니 당연한 대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연재중인 글이 다른 글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대우를 받게 하고 싶었다.

"그렇군요."

"특별히 문토피아에서는 8대2로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문토피아 옆에 적힌 7대3을 8대2로 수정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저희 리치 매니지먼트의 영업력 하나만큼은 정평이 나있다고 자부합니다. 문토피아를 시작으로 시리즌과 코코아페이지, 그리고 레디북스에 입점할 때 이벤트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느낀 점은 하나였다.

말빨이 대단하다는 것.

제대로 뭔가 질문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알고 있었다. 믿어야할 건 지금 나누는 대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중요한 건 계약서고.

거기에 적히는 글자와 숫자뿐이었다. 류성은 지금 그 숫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고.

"잘 들었습니다."

"그럼 바로 계약을 진행할까요?"

그에 류성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아... 으음. 그러면 타 플랫폼 비율을 75까지는 어떻게든 맞춰드릴 테니..."

이렇게 갑자기?

이러면 더 마음이 떠날 뿐이었다.

"다음에 연락 드리죠."

"음. 알겠습니다. 부디 좋은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흐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언가 아쉬운 마음에 S북스에 연락을 넣으니 마침 지금 시간이 비었으니 바로 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 지금 갈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작가님.)

생각보다 금방 S북스에 도착했다.

크고 우아한 건물.

7층을 사용 중인 S북스의 내부는 생각 이상으로 볼거리가 많았다.

연재중인 작품들 가운데 책으로 나온 것들이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었고 웹툰화가 된 작품의 일러스트가 여기저기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멍하니 보고 있는데 직원이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 여기 대표님을 뵙기로 해서요."

"대표님이요?"

"네. 뉴페 작가라고 하면 아실 겁니다."

"아, 뉴페님...!"

"네?"

"아, 아뇨. 글 잘 보고 있어요. 자, 잠시만요."

도망치듯이 어딘가로 향한 직원의 목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대박, 대박, 뉴페 작가님이라니...!"

아무래도 격하게 환영받는 모양새였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