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런녀(1) >
개미가 기관을 이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역사상 그런 적이 몇 번 존재했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건 정말 특별한 경우였다. 실제로 그런 장면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에서 발생하리라.
그것도 눈앞에서.
아니, 그 현장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로서 말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최초의 중급 카드 보상 특전입니다.]
특전 하나가 류성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특전 퀘스트 발동!]
[개미를 위한 사투에 동참하세요.]
[이미 모든 결과는 정해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참여로 해당 정보와는 다른 미래가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보다 빠른 숏스퀴즈가 발생할 수도 있으며 혹은 정보권에 적힌 최고점이 더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공매도와의 전쟁을 한층 더 극적으로 만드십시오. 달라진 결과를 판단하여 차등 보상을 지급합니다.]
[성공 보상 : 선행 포인트.]
흥미로운 상황이었다.
특전 퀘스트라니.
적극적인 참여로 결과를 더 좋게 만드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흐음."
이러면 생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함께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카페에 글도 자주 올리고.
종토방도 들리고.
그러면서 공매도 전쟁에 참여해달라는 시그널을 꾸준히 보내면 상당한 호응을 얻을 터였다.
주식을 하는 이에게 공매도란 언제나 적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특히 코스피나 코스닥 종목으로 주식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여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 함께 공매도 전쟁에 참여한다면 분명 정해진 결과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적어둬야지.
메모장을 열고 정보를 간략하게 줄여서 작성했다.
[11월 25일 장 막판에 숏스퀴즈 발생.]
[11월 26일부터 상승세.]
[12월 13일, 최고점 가격 24만 7,500원 달성.]
짧고 단순했지만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공부도 좀 해야겠고.
25일이 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매력적인 제안도 생각하면 좋을 거 같았다.
결국, 수익이겠지만.
일단은 그 정도로 생각의 정리를 마쳤다.
"도착했습니다! 다들 내리시면 됩니다!"
마침 식당에 도착했다.
"미리 알아두실 건, 이 식당은 착한 영향력 스티커가 붙은 곳이라는 거죠."
"착한 영향력 스티커요?"
"네. 해당 스티커가 뭐냐하면..."
공무원 팀장의 설명에 다들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곳이었네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럼 들어가시죠."
전에 부모님과 함께 왔던 그 비싼 식당은 아니지만 여기도 동네에서는 음식 맛이 괜찮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메뉴도 다양한 편이었다.
저렴한 백반은 8천 원부터 시작했고 비싼 음식으로 이뤄진 한정식은 최고 7만 원까지 나갔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의 인사도 정겹게 들렸다.
"몇 분이나 되실까요?"
"총 스물다섯 명입니다."
"자리가 부족해서 상을 몇 개 붙이거나 따로 앉으셔야 할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안내해드릴게요."
중앙 부근에 자리를 잡고 적당한 가격대의 메뉴를 주문했다.
대략 5만 원짜리 선이었다.
조금 기다리니 상이 부러질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이 순서대로 차려졌다. 메인 음식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이미 푸짐했다.
"자, 오늘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마음껏 드세요. 물론, 제가 사드리는 건 아니지만요!"
팀장의 너스레에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흐흐,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게다가 음식의 맛도 좋았다.
"오오, 완전 맛있는데요?"
"맛집이네요, 여기!"
사진을 찍는 사람도 보였고 허겁지겁 먹는 이들도 있었다. 류성도 한 자리를 차지한 채로 느긋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괜찮네.
오랜만에 왔는데 예전과 같은 맛이었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했다.
간도 너무 강하지 않아서 좋았고.
띠링.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류성은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어서 누구인지 볼 수 없었다.
딱히 관심도 없었고.
그냥 다른 손님이 들어왔구나 하는 정도였다.
"아니, 저 애들은..."
다만 맞은 편에 앉은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는데 참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허, 정말 어이가 없네."
그러다 새롭게 들어온 손님이 주문까지 하는 걸 확인하자마자 벨을 눌렀다.
띵동.
곧이어 직원이 다가왔다.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세요?"
"아뇨, 그건 아니고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저기 저 애들, 왜 여기서 밥을 먹어요?"
"네?"
뭔가 이상한 대화에 그제야 류성이 고개를 돌렸다.
뒤쪽에 자리 잡은 아이들.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마침 옆에 있던 자원봉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 애들은 아까 그 애들이네."
"어머, 그래요?"
"네. 제가 맡은 집에 물건 옮기다가 봤어요."
"아, 근데 저 사람 왜 저런대요?"
"모르겠어요."
"참, 나. 저 애들은 여기서 밥 먹으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나."
"그러게 말이에요."
작게 이야기를 나눠서 류성에게만 딱 들리는 수준이었다.
새로운 손님의 정체는 바로 소년 소녀 가정에서 지내는 아이들이었다. 아마도 식권을 들고 온 모양이었다.
"아니, 저 애들이 어떻게 여기서 밥을 먹냐고요!"
그때 류성의 맞은 편에 있던 30대 여성의 목소리가 다시 퍼졌다.
"여기 제일 싼 백반도 8천 원이잖아요. 그게 식권으로 감당되는 건가요?"
"손님.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종업원은 당황했고 다른 자원봉사자도 어이없는 표정들이었다.
특히 공무원들.
그중에서도 팀장인 고형준의 표정이 가장 안 좋았다.
"저기요. 봉사자님. 이런 곳에서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만."
"뭐가요? 5만 원짜리 비싼 밥 먹으면서 기분 좀 내는 중인데 저런 애들 보이면 그 기분이 깨지잖아요. 안 그래요? 제 말이 틀렸어요?"
"허, 아무리 그래도..."
"나, 참. 다른 저렴한 식당에서 먹어도 배는 차거든요? 그러라고 세금 아껴서 식권 나눠주고 하는 거 아니에요?"
"...."
"거봐요. 대답 못 하잖아요? 저런 애들은 그냥 적당한 곳에 가서 먹으라고 해요. 알겠어요?"
정말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황당함이 극에 이르고.
끝내 류성은 일그러진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입매를 비틀었다.
그래, 세상에 어떻게 좋은 사람만 존재할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원봉사자 중에 저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물론 각자의 이유는 있겠지만 더 신경 쓸 마음은 없었다.
저런 거지 같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더 들어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거기, 이름이 뭡니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30대 여성이 그 질문에 류성을 쳐다봤다.
"저요?"
"네."
"그건 왜요?"
대답하지 않는 여성을 바라보면서 김형준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네..."
"이 사람, 이름이 뭡니까?"
"죄송합니다. 이름까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서류를 보면 알 수 있기는 한데..."
"그럼 아줌마라고 불러야겠네요. 거기, 아줌마."
"뭐, 뭐라고요!"
"그런 마인드로 자원봉사는 잘도 왔네요? 물품 옮기면서 애들한테 어떤 우월감이라도 느끼시나 봅니다?"
"하, 그거야 제 마음이죠!"
"아, 그렇죠. 남의 마음 어떻게 할 수는 없겠죠. 근데..."
어느새 류성의 표정이 낮게 가라앉았다.
차가움, 그 자체였다.
번들거리는 눈빛은 극에 달한 분노가 더해지면서 기이하게 비틀렸다.
"내 앞에서 그따위 말을 하면 안 되지. 내가 당신 인생 하나 정도는 망가트릴 수 있어서 말이야."
"다, 당신. 지금 무슨 헛소리를...!"
살짝 표정을 풀고서 여성을 직시했다.
"안 그래도 돈을 어디에 더 써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잘됐네요. 그쪽 인생 한 번 제대로 망가트려 줄까요? 아니면, 당장 저기 달려가서 90도로 고개 숙이고 아이들한테 사과할래요?"
"당신, 당신이 뭔데! 뭔데 이 난리야!"
류성이 명함을 꺼내어 던졌다.
그걸 확인한 여성.
그녀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이번 후원 주최 측, 재단법인 이사장입니다. 됐습니까?"
"그, 그..."
"두 번은 말 안 합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여성은 안절부절못한 채 머뭇거렸다.
마음이 기울었다.
"팀장님."
"네...!"
"저희 측에서 자원봉사자 신상 적힌 서류도 받았던가요?"
"네, 며칠 전에 보냈습니다. 자원봉사자 지원서는 주최 측과 공유하는 게 원칙이라서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거기 보면 다 나와 있겠네요. 저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저 사람 인생이나 제대로 무너트려 보죠. 가끔 그런 재미가 있어야 또 사는 게 즐겁지 않겠어요?"
"하, 하하..."
여성은 그제야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해요! 한다고요!"
"소리는 지르지 마시고."
"...할거에요."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에게 향했다.
저벅.
류성도 그녀를 따라서 움직였다.
"저, 저기. 미안해, 괜찮지?"
"...."
애들은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마음에 상처를 입은 건지 반응이 없었다.
"그런 태도로는 안 되겠네요. 저는 먼저 가보죠."
"자, 잠깐만요!"
류성은 무시한 채 식당 정문으로 이동했다.
그제야 여성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미, 미안해. 진심으로 사과할게..."
정확히 90도로 인사를 했다.
그제야 아이들도 조금 당황했는지 따라서 인사를 했다.
"괘, 괜찮아요."
"네, 뭐..."
류성은 몸을 돌려 사과를 받아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럴 땐 괜찮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럼요...?"
"앞으로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얘기해야지."
"어, 그, 그게..."
"내가 대신해줄게. 아줌마."
"네..."
"그만 가세요."
한 걸음 나아가면서 낮게 속삭였다.
오직 그녀와 뒤쪽 아이들만 들을 수 있게끔.
"앞으로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시고."
그녀는 황급히 식당을 벗어났다.
도망치듯, 멀어지기 시작했다.
"자, 이제 여기는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드세요."
류성은 이후 아이들과 조금 더 대화를 나눴다.
"미안. 시끄러웠지?"
"아, 아뇨."
"괜찮아요, 저희가 잘못한 거니까..."
"무슨 소리야.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이런 곳에 오라고 식권 주는 거야. 그러니까 마음껏, 실컷 와도 돼."
"정말요...?"
"그럼. 앞으로도 계속. 알겠지?"
"네에...!"
"그래, 가서 편하게 먹어."
이어서 종업원에게도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대표로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모든 상황이 끝났지만 기분 좋은 척하며 음식을 먹을 순 없을 것 같았다.
"팀장님, 죄송하지만 저는 먼저 가볼게요."
"아,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식당을 나서자마자 억지로 짓던 미소가 사라졌다.
"쯧."
너무 쉽게 용서해준 건가 싶기도 했다.
방법은 많은데 말이야.
당장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것만 해도 충분히 다양했다.
다만, 너무 악독할 뿐.
그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을 했다.
기분은 잡쳤지만.
"에휴."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지만 찝찝한 기분 탓인지 깊게 잠들지 못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들려온 좋은 소식이 류성을 미소짓게 만들었다.
"이야."
이게 또 이렇게 돼버리네.
기분이 꽤 상쾌해졌다.
류성의 시야로 어제 있었던 일이 담긴, 영상 하나가 보였다.