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75화 (75/277)

< 재단법인 설립(2) >

보육원 아이들 체험교육도 시작하기로 했다.

"주말마다 전문 선생님을 모셔서 해당 직업에 대해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해볼게요. 노래, 연기, 미술, 스포츠, 피아노, 등등. 생각보다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게 많더라고요. 그렇게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분명 흥미를 느끼는 아이도 나올 테고, 재능을 보이는 아이도 보이겠죠."

"생각을 많이 하셨네요, 부사장님."

한애라 부사장이 미소를 머금었다.

"보육원에서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 보여요. 아이들도 좋아할 겁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도 수업이 진행될 때마다 찾아가서 한 번 볼게요."

"약속하신 거죠?"

"네, 매번 꼭 가겠습니다.“

그래야 메모장에 적어둔 재능과 아이들의 흥미도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이상한 분야로 빠지려고 한다면 한 번 정도는 설득할 수도 있을 거고 지닌 재능과 심각하게 엇나갈 때도 붙잡아볼 수 있을 테니까.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거 같네요. 혹시 더 필요한 게 있을까요, 이사장님?"

"음, 필요하다기보다는 궁금한 게 하나 있긴 해요. 요즘 고민하는 문제거든요."

"어떤 걸까요?"

"예술가를 위한 지원도 해보고 싶어서 말이죠."

한애라 원장님이라면.

아니, 부사장이라면.

이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예술가요?"

한애라 부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류성이 조금 더 설명했다.

"네. 우리나라가 좀 박하잖아요. 예술가는 배고파야 한다는 인식도 그렇고요."

"으음..."

"뭔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서요. 해외로 넘어가는 예술가가 생각보다 많은 거 같던데 괜히 외국에 인재를 빼앗길 필요도 없고요. 뛰어난 재능을 우리나라에서 펼칠 수만 있다면 그러는 게 더 좋을 거 같은데, 혹시 괜찮은 아이디어가 없을까요?"

"예술가라..."

한애라 부사장과 함께 고민에 잠겼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건 어떠세요? 일단..."

"나쁘지는 않은데..."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지긴 했으나 어딘가 조금씩 모자란 아쉬운 것들이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무언가 떠오른 듯 한애라 부사장이 손뼉을 쳤다.

"공모전...!"

"네?"

"공모전을 개최하는 건 어떠세요?"

"어, 공모전이라..."

"엄청난 상금과 지원이라면 눈길을 끌 수밖에 없거든요."

거금의 상금, 그리고 지원.

모든 재료에 관한 값을 부담하고 홍보를 한다면?

"거기다 작품 판매처까지 확보하는 거죠!"

만들어진 작품은 전시를 통해 판매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되면 예술가는 지원을 받아 하고픈 걸 할 수 있고 만들어진 작품이 팔리면서 돈까지 거머쥘 수 있으리라.

[국내 예술가의 발전을 위하여!]

[국내 예술가의 인프라가 너무나 열악하다. 그 탓에 많은 예술가가 해외로 시선을 돌리는 중이다. 재료를 준비하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해주는 업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 현실에 자그마한 균열을 일으켜라.]

[남은 시간 : 무제한.]

[성공 보상 : 랜덤카드, 선행 포인트.]

슬쩍 퀘스트를 떠올렸다

홀로그램을 보면서 공모전을 생각해봤다.

아무리 봐도 찰떡이었다.

"그거, 너무 좋은데요?"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이슈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그마한 균열? 아니, 거대한 균열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리라. 공모전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원장님. 아니, 부사장님."

"네, 이사장님."

"예술가를 위한 공모전도 열어보죠. 자세하게 알아보면서 순차적으로 하나씩 해봅시다."

무언가 제대로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

왜소한 체격의 남학생이 보였다.

중학교 1학년, 홍민기였다.

친구들과 비교해도 훨씬 자그마한 체격을 지닌 아이였다.

으으, 배고파 죽겠네.

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견디다가 점심이 되어서야 간신히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남들보다 많은 양을 먹었다.

그래야 내일 점심까지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아무튼 배가 좀 차니까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니, 걱정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터였다.

할아버지는 괜찮으시려나.

몸이 좋지 않아서 점심도 혼자서는 챙겨 먹지 못했을 텐데.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을 지웠다.

집중하자.

구석진 자리에서 홀로 조용히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수업이 끝났다.

빨리 집에 가야 했다.

가서 밥이랑 약을 챙겨드려야 했다. 물론 가끔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사람이 나오지만 항상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었으니까.

동생들 저녁도 준비해야 하고.

근데 밥은 있던가.

쌀도 거의 다 떨어졌을 텐데.

힘든 삶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의 삶을 한탄하진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나이가 좀 더 들면.

조금씩, 서서히 나아지리라 믿었으니까. 적어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나이만 된다면 지금처럼 밥을 굶는 일은 사라질 거라 믿었다.

"자, 수업 끝났고. 홍민기? 마치고 교무실로 오도록."

"아, 네."

홍민기는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서 아이들과 함께 교실을 나섰다.

"내일 보자!"

"야야, 코노나 갈까?"

"오, 좋지!"

"민기, 너는?"

"아, 나는 일단 교무실부터 가야 해서. 시간 되면 뒤따라가던가 할게."

"오케이!"

홍민기는 애써 웃으며 교무실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주머니를 뒤적거렸는데 딱 300원이 들어있었다.

노래 한 곡.

그걸 부르면 사라질 돈이었다.

아까웠다.

차라리 모았다가 너무 배고픈 날 매점에서 빵이라도 하나 먹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것도 아니면 더 많이 모았다가 동생을 간식을 사주거나.

그러니까.

오늘도 코인 노래방에 가는 대신.

친구와 노는 대신.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전에 교무실에 들러야겠지만 말이다.

마침 목적지에 도착했다.

홍민기는 열린 문으로 들어가 담임선생님이 위치한 곳으로 다가갔다.

"어, 왔어?"

고개를 든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별 건 아니고. 일단 앉아 봐."

"네."

"자, 이거부터 받고."

"이게 뭔가요, 선생님?"

"식권이야. 예전에도 받았었지?"

"아, 네. 근데 방학도 아닌데..."

"그 뭐라더라, 아, 그래. RS라는 재단에서 우리 학교에 후원하거든. 거기서 방학이 아니어도 식권을 최대한 나눠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해와서 말이야. 너도 알만큼은 아니까 얘기 해주는 거야."

순간 홍민기의 눈이 커졌다.

"RS요?"

"어. 왜?"

"아, 아뇨."

"아무튼, 받으면 돼. 웬만한 식당에서 전부 다 사용할 수 있는 식권이니까 잘 사용하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인사를 하면서 식권을 쳐다봤다.

갯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근데... 너무 많은데요?"

"아, 동생도 있잖아. 재단쪽에서 형제, 자매가 있으면 그 부분도 생각을 해달라고 하더라고."

"아...?"

"더 궁금한 거 있고?"

"아뇨."

"그래, 항상 밝고 씩씩해서 보기 좋다. 이제 가 봐."

"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와 학교를 벗어났다.

스윽.

고개를 돌려 학교를 눈에 담았다.

진찬 중학교.

그리고 다시 정면으로 나아가면서 주머니에 넣어둔 명함을 꺼냈다.

<재단법인 RS>

선생님한테 들었던 그 이름이 맞았다.

"그 아저씨인가?"

얼마 전 집까지 쫓아왔던 아저씨 한 명이 떠올랐다.

진짜였구나.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간 보아왔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어차피 바뀌는 건 없어."

가난이란 그런 거니까.

그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금도 감사했다.

하지만 그 도움이 삶을 바꿔주는 건 아니었다. 죽지 않을 만큼의 숨통만 뚫어줄 뿐이었으니까.

이번이라고 다를 건 없을 터였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이번에도 그럴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

류성이 현재 지내는 동네, 시흥동.

일단은 금천구청 직원을 통해 후원 및 지원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이 존재했다.

"소년 소녀 가장이란 단어가 바뀌었다고요?"

(네. 2,000년부터 소년 소녀 가정이라고 부르고 있긴 합니다만. 뭐, 대부분은 가장이라고 부르는 게 현실이긴 하죠.)

알아두면 좋을 용어였다.

가장이 아닌 가정.

"그렇군요. 그럼 시흥 1동에는 몇 가구가 있는 거죠?"

(시흥 1동에 있는 소년 소녀 가정은 총 7가구입니다.)

류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많이 적네요. 물론 좋은 일이긴 한데..."

(한부모 가정이야 200만 가구가 넘어간다지만 소년 소녀 가정은 전국에 3천 가구가 안 되니까요.)

"3천 가구라..."

(2,000년대 초기에만 해도 2만 가구가 훌쩍 넘긴 했었는데 아동 인구가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도 있습니다. 아동 보호에 관해서 현실적으로 좀 바뀐 부분이 영향을 준 것도 있고요.)

"어떻게 말인가요?"

(사실상 현재 남은 소년 소녀 가정은 대부분 부모님 대신 거동이 불편한 조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경우거든요.)

"아이들끼리만 지내는 가구는 없나 보군요?"

(예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습니다. 가정위탁이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많이 바뀌었거든요. 쉽게 말해서 입양을 보내거나 혹은 입양 전 위탁 보호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보육원 같은 시설에서 공동생활을 하거나, 그렇게 지내는 편입니다.)

"아아...!"

그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남아있는 소년 소녀 가정에 대한 걱정이 치밀었다.

"그럼 지금 남은 소년 소녀 가정은 힘들겠군요."

(네. 아직까지 남아있는 소년 소녀 가정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게 지내고 있죠.)

"아이가 어른을 돌봐야 하니까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최대한 도움을 주려고 노력은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 그래도 이렇게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류성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금천구 전체는 몇 가구일까요?"

(정확히 53가구입니다.)

"53가구라..."

해당 가구를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금액이 필요할지 가늠이 안 되지만 그래도 53가구라면 크게 무리가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전부 후원하도록 하죠. 앞으로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후원하기로 하신 거, 지켜보는 제가 다 고마울 지경입니다. 제가 인사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문득 며칠 전 만났던 아이가 떠올랐다.

홍민기라고 했던가.

이제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

별을 품은 매니지먼트는 여전히 반응이 좋았다. 날이 흐를수록 최신 유료 구매수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였다.

입소문이 엄청나게 터지기도 했고 문토피아 이벤트 역시 끝없이 이어진 덕분이었다. 물론 글 자체가 재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5. 별품매(55화)

구매:20,809 I 추천:1,912 I 댓글:397

매일 2편씩 연재를 하는 터라 벌써 55화가 올라갔다. 최신화였는데 올라온 지 10시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구매수가 이미 2만대였다.

정산내역 - 10월

작품 : 별을 품은 매니지먼트

총구매 : 596,771

취소 : 0

매출 : 59,677,100원

정산금액 : 36,694,256원

정산금도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이게 10월 중순이 넘어선 시점부터 정산된 내역이었다.

"이 정도 판매량이면..."

아마 다음 달 11월은 정산금이 1억 원에 가까울 것 같았다. 타플랫폼에 풀리기 시작하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터였다.

웹툰도 남아 있었다. 요즘은 웹툰이 세계로 수출되는 형국이라 그 또한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웹툰에서 원작자가 가져가는 비율은 극도로 낮은 편이지만 거기서 파생되는 신규유입이 상상을 초월할 게 분명했다.

가늠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작품 하나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될 것인지.

해뤼포터 작가는 1년에 1,000억 이상을 벌기도 했었다.

당연히 비교할 순 없겠지만.

류성은 운명의 타로카드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처럼 흩날리는 돈다발과 거기에 파묻혀 왕좌에 앉게 될 것이라는 그 문구를 말이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두근, 두근.

어쩐지 이제 겨우 스타트라인에 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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